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여행

부산경남

포토뉴스

언젠가부터 필름으로 별 사진을 찍고 싶었다. 풍경은 고정되어있고 별이 극축을 따라 돌아가는 모습 말고, 그 자리에서 빛나는 별의 모습을 찍고 싶었다. 통상 전자를 '별의 궤적사진'이라고 하고 후자를 '별의 점상사진'이라고 한다.

궤적 사진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 맑고 깜깜한(달이 없는) 밤, 적당한 당소를 찾아서 몇 시간 동안 셔터를 열어놓기만 하면 된다. 수백 장을 자동으로 찍어서 합성해야 하는 디지털보다도 오히려 수월한 면이 있을 정도이다.
궤적사진 (67ii/Pro160NS)약 두시간 반 정도 셔터를 열어놓은 사진. 올 여름 강원도. ⓒ 안사을
감악산의 밤하늘 (K5)필름으로 담기 전에 마침 차에 Dslr이 있어서 테스트 삼아 찍은 점상 사진 ⓒ 안사을
물론 한 장의 필름에 모든 시간의 흐름을 담아내기에, 잡광이나 순간의 흔들림도 용납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지만 튼튼한 삼각대와 사람이 오가지 않는 장소만 확보한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런데 점상사진은 다르다. 위의 조건들을 갖추는 것은 기본이고 별의 움직임에 따라(사실은 지구의 움직임) 카메라를 같은 속도, 반대의 방향으로 움직여주는 장비가 필요하다. 고감도를 지원하는 디지털 센서를 사용하면 그런 장비 없이도 원하는 사진을 담을 수 있지만, 중형 컬러 필름을 기준으로 현재 사용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감도의 필름은 K사의 감도 800짜리 필름이다.

이 필름으로 별자리를 깔끔하게 담으려면 적어도 5분 정도의 노출이 필요하다. 조리개를 좀 더 조이고 찍으면 시간이 더 필요하고, 성운과 성단까지 담으려면 15분 정도는 셔터를 열어놓아야 가능할 것 같다. 그래서 '휴대용 간의 적도의'라는 장비를 들였다.

별 사진을 비롯하여, 아침 일출과 거창의 이모저모를 담기 위해 거창 감악산으로 향했다. 감악산은 근처에 있는 오도산과 더불어 밤새 별을 찍기에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사방의 시야가 터져있고, 높고, 목적지까지 차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필름 장비의 특성상 매우 무겁고, 밤샘 촬영을 하려면 비박짐도 싸야 하는데 얼추 그 무게가 30kg 정도 나간다. 이 짐을 메고 정상으로 올라 촬영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기에, 차량의 접근성이 좋아야 한다.
최소한의 야영장비로 (67ii/Ektar)차로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 지점에 있는 데크. 물론 전망용이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시간대에만 최소한의 장비를 놓고 틈틈히 쉬는 용도로 사용한다. ⓒ 안사을
별이 모티브가 된 이 날의 여정은 오후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석양은 담지 못했고, 다음날 날씨가 좋지 않아 다른 풍경도 많이 담지 못했다. 그 아쉬움을 뒤로 할 수 없어, 일주일 뒤 다시 이곳을 찾았고 두 번의 여정은 아래와 같다.

9/30 ~ 10/1
감악산 도착(오후 7시 30분) - 월몰 후 별 촬영(오전 1시 30분) - 일출 촬영(오전 6시 30분) - 거창시장 방문(오전 11시) - 수승대 및 남덕유산 아랫길 드라이브 후 도착

10/8
전주 출발(오전 10시) - 진안 모래재 옛길 탐방(오전 10시 30분) - 진안 상전면 죽도리 탐방(오전 11시 20분) - 거창 수승대 탐방(오후 2시) - 거창시장에서 늦은 점심(오후 3시) - 감악산 도착 및 노을 촬영(오후 5시) - 귀가(오후 8시 30분)

다녀온 날짜의 순서대로 하면 밤 풍경이 먼저겠지만, 두 번의 여행을 합하여 낮과 밤의 순서대로 여정을 배치하고자 한다.

