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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봉 9월 중순, 대청봉은 완연한 가을이다. 직선거리로야 2km 남짓 되는 바로 아래 오색마을도 무더위에 반팔차림으로 다니고 선풍기를 틀어야 한낮 더위를 피할 수 있으나 대청봉에서는 잠시 앉아 있어도 긴팔 가을 옷을 입어야 한다.ⓒ 정덕수
8월 하순부터 이곳엔 가을이 시작된다. 대한민국의 영토를 백두산까지 잡으면 이보다 보름 이상 빠르게 백두산에서 가을이 시작된다고 봐야 하겠지만 남한만을 놓고 말하면 설악산의 주봉 대청봉에서는 8월 하순부터 가을이 시작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가을로 접어드는 10월은 화려한 서글픔의 달이다. 들녘엔 봄과 여름의 수고로움에 보답하는 풍성함이 넘친다. 비단을 풀어놓은 양 고운 산 빛도 불과 며칠, 이내 가녀린 한 올 바람에 부질없이 떨어진다.

이 무렵 양양군엔 대규모 축제 2개가 개최된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이 축제는 '양양송이축제'와 '연어축제'다.

이 축제들이 개최될 때면 남대천과 오색리 지역엔 연일 많은 이들이 찾아든다. 오색지역엔 송이축제나 연어축제와는 무관한 가을 단풍을 즐기려는 이들로 북새통이다. 비슷한 시간에 출발해 무리를 지어 이동하고, 어디 한 곳 자리를 잡으면 먹는 일로 축제장이나 가을은 속절없이 지나간다.

연어축제 연어축제장은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와 함께 참여하는 행사로 다른 축제들과 차별성이 크다. 전국의 많은 축제장을 둘러보면 대부분 어른들에 의한 무질서한 모습에 실망하지만 양양군 남대천에서 개최되는 연어축제는 어린이들과 함께 참여하여 화목한 모습을 보여준다.ⓒ 정덕수
징검다리 과연 아이들이 ‘다리’에 대해 아는 대로 말하라면 몇 가지나 대답할 수 있을까. 섶다리와 징검다리, 무지개다리, 돌다리, 외나무다리 등 지형을 최대한 이용해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길을 이어주던 우리의 다리는 이젠 대부분 사라졌다. 그 자리에 콘크리트나 철골로 된 다리들이 자리하여 최근 케블라 섬유로 된 케이블로 만든 출렁다리도 많은 이들의 추억을 이끌어낸다.ⓒ 정덕수
연어 매년 10월이면 양양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연어는 첨(chum)연어로 맛이 없는 편이라 상품성이 홍연어와 혹연어, 왕연어에 비하면 없다. 이제 왕연어와 같은 인기가 좋은 품종을 도입해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의 활용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정덕수
그리고 이 풍경을 살펴보면 연어축제장엔 자녀를 동반한 부모가 많으나 송이축제나 단풍을 보려는 인파 속에서는 어린이를 동행한 이들이 거의 없다. 말 그대로 어른들만의 행락(行樂)이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연어축제장엔 어른과 어린이가 함께 참여한다.

어른들에겐 가을이 한없이 서글픈 계절이라면 아이들에겐 새로운 경험을 할 기회다. 더 많은 경험과 기회를 보장받아야 할 어린이들이 없는 어른들만의 계절이 된 가을, 어린이들은 어른과 함께 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할까? 여기에 대해 어른보다 오히려 어린이들이 더 잘 걸으며, 스스로 경험한 이상의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줄 아는 능력을 지녔음을 확인했다.

중청봉 설악산의 주봉인 대청봉 600m 지점 중청봉 안부에 위치한 중청대피소앞에 도착한 오색초등학교 학생들이 휴식을 취하며 놀고 있다. 당일로 오색마을까지 돌아올 수 있으나 학생들의 체험활동을 위해 대청봉 등단에서 항상 중청대피소를 미리 예약하여 1박을 하며 공동체 생활에 대해 배운다.ⓒ 정덕수
중청대피소 앞에 앉아 돌멩이 하나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는 오색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대청봉 등반을 4년 동안 동행했다.

