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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법에는 최저주거기준이란 게 있다. 인간이 쾌적하게 살아가기 위해 최소한 확보해야 하는 주거 면적을 말한다. 1인 가구의 경우 대략 4평(14㎡)이 최저주거기준이다. 요즘 유행하는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라는 주거유형은 대부분 최저주거기준 미달이다. 즉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것. 하지만 지옥고에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해결점은 보이지 않는다. <오마이뉴스>는 지옥고 경험자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통해 그 실상을 들여다보고, 대안을 모색해본다.- 기자 말

서울 서대문구 역세권에 위치한 이 반지하 방의 임대료는 7500만 원이다. 건물 현관에서 7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입구가 있고 베란다 창문 앞에는 다세대 주택의 상수도 계량기 6기가 매립되어 있다. 방안에서는 머리 높이에 설치된 보일러 배기구는 마당에서는 성인의 무릎 높이에서 뜨거운 공기를 내뿜어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희훈
다세대 주택의 현관을 들어서며 계단을 7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1층을 뜻하는 102호 문패가 붙어 있다. ⓒ 이희훈
"옥탑방은 부의 상징이죠"

서울 서대문구에 사는 김아무개씨(43, 여), 20년 넘게 옥탑방과 반지하, 고시원에서 생활한 뒤 내린 결론이다.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 가운데 최악은 '고시원'이라고 혀를 내둘렀다.

김씨가 지옥고 생활에 발을 내디딘 것은 지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이 본가였던 김씨는 지난 1994년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에 진학하면서 '홀로 살이'를 시작했다. 대학교 1, 2학년은 기숙사에서 비교적 순탄하게 보냈다.

1996년 옥탑방으로 이사하면서 '지옥고'의 고리로

고학년이 돼 기숙사를 나오면서, '지옥고'의 삶이 시작된다. 김씨는 지난 1996년 서울 서대문구 대흥동의 한 다세대주택 4층에 있는 옥탑방을 얻었다. 보증금 200만 원에 월세 50만 원. 아직 졸업을 하지 않았던 학생이었지만, 과외 아르바이트로 보증금과 월세를 충당했다.

옥탑방은 방과 부엌이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부엌은 싱크대가 따로 없었고, 가스관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길거리에 있는 식탁을 주워 와서, 그 위에 휴대용 버너를 놓고, 부엌 구색을 갖췄다.

김씨는 한 겨울에도 좀처럼 보일러를 틀 수 없었다. 옥탑방은 도시가스가 아닌 기름 보일러였다. 난방비가 만만치 않았다. 샤워할 때만 잠깐 틀었는데도 난방비는 월 5만원을 훌쩍 넘었다. 그 이상 감당하기 버거웠다. 보일러 대신 전기장판과 전기 난로로 겨울을 났다. 방에서도 패딩 잠바를 입고 있어야 했다.

난방비 부담 때문에 그는 4월부터 초겨울인 11월까지 찬물로 샤워를 했다. 김씨는 "그때 경험 때문에 지금도 집을 구할 때는 도시가스가 되는 방으로 고르려고 한다"라고 했다. 여름도 고역이긴 마찬가지였다. 푹푹 찌는 더위로 방에서 생활하기 어려웠다. 열대야까지 기승을 부릴 때면, 근처 모텔에서 잠을 청하기도 했다. 

옥탑방 생활을 하던 김씨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생긴 빚 때문에, 옥탑방을 나와야 했다. 벌이도 변변치 않을 때여서, 2000년부터 3년간은 학교 동아리방에서 생활했다. 동아리방에서 공짜로 숙식을 하면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 여력을 쌓았다. 사생활이 보장되진 않지만, 맘씨 좋은 후배들이 이것저것 챙겨줘서 동아리방 생활은 순탄했다고 기억한다.

보증금 없어 선택한 고시원, "다시는 살고 싶지 않다"

김씨는 평소에 창문을 열어 놓는 일이 없어 밖을 지나다니는 행인들이 신경쓰이지 않는다고 했다. ⓒ 이희훈
김씨가 살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반지하 방은 나름의 베란다가 있다. 베란다 문 옆에 설치된 보일러 배기관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창밖으로는 성인의 무릎 높이가 딱 눈 높이다. ⓒ 이희훈
2003년 동아리방 더부살이를 마치면서 선택한 곳은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는 한 고시원. 목돈이 없는 상황에서 고시원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그가 택한 고시원은 보증금 없이 월세 18만원만 부담하면 됐다. 고시원 이야기로 넘어가자 김씨는 넌덜머리를 냈다. 기억을 꺼내는 것조차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가 경험한 고시원은 좁고, 공기도 안 좋고, 시끄러운 장소였다. 그 안에서의 일상생활은 사실상 불가능, 그야말로 잠만 자는 곳이었다. 고시원은 일단 환기가 되지 않는다. 고시원이 오피스 빌딩을 개조해 만든 것이기 때문에, 창문이 열리는 구조가 아니다.

