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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권우성
법원 사무관(등기소장), 변호사, 신문사 논설위원(한겨레), 시민운동가, 서울시장.

서울시장 3선에 도전하는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후보가 거쳐 온 경력들이다. 만 7년 가까이 시장을 지냈고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이라 '박 시장'이 가장 익숙한 타이틀이지만, 시장으로만 기억되기에는 평범하지 않았던 인생이었다.

그의 삶을 정리한 책은 지금까지 3권 나왔다. 작가 지승호의 인터뷰집 <희망을 심다>(2009년 4월), 오마이뉴스 대표 오연호의 인터뷰집 <정치의 즐거움>(2013년 7월), 역사비평 편집주간 출신 임대식이 쓴 <박원순이 걷는 길>(2015년 2월)이다.

16일 오후 기자가 서울 종로구 가회동 시장 공관에서 만난 박 후보는 "사람들은 최근 모습만 기억하지, 과거는 다 잊어버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는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박 후보의 '젊은 날'을 끄집어낸 이유이기도 하다.

임대식의 책에는, 인터넷을 찾아봐도 안 나오는 정보가 몇 가지 있다. 제일 먼저 눈길을 끈 것은 그의 성장기 지능지수(IQ)다.

초등학교 4학년(1964년 5월) 때는 101, 중학교 1학년(1967년 3월)때는 91, 경기고등학교 때는 116. 책에서는 박 후보가 "1992년 이탈리아 여행 중에 2층 침대에서 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쳤는데 그 후 머리가 좋아져 지금 검사하면 300 정도 나올 것"이라고 농담으로 받아쳤지만, 인터뷰 답변은 진지했다.

"경기고 시절에 116까지 올라갔던가? 나는 천재가 아니라 노력파다. 그리고 천재는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게 아니라 집중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봐야 한다. 집중력은 호기심에서 나온다. 좋아하는 게 생기면 잠도 안 오지 않나? 이탈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어린이집 교과과정을 대학교수가 봐주는 걸 보고 아주 놀랐다. 그 나라의 교육목표가 어린이들의 호기심 유지에 집중된다는 의미다. 우리나라는 공부를 억지로 시켜서 공부에 정나미가 떨어지게 만들지 않나? 자기 하고픈 걸 할 때 공부도 잘하고 뭐든 성취를 해낼 수 있는 거다. 이 세상 어딘가에는 온 국민을 천재로 만드는 비결이 있다고 본다. 일본에 '1억 총활약 사회'라는 슬로건이 있다. 우리나라도 각자의 꿈과 잠재력을 키우고 실현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영산중학교 재학시절 증명사진. 중학교 1학년 시절에 측정한 지능지수(IQ)는 91이었다고 한다.ⓒ 박원순
그러면서 나오는 '부모님' 얘기.

- 호기심과 집중력이 있으면 누구나 박원순처럼 될 수 있다?
"그럼요. 내가 그 정도의 지능지수를 갖고도 사교육 한 번 안 받고 시골에서 시험 쳐서 경기고에 갔다. 입학하자마자 제적당하긴 했지만, 서울대에도 들어갔고. 부모가 억지로 시켰으면 오히려 더 안 했을 거다. 나도 어렸을 때는 농땡이 치고 엄청난 장난꾸러기였다. 공부 정말 못 했다. 중학교 2학년 때인가, 언덕에서 부모님이 쉬지 않고 가을걷이하는 모습을 봤는데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때부터 정말 열심히 했다. 교과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외웠고, 문제집도 시험에 무슨 문제가 나올지 알 정도로 풀었다." 

해마다 5월에는 박 후보 스스로 운명을 바꿨다고 부르는 날들이 있다. 하나는 5.18이고, 또 하나는 5.22(일명 오둘둘)이다.

시기적으로는 1975년 5.22이 빠르다.

그해 4월 30일 베트남이 완전히 공산화된 것을 기화로 박정희 대통령은 5월 13일 오후 1시 30분 국무회의에서 유신헌법에 대한 일체의 반대를 금하는 이른바 '긴급조치 9호'를 내놨다. 당시 학생운동의 온상이었던 서울대 혜화동 캠퍼스의 면학 분위기 조성을 위해 관악산 기슭으로 학교를 옮긴 것도 이 해의 일이었다.

박원순의 운명을 가른 두 가지 사건: 5.18과 5.22

그러나 축산학과 4학년 김상진씨가 '유신 반대'를 외치며 할복자살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해 5월 22일 '김상진 장례식' 시위에는 서울대생 4000여 명이 동참했다(일명 '오둘둘 시위 사건'). 신입생이었던 박 후보는 당시 도서관에 있다가 시위에 참여했는데, 그날 구속된 56명 중 한 명이 됐다.

