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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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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골레 노을길에서 중형필름 파노라마 포맷. 바람 때문에 배가 뜨지 못하여 원래의 여정대로라면 볼 수 없었던 석양을 담게 되었다. 봉골레산 노을 전망 포인트. ⓒ 안사을
추자도를 찾은 날 또 다른 '처음'을 경험했다. 오래 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청년의 시기라고 할 수 있는 20대를 뒤로 한 지 두 해 가까이 흘렀으니 이제 무언가를 처음 겪는 것이 일상적인 나이는 지났다고 할 수 있다. 첫 발령을 받은 지도 어느덧 만 8년을 채워가고 있는 지금, 슬슬 타성에 젖을 때도 되었는데 이러한 '처음'들이 나의 삶에,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는 시간에 소소한 활력을 주기에 여전히 출근이 즐거운지도 모르겠다.

이날 겪은 나의 '처음'은 바로 '고립'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었으나 문자로 결항을 통보받았던 당시 어안이 벙벙했던 순간을 생각해보면 아직도 나도 모르게 콧바람이 새어나오곤 한다.

추자도에서 버스 타기

추자도에서의 둘째날이었던 이날, 추자도 버스투어를 결심했었다. 이곳 추자도는 한 시간에 한 대, 온종일 버스 두 대가 서로 교차하면서 승객을 실어나른다. 버스비는 천 원. 걷기에 거리가 애매한 곳은 버스로 이동하면 편하다. 버스 시간도 정류장마다 잘 안내되어 있고 그 체계가 간단하기 때문에 시간 계획 짜기에도 어렵지 않다. 오전에 버스를 타고 출발해서 종점인 상추자 대서리에서 점심을 먹은 후 다시 버스를 타고 중간에 내려서 적당히 트레킹을 한 뒤 오후 5시 배를 타고 다시 완도로 나가는 것이 이날의 계획이었다.

섬의 길이 상당히 구불구불하여 버스의 속도가 매우 느렸다. 예전에 여고 아이들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갔을 때 매우 스릴있는 운전을 보여주셨던 우도의 버스기사님과 비명을 지르면서도 즐거워했던 아이들이 생각나서 잠시 얼굴에 미소가 스쳤다.
추자도 버스 35mm네거티브 필름(프로이미지). 서로를 속속들이 알고있는 듯 기사님과 승객분들의 대화가 정겹다. ⓒ 안사을
버스에서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버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 안사을
버스에 올라탄 뒤 두 정거장 쯤 지나니 신양항 근처의 번화가에 도착했고 네다섯 명 정도의 승객분들이 타셨다. 이 버스는 남동쪽의 예초리에서 출발하여 남쪽의 신양항, 묵리를 지나 하추자도와 상추자도를 연결하는 다리를 건너 영흥리를 거친 후 숙소와 식당이 밀집되어있는 추자항에 이르는 노선을 운행한다. 아무래도 상권이 상추자 쪽에 형성되어 있다보니 작은 섬이지만 신양항 쪽이나 묵리에 사는 주민들은 버스를 이용하는 일이 꽤나 자주 있을 것 같았다.

"김 기사~"
"......"
"김 기사~"
"......"
"왜 대답을 안허요. 김 기사~"
"저 김씨 아니라니까요!"

운전석 바로 뒤에 앉은 아저씨의 능청스러운 장난이 참 정겹다. 오른편 앞쪽에 앉은 할아버지 두 분도 끊임없이 대화를 하신다. 이를 그대로 녹음해두었다가 무엇 하나 가감하지 않고 그대로 글로 써도 참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 만큼 대화를 듣는 재미가 쏠쏠했다.