전주를 출발지에, 거창 감악산을 도착지에 놓고 검색을 하면 네비게이션은 수많은 도로망을 두 가지 경로로 압축하여 보여준다. 본인은 고속도로가 포함된 '실시간 편한 길'은 거의 선택하지 않고 '무료도로 우선'을 클릭한다. 가는 길 곳곳에 아름다운 경치가 산재해 있는 금수강산에서 단 한 곳의 목적지만을 위해 고속도로에 올라가 있는 것은 역설적으로 시간 낭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무턱대고 국도로만 간다고 해서, 좋은 곳이 차창 앞으로 등장한다는 법이 없으므로 출발하기 전 미리 온라인지도를 꼼꼼히 활용하여 들를 곳을 미리 점찍어두고, 네비게이션의 안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이 있다면 경유지로 등록한 후 운전대를 잡는다.
진안을 흐르는 금강 상류 (SW612/Ektar100)장수에서 발원한 금강은 진안을 바로 다음 경유지로 하여 흐른다. ⓒ 안사을
진안, 금강의 최상류

거창으로 가는 가장 아름다운 길은 진안을 통과한다. 고속도로도 아닌, 새로 난 국도도 아닌, 모래재 옛길을 선택하면 더 좋다. 수동기어를 3단까지밖에 넣을 수 없는 힘든 오르막길을 구불구불 올라 모래재 터널을 지나면 해수면에서 몇백미터 위에 펼쳐진 평탄한 고원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 시작점에 메타세콰이어길이 있다.

순창에서 담양으로 이어지는 길보다 길이도 훨씬 짧고 나무의 크기도 작지만 도로가 굽어지는 양 끝단 너머까지 나무가 있어서 충분히 운치 있는 풍경이 만들어진다. 특히 이곳은 차량의 통행이 적고 관광객들 또한 많지 않아 한적함을 즐기기에는 오히려 더 좋은 장소이다. 길옆에는 작은 주차장도 만들어져있다.

이날 챙겨갔던 카메라는 Horseman SW612라는 612포맷의 파노라마 카메라였다. 한 컷에 소요되는 필름의 사이즈가 60mm*120mm라는 뜻이다. 시판되는 중형필름 한 롤을 넣으면 6컷의 사진을 찍을 수 있다. 4km대의 극악한 연비를 자랑하는 둔탁한 머슬카를 모는 기분이다.

디지털 센서나 현행 렌즈에 비하면 성능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유물 수준의 물건이지만 풀프레임 센서 대비 7.71배의 광활한 필름면에 한 장의 이미지를 기록하기 때문에 관용도와 묘사력이 결코 뒤지지 않는다. 기술은 부족하지만 체급으로 밀어붙이는 격이다. 2.12:1의 독특한 화면비율로 만들어내는 구도 또한 재미있다.

아래 사진들 중 첫 번째 사진은 HDR기법이 아닌, 단 한 컷의 필름으로 찍은 사진이다. 단일 노출로 이같이 극명한 노출차를 보이는 피사체를 모두 담을 수 있었던 것은 네거티브필름의 명부 관용도가 매우 높고, 필름면이 넓어서 암부의 입자감 또한 거칠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일반적인 세팅값과는 많이 다른 나름의 수치로 스캔해야만 이같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스캔을 직접 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두 번째 사진은 최대한 도보여행자가 직접 올려다보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세로로 구도를 잡았다. 역시 암부와 명부 사이에 노출차가 제법 있었는데, 이 사진의 경우에는 암부의 디테일을 과감히 포기하고 명부를 부각시키는 용도로 사용했다.
진안 메타세콰이어길(1) (SW612/Pro160NS)작은 주차장에서 진안 방면을 바라보며 찍은 사진. 먼지 하나 없는 청명한 날에 해를 직접 마주보고 찍었다. ⓒ 안사을
진안 메타세콰이어길(2) (SW612/Pro160NS) ⓒ 안사을
조금 더 달리다 보면 새로 난 길을 만나게 되고 읍내를 지나게 된다. 목적지로 향하는 길은 상전면을 거치게 되는데 이 길은 금강, 구량천, 천반산 등을 만날 수 있는 경로이다. 전형적인 감입곡류하천의 수려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어서 심신이 지칠 때마다 찾아오는 곳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물 색깔이 평소와 달랐다. 가다 보니 중간에 물빛이 급격히 달라지는 경계선이 있었다.
때아닌 녹조 (SW612/Ektar100) ⓒ 안사을
필름을 스캔하자마자 파일을 jpg 형식으로 바꾼 뒤 진안군 신문고에 글과 사진을 올렸다. '금강 상류 녹조 의심됨'이라는 제목이었다. 계절로 보나 위치로 보나 녹조가 생길 만한 상황이 아니어서 더욱 의아했다. 며칠 되지 않아 담당자의 전화를 받았다. 직접 시찰을 다녀왔다고 했다. 보잘것없는 시민의 제보에 발 빠르게 대처해 준 진안군의 노고를 치하하고 싶다.

