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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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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푸르 암베르성. ⓒ 이수지
시작은 단순했다. 서점 가이드북 코너를 구경하던 중 색감이 가장 화려하고 예뻐 보이는 나라를 집어들었다. 그게 인도였다. 4년 동안 '동남아에 가자'고 했던 계획은 한순간 인도로 바뀌었다. '동남아는 모험의 경험을 주겠지만, 인도는 내가 구축한 세계를 마구 흔들어줄 것 같았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손으로 밥을 먹어야 한대. 할 수 있겠어?"
"휴지 대신 물로 뒷일을 처리해야 한대. 할 수 있겠어?"

'도전 100곡' 같은 기분을 느끼며 인도로 떠난 그의 여행은 흘러 흘러 동유럽으로 이어졌다. 애초 5개월로 예정했던 여행 기간은 9개월로 늘어났다. "그냥 끌리는 대로 했다"는 그는 "여행 계획조차 내 마음대로 못 바꾼다면 너무 슬플 것" 같단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여행담이 흘러넘치는 여행지가 인도였다. 인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어디 큰 전쟁이라도 겪고 온 사람들처럼 저마다 한마디씩 할 말이 있는 모양이었다. 배낭을 통째로 도난당했다든가, 비행기 표를 사기당했다든가 하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대부분이다. 조언도 넘쳐난다. 여자는 반드시 긴 바지, 긴소매를 입어야 하며...(중략)... 기차를 타자마자 침대 아래에 배낭을 넣고 쇠사슬로 잠가야 하고, 값나가는 물건이 있다면 절대 인도인들 앞에서 꺼내 보여서는 안 된다. -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중


두려움 반 설레임 반으로 떠난 여행. '세계 7대 불대사의 구경, 에메랄드빛 바다'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던 그는 '사람 얼굴 만한 소똥이 굴러 다니는 골목길을 목적없이 휘젓고 다니고, 기차역에서 쥐와 함께 밤을 새우는' 여행의 매력에 빠져 돌아왔다. 스스로가 생고생을 좋아하는 '여행 변태'가 되어가는 기분이란다. '다시 인도로 떠나고 싶냐'고 물으니, 가고 싶은데 다음번엔 잔소리가 많은 가이드북은 두고 가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인 남편과 함께 150일 인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을 펴낸 이수지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를 서면 인터뷰했다. 그는 어딘가에 얽매이게 되는 게 미래에 대한 불안보다 더 두렵다고 말하는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그와 남편의 여행기는 출판되기 전 같은 제목으로 <오마이뉴스>에 연재되기도 했다. (☞ 연재 페이지 바로 가기)

"더더욱 격렬하게, 내 멋대로" 살고 싶다는 이수지 시민기자와의 만남을 전한다.

"정규직이었다면 떠날 수 있었을까? 얽매이게 될까 두려워"
파테푸르 시크리. ⓒ 이수지
- 인터뷰 시작하자마자 묻고 싶다. 인도, 또 가고 싶나?
"그렇다."

- 이유는?
"5년 전에 갔을 때는 준비가 안 되어 있었다. 준비가 안 된 사람으로서 맞닥뜨리는 인도도 생경하고 좋았지만, 어떤 기대나 불안 같은 게 있어서 마음이 조금 덜 열려 있었던 것도 같다. 이제는 환상도 기대도 다 깨져버렸으니, 오롯한 그 자체로서의 인도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답변을 했더니 더 가고 싶다."

- 2012년도에 떠난 걸로 알고 있는데, 정확히 언제부터 언제까지 인도 여행을 다녀온 건가.
"2012년 1월에 가서 5월에 나왔다."

