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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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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에 출마한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2월 28일 오후 서울 마포구 누리꿈스퀘어에서 열린 '대선주자초청 ICT인들과의 대화'에 참석하고 있다. ⓒ 이희훈
지난 2003년 12월 14일. 노무현 대통령의 당선 1주년을 닷새 앞둔 날이었다. 이날 안희정열린우리당 충남도지부 창당준비위 공동위원장(현 충남도지사)이 구속됐다. 안 위원장은 노 대통령의 '정치적 동업자'이자 '동지'였고, '좌희정 우광재'로 불릴 정도로 그의 최측근이었다. 그를 구속시킨 이는 안대희 대검 중앙수사부장이었다. 흥미롭게도 노 대통령은 자신의 최측근을 구속한 안대희 부장을 2년 7개월 뒤에 대법관에 임명했다(2006년 7월). 

검찰이 안 위원장에게 적용한 혐의는 정치자금법 위반이었다. 지난 2002년 11월부터 12월까지 총 11억4000만 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았다는 것이다. 11억4000만 원에는 노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과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에게 각각 받은 4억5000만 원과 1억 원, 안 위원장이 자금출처를 밝히지 않았던 5억9000만 원이 포함됐다. "검찰이 현직 대통령의 '대선금고'를 열기 시작했다"(<한겨레>, 2003년 12월 13일자)는 의미심장한 평가가 나왔다. 안 위원장은 구속되는 과정에서 이런 말을 남겼다.

"진흙탕 속에 있다 보니 바짓가랭이에 흙탕물이 좀 튀었을 뿐이다."

이에 앞서 검찰은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으로부터 총 3억9000만 원을 받은 혐의로 안 위원장을 불기속기소한 바 있다(2003년 6월). 두 차례의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였다. 검찰은 나라종금 대주주였던 김 전 회장이 나라종금의 퇴출을 막기 위해 안 위원장 등 정·관계 인사들에게 광범위한 로비를 벌였다고 판단했다('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 

안 위원장이 구속되던 날 노 대통령은 "불법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을 경우 대통령직을 걸고 정계를 은퇴하겠다"라며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안 위원장이 받은 불법정치자금 규모는 총 90억 원대(검찰 구형량 기준)로 크게 늘어났다. 검찰이 지난 2003년 12월 26일 안 지사를 기소했을 때 공개한 불법정치자금 액수(11억4000만 원)보다 약 9배나 커진 규모다. "바짓가랭이에 튄 흙탕물" 수준은 아니었던 것이다.

재판을 거치면서 법원이 인정한 불법정치자금 액수(약 74억 원)와 형량(2년 6월)이 각각 약 52억 원과 징역 1년으로 낮아졌다. 하지만 불법정치자금 중 일부를 아파트 구입자금과 총선 출마를 위한 여론조사 용역비 등으로 쓴 사실이 드러나면서 안 위원장(아래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개혁성과 도덕성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이렇게 불법정치자금 사건은 그의 '정치적 급소'가 됐다. 스스로도 "평생 안고 가야 할 핸디캡(약점)"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관련기사] 1.2.3심 판결문으로 본 안희정과 정치자금②

[1심 판결문] 오아시스워터 투자금 3.9억은 불법정치자금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불법정치자금 사건(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알선수재 사건 포함)은 총 5건(2003고합1439, 2004고합79, 2004고합117, 2004고합291, 2004고합608)이었다. 서울중앙지법 제23형사부(재판장 김병운)는 이 5건의 사건을 병합해 심리했다. '제23형사부'는 공무원의 뇌물수수나 정치자금법 위반, 대기업 임원의 횡령·배임 등 중요 범죄를 다루는 '부패사건 전담재판부'다.