둘째가 3학년, 첫째가 4학년이 되던 해 6월 처음으로 전교생이 대청봉 등반에 나섰을 땐 전교생이 9명이었으나 곧 7명으로 그해를 넘겼고, 다음해엔 전교생 7명이 대청봉 등반에 나섰다. 이땐 여학생이 유일하게 5학년인 첫째뿐이었다. 그리고 곧 학생이 다시 줄어 6명이 초등학교를 유지하는 가장 작은 초등학교가 됐다.

그리고 첫째가 6학년일 땐 9명이 대청봉 등반에 나섰다. 동급생은 여전히 없고 여학생도 동생들뿐인 첫째는 긴 산행에도 동생들을 잘 챙겼다.

자식들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없다. 그런데 만약 도시 아이들이나 좀 특별하게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들은 이런 경우 아이들을 학대한다고 진정서를 교육청에 당장 낸다. 과연 그것이 자식을 진정으로 아껴서 하는 행동인지 먼저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은 어른 이상으로 상황에 대처할 줄 아는 능력을 지녔으며 성취욕 또한 스스로 무언가를 해냄으로서 길러진다. 교실에서 아무리 '사랑'을 가르쳐도 아이들은 시기와 질투심을 숨기지 못하며, 생각이 늦거나 발육이 느린 동급생을 따돌리는 일은 예사다. 그러나 어른들도 쉽게 엄두를 못 낼 이와 같은 활동으로 생각의 크기가 커지고, 함께 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 협동심도 길러진다.

강릉의 한 학교에서 학생들을, 그것도 4학년 이상만 데리고 양떼목장 위인 선자령을 등반한 뒤 난리가 났단다. "선생들이 무리하게 어린 아이들을 수업을 안 시키고 억지로 산행을 시켰다"고 교장에게 따지는 것도 모자라, 교육청에 진정을 내는 사태로까지 사건화 시켰단다.

아마도 그 학부모는 자신의 자식을 이번 설악산 등반과 같은 체험학습엔 절대로 참가하지 못하게 할 것이다. 나약하고 이기심 가득한 인성으로 물들이는 행동을 부모가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알아야 하고, 아무리 어린 어린이도 성취하였을 때의 희열을 이와 같은 활동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을 부모부터 배워야 한다.

힘들어 하면서도 아이들은 "어떠니, 단풍이 들거나 눈이 내렸을 때 또 기회가 되면 올까?"란 질문에 거침없이 "네!"라고 답한다.

대청봉 등반 오색령(한계령)에서 출발하여 한계령3거리를 거쳐 끝청봉과 중청봉을 지나 대청봉을 오르는 등반길에 나선 오색초등학교 학생들은 어른들과 비교해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먼저 힘들어하는 학생의 경우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보다 부모에게 의지하는 습관을 보인다. 냇가와 자연 속에서 마음껏 뛰어놀던 학생들은 대청봉 등반에서도 전혀 지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다.ⓒ 정덕수
끝청봉 오색케이블카 설치예정지에서 이격거리 500m 위치의 끝청봉에 도착한 오색초등학교 학생들이 오후 햇살을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잘 걷는 학생의 경우엔 이곳까지 4시간이면 충분히 올 수 있지만 1~2학년생과 체력이 약한 전학생들과 함께 도착했다. 개구쟁이인 아이들은 능선을 걸을 땐 힘들다고 했지만 이렇게 휴식을 취할 때면 어김없이 바위에 오르거나 나무에 매달려 놀았다.ⓒ 정덕수
중청봉 어른들도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대청봉 등반에 나선 오색초등학교 학생들이 만난 중청봉에서의 풍경은 대청봉을 비롯해, 운무에 휩싸인 공룡능선과 천불동 등 경이로움 그 자체다. 잠시 앉아 쉰 아이들은 비교적 넓은 중청봉을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키 작은 나무들과 어울린다. 그리고 자신들이 자라는 양양군에 속한 점봉산에서 오색령을 거쳐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넓은 백두대간의 마루금들을 보며 대단한 장관에 뿌듯해한다.ⓒ 정덕수
아이들은 역시 아이들이다. 배낭을 메고 걷기만 시작하면 뒤뚱거리다가도 잠시 쉴 때면 어김없이 엉뚱한 장난에 정신이 팔리는 아이, 걸을 땐 힘들다고 뒤로 처지다가도 쉴 때는 다람쥐처럼 이곳저곳 오가며 무언가 놀 수 있는 걸 찾아다니는 아이도 있다.