실내에 설치된 환풍구는 무용지물. "고시원에 살면서 한 번도 환풍구 돌아가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환기가 되지 않는 공간에 머물다보니, 아토피성 염증이 생겼다. 이불빨래도 일주일에 두 번씩 했다. 이불 빨래를 한번이라도 거르면, 아토피가 더 심해졌다.

탁한 공기, 소음, 좀도둑 등 견디기 어려웠던 고시원살이

소음도 문제였다. 방과 방을 나누는 벽은 얇은 합판이었다. 방음이 될 리 없었다. 옆방에서 전화통화하는 소리는 물론 수화기 너머 상대방 목소리까지 들렸다. 소음에 민감한 체질이라는 걸 고시원에서 처음 느꼈다.

"소음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경찰을 부른 적도 있어요. 여성 전용 고시원인데, 한 여성분이 남자친구를 데려와 진한 사랑을 나누려고 하더라고요. 적나라하게 다 들렸어요. 그래서 경찰에 '여성 전용 고시원인데 이상한 남자가 있다'고 신고한 적도 있죠"

옷가지 등 물건도 도둑맞기 일쑤였다. 나무로 된 방문은 잠금장치가 너무 허술했다. 값 나가는 물건은 방에 둘 생각조차 못했다.

"TV에서 쪽방 살이 관련한 프로그램이 나오잖아요. 그 생각을 했어요. 여기(고시원)가 쪽방이구나. 저 쪽방살이를 내가 하고 있는 거구나. 이름만 그럴듯하게 '고시원'일 뿐이지, 다를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견디기 어려웠다. 틈날 때마다 환경이 좀 더 나은 고시원을 찾아다녔다. 돌아다녀보니 고시원도 옵션이 다양했다. 고시원 기본료(18만~20만 원)에 햇볕이 들면 10만원, 방과 화장실이 있으면 또 10만원이 추가되는 식이다.

그렇게 발품 팔면서 햇빛을 볼 수 있는 방을 얻었다. 방 면적은 가로 180cm, 세로 180cm. 딱 침대 두 개 들어갈 만한 좁은 방이지만, 햇볕 프리미엄 때문에 월 38만원을 냈다. 오피스 빌딩을 개조한 고시원이어서 창문을 열지는 못했다. 그래도 빛이 들어온다는 건 고시원에선 '특권'이었다.

오랜 고시원의 삶 끝에 '반지하'로 상향 이동

실내는 거실과 주방이 이어진 공간과 침실, 화장실이 각각의 창문을 가지고 있었다. ⓒ 이희훈
담장 밖에서 보이는 김씨의 집은 비탈길 안쪽으로 지어진 다세대 주택의 반지하방이다. ⓒ 이희훈
김씨의 반지하 집은 대중교통과도 접근이 좋은 역세권이다. 또 100미터 정도 거리에는 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이희훈
김씨의 고된 고시원 살이는 10년 가까이 계속됐다. 고시원에서 고시원으로 옮겨다닌 것만 5번이다. 서대문구 창천동에 있는 고시원이란 고시원은 모두 다녀봤다. 2013년 그 지긋지긋한 고시원 살이를 마치고 반지하 단칸방을 얻을 수 있었다.

10평 정도 되는 조그만 방이지만, 보증금 400만원에 월세가 70만원이었다. 보증금이 작으니 월세를 높게 주고 들어가야 했다. 화장실도 바깥에 있었다. 그래도 '집'같다는 생각을 했다.

"반지하방은 벽돌이랑 시멘트로 된 공간이잖아요. 방음도 되고요. 나무판으로 방을 나눈 고시원과 비교하면, 정말 아늑한 집에 온 기분이었어요."