당시 검찰수사는 안대희(대검 중수부장)-남기춘(대검 중수1과장)-윤석열-조재연-조은석 검사가 맡았다. 안대희 부장과 남기춘 과장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에 합류해 각각 정치쇄신특위 위원장과 클린정치위원장을 맡은 반면, 윤석열 검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특검'에 참여해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먼저 김효근 (주)닉스 대표와 곽용석 아스텍창업투자 대표에게 받은 총 3억9000만 원이다. 안 지사는 지방자치실무소(1993년 12월 설립, 1991년 1월 사단법인 참여사회자치경영연구원으로 확대 개편)의 재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 1999년 7월 생수판매회사인 '오아시스워터'를 설립했다. 오아시스워터는 장수천에서 생산한 '오아시스' 생수를 판매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경영이 여의치 않자 투자자 물색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김효근 대표와 곽용석 대표에게 투자를 권유했고, 각각 2억 원(1999년 7월)과 1억9000만 원(1999년 7월과 11월)을 받았다. 김 대표는 NIX, STORM 등의 청바지 브랜드로 성공한 사업가이자 안 지사의 고려대 1년 선배였고,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에 연루된 김호준 전 보성그룹 회장의 친동생이다. 안 지사는 김 전 회장이 보낸 최아무개씨를 통해 서울 강남구 논현동 소재 노보텔 현관 로비 주차장에서 2억 원을 건네받았다.

곽 대표가 운영하는 아스텍창업투자의 대주주는 노 대통령과 가까운 이상호 우리들병원장이었다. 노 대통령은 우리들병원의 자문변호사였고, 이상호 원장은 그의 척수디스크 수술을 맡은 바 있다. 

문제는 오아시스워터 주식 전량을 생수생산업체인 (주)우보의 박양원 대표에게 팔면서 일어났다. 안 지사는 박 대표에게 4억5000만 원을 받고 오아시스워터 주식 전량을 양도했지만 김 대표와 곽 대표에게 받은 투자금을 반환하지 않았다. 안 지사는 이들에게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운영하는 나의 정치활동을 지원한다는 생각으로 생수회사 투자금을 나에게 지원해 달라"라고 설득해서 승낙을 받았다. 

검찰은 이렇게 제공된 총 3억9000만 원을 '정치자금법에 정하지 않는 방법으로 정치활동을 위하여 제공받은 불법정치자금'으로 판단했다(정치자금법 위반). 반면 안 지사는 "김 대표와 곽 대표가 투자손실본 것을 양해해주어 매각대금 일부를 연구원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했을 뿐 의도적으로 연구원의 운영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 회사를 매각한 것이 아니고, 나는 어떠한 정치적 지위를 가지고 있거나 구체적인 정치활동을 하지 않고 있었다"라며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부인했다. 

하지만 1심 재판부는 총 3억9000만 원을 불법정치자금으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확대·이전하는 위 연구원의 운영자금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오아시스워터를 매각한 후 위 연구원의 운영 및 정치활동을 하는 데 사용할 정치자금 명목으로 김효근과 곽용석으로부터 위와 같이 각 투자금의 사용을 승낙받았음을 인정할 수 있다"라고 판시했다. 순수한 투자금이 아니라 자치경영연구원의 운영자금을 마련할 목적으로 오아시스워터를 매각하는 과정에서 받은 불법정치자금이라는 취지다. 

삼성·롯데·태광실업·대우건설 등에서 총 65억여 원 수수
토론회 참석한 안희정 충남지사 더불어민주당 대선주자인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목동 CBS사옥에서 시사프로그램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에 출연해 합동토론회를 준비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두 번째는 안 지사가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정무팀장으로 일하면서 썬앤문그룹(1억 원), 롯데그룹(6억 원), 대우건설(1억7500만 원), 삼성그룹(국민주택채권 15억 원와 현금 15억 원), 태광실업(5억 원), 성명불상 지인들(21억9000만 원)로부터 총 65억6500만 원을 받은 사건이다. 

안 지사는 지난 2002년 11월 이광재 현 여시재 부원장(당시 노무현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 비서실 기획팀장)이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에게 받은 1억 원(1000만 원권 수표 10장)을 건네받았고, 같은 해 4월부터 12월 하순경까지 롯데그룹 회장 응접실(서울중구 소공동 소재 롯데빌딩 26층)에서 총 4차례에 걸쳐 신동인 롯데쇼핑 대표로부터 총 6억 원을 받았다. 신동인 대표는 신격호 롯데 총괄회장의 5촌조카로 롯데제과·롯데쇼핑 사장, 롯데자이언츠 구단주대행 등을 맡았던 '롯데그룹 실세 중 실세'였다.