이런 아이들이 대청봉을 다녀왔다면 대청봉이 동네 뒷산 정도로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절대 아니다. 어른들도 걷기 사나운 바윗길, 아찔한 위험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으며 한없이 긴 계단도 수없이 오르내린다.

아이들이라고 배낭 하나 안 진다고 보면 오산이다. 기본적으로 김밥 2줄에 식수 360㎖ 2통과 오이를 비롯해 중간에 먹을 이틀 분량 간식을 챙기고, 여기에 자신이 갈아입을 옷까지 모두 지면 어른들의 당일산행과 전혀 다를 바 없는 짐이다.

아이들과 함께 저녁과 아침에 먹을 찌개거리나 영양을 보충해줄 고기와 같은 건 3년 동안은 혼자 도맡아 배낭에 챙겼다. 지난해 처음 조카가 "큰아빠는 매년 함께 대청봉에 가는데 아빠는 왜 안가"냐고 따져 동생이 동행한 덕에 더 풍성하게 저녁과 아침을 먹일 수 있으면서도 짐은 줄였다.

대청봉 1학년 태이(여 7)는 전날부터 맨 앞에서 줄곧 앞장섰다. 종종 뒤 따라온 언니와 오빠들이 배낭을 풀고 앉으려 할 때 “선생님 이제 출발해요”라 말해 “너는 맨 앞에서 먼저 혼자 선생님과 가니 가장 먼저 도착해 오래 쉬지만 우린 이제 쉬려는데 또 간다고 해”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태이야 힘들지 않아?”라 물었더니 “힘들지만 앞에서 걸으니까 먼저 도착해 쉴 수 있어서 앞에서 갈래요”라고 당차게 대답했다.ⓒ 정덕수
1학년 태이 1학년생인 태이는 전날부터 줄곧 앞에서 걸었다. 교장선생님이 잠시 다른 학생을 지켜볼 때도 혼자 말없이 걸었다. “태이야 힘들지 않아”라 묻자 “아저씨 힘들지만 괜찮아요. 그런데 여기 정말 추워서 겨울 같아요”란다. 는개(안개비)가 매서운 바람에 날리는 대청봉 직전의 돌길은 어른도 몸을 가누기 어려울 정도다.ⓒ 정덕수
대청봉등반 9월 하순부터 10월엔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어린아이들을 단체로 인솔해 대청봉 등반에 나서기는 어렵다. 이 시기엔 어른들이 단풍을 본다며 많이 찾을 때라 등산로 곳곳에서 어린 아이들에게 작은 부딪힘에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더구나 대피소 사용 자체도 코를 고는 어른들 때문에 잠을 설칠 수 있고, 취사장 사용에도 많은 불편이 따르기에 6월 초나 9월 중순 이전에 어린 학생들과 동행한 등반을 했다.ⓒ 정덕수
설악폭포 오색마을과 대청봉 등반길 중간 설악폭포는 대청봉을 오르는 이들에게 중요한 취수를 하는 장소로 오르는 이들과 내려오는 이들 누구나 다리쉼을 하며 물을 채운다. 어린이들은 이곳에서도 어른들과 달리 무언가 놀 수 있는 걸 먼저 찾아낸다. 장마에 떠내려 온 나뭇가지 하나, 색이 다른 돌맹이 하나 모두 아이들에겐 신기한 세상이고 놀이 대상이다.ⓒ 정덕수
어른들은 피곤하면 식사도 귀찮아 거른다. 그러나 아이들은 대피소에 도착하면 앉아 쉬지 않고 곧장 자신들만의 놀이를 만들어낸다. 이때 규칙과 협력이 자연스럽게 학습되고, 누군가 주도적으로 앞에 나서는 걸 알 수 있다.

연어축제장에 자녀와 함께 참여한 부모도 일부에서는 아이가 "나도 연어 잡아볼래"라 말해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구경만 한다. 일요일인 10월 16일 축제 3일째 연어맨손잡기 행사장에서도 한 아이가 부모에게 자신도 하고 싶다고 했을 때다. 어김없이 부모는 "이제 맨손잡기는 끝나서 못해"라 대답했고 아이는 크게 실망한 표정이 됐다. 행사는 얼마간의 시간을 둬 준비를 한 뒤 다음 참가자들에게 참여하도록 한다.