원인은 아마도 느려진 유속 때문일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 평소 용담호의 물을 흐르게 하면 상류 강의 유속도 빨라서 수질이 유지가 되는데 최근 용담호의 수위를 유지하느라 유속이 느려졌다고 했다. 담당자는 계속해서 관심을 갖고 수질을 유지하는 데에 큰 힘을 쓰겠다고 약조했고 환경에 관심을 가져주어서, 그리고 친히 제보해주어서 고맙다는 말까지 힘주어 말해 주었다.

몇 장의 사진을 담은 뒤, 지방도 아래 구량천변으로 운전대를 꺾어 내려갔다. 구량천과 금강이 만나는 곳에 놓인 죽도마을을 돌아보기 위해서였다. 지금 이곳은 '마을'이라는 호칭이 적절하지 않다. 용담호로 인해 지형이 변했고 작은 밭들만이 사람의 흔적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는 사람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아 생태계가 활발하면서도 아늑하게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힘차게 흐르는 (SW612/Ektar100)물은 이렇게 흘러야한다. 금강과 합류하기 직전 구량천의 모습. ⓒ 안사을
잔잔한 듯 활발하게 (SW612/Ektar100)이제 막 가을의 문턱에 들어선 듯 한 모습이 보이는 구량천. ⓒ 안사을
이곳에는 상당히 독특한 경관을 보이는 절벽이 있다. 수직으로 얇게 선 두 절벽 사이로 뻥 뚫린 공간이 참으로 기이해 보인다. 더구나 이 공간 앞뒤로 물이 흐르는데 그 간격이 십여 미터도 채 되지 않는다. 더 재미있는 사실은, 이 두 물길이 서로 다른 이름을 가졌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은 편은 구량천이고 절벽 너머로 흐르는 강은 금강이다. 좀 더 높은 곳에서 찍었더라면 너머의 금강 줄기도 함께 잡을 수 있었을 텐데, 조금 아쉬웠다.

절벽 뒤편에서도 조망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비포장도로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이날은 접근하지 못했다. 갈 길이 멀어 걸어서 가볼 만한 시간 또한 없었다. 절벽의 뒤편은 2년 전의 사진으로 대신한다.
돌로 된 문틀 (SW612/Ektar100)마치 커다란 문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곳. ⓒ 안사을
반대편 모습 (MZ-S/Vista200)2년 전 겨울에 담은 사진. 금강의 모습. ⓒ 안사을
두 절벽 사이에는 애초에 암반으로 이루어진 턱 외에도 인위적으로 만든 보가 얕게 있어서 서로의 물줄기가 섞이지 않는다. 기존의 물길을 보존하기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였는지는 분명치 않다. 용담댐 물문화관 등을 방문하여 용담호 건설 전후의 모습과 상황들에 대해 더 깊은 공부를 해 볼 생각이다.

구량천을 끼고 비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숨겨진 경치를 만날 수 있다. 전고가 높은 차가 아닌 탓에 거의 걷는 속보보다 조금 빠른 수준으로 차를 몰아야 하지만 울퉁불퉁한 돌길을, 클러치를 밟았다 뗐다 하며 천천히 가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구량천의 잔잔한 수면 (SW612/Ektar100)물길이 넓어지는 구간에서는 마치 물이 멈추어있는 듯 잔잔하다. 아직 나뭇잎이 푸르다. ⓒ 안사을
천천과 장계를 지나 거창으로

진안에서 거창으로 가는 길에는 장수를 지난다. 그중에서도 천천면을 관통하게 되는데 현재는 길이 참 편하지만 예전에는 장수 읍내에서 천천까지 아흔아홉 고개를 넘어야 한다는 속설이 있었을 만큼 깊은 골짜기들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신작로가 놓이던 시절 이곳은 축대가 자주 무너져 버스가 통째로 굴러떨어지는 사고가 종종 있을 만큼 악명높은 길이었다고.

천천과 장계를 지나면 드디어 거창이다. 그런데 서상면과 읍내 사이에 커다란 산들이 있어서 국도가 빙 둘러 나 있다. 월봉산, 거망산, 황석산, 금원산, 기백산 등 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기 때문이다. 읍내를 지나 동쪽 편으로 가면 다시 수도산, 단지봉 등 역시 천 미터가 넘는 산들이 늘어서 있고 그 산세는 가야산으로 연결된다. 산악인들은 거창 서편과 동편의 산들을 큰 두 개의 산줄기로 하여 종주하는 코스로 삼곤 한다. 특히 수도산에서 가야산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언젠가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코스이다.