- 여행이 처음 계획보단 좀 길어졌던 것 같다. 인도-네팔-동유럽을 9개월에 걸쳐 여행한 걸로 알고 있는데 중간에 계획이 바뀐 건가.
"책에도 썼지만 애초 계획은 동남아 3개월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인도에 꽂혀서 인도에 가게 됐다. 인도에만 5개월 있으려고 했는데 여행 중에 유럽에서 온 여행자들을 하도 많이 만나서 유럽 생각을 하게 됐다. 생각하기 시작하니 가야겠는 거다. 그래서 갔다. 서유럽은 너무 비쌀 것 같아서 동유럽만. 동유럽에는 한 4개월 있었던 것 같다. 중간에 '그러고 보니 계획이 바뀌었군' 이런 생각은 안 했던 것 같다. 그냥 끌리는 대로 했다. 내 마음이니까.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그렇게 많지 않다. 여행 계획조차 내 마음대로 못 바꾼다면 너무 슬플 것이다."

- 나이가 들수록 집을 사는 등 '안정된 삶'을 찾게 되는데, 일하고 떠나는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것 같다. 불안감은 없나?
"조금 더 어렸을 때는 가끔 불안했던 것 같다. 이렇게 평생 계약직으로, 이따금 장기 여행을 가면서, 돈 한 푼 못 모으는 '루저'로 살텐가? 하는 질문으로 스스로를 많이 괴롭혔다. 지금은 그런 불안이 조금 덜 찾아오는 것 같다. 질문을 받은 김에 다시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그다지 불안하지 않다. 불안이 너무 자주 찾아와서 나름 그 불안에 대항하는 훈련이 된 것 같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불안하다! 평생 이렇게 살 텐가. 이렇게 미래에 대한 아무 대책 없이 이 이따위로 살면 어쩌나'라는 질문이 닥쳐오면 바로 생각의 방향을 바꾼다. '이 생은 언젠가는 끝나게 되어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같은 제목의 책도 있다. 데이비드 실즈 저. 필독서다).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 봤자 미래 따위 대비할 수 없다. 돈을 아무리 많이 모아도 한순간의 실수로 다 잃을 수 있다. 돈이 많아도 건강을 잃을 수 있다. 돈이 많고 건강해도 곁에 마음 줄 사람이 없을 수 있다.
<불량한 부부의 불량한 여행> 겉표지. ⓒ 위즈플래닛
돈, 건강, 사람이 다 있다면? 어차피 인생은 허무하다. 내가 좀 비관론자적인 성향이 있다. 모든 인생은 실패하게 되어있다. 어떤 측면에서는 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남들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지만, 현재까지의 내 답은 이거다. 내 멋대로 사는 거. 다만 내가 책임질 수 있는 수준 내에서.

미래에 대한 대비가 없다는 것도 불안할 수 있겠지만, 나에게 그보다 더 큰 불안은 어딘가에 얽매여버리는 거다. 집을 사면 그 집에 얽매일 거다. 융자금을 갚고, 더 큰 집을 사는 데 나의 온 시간과 에너지가 집중될 것이다. 내가 만약 탄탄한 정규직에 월급 많은 직장을 가졌다면, 선뜻 장기여행을 떠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높은 월급과 안정된 직장에 대한 미련 때문에 말이다.

사표 쓰고 여행 갔다는 사람 많은데, 나는 계약 끝나고 여행 갔다. 사표를 써야 하는 정규직이었다면 긴 여행을 갈 수 있었을까? 모르겠다. 나는 미련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런 미련에 얽매이게 되는 게 두렵다. 집, 좋은 직장, 그런 게 두렵다 난. 내가 그런 걸 박차고 나올 자신이 있을까? 아직 시험해볼 기회가 없어봐서 모르겠다.