안 지사는 지난 2002년 3월부터 11월 중순경까지 재미동포 이청희씨를 통해 대우건설로부터 총 5차례에 걸쳐 총 1억7500만 원을 받았고, 같은 해 6월과 11월 박재중 삼성그룹 기업구조조정본부(구조본) 재무팀 상무로부터 각각 국민주택채권 15억 원(500만 원권 300매)와 현금 15억 원을 받았다.

삼성그룹이 안 지사에게 두 차례 돈을 건넨 장소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소재 맨하탄호텔 노상 주차장이었다. 전달자였던 박재중 상무는 입원중이던 지난 2005년 1월 전무로 승진했지만 같은 해 7월 위암으로 사망했다. 당시 삼성그룹의 대선자금 전달은 이학수(구조본 본부장)-김인주(재무팀장 겸 부사장)-박재중(재무팀 상무) 선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삼성그룹은 안 지사에게 건넨 30억 원의 불법정치자금과는 별도로 10억 원의 공식후원금을 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10억 원의 공식후원금도 안 지사를 경유했다는 점이다.

안 지사는 지난 2002년 12월 김해시 안동 소재 태광실업 회장실에서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자기앞수표 500매(5억 원)를 받았다. 박연차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에 장남 건호씨와 조카사위 연철호씨에게 500만 달러, 부인 권양숙씨에게 100만 달러와 스위스산 명품시계('피아제')를 선물한 기업인이다.

대선이 끝난 후에도 4억 수수... '정치적 독립' 위해?

세 번째는 안 지사가 대선이 끝난 이후에 박연차 회장 등으로부터 총 4억 원을 받은 사건이다. 먼저 안 지사는 지난 2003년 3월 서울 중구 장충동 소재 신라호텔 중식당에서 박 회장으로부터 100만 원 자기앞 수표 200매(2억 원)를 받았다. 비슷한 시기 안 지사는 대학친구들로부터 SM520 승용차를 선물받아 타고 다닌 사실이 드러나 반환하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안 지사는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1년 옥살이를 하고 출소한 직후인 지난 2004년 12월에도 박 회장으로부터 5000만 원어치의 상품권을 받았다. 검찰은 이러한 사실을 지난 2009년 6월 박연차 게이트 수사 때 확인했지만 기소하지 않았다. 상품권을 받았을 당시 안 지사가 피선거권을 상실해 정치활동을 할 수 없었다는 이유에서다. 박 회장에게서는 현금이 아니라 주로 '수표'나 '상품권'을 받았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안 지사는 지난 2003년 8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소재 일식당에서 권홍사 반도건설 회장으로부터 10만 원권 자기앞수표 2000매(2억 원)를 받았다. 당시 안 지사는 '나라종금 로비의혹 사건'으로 불구속기소돼 재판받고 있는 중이었다. 안 지사는 2억 원 중 1억 원은 권 회장에게 돌려줬다. 안 지사는 "나라종금 재판이 진행중이어서 '이런 돈도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해 돌려주려 했으나 권 회장이 (2억 원 중) 1억 원은 받기를 거절해 출마하려던 지역구의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라고 진술했다.

반도건설은 지난 1980년 3월 태림주택으로 출발했다가 지난 1989년 반도종합건설로 상호를 바꾼 종합건설업체다. 권홍사 회장은 원래 경북 의성에서 태어났으나 13살 때 부산으로 이사와 동아대 건축학과를 졸업하고 부산지역 건설업체에 입사하면서 부산과 인연을 맺었다. 현재는 반도홀딩스를 지주회사로 반도건설, 반도레저, 반도개발 등 13개의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앞서 지난 2003년 6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충주 소재 씨그너스 골프장에서 권 회장을 만나 안 지사를 소개했다. 강 회장은 권 회장에게 "노무현 대통령을 오랫동안 가까이에서 보좌했는데 대선 후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고향인 충청도로 내려가서 꿈을 키우려고 하니 권 회장님이 앞으로 좀 도와주십시오"라며 재정적 후원을 당부했다. 