남북, 두 갈래로 나누어진 지방도 중에 멀리 돌아가는 북쪽 길을 선택했다. 남덕유산의 모습을 잠시나마 볼 수 있고 그곳에서 흘러오는 계곡과 커다란 암반들이 어우러진, 수승대를 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의 남덕유산은 막 가을의 초입을 지나고 있었다. 2주 후 덕유산 종주를 계획하고 있었던 당시였고, 현재는 이 기사를 작성함과 동시에 다녀온 덕유산 종주 필름을 열심히 스캔하고 있다.
거북바위 (SW612/Ektar100)지금까지 본 거북바위 중 가장 거북이같은 모양새를 가졌다. 수많은 문인들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 안사을
남덕유산 밑자락을 지나 거창 읍내 방향으로 가다 보면 '수승대'라고 하는 관광지가 나온다. '대'라는 글자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곳은 커다란 암반과 계곡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을 가지고 있으며 수많은 문인들이 시상을 떠올렸던 곳이다. 영상미로 극찬을 받았던 드라마 '그 겨울 바람이 분다.'에도 등장했던 곳이기도 하다.

위 사진에서도 볼 수 있듯이 상당히 커다란 바위에 수많은 이름이 빼곡하게 새겨져 있다. 문객들의 이름이다. 퇴계 이황과 갈천 임훈의 시 또한 새겨져 있다고 한다. 마치 거북선의 상갑판처럼 바위 위에 굳게 뿌리내린 소나무들, 바위에 새겨진 많은 글씨들, 그리고 그 주변을 흐르는 맑은 물. 이 모든 것이 하나의 풍경으로 어우러져 상당히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른 각도에서의 거북바위 (SW612/Ektar100)이 사진만큼은 후보정이 들어갔다. '수영금지' 깃발이 쭉 늘어 선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소프트웨어를 이용하여 없앴다. ⓒ 안사을
물의 양이 상당히 많은 것은 하단에 보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가 있다고 해서 물이 멈춰있지는 않다. 사시사철 덕유산에서 흘러내려 오는 풍부한 수량 덕에 물은 항상 맑게 유지되며 활발하게 흐르고 있다. 상당히 폭이 넓고 수심이 깊으면서도 물빛이 투명하니 보는 이의 마음 또한 풍요로움과 청량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게 된다.

수승대 내부는 매우 넓다. 숙소도 제법 있고 산책 코스도 길다. 이곳만을 목적지로 하여 방문을 해도 충분한 여행이나 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수루에 잠시 들러 한국적인 미를 필름에 담아본다.
관수루(1) (SW612/Ektar100) ⓒ 안사을
관수루(2) (SW612/Ektar100)한국적인 풍경이 화면 한가득 담겼다. ⓒ 안사을
거창 재래시장에 점심 후 드디어 감악산으로

그 지역 삶의 정수가 담겨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일까. 여행지에 읍내가 끼어있으면 꼭 시장을 들른다. 두 번의 방문 모두 시장에서 점심을 먹었다. 전라도 음식이 최고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거창시장에서 먹었던 피순대와 순대국밥은 평소 즐겨 먹던 전주 남부시장의 그것과 견줄 만큼 맛있었다.

아래의 사진들은 시장의 풍경을 담은 것이다. 재래시장의 느낌을 보다 물씬 자아내기 위해 유통기한이 12년 초과된 필름을 일부러 사용했다. 유통기한이 많이 흐르면 해상도가 떨어지고 입자가 거칠어져 매우 오래된 사진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질 낮은 필름'으로 찍은 사진, 혹은 노출을 제대로 맞추지 못한 사진을 '필름 고유의 느낌'으로 착각하곤 한다. 대단히 큰 오해이다. 아래처럼 일부러 그러한 효과를 노리고 찍을 수 있는 것 또한 필름의 매력 중 하나이고, 때로는 디지털 센서보다 더 화려한 색감을 담아낼 수 있는 것도 필름의 영역이다.
거창시장(1) (nF-1/Vista400) ⓒ 안사을
거창시장(2) (nF-1/Vista400) ⓒ 안사을
거창시장(3) (nF-1/Vista400) ⓒ 안사을
국밥집에서(1) (nF-1/Vista400) ⓒ 안사을
국밥집에서(2) (nF-1/Vista400) ⓒ 안사을
이제 감악산의 저녁 풍경을 보도록 하겠다. 감악산은 풍력발전단지와 방송 중계소가 있어서 거의 정상 부근까지 찻길이 나 있다. 들머리 팻말에서부터 구불거리는 시멘트 길을 5분 남짓 올라가면 중계소가 있고 커다란 전망데크가 있다. 화장실도 있어서 하룻밤을 지새우기에 안성맞춤이다.