대서리 동네 걷기... 자장면을 시키니 회가 서비스로
추자도 북경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추자도 유일의 중국집 북경. ⓒ 안사을
주변의 이야기를 배경음악 삼아 창 밖 풍경을 감상하다보니 어느덧 종점 근처인 대서리에 도착했다. 섬에 와서 자장면을 먹는 것은 마치 방콕에서 햄버거를 먹는 듯한 이질감이 있었지만 섬의 유일한 중국집이어서라기보다 맛있는 집이어서 안내를 한다는 펜션 사모님의 강력한 추천에 '북경'이라는 이름의 중화요리 집으로 향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그날 마침 추자도에서 낚시대회가 열려 일반 자장은 준비가 되지 않았고 간자장만 있단다. 애초에 추천받은 메뉴가 간자장이었기에 별다른 아쉬움 없이 메뉴를 주문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온 음식은 자장면이 아니라 회 한 접시였다.

"에코하우스에서 왔다니까 쥐치 한 마리 드릴게. 이거 육지 나가면 회로 잘 못 먹는 거여."

원체 사양을 안하는 체질이라 호탕한 웃음과 함께 거듭 고맙다는 말씀을 전하고 냉큼 회 한 접시를 받아 먹었다. 그 뒤에 나온 간자장 역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맛이었다. 본의아니게 2인분이나 먹게 되어 빵빵해진 배를 어루만지며, 꼭 다음에 다시 와도 이 집을 들르겠노라 신신당부를 하면서 음식점을 나섰다.

다음 여정은 추자초등학교를 거쳐 최영장군 사당을 지나 봉골레산의 능선만 살짝 보고 내려온 후 대서리를 관통하여 전날 갔던 나바론 절벽 쪽을 가는 것이었다. 나바론 절벽을 굳이 다시 보려던 이유는 전날에 비해 바람이 상당히 셌기 때문이었다. 절벽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를 보고싶었다.
추자초등학교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신양분교의 본교가 되는 추자초등학교 ⓒ 안사을
최영장군 사당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최영장군 사당을 내려다보며 담은 사진. 사당의 규모가 참 아담하다. ⓒ 안사을
코스모스와 도넛보케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추자초등학교 뒷편 언덕에 핀 코스모스. 반사식 망원렌즈로 담은 풍경이다. 반사식 렌즈는 그 특성상 위의 사진처럼 초점이 안맞는 곳에 동글동글한 상이 맺히는데 이를 '도넛보케'라고 부른다. ⓒ 안사을
대서리의 폐차장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대서리의 폐차장. 어릴적 자주 보던 그레이스 차량이 화석처럼 엎드려있다. ⓒ 안사을
손수레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주인을 잃은 듯한 옷 벗은 손수레 한 대가 따뜻한 햇살을 받고 있다. ⓒ 안사을
사람이 사는 듯 살지 않는 듯, 정겨운 듯 하면서도 을씨년스러운 듯한 마을을 통과하니 첫날 보았던 용듬벙과 나바론 절벽이 다시 나타났다. 전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온순하면서도 무게감있게 무언가를 감싸주는 것 같은 위용은 사라지고 마치 금세라도 용이 솟구쳐 오를 듯 사납게 휘몰하치는 파도는 위압감을 넘어서 약간의 두려움까지 갖게 했다.

이때의 시간이 오후 2시 반 정도. 슬슬 신양항을 향해서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감도 없이 그저 '바람 참 거세다'라고 생각하면서 옷깃을 여미고 걷고 있었다. 그때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핸드폰 화면에는 모르는 번호가 떠 있었다. 그제서야 순간적으로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다. 그리고서 들려오는 소식은 역시나...

