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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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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이른바 땅콩회항 사태를 경험했던 대한항공 직원들은 이번에는 그때 침묵을 반복하지 않겠다며 단체 메신저 창 밖으로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의 무기는 촛불과 가면. 2006년 영화 <브이 포 벤데타>가 2018년 대한민국에서 촛불을 만나 <대한항공판 브이 포 벤데타>가 시작됐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긴급 캠페인을 통해 그들의 용기를 응원합니다. 여러분의 응원(좋은 기사 원고료)은 대한항공 직원들의 저항에 사용됩니다. (응원하기) http://omn.kr/r5sw [편집자말]
고개 숙인 부녀 오른쪽부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과 그의 딸 조현아·조현민씨. 조 회장과 현아씨는 2014년 이른바 '땅콩회항' 당시의 모습이고, 현민씨는 지난 1일 경찰에 출석할 때의 모습이다.ⓒ 유성호, 이희훈
2018년 5월 4일 금요일... 오늘이 오고 말았습니다.

오늘 오후 7시, 대한항공 직원들은 회사와 채팅방에서 뛰쳐나와 광화문에 섭니다. 가면을 쓰고 촛불을 든 채 "조양호 일가 물러나라"라고 외칠 대한항공을 사랑하는 저희의 목소리를 꼭 응원해주시길 간절히 요청 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일명 '관리자'로 불리는, '대한항공 갑질·불법·비리 제보방(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을 만든 대한항공 직원입니다. 불과 약 3주 전까지만 해도 저는 그저 회사와 집을 오가는 평범한 회사원이었습니다. 부끄럽지만 생각 없이 회사만 다녔던 저에게 큰 변화가 생긴 것은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의 딸 조현민 전 전무의 '물컵 갑질 사건' 즈음이었습니다.

                                                         
사실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조현아씨의 '땅콩회항'을 겪어봤던 저는 원래대로라면 이번에도 목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고개 푹 숙였을 겁니다. 다른 이들과 같이 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써가며 지나쳤을 겁니다.

그 와중에 대한항공 직원 중 한 명이 위험을 감수하고 조현민 전 전무의 음성파일을 언론에 제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오마이뉴스>를 통해서 말입니다. 불현듯 땅콩회항 때의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박창진 전 사무장을 떠올렸습니다. 참으로 부끄럽지만, 우리의 동료였던 그를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대변해주지도 않았습니다. 심지어 박창진 전 사무장이 가입되어 있던 노조조차 규정을 내세워 도움의 손길은커녕 사측을 대변했습니다.

저 역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도와줄 생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이내 일상으로 돌아와 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그러던 제게 용기 있는 직원의 음성파일 제보는 다짐의 계기로 다가왔습니다. 조현민 전 전무의 음성파일이 세상에 공개되자 문득 그 제보자가 '제2의 박창진'이 되진 않을까 걱정됐습니다. 그리고 '기필코 그런 일이 두 번 다시 일어나게 두어서는 안되겠다'는 다소 엉뚱한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 정교진
다짐, 그리고 카톡 제보방의 탄생

먼저 '도대체 왜 대한항공의 직원들은 자발적 노예를 자처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대한항공의 3개 노조(일반직 노동조합, 조종사 노동조합, 새 조종사 노동조합) 모두가 직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하고, 그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이 전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요. 이는 직원들의 힘을 모아 줄 구심점이 없다는 이야기와 같습니다.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을 근절하고, 직원들이 정당하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으려면 새로운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익명성이 보장되는 '메신저 단체 채팅방 개설'이라는 결론에 다다랐습니다. 그렇게 마음먹은 날로부터 저는 분주히 움직였습니다. 퇴근 후 변호사, 검찰 수사관, 사이버수사대 직원 등 여러 사람을 만나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스로 홍보도 했습니다. 어플리케이션 '블라인드'에 익명의 글을 올려 '대화방을 개설하려고 한다', '우리 스스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 등을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인 '대한항공 갑질·불법·비리 제보방'이 탄생했습니다. 당시엔 조양호 회장 일가의 갑질·불법·비리를 제보 받아 사법기관 또는 언론에 신고·제보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정도만 운영하면 충분하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날수록 인원이 늘어나고 제보의 양도 저 혼자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 되고 말았습니다. 채팅방 제보를 통해 나간 기사들이 연일 쏟아졌고 급기야 여러 사법기관에서 수사 협조를 요청해오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지만, 역설적으로 저는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내가 이 무거운 짐을 져도 될까. 사측에 발각되면 어쩌나. 지금 이 상황을 너무도 견디기 어렵다'라는 생각에 채팅방 폐쇄를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제 주위의 누구도 제가 이 일을 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 못할 겁니다. 저 역시 주위에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가족들에게도 말이죠.