연어축제 아이들에겐 자신의 다리만한 연어를 두 손으로 붙잡아 올리는 자체가 대단한 노력과 보람을 느끼는 학습활동이다. 솔직히 어른들만 연어맨손잡기에 참가할 수 있다면 “잔인하기 짝이 없는 학대행위를 자행” 정도로 비판했겠지만, 어린 아이들이 참여하는 이 행사를 그런 시각만으로 평가 절하할 수 없다. 연어의 삶과 자원의 소중함 등 다양한 걸 아이들은 연어맨손잡기에 참여함으로서 배우기 때문이다.ⓒ 정덕수
연어축제 연어를 형상화하여 오륜기를 만들어 사진촬영을 할 수 있게 했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의 성공개최를 염원하는 조형물부터 다양한 연어를 테마로 한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이곳에서만 만난다. 넓은 남대천과 함께 연어축제장을 한 바퀴 둘러보는 과정 자체가 아이들에겐 대단한 추억이 된다.ⓒ 정덕수
연어축제 어머니의 강인 남대천을 찾아 산란을 마친 상태의 연어와 알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야간엔 조명을 밝힐 수 있게 만들었다. 민물로 들어오기 전의 연어가 아닌, 여울을 거슬러 오르며 혼인색을 띤 연어의 색을 제대로 표현해 이를 통해 연어의 생태를 아이들이 배운다.ⓒ 정덕수
연어축제 연어축제가 개최되는 남대천 한 가운데 갈대밭을 걷다 만나는 다양한 연어 조형물 가운데 작가와 아이들이 함께 만든 조형물이 있다. 작가가 한지와 천연염색을 한 천을 준비하고, 연어 모형을 나누어 준 뒤 이를 아이들만의 다양한 시각으로 채색을 해 완성한 작품으로 각각의 개성들이 돋보인다. 다음엔 이 작품을 보다 대형화해 아이들 누구나 축제장에서 채색할 기회를 주면 좋겠다.ⓒ 정덕수
기념촬영 연어축제장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맨손으로 잡은 연어를 안고 사진촬영을 하는 모습이다. 그 다음으로 연어축제장 한쪽에 마련된 연어훈제장에서 훈제된 연어를 먹으며 촬영하는 이들인데, 남대천 연어축제장은 남대천 갈대밭을 폭넓게 사용해 이곳에 핀 코스모스와 갈대, 억새와 함께 하는 가족들의 기념촬영도 쉽게 볼 수 있다.ⓒ 정덕수
맨발로 물에 들어가도 옷이 젖을 수밖엔 도리가 없다. 부모들이 아이들이 행사에 참여를 하고 싶어 해도 꺼리는 이유가 바로 옷이 젖는다는 걸 기피해서다.

산을 오르고 내려오다 보면 넘어질 수도 있고, 물에 들어가 놀면 옷이 젖는 건 당연하다. 넘어질까봐 안 되고, 옷이 젖어 안 된다면 언제까지 아이들을 부모가 노심초사하며 보살핀단 말인가.

초등학생들과 대청봉을 다녀올 때도 물과 간식은 모두 빼더라도 갈아입을 옷 정도는 챙긴 작은 배낭만큼은 체력이 약한 학생도 반드시 메게 한다. 넘어지더라도 이 배낭 덕에 다치지 않기 때문이다. 앞으로 넘어지지는 않고, 대부분 엉덩방아를 찧거나 뒤로 넘어지는데 배낭을 메야 엉덩이와 허리를 배낭이 보호해준다.

자신의 손으로 한 일은 평생 기억에 남고, 아이들은 스스로 한 일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살아간다.

먹고자 찾는 축제장이 아니라, 보고 참여하는 축제장이 되어야 자녀들에겐 더 없이 좋은 경험이 된다. 이게 살아있는 체험학습 아닐까.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치는 모양으로 퍼마시고 먹는 행락이 아니라, 자녀들과 함께 자연을 만끽하며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나누는 가을이 되고 축제참여가 되면 좋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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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불편하지만 부끄러움은 아니다. 한계령 바람같은 자유를 늘 꿈꾸며 살아가며, 광장에서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고 시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