그런데 이곳까지 쉬지 않고 올라가면 중요한 포인트를 한 곳 놓칠 수 있다. 바로 감악산 활공장이다. 시멘트 길 왼편으로 보일 듯 말 듯 있는 흙길로 들어서면 뻥 뚫린 공간을 만나게 된다. 이곳은 북서쪽을 향하고 있고 거창 읍내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석양을 조망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밤이 되면 하나 둘 씩 불이 켜지는 야경도 볼 수 있다.
감악산 활공장에서 (SW612/Ektar100)지금이 바로 가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억새가 바람에 나부끼고 커다란 풍차 뒤로 해가 저물고 있다. ⓒ 안사을
활공장에서 본 거창 (SW612/Ektar100)렌즈가 워낙 광각이라 읍내가 매우 작아보인다. 실제론 군 치고는 제법 큰 편이다. ⓒ 안사을
감악산의 저녁 (SW612/Ektar100)좌우에 비네팅이 심한 것은, 센터필터를 빼고 촬영했기 때문이다. 이 렌즈는 초광각 화각을 가지고 있어서 기본적으로 이런 비네팅이 생긴다. 센터필터는 가운데 부분을 단계적으로 어둡게 하여 비네팅을 해결한다. 필연적으로 노출이 2.5스톱 낮아진다. ⓒ 안사을
밤에 되자 남쪽 하늘에 달이 빛났다. 차에 실어 온 커다란 렌즈를 꺼냈다. 렌즈 무게만 거의 10kg이다. 삼각대에 체결하고 셔터를 누른 후, 필름을 감지 않았다. 다중노출을 위해서였다. 일부러 달을 화면의 위쪽에 배치하고, 까만 하늘 덕에 노광되지 않은 나머지 필름 면에 거창의 야경을 담았다. 쉽게 말해 아래의 사진은 현실이 아니다.

필름 다중노출의 특성상 기회가 딱 한 번뿐이다. 잘못 찍으면 다시 렌즈를 바꿔 끼우고 같은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게다가 결과물을 바로 확인할 수 없으니 답답하기 이를 데 없다. 그래도 그 답답함 또한 즐길 만하다. 아래 사진은 달이 조금 흔들려서 모 커뮤니티에서는 본인 스스로 '실패한 사진'이라고 올렸다. 그래도 웹상에서는 그 흔들림이 크게 부각되지 않는 점, 활공장에서 담은 유일한 야경 사진이라는 점 때문에 이곳에도 올려본다.
활공장에서의 야경 (67ii/Pro160NS)다중노출 사진. ⓒ 안사을
밤이 되자 달과 별이 함께 빛났다. 그래서 별이 어두웠다. 이런 날은 달이 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예정된 월몰 시간은 새벽 1시 반. 눈을 잠시 붙였다. 기상청에서 제공하는 위성사진에는 한반도 서쪽으로 구름이 가득했다. 곧 내가 누운 이곳에도 구름이 낄 것이라는 얘기다.

역시나 이날 밤은 구름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기대를 버리지 않고 계속해서 하늘을 주시하자 잠시 하늘이 열렸다. 단 10분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다. 본 기사의 중간에 넣었던 디지털사진이, 바로 이때 테스트로 담은 사진이었다. 곧바로 적도의를 설치하고 극축을 맞춘 뒤 묵직한 중형필름카메라를 마운트(장착)했다. 언제 하늘이 흐려질지 몰라 긴장감이 더했다.

결국 사진은 딱 한 장, 그것도 중간에 구름이 엷게 가려서 별 주변의 가스 등은 잡아내지 못했다. 하지만 휴대용 적도의를 처음 사용했고 실시간 모니터링이 불가능한 필름에 담아낸 결과물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꽤나 잘 찍힌 오리온자리의 모습이다. 극축을 잡는 것이 생각보다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더욱더 향상된 질의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해본다.
오리온자리 (67ii/Portra160)휴대용 적도의에 마운트하여 5분간 노출한 사진이다. 적도의가 지구의 자전 반대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려주기 때문에 별이 흐르지 않는다. ⓒ 안사을
알람을 오전 5시 50분에 맞춰두고 다시 잠을 청했다. 상당히 쌀쌀한 날씨였지만 작은 텐트 안은 아늑했다. 10월 말까지는 바람만 막아도 충분히 따뜻하다.