그리고 나 자신이 패배자의 범주에 드는 사람이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사회가 '다르다'고 밀어내는 사람들에게 끌린다. 더 큰 아파트와 더 큰 자동차와 얼음 나오는 냉장고를 광고하는 TV 매체들이 사람들을 자꾸만 자꾸만 소수자로 몰아낸다. 나는 그 사람들에게 끌린다. 사회가 '다르다'고 하는 그들의 표상 너머의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 함부로 판단해버리지 않는 것, 그게 내 삶의 어떤 목표, 방향성 같은 건데, 내가 소수자 범주에서 벗어나버리면 그 사람들을 보지 못할까, 혹은 보지 않아버릴까 두렵다. 사람이란 건 얄팍해서 자기 경험 안에 갇히게 되어 있는 것 같다. 딱 자기 경험만큼만 본다. 그래서 문학이 필요하고 여행이 필요한 거라고 나는 생각한다. 표면 너머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 승자 편에 서서 저쪽 편을 손가락질하며 루저라고, 다르다고 구분 짓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그래서 필요하다면 계속 소수자로 남고 싶다. 사회 전체가 소수자가 되어버리면, 언젠가는 다양성이 인정되는 사회가 되지 않을까? 소수자로 다르게 사는 동안, 내 삶이 누군가에게 어떤 힘, 표상이 된다면 좋겠다. 이렇게 살아도 된다, 멋대로 살아버려도 된다, 뭐 어쩔 건데! 그런 표상."

"여행 중 죽을 뻔한 순간들... 그래도 살았으니 더 격렬히 멋대로 살고 싶다"
자이살메르 낙타사파리. 낙마 사건으로 험한 꼴을 봤지만 그래서 그런지 더 기억에 남는다. ⓒ 이수지
- 인도는 덥기로 유명하다. 너무 더워서 힘들지 않았나?
"그래서 겨울에 갔다. 그게 유일한 여행 계획이었던 것 같다. 겨울인 1월에 가서 한창 여름으로 들어가는 5월에 나왔다. 더위 때문에 너무 힘들었던 기억은 많이 없다. 5월에 마지막으로 갔던 도시인 델리는 좀 많이 더웠다. 더운 대신 망고가 많이 나온다."

-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같이 인도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 있더라. 힘든 여행지에서 밑바닥이 다 드러나 정말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된다는 건데, 남편(더스틴)과 많이 싸우진 않았나?
"남편과는 원래 많이 싸운다. 인도 여행 중에 특별히 더 많이 싸우진 않았던 것 같다. 뭐 이틀에 한 번 정도..."

- 인도 여행은 '바가지'와의 싸움인 것 같다. 작은 돈인데도 현지에선 목숨 걸게 되지 않나. 나도 10루피(한화 200원 가량) 때문에 릭샤 안 타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걸어가기도 했는데. 책을 보니 그래도 여유있는 모습이더라. 450루피를 떼이고도(?) '이번 사기 마음에 들어' 할 수 있고...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요령이 생긴 건가?
"요령이 생겼다기보다는 스트레스를 줄여보려는 나름의 대응 방안이었던 것 같다. 얼마 지나고 나니 100원, 200원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내가 너무 웃긴 거다. 서울에 살 때는 100원, 200원 생각이나 하나? 아무리 현지인에게는 큰돈이라지만 나까지 연연할 필요는 없지 않나? 인도 여행 초기에는 돈 아끼려고 밥도 제일 싼 것만 먹었다. 다시 간다면 절대 그러지 않을 거다. 먹고 싶은 음식을 다섯 개씩 시켜서 다 먹을 테다. 시간이 지나면 아낀 돈 따위는 어차피 남지 않는다. 맛있게 먹은 기억 역시 언젠간 사라지겠지만, 그 순간에 맛있게 먹으면 땡인 거다."

- 바라나시 골목을 쫓아오는 '호객꾼 청년'과의 에피소드가 인상적이었다. 도망치려는 자와 쫓으려는 자. 인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인도에 처음 도착한 날, 식당을 찾아 밥과 커리를 주문했다. 뭔지 몰라 밥 두 개랑 커리 한 개를 시켰는데, 밥은 수박통 만하게 많고 커리는 애기 손바닥만큼 나오더라. 그 황당함이 기억난다. 바라나시 호객꾼 청년에 시달리며 한 시간 가까이 골목을 휘젓고 다닌 것도 기억나고, 자이살메르에서 낙타 사파리를 하다 성질나서 전속력으로 달리는 낙타 위에서 떨어졌던 일도 기억난다. 아그라역에서 밤을 새우며 쥐를 쫓던 일도 기억난다. 전반적으로 개고생했던 일들이 강렬하게 기억에 남는 것 같다."