"오둘둘 시위가 내 운명을 가른 사건인 것은 분명하다. 그 시절 시골 부모님들 바람이 뭐였겠나? 서울대(사회계열) 들어갔으니 사법시험 합격해서 판검사 되라, 세 명 이상 모이는 곳은 가지 마라, 이런 얘기 하셨다. 내가 서울대에서 공부만 했으면 공안검사가 됐을 지도 모른다. 하하, 공안검사가 반드시 나쁘다는 뜻은 아니고..."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권우성
오둘둘 시위는 당시 박현식 치안본부장(지금의 경찰청장)과 박영규 남부경찰서장이 한꺼번에 경질될 정도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박 후보도 무사하진 못했다.

"예전 같으면 단순시위 가담자는 훈방이나 30일 구류 정도에 처했을 텐데, 관련자들 전원 구속되고 제적시켰다. 하여튼 지금 돌아보면 나는 줄을 참 잘 섰다. 정말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억압자, 가해자의 길이 아니라 피억압자, 힘든 사람들 편에 서는 변호사나 사회운동가의 길을 가는 계기가 됐으니까. 짧은 기간 갇혀있으면서 많은 걸 깨달았다. 운명이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1980년은 광주민중항쟁 때문에 현대사적으로 중요한 해였지만, 박 후보 개인적으로도 그랬다. 그해 6월 4일 사법고시 22회 합격자 명단에는 훗날 대통령이 되는 문재인과 함께 그의 이름이 들어갔다.

"5.18 광주항쟁 이전에 '서울의 봄' 기간에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는데, 거리로 나와서 실천을 하지는 못했다. 그 시절에도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과 <뉴스위크>를 볼 수 있었는데, 유독 우리나라 뉴스는 꺼멓게 지워져서 나오는 거다. 마음이 너무 답답했다. 광주항쟁 관련해서는 논문까지 쓸 정도로 그 이후에도 관심이 많았다. 1975년 5.22과 1980년 5.18, 그 시대의 많은 청년들처럼 나에게도 '시대의 병'을 앓게 만든 양대 사건이었다."

1978년 8월 23일 법원 사무관 시험에 합격한 뒤 이듬해 정선 등기소장을 맡았던 시절의 박원순 시장과 당시에 사용한 명함.ⓒ 박원순
인천에서 노동운동을 하던 서울대 선배 이호웅의 권유로 박 후보는 검사를 지망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학생운동으로 징계를 받은 합격자들은 판검사 임용의 길이 막혀있었다. 그러나 박 후보는 1978년 8월 23일 법원 사무관 시험에 합격한 뒤 8개월가량 강원도 정선에서 등기소장을 지낸 경력이 있었기 때문에 큰 의심을 받지 않고 1982년 9월 1일 대구지검 검사로 발령받았다.

"검사 6개월 해보니 내 체질에 안 맞더라"

그러나 그는 1년 만에 사표를 내고 1983년 9월 12일 변호사로 전업했다.

"6개월 정도 검사를 해보니 계속할 일이 못 되더라. 가해자 입장에 서는 것이니 내 체질에 안 맞는 거다. 그런데 검사장이 '조금만 더 해봐라. 1~2년 지나면 괜찮다'며 반려했다. 결국, 그 검사장이 다른 곳으로 좌천되면서 내 사표도 받아줬다."

고등학교·대학교 선배이자 사법연수원 동기였던 조영래 변호사를 만나면서 박 후보는 재야 법조계의 '막내 인권변호사'로 자리매김했다.

시위 제적생과 인권변호사, 시민운동가가 그의 과거라면 서울시장은 그의 현재다. 2000년 낙천·낙선 운동을 주도했던 그가 공무원이 되자 '변했다'는 비판도 많이 들려온다. 몇 가지 지적 사항들을 물어봤다.

- 시민운동가 시절에는 공무원들에 대해 혹평을 많이 했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뭘 하는지 모르겠다"는 말까지 했는데, 지금은 "서울시 공무원이 세계 최고"라며 칭찬 일색이다. 직접 해보니, 겪어보니 생각이 달라졌다고 봐야 하나?
"칭찬해야 한다. 그래야 더 열심히 하니까. 하하하...

나도 2011년 서울시장에 처음 출마할 때부터 고민을 많이 했다.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이나 책임성 결여에 대해 비판론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일단 공무원 사회 안으로 들어왔는데 내가 누구와 일을 하겠나? 공무원을 개혁의 대상으로 만들면 적이 되어버리는 거다(그는 2013년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많은 개혁론자들이 실패한 이유는 공무원들을 적대적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이들을 개혁의 주체, 개혁의 동지로 만들어야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내가 일 처리에서는 '깐깐한 시장'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서도 칭찬하고 격려한다. 그래야 더 잘하니까. 다른 지방의 공무원들에 비해 서울시 공무원들이 우수한 것도 엄연한 사실이다. 정권교체의 모체가 된 촛불혁명의 성공 이면에도 시민의 저항권을 보장하고, 주말을 반납해가며 안전과 편의를 제공해 온 서울시 공무원들의 역할이 있었다."