알람이 울렸고 눈앞에 아직도 별이 있는 듯 희뿌연 눈을 비비며 텐트의 문을 열었다. 순간 눈을 의심했다. 현 세계가 아닌 것 같은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하여 산능선 위로 핏빛 하늘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런 하늘은 둥그렇고 깔끔한 태양보다 더 만나기 힘들다. 시간과 장소가 정확히 어우러져야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저 구름이 놓인 좀 더 뒤편으로 가면 뻥 뚫린 하늘이 있을 것이고 그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새벽 햇빛이 내가 보는 구름의 표면에 반사되고 있는 것일 게다.

5분도 채 되지 않는 곳에 있는 정상 전망대로 가기 위해 서둘러 장비를 챙겼다. 이곳의 전망대는 앞은(동남쪽) 탁 트여있지만 반대쪽은 건물로 가려있고 해가 딱 그 경계선에서 올라오기 때문에 사방에 아무것도 없는 정상 전망대가 더 조망이 좋다. 가는 내내 발걸음이 바빴다. 언제 하늘빛이 다시 연해질지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도착해서 삼각대를 설치하고 필름을 갈아 끼우는 동안에도 생전 처음 보는 빛깔의 하늘은 그 모습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
감악산의 아침노을(1) (67ii/Ektar100)게슴츠레 지구를 들여다보는 짐승의 눈동자같은 느낌이 들만큼 괴기스러움과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풍경이었다. ⓒ 안사을
감악산의 아침노을(2) (67ii/Ektar100)바로 위 사진은 45mm(일반풀프레임 환산화각 22.5mm) 광각으로 담은 사진이고, 이 사진은 같은 장면을 165mm 준망원렌즈로 좀 더 가까이 들여다본 사진. ⓒ 안사을
전망대 옆 산불초소 (67ii/Ektar100)조금 옆으로 눈을 돌리면 산불초소가 있다. ⓒ 안사을
구름이 가득했던 하늘이었기에 한 시간이 지나도록 해의 모습을 직접 볼 수는 없었지만 산 밑에도 여지없이 낮이 찾아오고 있었다.
정상에서 본 거창읍내 (67ii/Ektar100) ⓒ 안사을
전망대 정면의 풍경 (67ii/Ektar100)멀리 보이는 호수는 바로 합천호이다. ⓒ 안사을
감악산의 억새 (67ii/Ektar100)정상에서 중계소로 내려오다보면 만날 수 있는 풍경. ⓒ 안사을
감악산 풍력발전단지 (67ii/Ektar100)바로 전 사진에서 화각을 조금 올리리고 초점을 무한대로 돌리면 풍력발전기와 산능선의 모습이 들어온다. ⓒ 안사을
흡족한 마음을 안고 다시 숙영지로 내려와 짐을 꾸렸다. 누군가 밤새 이곳에 있었다는 흔적을 남기지 않아야 한다. 그것이 자연과 이곳을 찾는 다른 탐방객들에 대한 당연한 예의일 테니 말이다. 오전 10시가 가까운 시간에 다시 차량으로 하산을 했고, 내려오는 길, 그러니까 산 중턱에 있는 사찰인 연수사에 잠시 들러 도보로 산책을 했다.
감악산을 내려오며(1) (67ii/Ektar100) ⓒ 안사을
감악산을 내려오며(2) (67ii/Ektar100) ⓒ 안사을
연수사 (67ii/Ektar100) ⓒ 안사을
연수사(2) (67ii/Ektar100)지금쯤이면 노랗게 물들었을 커다란 은행나무. ⓒ 안사을
물맞는 약수탕 (67ii/Ektar100)연수사 옆으로 조금 더 가면 '물맞는 약수탕'이 있다. 남녀 공간이 구분되어있고 약수물로 샤워를 할 수 있는 특이한 곳. ⓒ 안사을
두 번의 여행, 그 여정을 고스란히 담기 위해 많은 사진을 찍었고 메모도 적잖이 남겼다. 자연을 바라보고 그것을 담는 것은 언제나 즐겁고 가슴 벅찬 일이다. 때로는 송구스러울 만큼 대자연과 대우주 아래 나 자신이 작아지기도 한다. 앞으로도 계속될 수많은 여행에서 더욱더 겸손을 배우고 나 자신을 더 알아나갈 것이다.
댓글5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