검찰은 안 지사가 '정치적 독립'을 위해 대선 이후에도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것으로 판단했다. "2003년 1월경 새로운 정치를 표방하면서 정치적 독립을 선언한 후 차제에 피고인의 장래 총선 출마 준비 등 개인적 용도에 사용할 자금을 마련해 마음먹고 정치자금법에 정하지 아니한 방법으로 정치자금을 교부받았다"라는 것이다.

안 지사는 이광재 부원장이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으로 간 것과 달리 청와대에 들어가지 않고 당에 남았다. 지난 2003년 1월 새천년민주당의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을 맡았고, 2004년 충남 논산 총선 출마를 준비했다. 특히 안 지사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된 뒤에도 '옥중출마'까지 검토했을 정도로 정치적 독립에 애착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2014년 2월 지인에게 보낸 옥중편지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겸허히 반성하며 국민 여러분께 용서를 구하고, 잘못된 정치관행과 문화, 불완전하고 모순에 가득찬 현행 정치관련 제도와 법이 고쳐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은 일선에서 물러날 때라고 생각한다."

특히 안 지사는 대선 이후에 받은 4억 원을 "향토장학금"이라고 표현해 비난을 자초하기도 했다. 안 지사는 지난 2004년 2월 19일 열린 공판에서 "2002년 12월까지 나는 어린아이였지만 이후에는 어머니 품에 안기면 어머니가 쓰러질 만큼 장정이 돼 있었다"라며 "한동안 그 변화를 깨닫지 못한 채 그런 돈을 어린아이에게 주는 '향토장학금' 정도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정치자금 수수의 대가성을 부인하기 위한 비유였지만, "구악을 뺨치는 신악의 한 단면"(<한국일보>, 2004년 2월 21일 사설중), "벗겨진 그의 실체는 '검은 돈을 먹고 자라는 386의 꿈나무'에 불과했다"(<세계일보>, 2004년 2월 21일 사설 중), "그는 권력의 달콤함에 빠졌던 셈이다"(<경향신문>, 2004년 3월 9일자) 등의 거센 질타에 쏟아졌다.

아파트 구입 2억-총선 출마 여론조사 1.6억... "실망과 허탈감 안겨"

1심 재판부는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대기업 등으로부터 받은 65억6500만 원, 대선이 끝난 이후 박연차 회장과 권홍사 회장에게 받은 4억 원 등 총 69억6500만 원을 모두 '불법정치자금'으로 판단했다. 이를 바탕으로 재판부는 지난 2004년 6월 안 지사에게 징역 6월에 몰수 1억 원, 추징 12억1000만 원을 선고했다.

"피고인은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주겠다는 참여정부를 출범시킨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로서 이 사건 각 범행으로 인하여 국민에게 꿈과 희망이 아닌 실망과 허탈감을 안겨준 점, 또한 피고인은 이 사건으로 인하여 검찰에서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공동 피고인이던 강금원, 선봉술 등과 말을 맞추어 자신의 범행을 은폐하려고 시도한 바 있는 점을 고려하여 보면, 그 죄질 및 범정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할 것이므로 그에 상응한 실형을 선고하지 않을 수 없다."(1심 판결문, 26쪽)

검찰이 징역 7년에 추징금 91억5500만 원을 최종 구형했다는 점을 헤아리면 1심 재판부가 선고한 형량이 적다는 시각도 있었다. 서정우(징역 4년)·김영일(3년 6월)·최돈웅(징역 3년) 등 한나라당 인사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형량이 가볍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재판부는 "다만 피고인이 제16대 대통령 선거 당시 먼저 적극적으로 기업체 등을 상대로 불법 정치자금을 요구한 것은 아니고, 뒤늦게나마 이 법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는 점 등을 참작하여 주문과 같은 형을 선고한다"라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특히 추징액 12억1000만 원에는 아파트 구입비(2억 원)와 총선출마를 위한 여론조사 용역비(1억6000만 원) 등 사적으로 사용한 금액이 포함돼 있다. 안 지사가 불법정치자금의 일부를 사적으로 사용한 것을 두고 비판여론이 크게 일었다. 