"한강 수중보 철거론 논지 불충분, 결론 못 내릴 수도"

- 서울시장이 된 후 바뀐 것이 또 하나 있다. 2011년에는 시장이 되면 한강 신곡 수중보를 철거해 한강 자연 생태를 복원하겠다고 했는데, 6년이 넘도록 결론을 못 내리고 있다.
"밖에서는 어떤 주장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실현될 때 가져올 결과물의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다.

'보를 철거해야 한다'는 가톨릭관동대 박창근 교수의 연구 결과를 놓고 서울시가 숙의를 거듭했다.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철거 반대론에 대해 철거해야 한다는 쪽의 논지가 불충분했다. 예를 들어 보를 철거할 경우 수위가 1~2m가량 낮아지는데, 그것이 한강 본류와 지천의 생태계에 줄 영향도 고려해야 하지 않나? 그래서 용역을 추가로 의뢰한 상태다(추가 연구 기간은 내년 3월까지라고 한다). 내 생각이 변한 게 아니라 그만큼 신중한 논의의 프로세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 그런 식이면 3선 하더라도 남은 임기 동안에도 결론을 못 내릴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결론을 빨리 내리자고 얘기는 해놓았는데, 못 내릴 수도 있다. 수십 년 동안 결론을 못 내린 것들도 많지 않나?"

- 3월 싱가포르에서 '리콴유 세계도시상'을 서울시가 받았다. 그런데 이명박 시장 시절의 청계천 복원이 '역사문화재생', 오세훈 시장 시절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산업재생' 등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더라. 박 시장이 취임 초기에 비판했던 전임 시장들의 업적을 다른 나라에서는 평가해준 것 아닌가?
"그 상에서 가장 좋은 평가를 받은 부분은 '도시재생'과 '시민참여'였다. 청계천이 외형적으로는 괜찮지만, 너무 인공적이고 역사나 생태를 파괴한 부분도 적지 않다. 그렇다고 심사위원들에게 그런 부분을 일일이 설명하지는 않았다.

물론, 전임 시장들에게도 공과가 다 있다. 서울의 시정도 과거의 연속이지, 내가 100%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역대 서울시장들이 추진해온 정책과 사업이 진화 발전되고 때론 반면교사가 되기도 하면서 오늘날까지 온 것이다. 특히 1960~70년대 시장들이 서울의 SOC(사회간접자본) 투자를 그때그때 잘했다고 평가한다."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권우성
- 희망제작소 시절 사회적 기업이나 소기업이 만드는 물건을 홍보·판매하는 '희망수레' 프로젝트를 하려고 했고, 후배들이 반대하자 '내가 직접 광화문에 리어카를 끌고 나가겠다'고 했다. 서울시장이 된 후 그 사업은 추진하고 있나?
"서울산업진흥원에서 사회적 배려 기업들의 마케팅을 해주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 참신한 아이디어와 상품이 있어도 유통망과 홍보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회적 배려 기업들을 위해 '아이.마켓서울.유'라는 이름의 희망장터도 계속하고 있다. 지금까지 희망장터를 14번 개최해서 소기업 500개가 참여했다.

책임구매제라고 해서 서울시의 조달시스템을 바꿔서 가급적 그런 기업들의 제품을 사주려고도 한다. 그런데 시에서 뭘 해보려고 해도 중앙정부 조달청의 가이드라인이 너무 엄격하다. 뭘 하나 하려고 해도 도처에 걸린다. 이래서 '지방분권'이 중요하다. 지방분권과 자치의 철학을 가진 사람이 행정안전부 장관이나 총리가 되거나, 아니면 그분들을 뒷받침하는 자리로 가야 한다."

- 박원순의 서울시에는 '랜드마크 사업이 없다'는 얘기가 있다.
"랜드마크를 큰 건물로 한정해서 생각하는 것은 과거 패러다임이다. 랜드마크는 토목=성장이던 시대에 절실했던 일이다. 이제는 굳이 그런 건물이 많이 짓지 않아도 도시의 숨겨진 매력이 충분히 드러날 만큼 서울은 진화했다.

역사문화, 자연, 사람이라는 서울의 3대 랜드마크가 빛을 발하고 있다. 구태여 인공적 랜드마크를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쓰는 대신 우리가 품고 있는 이 세 가지 매력이 서울의 랜드마크로서 제대로 발현되도록 하겠다."