- 딱 한 곳만 다시 가볼 수 있다면 인도 어디로 가고 싶은가? 이유는?
"다르질링에 다시 가고 싶다. 요즘도 가끔 남편이랑 앉아 있다가 중얼거릴 때가 있다. 다르질링에 가고 싶다고. 인도 서북쪽 히말라야 자락에 있는 마을이다. 다르질링을 떠올리면 서늘한 공기, 히말라야 봉우리를 처음 봤을 때의 설렘, 털모자 쓴 마을 아저씨, 팬케이크, 나무로 만든 작은 찻집에서 마신 다르질링 티, 모모(티베트식 만두)를 파는 노점, 마을 산책, 그런 것들이 생각난다.

내 기억 속에 아주 작은 평화 같은 것으로 남아 있는 곳이다. 그래서 마음이 어지러울 때 가끔 꺼내 생각한다. 아. 다르질링. 그때 그 다르질링. 한데 다르질링은 히말라야 자락이라 이번 인도편 책에는 넣지 않았다. 책 홍보를 하려면 책에 나온 장소를 말해야 했는데 망했다. 뭐, 다음 편을 기대하시라!"

- 인도를 여행하면서 '여행'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을 것 같다. 책에서도 '여행하면 떠오르는 에메랄드빛 바다, 세계 7대 불가사의 구경 같은 환상, 우리에게도 있었다'고 말하던데 어떻게 바뀌었나?
"세계 7대 불가사의 구경, 하면 좋다. 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에메랄드빛 바다도 가면 당연 좋다. 다만 장기 여행이라면 조금 다른 걸 원하게 되는 것 같다. 책에서도 말했지만 장기 여행을 다녀온 후 내가 기대하게 된 여행의 장면이란, 사람 얼굴 만한 소똥이 굴러 다니는 골목길을 목적없이 휘젓고 다니기, 한 시간 넘게 호객꾼에 붙들려 시달리기, 기차역에서 쥐와 함께 밤 지새우기, 종족 싸움이 난 원숭이들 무리 사이에서 어찌할 줄 몰라 울음을 터뜨리기 같은, 어처구니없고 예측 불가능한 생고생들이다.

맛집 소개하는 페이스북 포스팅보다는 타인의 고통을 섬세하게 표현한 소설이 마음을 움직이는 거랑 비슷한 논리라고 하면 비약이려나. 맛있는 것도 먹고 싶지만, 내가 살아보지 못한 낯선 곳에서, 어떤 생경한 경험 속에서 오래 걸어보고 싶은 것, 그게 내가 장기여행에서 기대하는 바다."

- 남편과 여행을 다니면서 '여행이란 00다' 여러 가지로 정의내렸던데, 지금 생각하는 여행이란 무엇인가?
"글쎄. 여행이란... 중독? 가도 가도 계속 가고 싶은 것? 한 번 갔다고 그 갈증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더 낯선 곳으로 더 깊숙이 가보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새로 생기는 것."

- 낙타 사파리 낙상사고 등 여행 중 아찔한 경험을 몇 번 한 것 같은데,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언제인가?
"네팔에서 인도로 넘어가던 때가 가장 아찔했다. 하루 밤낮을 내내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길이었는데, 폭동이 났다. 그때 이렇게 죽을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자이살메르에서 낙타 사파리 중 전속력으로 달리는 낙타 위에서 떨어졌을 때는 이렇게 다리가 부러질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외 네팔 여행에서 죽을 뻔한 적이 두어 번 있었다. 어떤 순간들은 지금 다시 돌아봐도 정말 아찔하다. 조금의 우연이 더 겹쳐졌더라면 정말 위험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까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는 건 기적이다. 그러니 더더욱 격렬하게, 내 멋대로 살아야 할 텐데. 내일 또 출근한다."