지난 2004년 3월 8일 안대희 당시 대검 중수부장은 불법대선자금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기자들이 "안희정씨가 아파트를 사면서 유용한 것은 잠시 사용한 것인가?"라고 묻자 "인 마이 포켓(in my pocket, 개인적으로 유용한 것)이다"라고 답변했다. "살던 아파트가 제때 팔리지 않아 새로 산 아파트의 중도금을 낼 수 없자 강금원씨로부터 돈을 빌렸고 아파트가 팔린 뒤 곧바로 갚았을 뿐이다"라는 안 지사쪽 주장을 일축한 것이다.  

또한 1심 재판부는 문병욱 썬앤문그룹 회장으로부터 1억 원을 받은 것과 관련 이광재 부원장과 공모한 적이 없다는 안 지사의 주장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그 근거로 ▲ 정치활동을 해오면서 줄곧 재정업무를 담당해왔기 때문에 이광재 등 동료들은 외부로부터 연구소의 운영자금 등을 조달하는 경우 자연스럽게 재정업무를 담당하던 피고인에게 이를 전달해온 점 ▲ 2002년 대선 당시에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의 비서실 정무팀장으로 일하면서 대선캠프의 자금을 관리하는 등의 업무를 담당한 사실 ▲ 이광재로부터 1억 원을 전달받으면서 문병욱이 교부한 금원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병욱에게 정치자금 영수증을 발급해주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들었다.

안 지사는 지난 2004년 5월 27일 결심공판에서 "삼성 현금 15억 원은 예전에 성명불상자들에게서 받은 21억9000만 원의 일부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돈을 준 사람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다 보니..."라며 "말을 바꿔 정말 죄송하다"라고 고개를 숙였다. 검찰이 삼성그룹으로부터 현금 15억 원을 받은 사실을 확인하고 추가기소에 나서자 말을 바꾼 것이다.

이에 1심 재판부는 "액수를 줄이려고 이제 와서 삼성에서 받은 돈을 연결시키는 것 아니냐?"라고 추궁했고, 최종 선고에서도 안 지사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검찰에서 조사받을 당시부터 마지막 공판기일 이전까지 불법정치자금을 성명불상의 지인들로부터 교부받았다고 주장하다가 삼성그룹으로부터 교부받은 불법정치자금 15억과 관련된 사건이 병합되자 마지막 공판기일에 이르러 비로소 이에 배치되는 주장을 하고 있다"라고 판결했다.  

장수천 채무변제 관련 용인땅 매매에는 무죄 선고

다만 1심 재판부는 장수천(노무현 전 대통령이 설립한 생수제조업체) 채무변제와 관련된 용인땅 매매에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에서 주장한 '가장매매'를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당시 정치공세를 받고 있던 노무현 후보를 돕겠다는 생각을 가진 강금원과 이기명 사이에 이루어진 호의적인 거래였다"라고 설명했다.

안 지사는 지난 1996년 이후 노무현 당시 민주당 종로지구당 위원장의 정치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선봉술씨와 함께 장수천을 운영했다. 노 대통령의 중학교 동기인 선씨가 장수천의 대표를 맡았다. 그러던 중 장수천의 생산설비 자동화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주)서울리스로부터 18억5000만 원의 빚을 졌다.

문제는 지난 2002년 4월 노무현 후보가 새천년민주당 대선후보로 확정된 후 일어났다. 한나라당이 장수천의 채권자인 (주)서울리스가 퇴출되고 (주)한국리스여신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상당한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고 지적하면서 노무현 후보가 장수천을 운영하다 빚을 져 공적자금을 유발해 국민부담을 초래했다고 정치공세에 나선 것이다.