하지만 저는 생각을 바꿨습니다. 그건 마침 들어온 제보 한 건 때문이었습니다.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씨로 추정되는 인물이 호텔 공사현장에서 폭행을 저지르는 동영상이 제 손에 들어왔습니다. 언론에 이 영상이 흘러나왔습니다. 전 국민이 공분했습니다. 제가 지금도 버티는 이유는 직원 여러분의 응원과 제보 덕분입니다.
ⓒ 박소영
두려움

대한항공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있습니다. 파업을 하더라도 필수 유지 인원을 남겨야 합니다. 사실상 파업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지난해 조종사노조의 파업도 눈에 띄는 성과 없이 흐지부지 끝나고 말았습니다. 조종사노조를 탓하려는 게 아닙니다. 제 자신은 그마저도 못해 초라했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필수공익사업장이란 잘못된 제도입니다. 그 제도가 지금 대한항공의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견제 장치를 상실한 대한항공은 결국 총수 일가의 갑질·불법이라는 괴물을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생각했습니다. 비록 익명이지만 3000명에 가까운 인원이 채팅방에 모였으니, 파업은 못하더라도 세상에 우리의 목소리를 내보자고요. 회사와 채팅방에서 뛰쳐나와 광화문에서 힘껏 "조양호 일가 물러나라"라고 외쳐보자고요.

이내 또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하지만 '한마음으로 뭉친 대한항공 직원들이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이동해 한목소리를 내는 벅찬 감동을 느끼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습니다. 어떤 단체에도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집회를 열어보고 싶었습니다.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우리 마음속에 답이 있었기에 해낼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바로 오늘입니다. 2018년 5월 4일 오후 7시, 우리는 '조양호 회장 일가 및 경영진 퇴진과 갑질 근절을 위한 1차 광화문 촛불집회'를 개최합니다.

사실 태어나서 이런 일을 처음 해봅니다. 집회 준비의 경험이 없어 맨손으로 시작했고, 노조에 도움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마다 채팅방의 얼굴도 모르는 직원들이 도움을 줬습니다. 그들은 직접 포스터를 만들었고, 의견을 모아 집회 계획을 짰습니다. 뿐만 아니라 노래도 만들고, 가면과 피켓을 자비로 구입했습니다. 너도나도 숫자 릴레이를 펼치며 집회 참여 의사를 밝힌 분들까지 모두, 이 지면을 빌어 정말 감사드린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럼에도 겁이 나는 게 사실입니다. 과거 대한항공 역사를 돌이켜보면 이런 일이 있을 때 사측은 이념·정치·편가르기·이간질·회유·협박·금전·소송 등의 방법으로 방해했습니다. 그래서 조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측에 꼬투리를 잡히지 않기 위해 노조, 정치권, 시민단체의 도움을 정중히 거절해야 하는 상황도 발생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집회를 준비하며 제 몸의 한계를 느꼈습니다. 채팅방을 운영하는 것도 벅찼는데 집회까지 준비하려다보니 하루에 3시간 정도 자면 많이 자는 것이었습니다. 밥도 하루에 한 끼 먹으면 잘 먹는 편이었습니다.

제 자신을 드러내놓고 활동할 수 없다 보니 집회 준비에 많은 제약도 따랐습니다. 집회 신고는 누가 할 것이고, 집회에 필요한 시설과 장비, 인원은 어떻게 감당할지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고민은 예산이었습니다. 사측에서 과거 직원 간 모금을 빌미로 소송을 걸어 희생된 분들이 있었던지라 직원들을 대상으로 모금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 사비를 털어 스스로 시작한 일을 마무리 짓겠다고 채팅방에 공표했지만, 집회를 위한 장비 대여에만 만만치 않은 돈이 들어간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국민 여러분께 힘을 빌려달라는 요청을 드리게 됐습니다. <오마이뉴스>의 긴급 캠페인을 통해 저희의 저항에 힘을 실어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긴급 캠페인을 통해 자금이 모이면 저희는 스스로 집회를 열 힘이 생기게 됩니다.

바로 오늘, 태어나서 처음 해보는 일
대한항공 직원들이 '대한항공 갑질·불법·비리 제보방'에서 숫자 릴레이를 이어가며 집회 참석 의사를 밝히고 있다. ⓒ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지금도 연일 조양호 회장 일가와 경영진의 불법·비리가 폭로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이 싸움이 결코 쉽게 끝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탁드립니다. 대한항공 전 직원과 계열사 전 직원 그리고 시민 여러분께서 집회에 참여해주시길. 그리고 촛불집회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일종의 군자금을 모아주시길. 그러면 저희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우리의 저항이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 전반에 만연해 있는 갑질 문화에 경종을 울리고, 상식이 바로 서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 되도록요.

촛불과 가면. 지금 저희가 가진 무기는 이 두 가지뿐입니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 가면을 쓴 주인공 브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가면 뒤엔 육신을 넘어선 신념이 함께 하고 있지. 그리고 신념은 총알에 뚫리지 않아."

2018년 5월 4일 금요일... 오늘이 오고 말았습니다.
<브이 포 벤데타>의 한 장면. 브이를 상징하는 이 가면은 시민 혁명의 한 상징으로 자리잡았다. ⓒ 워너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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