"다음 여행 땐 잔소리만 많은 가이드북은 두고 가고 싶다"
다시 가고싶은 콜카타 거리. ⓒ 이수지
- 여행 다녀오고 나서 바뀐 점은 없었나? 성격이 느긋해졌다거나 어떤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었다거나 하는.
"없다. 수염 긴 구루(정신적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내면의 평화를 얻는다거나, 학교에 가는 대신 길가에서 포스트 카드를 파는 어린 소녀가 너무나 불쌍해 구호단체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거나, 하다 못해 전공을 바꾸었다거나... 그런 사건, 나한테는 일어나지 않더라. 하나 있다면 여행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는 거다. 여행은 과정이지 전환점이 아니다. 이 여행만 다녀오면 내가 확 달라져있을 거라는, 뭐든지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환상이다. 그런 여행은 도피다.

여행은 사건이 아닌 과정인 것 같다. 일상과 조금 각도가 다른 기대하지 않은 사건, 우연의 연속, 생경한 낯섦을 지속적으로 경험하면서 조금 다른 각도로, 낯선 세상을, 낯선 사람들을 생각해보는 계기. 일상에서는 낯섦을, 다름을 경험할 계기가 10번 중 1번이라면, 여행에서는 2번 중 1번 정도가 아닐까. 타인을, 나와 다른 것들을 조우하는 근육들을 그만큼 조금 더 많이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가 갇힌 상자 밖으로 아주 조금씩 벗어날 수 있게 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 물건을 살 때나 릭샤를 탈 때 늘 흥정해야 하는 것, 구걸하는 아이들을 일상적으로 만나는 것 등 인도는 단순히 즐거운 '여행'이라 하기엔 눈에 밟히는 것들이 많다. 여행하면서 힘들었던 순간은 없었나.
"옳고 옳지 않음의 판단이 분명히 서지 않을 때 힘들었다. 사실 세상 어떤 것도 선과 악으로 뚜렷이 구분되는 건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구걸하는 아이에게 돈을 주어야 하는가? 오히려 그게 더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던데? 모르겠다. 호텔로 안내하겠다는 호객꾼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건 나쁜가? 그것도 일종의 비즈니스 아닌가? 모르겠다.

이런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던 여행이었다. 늘 고민하느라 힘들었다. 그만했으면 싶은 순간에도, 질문은 늘 내 앞을 가로막았다. 답은 없었다. 그래도 계속 질문했고, 생각했다. 거기에서 이 여행의 가치가 나오지 않았나 싶다."

 - 인도에 다시 간다면 꼭 챙겨가고 싶은 것과 두고 가고 싶은 것은?
"항히스타민제를 가지고 가겠다. 나는 모기에 물리면 심하게 붓는데, 동남아나 인도 쪽에 가면 그 반응이 더 심하더라. 연고랑 먹는 약을 가지고 가겠다. 두고 가고 싶은 건... 이래라저래라 잔소리만 많은 가이드북?"

- 책 제목에 '인도편'이라고 돼 있던데, 다른 여행책도 나오는 건가?
"'히말라야편'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안에 내는 게 목표다."

- 언제고 또 떠날 것 같다. 다음 여행지는 어디인가?
"이런 질문 너무 좋아한다. 다음 여행지로 확실하게 정해둔 곳은 없다. 생각해둔 곳은 넘쳐난다. 같이 일하던 베트남 친구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책을 선물하면서 꼭 베트남편을 내겠다고 약속했다. 곧 인도네시아로 돌아가는 친구도 있다. 2년 전 동남아 여행을 오래 했는데,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는 가지 못했다. 이번에 계약이 만료되면 또 한 번 '사표 쓰고 떠난 여행'이 아닌 '계약 만료되어 떠난 여행'을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해 보면 어떨까 한다.

중앙아시아도 너무 가보고 싶다. 중국은 몇 번 가보긴 했는데 몇 개월 동안 오래 여행해 보고 싶은 마음이 크다. 중동 지역은 언제나 나의 로망이다. 아메리카 로드트립도 언젠가는 해볼 것이다. 아, 남극에 가보는 건 나의 오랜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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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에디터만 아는 TMI'를 연재합니다. 그림책을 좋아합니다. 2017년 그림책에세이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 2019년 성교육 전문가와 함께 하는 대화집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를 출간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