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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눈꽃) 눈꽃이 제대로 피는 조건이 있다. 눈이 내린다고 언제든 눈꽃을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눈이 내릴 때 기온이 많이 내려가면 곧장 눈꽃을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낮 시간엔 충분히 온도가 올라가 습도가 높았다가 오후에 해가 기울며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뚝 떨어지면 눈꽃만큼 근사한 상고대가 만들어진다. 폭설 뒤에도 며칠 지나 기온이 급격하게 오르고 내리는 변화와 함께 눈꽃을 만날 수 있는데 그러한 조건을 충족시키는 오색령 부근에서 자주 만날 수 있다.ⓒ 정덕수
동지를 맞은 오색령(한계령) 고갯마루엔 여전히 바람이 불겠다. 폭설을 뚫고 근사한 장면 하나 만날 욕심으로 수없이 오르고 내렸던 고개다. 바람으로 날려와 마음자락에 머물던 흔적 하나 있겠지 싶지만 온 자취도 떠난 흔적도 찾을 길 없다.

양양군은 곳곳에 아름다운 비경을 감추고 있다. 어지간한 노력 기울이지 않으면 절대로 보여줄 수 없다고 감추진 않았어도 사람들은 그저 차창 밖 풍경 정도로 휙 스치고 지나치는 곳곳이 비경이다.

또한 양양군은 어느 계절이랄 거 없이 사철 아름답다. 물론 아름다운 것만으로 치자면 누구에게나 고향만큼은 오롯이 추억을 품은 까닭에 모두 그리 생각할 수 있다. 사실 외지에서 생활할 땐 그런 고향에 대한 글을 참 많이 썼다. 오히려 고향에 돌아와 생활을 하며 덜 쓴다.

그런데 최근 2달 가깝게 외지에 나와 있다 보니 눈 소식, 겨울 비 소식만으로도 한달음에 달려가고 싶다. 오늘은 큰 맘 먹고 설악산, 그중에서도 남쪽에 있는 뜻으로 남설악이라 하는 오색과 오색령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물론 계절이 계절이니만큼 눈과 관련된 이야기다.

"눈이 오면 차량을 통제하잖아요."

설경을 담으러 폭설 속에 차로 움직인다면 대부분 이 말부터 한다. 평소에도 초보운전자는 차를 밀고 가고 싶다는 오색령인 다음에야 그런 걱정도 전혀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곳만큼 제설작업이 빠르고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도로도 없다. 심지어 영동고속도로에서 폭설 때문에 차량을 통제하고 고립된다는 소식이 들려도 오색령은 여지간한 눈으로 통제하지 않는다.

양양에서 오색령 정상까지는 불과 28km 남짓이다. 그런데 이 구간에서도 눈이 읍내까지 내릴 확률은 현저히 적다. 심지어 불과 8km 남짓한 오색마을에도 비가 내리는데 온정골어귀부터 눈이 쌓일 때도 많다. 불과 몇 미터 차이로 눈이 내리거나 비로 바뀌어 내리는 걸 확인할 정도다.

양양에서 오색령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남설악터널이 나온다. 이곳까지 눈이 내리면 제대로 오색령 일대의 설경을 감상할 기회다. 반대로 인제방향에서 접근하면 한계삼거리 무렵부터 눈을 만나면 멋진 설경을 만날 확률이 높다. 물론 내륙인 인제방향에서는 인제에서 눈을 만나더라도 오색령에서 설경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아예 눈이 안 내리는 경우도 있지만...
흘림골 가을 단풍철이면 엄청난 인파가 몰려들어 말 그대로 시장판처럼 변하지만 겨울이면 비교적 조용히 촬영을 할 수 있다. 사진 중앙의 골짜기 왼쪽으로 등선대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고, 오른쪽의 겹겹이 도열한 바위들이 칠형제봉이다. 중앙 정면에 보이는 바위는 한계령휴게소나 칠형제봉을 조망하는 위치에서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정덕수
칠형제봉 카메라를 오른쪽으로 돌려 칠형제봉 일원만 촬영해 본다. 소나무와 어우러진 바위들이 신비롭다. 이곳은 암벽등반을 하는 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흘림골로 접어들어 등선대를 오르면 이 바위들은 위치에 따라 수 없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덕수
금표교에서 길은 급하게 곡선을 탄다. 그리고 서서히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남설악의 절경을 제대로 만날 수 있다. 물론 온정골 주변부터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절경은 만날 수 있지만 대단한 장관은 금표교로부터 조금 올라간 지점인 흘림골 입구에서다.

이때쯤 차도 거친 호흡 몰아쉬며 고갯길을 오르기 버거워 한다. 눈길에서 멈춰서면 어떻게 출발할지 난감한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미 해발고도가 700m에 육박하는 이곳에서 시시각각으로 변신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연현상을 감안하면 주저할 수 없다. 눈길에서 운전을 자주한 사람들은 어떻게 멈춰 섰다가 출발할 수 있는지 체험을 통해 터득했다. 차를 멈추고 단 한순간이라도 적절한 때를 놓칠까 조바심을 낸다.

촬영을 마치고 눈을 털며 차에 오르면 앞에 오는 차가 있는지 살핀다. 중앙선 방향으로 핸들을 완전히 돌려 서서히 출발하고 탄력을 받으면 바른 방향으로 진행한다. 2000년대 초반엔 늘 아내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이 고갯길을 오르내리며 촬영했다. 그때 면허도 없으면서 아내를 참 많이 타박했다. 요즘이야 눈이 내리면 몇 년 전부터 사진촬영에 맛을 들인 친구가 먼저 채근한다.