이미 핸드폰에는 문자를 비롯해 몇 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제주도에서 완도로 가는 배가 바람 때문에 추자도를 들르지 못한다고 했다. 내 차가 완도항에 있었기 때문에 반드시 완도항으로 가는 배를 타야 했고 하루에 하나 있는 이 배가 결항된 것이다. 생전 처음 어딘가에 나의 의지가 아닌 어떤 힘에 의해 갇혀있게 되었다. 잠시 얼떨떨했다.
나바론절벽과 파도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절벽의 규모가 워낙에 커서 파도가 작아보이지만 사실 저 포말은 사람의 키 만큼 높았다. ⓒ 안사을
섬 여행을 떠나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추자도로 향했던 레드펄호가 상당히 큰 규모였기에 당연히 결항 따위는 생각지도 않았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당연히 학교와 나의 학급이었다. 더군다나 이 다음 날은 2학년부 전체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새롭게 아이들의 의지를 다잡아보고자 약속한 날이었다. 마음이 너무도 불편했다. 아무리 처음이라고 하나 이러한 상황을 예견하지 못했던 나의 어리석음도 탓해보았다.

아이들과의 단체 채팅방에 나의 고립 소식을 알렸다. 아이들은 믿지 못하는 눈치면서도 몇몇은 쾌재를 불렀다. 담임이 참 편한가보다. 아이들에게 월요일 아침에 하려고 마음먹었던 훈화를 글로 적어서 보냈다. 그래도 우리 5반 아이들은 누군가의 약점을 공략하거나 신의를 저버리는 아이들이 아닐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서 마음이 참 든든했다. 나중에 확인해본 것이지만 이날 아이들은 나에게 허풍으로만 일탈을 예고했을 뿐이었고 실제로는 단 한 명도 보충수업이나 야간 자율학습을 허락없이 도망가지 않았다. 착한 녀석들.

참 고맙게도 동료 교사분들이 마음을 편하게 해주셨다. 다들 "학교는 걱정 말고 이참에 회나 많이 먹고 오게"라는 위트있는 말로 나를 위로해주셨다. 결항을 알게된 지 2시간여 만에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1박 3일의 여정에 딱 맞춰서 모든 것을 준비했기에 속옷도 양말도 다 떨어졌지만 다행히 중형필름은 넉넉하게 있었다. 나는 시간이 더 지체되기 전에 서둘러서 봉골레 노을길에 올랐다. 불편한 마음은 잠시 뒤로 하고 하늘과 공기, 그리고 바다가 나에게 허락해준 하루를 알차게 쓰고싶었다.

봉골레 노을길과 추자항 야경

봉골레 노을길의 시작점은 섬의 동쪽편이다. 어플로 확인한 일몰시간은 20분이 채 안 남았는데 초행길인지라 서쪽편에 도달할 시간이 감이 잡히지 않았다. 배도 못 탔는데 노을도 놓칠 수는 없다는 각오로 경보 수준의 걸음을 걸은 결과 다행히 모습을 감추기 직전의 해를 만났다. 그 사진은 이 글의 가장 처음에 있다.

아래 사진은 해가 지고 난 직후의 모습이다. 나는 화려한 노을보다도 이런 바다를 좋아한다. 쓸쓸함이 묻어나는, 한없는 고독을 품고 있는 듯한 바다.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며 바라보아도 바다가 그 슬픔조차 흔적도 없이 집어먹을 듯한 풍경. 그래서 나의 어두움을 송두리째 가져가버릴 것 같은 심연을 말이다.
바람과 바다 중형필름 파노라마 포맷. 봉골레노을길의 노을 포인트에서 담은 해가 진 직후의 모습. ⓒ 안사을
워낙에 멀리서 보이는 풍경이라 확연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 날의 바람은 정말 세찼다. 바다와 땅이 맞닿아있는 부근의 포말과 수면 위로 보이는 바람자국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곳에서 두 장의 사진을 찍은 후 계속해서 정상을 향해 걸었다. 이 야트막한 산을 넘어가면 다시 신양항이 나온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니 바람이 더욱 거세어졌다. 어두운 길에서 뜻하지 않게 중심을 잃으면 여지없이 바람에 의해 더욱 휘청거리게 될 정도였다.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다가 정상 근처의 산불 초소를 만났다. 초소 뒤로 이 산에서 가장 높아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있었는데 초소가 그 바위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형국이었다. 날도 어두운 데다가 바람까지 너무 세서 무리하지 않을 것을 속으로 되뇌이고 돌아서는 순간 작은 길이 보였다. 낮에는 충분히 보였을 길인데 어두움에 가려있었던 것이다. 그 길을 올라서는 순간 탄성이 터져나왔다.