이에 안 지사와 이기명 노무현 후보 후원회장,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강 회장이 이기명 회장 소유 용인땅을 사서 그 매매대금으로 장수천 빚을 갚기로 했다. "강금원으로 하여금 장수천의 리스 채무를 변제하도록 하려고 했으나 직접적인 채무변재 행위는 불법정치자금 제공 시비가 야기될 수 있어"(1심 판결문 18쪽) 생각해낸 해법이었다.

지난 2002년 8월부터 2003년 2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총 19억 원이 이기명 회장에게 건너갔고, 이 회장은 이것으로 장수천의 빚을 변제했다. 검찰은 이것을 안 지사(장수천 운영)가 받은 불법정치자금으로 판단했지만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피고인이 나중에 불법정치자금 시비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강금원과 이기명 사이에 위 매매계약을 체결하도록 하고 그 매매대금으로 장수천의 채무를 변제하도록 하는 방안을 생각해낸 상황에서 다시 강금원과 이기명이 사후에 시비의 소지가 있을 수 있는 가장매매를 체결했다는 것은 선뜻 납득되지 않는다"라고 밝혔다.

권홍사 회장으로부터 받은 2억 원의 알선수재 혐의도 인정하지 않았다. 1심 재판부는 "당시 권홍사와 피고인 사이에 권홍사가 경영하는 (주)반도를 비롯한 계열회사와 관련한 어떠한 언급도 없었고, 실제로도 위 회사들과 정부 사이에 어떠한 구체적인 현안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공무원의 직무에 속한 사항에 관하여 알선한다는 명목으로 수수한 금원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라고 판결했다.

"승리자라도 법의 정의 앞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한편 안 지사는 지난 2004년 5월 5일 결심공판에서 "과거 민주화운동과 야당 생활을 하며 대선에 꼭 이기겠다고 생각했지 출세를 위해 이기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라며 "엄격한 아버지(노무현) 밑에 살림 살라하는 어머니(안희정)가 그러하듯 '타협'했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안 지사는 "그 '타협'은 낡은 정치와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범법이긴 마찬가지였다"라며 "(눈물을 쏟고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엄하게 꾸짖어 달라, 무슨 벌이든 달게 받겠다"라고 말했다. 그는 "저를 무겁게 처벌해 승리자라고 하더라도 법의 정의 앞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게 해달라"는 인상적인 발언으로 최후진술을 마무리했다.

하지만 검찰은 "겉으로는 386세대의 대표자로 자처하면서 속으로는 기업에서 검은 돈을 받아 상당부분을 개인적으로 유용하는 등 과거 정권 실세들과 다를 바 없는 피고인에게 도덕적 우월감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했다"라며 "강금원씨 등과 적극적으로 증거 인멸을 시도하고 자금 제공자 보호라는 미명 아래 제공자들을 밝히지 않는 것은 사법부를 경시하고 반성하지 않는 태도로 이에 상응하는 처벌이 필요하다"라고 징역 7년을 구형했다.

1심 판결 전인 지난 2004년 6월 7일 이광재·김현미·서갑원·김부겸·임종석·임종인·백원우·이화영 등 열린우리당 의원 82명이 연대서명한 '안희정 탄원서'가 제출됐다. 이들은 탄원서에서 "법과 관행이 심각하게 괴리돼 있는 정치현실에서 정치자금을 담당하는 사람은 누구든 희생당할 가능성이 높다"라며 "그런 의미에서 안씨도 희생자 중의 하나다"라고 호소했다. 이들이 안 지사를 "개혁정치를 실현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동반자"로 상찬하는 대목에서는 곱지 않은 시선이 많았다.

<경향신문>은 '안희정 탄원서 한심스럽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다, 안씨가 지은 죄만큼 감옥생활을 하면서 진정으로 반성하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그를 정말 도와주는 것이다"라고 썼다(2004년 6월 9일). <세계일보>도 같은 날 사설에서 "행여라도 개혁세력의 비리는 '희생'이고 보수세력의 비리는 '범죄'라는 인식을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반개혁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라고 질타했다.
[대선기획취재팀]
구영식(팀장) 황방열 김시연 이경태(취재) 이종호(데이터 분석) 고정미(아트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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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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