칠형제봉 흘림7교에 비교적 넓은 자리가 있어 이곳에 차를 주차하고 촬영할 수 있다. 이 장소를 잘 기억해두면 계절이 바뀔 때마다 전혀 다른 멋진 풍경사진을 촬영할 수 있다.ⓒ 정덕수
 
무명봉 칠형제봉으로부터 시작해 정상에 해당되는 이곳은 별다른 이름을 얻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설악산 전체를 보았을 때 워낙 빼어난 풍경과 기암괴석이 많은 까닭이다. 물론 오래전 어른들께서는 어떤 장소나 모두 그곳만의 이름을 붙여 서로 소통에 무리가 없었다. 가령 약초를 채취하는 이들이나 산나물꾼들이 ‘선바위모둠’이라거나, ‘양씨 모둠’와 같은 방식으로 그들만이 서로 알 수 있는 지명을 붙여 위치를 확인하였듯이. 선바위모둠은 직벽의 바위 아래 몇 사람 구들을 놓고 기거하던 장소고, 양씨 모둠은 양씨 집안이 매년 자리를 잡고 나물을 채취하며 머물던 산 중의 터들이다.ⓒ 정덕수
오색령 바로 아래 가장 긴 곡선도로를 지나 오르면 흘림골을 촬영할 때 오른쪽으로 겹겹이 보이던 바위들이 진경산수로 눈에 들어온다. 칠형제봉이다. 흘림7교에서 넓은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다시 카메라를 챙겨든다. 정말 광각렌즈가 이럴때 필요하다.

한계령휴게소 어떤 각도에서 대상을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담을 수 있는 것이 사진이다. 류춘수 이공건축설계사무소 대표가 김수근 선생의 공간에서 일을 할 때 설계했던 한계령휴게소의 조감도와 엇비슷한 각도로 보이는 위치에서 촬영했다. 이보다 조금 높은 곳에서 거리를 두고 류춘수 회장은 전체적인 그림을 스케치했다.ⓒ 정덕수
다시 이곳에서 한계령휴게소 바로 아래를 통과해 잠시 휴게소를 바라보면 참으로 위치를 절묘하게 선택해 자리를 잡았단 생각이 든다. 류춘수 회장(이공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을 만났을 때 대화를 나누며 한계령휴게소를 설계한 내용을 분명하게 들었다.

1978년 한계령 도로를 정비하고 포장하기로 국토부가 확정했을 때 '경춘관광'은 한계령의 작은 간이매점을 매입하여 휴게소를 짓기로 결정한다. 건축가 류춘수가 당시 '공간'의 김수근 선생 밑에 직원으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런 까닭에 한계령휴게소를 류춘수란 설계사가 아니라 김수근 선생께서 설계했다고 알려졌다.

젊은 류춘수는 한계령 휴게소의 설계를 맡게 됐다. 그가 이 작업에 착수했을 때가 1979년이다. 도로가 완전히 포장을 마쳤을 때는 여전히 간이매점 하나가 있었으나, 이듬해인 1982년에 완공된 한계령휴게소는 이후 세계적으로 호평받는 건축물이 됐다. 한계령휴게소는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명산 국립공원 설악산을 양양군과 인제군을 이어 횡단하는 고개의 정상 안부에 위치해 있다. 물론 휴게소 건물이 두 군의 경계선에 걸쳐있지는 않다. 양양군 서면 오색리로 주소가 되어 있다.

이제부터 차를 마땅히 주차할 공간이 없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 없다. 오색령 길이라면 언제든 손바닥 들여다보듯 달달 외고 있으니 말이다. 오색령을 향해 오르다보면 귀둔으로 넘어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여기에서 차량의 왕래가 거의 없는 귀둔 방향으로 향해 조금 가면 바로 인제군과 양양군의 경계다.

설화(눈꽃) 필례를 거쳐 귀둔으로 넘어가는 도로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천천히 탐색하듯 돌아보면 어느 곳이나 모두 기막힌 작품이 될 수 있는 촬영대상이다. 심지어 차에서 내리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와 같은 눈꽃이 제대로 핀 사진을 담을 수 있는 모든 조건을 갖춘 곳이기도 하다.ⓒ 정덕수
 
설화(눈꽃) 바위를 잘라낸 절개지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란 참나무들이 겨울철이면 이와 같은 풍경을 만들어 낸다. 어떤 시인도, 어떤 화가도 이처럼 절묘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내 놓은 적이 없다. 자연이 만들어낸, 바람과 눈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정덕수
차를 멈추고 어느 방향으로 카메라를 돌려도 모두 작품사진이 되는 장소이기도 한 곳이 바로 이 위치다. 오색령의 구불구불한 도로가 한눈에 조망되고, 서북주릉이 대청봉을 향해 용틀임을 하는 장관도 한눈에 들어온다. 머리 위로는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설화가 고운 나무들이 도열해 장관이다.

이쯤에서 이 글은 마치고 다음 기회에 오색령과 그 주변의 풍경들에 대해, 촬영 포인트가 되는 위치와 차량을 멈추어도 될 곳들을 함께 소개하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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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불편하지만 부끄러움은 아니다. 한계령 바람같은 자유를 늘 꿈꾸며 살아가며, 광장에서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고 시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