추자항과 대서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기 때문이다. 해가 넘어간 지 40분 쯤 흐른 뒤였고 아직 남아있는 박명과 함께 인공의 불빛들도 모두 켜진 상태였다. 서둘러 삼각대를 펼치고 카메라를 장착했다. 노출계가 없는 재래식 파노라마 카메라였기 때문에 모든 노출 계산은 직접 해야한다. 속된 말로 '뇌출계'라고 한다. 감도 100의 필름, 조리개 16, 센터필터가 있기 때문에 노출보정 2.5스톱. 저녁 야경에서 필요한 셔터스피드와 함께 이 모든 변수를 계산하니 1분이라는 노출 시간이 나왔다. 벌브 셔터를 이용할 수 있도록 릴리즈도 장착이 되어있는 상태. 이제 1분 동안 셔터를 열어두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바로 바람이었다.

삼각대 추에 아무리 무거운 가방을 걸어두어도 거센 바람에 카메라 자체가 미세하게 떨리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장노출이기 때문에 이 모든 떨림이 한 장의 필름에 모두 기록될 것.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하면서도 최선의 방법은 숨을 최대한 고르게 쉬면서 삼각대를 있는 힘껏 쥐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상된 필름을 스캔해보니 미세한 떨림 때문에 야경이 날카롭게 표현되지 않았다. 아쉽긴 했지만 그날의 바람까지 기억하는 셈 치기로 한다.
추자항의 야경 중형필름 파노라마 포맷. 추자항의 야경. 1분의 장노출을 한두 차례 하고 나면 급속도로 어두워지기 때문에 촬영의 기회가 많지 않다. ⓒ 안사을
이미 짙은 어둠이 드리운 산길을 더듬거리며 내려오다보니 머리 위로 달이 노랗게 떠있다. 추자도의 명물 굴비를 맛보기 위해 조기찌개를 잘한다는 음식점에서 역시 만족스러운 저녁식사를 하고 전날 저녁을 먹었던 횟집에 잠깐 들른다.

"안녕하세요. 저 집에 못갔습니다."
"아이고. 선생님, 출근은 어떡하고!"
"출근 못하죠 뭐... 아이들이 엄청 좋아하던데요?"

장난기 어린 대화를 몇 마디 주고받은 후 평소에 상상만 하고 시도하지 못했던 사진을 담기 위해 다시 밤 언덕길을 올랐다. 달과 야경을 다중노출로 함께 담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이다. 디지털 카메라라면 여러 번 시도할 수 있겠지만 필름카메라는 결과물을 보지 못한 채 철저히 그동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머릿속에서 계산하여 다중노출을 만들어내야 한다.

다행히 운이 좋았는지 단 한 번의 시도만에 확신을 얻고 언덕을 내려왔다. 달은 500mm 렌즈로 잡았고 필름을 이송시키지 않고 같은 자리에 24mm로 1분간 야경을 기록했다. 역시 이 1분은 바람을 이기느라 삼각대를 기마자세로 붙잡고 있어야 했다. 그래도 여전히 미세한 떨림이 계속 기록되었는지 평소 찍던 야경보다 상당히 선들의 경계가 모호하다.
추자의 밤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다중노출. 추자항과 달. ⓒ 안사을
섬에 갇힌 뒤에 보이는 것들