"이번 선거의 경쟁 상대는 나 자신... 정치는 결국 민심 얻는 것"

인터뷰를 하는 날 오전에는 이데일리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13~14일 실시한 서울시장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박 후보 60.8%,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 16.0%, 바른미래당 안철수 후보 13.3%의 순이었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그러면서 역대 민선 서울시장 선거 최다 득표율이 2006년 오세훈 후보의 61.1%라고 얘기해주자 "그러냐?"고 되물었다.

- 이번 선거에서 박 후보의 경쟁 상대는 누구라고 보나?
"경쟁 상대는 나 자신이면서 시민들이다. 물론, 시민들은 경쟁 상대라기보다는 마음을 얻어야할 대상이다. 정치의 시작과 끝이 시민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다른 후보들을 의식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고... 그분들 심정도 마찬가지일 거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박 후보는 야당의 두 후보들과도 꽤 깊은 인연이 있다.

특히 자유한국당 김문수 후보에 대해서는 1986년 서울노동연합 활동가 사건 당시 고문피해를 당한 정황을 책 <야만시대의 기록>에서 상술했고, 그를 변호하기까지 했다. 김 후보는 박 후보를 2004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으로 모시려고까지 했다.

"사람의 생각과 위상은 끊임없이 변하기 마련이다. 나도 시민운동가에서 수도 서울의 책임자가 됐고, 김 후보도 굉장히 진보적인 노동운동가였다가 한나라당 소속으로 경기지사도 두 번이나 했고 요즘은 태극기 집회까지 가더라. 그런 행적들은 결국 시민들이 판단하겠죠. 허허..."

- 극좌였던 사람이 극우로 바꾸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박 후보는 시민운동가 시절에도 기존의 민중운동과는 어느 정도 거리를 뒀다는 느낌이다.
"저도 민주노총이나 전국농민회총연맹 활동을 지지했다. 참여연대 시절에는 민노총의 전신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과 매년 정책간담회를 했다. 그런 분들과 연대는 필요하다. 그러나 저는 중산층의 밭을 잘 갈아서 우리 사회 민주주의 지형을 보다 안정되게 하는 게 나의 길이라고 판단했다."

안철수 후보에 대해서는 안 후보가 지난해 1월 16일 SBS 인터뷰에서 "한국에서는 박원순 시장이 사회적인 활동을 할 때 혁신가의 롤모델 활동을 보여주신 바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작년에는 '혁신가의 롤모델'이라고 하더니 지금은 왜 '시정을 후퇴시켰다'고 비난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과 비전, 시민의 여망에 기초해야 한다."

안 후보와 박 후보는 2009년 1월 29일 포스코 이사회에서 엇갈린 선택을 한 적이 있다. 이구택 회장의 후임을 뽑는 이사회에서 두 사람은 표결권을 쥔 사외이사였다. 박 후보는 당시 일을 이렇게 회고했다.

"이명박 정부가 민간기업 포스코의 자율적 경영을 막아서는데, 나는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당시 이 대통령의 형님(이상득)과 측근(박영준)이 후임 회장 인선에 개입했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떠돌아서 나를 포함해 여러 사람이 반대표를 던졌다. 결국, 권력의 뜻대로 된 것에 나는 항의해서 사외이사 사표를 던졌다."

"야당 후보들, 너무도 다른 세상에 사는 느낌"

더불어민주당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 권우성
그러나 안 후보가 이듬해 이사회 의장으로 오른 것에 대해서는 "안 후보와 내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에서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안 후보는 안 후보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도 두 후보의 비판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 나온 야당 후보들 보니 좀 안타깝다. 물론, 나도 신이 아닌 이상 여러 가지 오류가 있었다. 그런데 최근에 내놓은 비판들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에서조차 의견이 나뉘는 느낌이다. 너무도 다른 세상에 산다고 해야 하나?"

박 후보는 3선에 성공하면 남북대화 분위기에 맞춰 서울과 평양 간의 교류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평친선축구대회나 전국체전 공동개최처럼 '눈에 보이는' 사업도 중요하지만, 산림녹화처럼 북한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사업에도 많은 준비를 해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두 정권에서는 남북 협력이 불가능해서 계속 준비 작업만 해온 게 사실이다. 2016년 11월 10일 서울과 평양이 공동으로 할 수 있는 3대 분야 10개 사업을 발표했는데, 그중에 북한에 양묘장을 조성하는 사업이 들어있다. 최근 남북 간 실무 접촉에서도 북측이 남측에 서울시에 양묘 사업을 요청했다고 들었다. 양묘장은 이미 우리 계획에 있기 때문에 3선에 성공한 뒤 북측이 정식으로 요청하면 빠르게 진척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다른 서울시장 후보 인터뷰도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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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김도균 기자입니다. 어둠을 지키는 전선의 초병처럼, 저도 두 눈 부릅뜨고 권력을 감시하는 충실한 'Watchdog'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