반지하방 생활도 마냥 평탄하진 않았다. 집은 도로 옆에 있었다. 반지하집 창문 위로 차와 사람들이 지나다녔다. 창문을 열면 먼지가 그대로 다 들어왔다. 그래도 창문을 열어둘 수밖에 없었다. 창문을 닫으면, 습기가 차 곰팡이가 피어올랐기 때문이다. '먼지'를 먹거나, '곰팡이'를 키우거나. 둘 중 하나는 감내해야 할 고역이었다.

지하에 살다보니 벌레도 많이 들어왔다. 바퀴벌레는 물론 귀뚜라미 등 땅에 사는 벌레는 모두 김씨의 집으로 기어들어왔다. 벌레들은 문을 열어놓지도 않았는데, 어느 틈으로든 비집고 들어왔다.

"옹벽 보이는 반지하지만 견딜만 해요"

서울 서대문구 역세권에 위치한 이 반지하 방의 임대료는 7500만 원이다. 건물 현관에서 7개의 계단을 내려가면 입구가 있고 베란다 창문 앞에는 다세대 주택의 상수도 계량기 6기가 매립되어 있다. 방안에서는 머리 높이에 설치된 보일러 배기구는 마당에서는 성인의 무릎 높이에서 뜨거운 공기를 내뿜어 수증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이희훈
김씨 집 거실의 창문을 열면 옹벽이 자리하고 있다. 벽은 성인 남성의 어깨 정도 높이다.ⓒ 이희훈
그곳에서 2년을 살다가 2015년 또다시 7500만원짜리 반지하방 전세로 옮긴다. 그나마 좀 나았다. 방 면적도 10평(33㎡) 이상 됐다. 방도 언덕빼기에 있어, 지면과 같은 고도에 있었다.

창문도 맘껏 열 수 있었다. 창문을 열면 시멘트 옹벽이 보이지만, '차'와 '사람'이 다니지 않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그가 20년 넘게 지옥고를 돌아다녀본 결론은 명쾌했다. 고시원이 최악, 옥탑방은 '부'의 상징이다.

"옥탑방은 부의 상징이죠. 적어도 공기 걱정할 필요 없고, 탁 트인 시야가 좋았어요. 반지하에서 이사할 때도 옥탑방을 알아봤는데, 마땅한 물건이 없었어요. 고시원은 싫어요. 답답하고, 사생활보호도 안되고, 공기도 안좋고, 사람 살 곳은 아니구나란 생각이 들어요"

"내가 머물 곳이 없구나 생각하니 소속감 떨어져"

김씨의 집 배란다 천정에는 페인트가 떨어지는 현상이 생겨 이를 막기 위해 꽃무늬가 있는 비닐로 문제를 해결 했다. 페인트가 떨어진 비닐 밖으로 백열등의 빛이 주변을 밝혔다. ⓒ 이희훈
김씨도 아파트 거주를 생각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서울 지역 아파트 청약도 3번 정도 넣었지만 다 떨어졌다. 행복주택 같은 공공임대주택은 대상자가 아니었다. 청년과 신혼부부, 고령자 위주의 임대주택 정책은 40대 미혼 여성을 외면하고 있다. 여러 유형의 임대주택을 알아봤지만, 결론은 '입주자격 없음'이다.

"제대로 된 집이 없으니까 드는 생각이요? 이 나라에 대한 소속감이 없어져요. 이 많은 집 중에서 내가 머물 곳은 없구나. 이 나라는 나를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구나. 그런 생각이 들죠. 제 주변엔 저 같은 사람 많은데 다 임대주택이나 이런 혜택은 못 받고 있어요. "

이민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몇 해 전에는 독일로 이민을 가기 위해 1년 정도 독일어 공부도 했다. 여러 사정 때문에 독일 이민 계획은 흐지부지 됐지만, 지금은 일본이나 대만 이민도 고려하고 있다.

"나이가 들다보니 이제는 안정적인 공간에 머물고 싶어요. 아파트처럼 방범이 된다면 앞으로 혼자 살아도 걱정은 없을 거예요. 일본이나 대만은 임대주택이라도 살만한 집이 나온다고 하잖아요. 아니면 아예 강원도 속초 같은 지방도 어떨까 생각 중이에요"

악착 같이 버틴 김씨의 서울 지옥고 생활 20년. 그가 머물고 싶어 하는 '서울'은 이 생활을 끝내줄 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지옥 같은 서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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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회경제부 소속입니다. 주로 땅을 보러 다니고, 세종에도 종종 내려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