조금 더 저렴한 숙소로 잠자리를 옮긴 뒤 빨래를 했다. 사실 그 다음 날도 뭍으로 나갈 수 있는 기약이 없었기 때문에 모조리 빨아서 널었다. 이것 마저도 떨어지면 편의점에서 사 입을 생각이었다. 다행히 배는 다음 날 떴다. 가장 큰 배였기 때문에 내가 타고 나가는 배만 들어왔던 것 같다. 이날 배가 안 떴다면 그 뒤로부터는 이틀간 풍랑주의보가 내렸으니 아마도 3일은 더 갇혀있어야 했을 것이다.
추자항의 일출 중형필름 파노라마 포맷. 결항이 아니었으면 보지 못했을 일출이다. ⓒ 안사을
등대와 일출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500mm 반사렌즈. 추자항에서 본 일출. 네거티브 필름 특성상 암부에 노이즈가 꽤나 보인다. ⓒ 안사을
배는 오후 5시였기 때문에 섬을 돌아볼 시간이 아직도 충분했다. '묵리'라는 마을길을 걸었고 첫날 자세히 걷지 못했던 '예초리'와 '예초리 기정길'을 천천히 걸었다. 어떤 여행이 값진 여행인가. 개인적인 가치로만 생각한다면, 결국엔 '기억에 남는 여행'이 값진 여행이 아닐까. 이번 추자도 여행은 앞으로 남은 나의 인생 여정에서 두고두고 조금씩 꺼내어봄직한 경험이었음에 틀림없다.

이하 여정은 사진과 짤막한 설명으로 대신한다.
묵리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묵리 입구에서 처음 만나는 풍경. 마을의 거의 모든 집이 이런 덩굴에 감싸여있다. ⓒ 안사을
묵리포구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묵리 마을을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추자도에서 가장 조용한 마을이자 포구인 묵리 포구가 눈 앞에 들어온다. ⓒ 안사을
돌 사이의 채송화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묵리 마을을 걷던 중 투박한 돌 사이에서 자라고 있는 채송화를 만났다. 무명과 비단의 짜임새를 적절히 섞어 놓은 듯한 꽃잎이 참 아름다웠다. ⓒ 안사을
집과 넝쿨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넝쿨을 한껏 각을 잡고 찍고 있으니 아주머니 두 분이 오셔서 무엇을 찍냐며 물으셨다. 넝쿨을 찍는다고 하니 "그런 것을 뭣허러 찍어"라고 하셨다. ⓒ 안사을
묵리의 할머니들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저 멀리 보이는 할머니들의 대화가 참 정겹다. "같이가"와 "빨리와"를 반복하시는 할머니들. ⓒ 안사을
묵리의 고양이 35mm네거티브필름(프로이미지). 묵리에서 만난 고양이. 다가와서 골골댈 것을 기대했으나 경계심이 꽤나 있는 녀석이었다. ⓒ 안사을
묵리의 돌담 중형필름 파노라마 포맷. 묵리의 돌담과 그 밑에서 자라는 노란 꽃들이 정겹다. ⓒ 안사을
묵리에서 바라본 돈대산 중형필름 파노라마 포맷. 추자도 최고봉을 가진 돈대산의 모습이다. 가을 느낌이 물씬 난다. 꼭대기의 바위 위를 걷는 코스도 경치가 상당히 좋을 것 같다. ⓒ 안사을
묵리에서 바라본 신양항 중형필름 파노라마 포맷. 묵리 마을을 벗어나 산길을 조금 걷다보면 신양항의 모습이 눈앞에 들어온다. 저 멀리 사자바위가 보인다. ⓒ 안사을
예초리 가는 길 중형필름 파노라마 포맷. 예초리 가는 길에서 본 작은 밭이 인상적이다. 해풍을 막기 위해 안 쓰는 문들을 알뜰하게 모아서 튼튼하게 엮었다. ⓒ 안사을
예초리 해변 중형필름 파노라마 포맷. 이날도 바람이 상당했으나 다행히 배가 들어왔다. 조리개를 한껏 조이고 셔터를 1초간 열어두었다. ⓒ 안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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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 필름카메라를 주력기로 사용하며 학생들과의 소통 이야기 및 소소한 여행기를 주로 작성하고 있습니다.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