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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대천 낙산대교가 놓인 이 지점이 곧장 동해와 연결되는 남대천의 하구로 봄이면 황어가 돌아오고, 여름엔 숭어가, 그리고 이제 연어가 돌아와 또 다른 역사를 만들며 생을 마치는 강이다.ⓒ 정덕수
비가 그치고 날이 개기 시작하자 남대천으로 나갔다. 연어를 기다리는 이들이 낙산대교 근처에 여럿 보인다. 저마다 연어에 대해 다른 생각들을 간직하고 있다.

연어의 꿈

여기 아무도 모르게 한줄기 바람 스치면
가을을 꿈꾸는 산 그림자 강물에 어리는 시간
강변에는 보랏빛 칡꽃이 피고
그 칡꽃이 떨어져 저기 저 남대천
시푸른 물결이 바다로 흘러가면
연어가 돌아오는 길이 열리겠지
텀벙거리는 소리 하나 없이 몸을 뒤척이며 가만가만
가을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의 몸짓을 만나겠지
다시 돌아갈 길 아닌 줄 알면서
연어는 저 강을 거슬러 오를 텐데
고단한 몸 쉴 틈 없이 절정으로 치달아 오르는 몸짓
아,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한줄기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 같은
꿈들을 풀어 강물에 누우리라.

아,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한줄기 바람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결 같은
꿈들을 풀어 강물에 누우리라.

양양군은 연어가 가장 많이 회귀하는 고장이다.

양양읍을 관통해 흐르는 남대천을 연어의 모천이라고들 한다. 사실 그럴까? 산란의 최적지인 상류의 여울을 향해 거침없이 오르는 연어가 처음 바다에서 민물을 만나는 장소로는 맞다. 그렇지만 모천이라 말하려면 조건이 조금 다르다.

같은 시기라 하더라도 연어가 산란장소로 향한 강의 어귀로 돌아오는 시기는 각기 며칠씩 차이가 있다. 이 시기에 물의 양이 일정하지 않을 것은 누구라도 알 수 있다. 늦게 도착하여 제때 최상류의 여울로 올라가지 못한 연어의 경우에 한해 다급하게 천적이 많은 강의 하구에서 산란을 할 수는 있다.

대부분의 연어는 자신들을 낳고 생을 다한 어미가 그러했듯 바다에서 민물이 합류하는 하구에 도착해 며칠간 적응기를 갖는다. 민물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불과 몇 개월 치어기에만 생활했던 고향으로 돌아오는 습성 자체는 여전히 모두 풀리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연어의 독특한 일생으로, 강을 거슬러 올라 시내로 바뀐 지점에서도 한참을 더 거슬러 올라 상류에 알을 낳고 수정한 후 모래나 자갈로 덮은 다음 시작된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1970년대 초반까지는 어성전을 지나 법수치를 거슬러 면옥치와 합실, 구룡령 아래 갈천의 산골짜기와 오색천의 최상류까지 남대천으로 들어온 연어들이 거침없이 거슬러 올랐다.

오색 주전골 오색 주전골은 지금은 볼 수 없지만 1980년대까지는 많은 연어들이 가을 낙엽이 질 때 돌아와 산란을 하던 주요하천이었다. 손이 시릴 정도의 날씨 속에 가을비가 내려 제법 많은 물이 넘치면 남대천을 거슬러 올라 온 연어들이 자갈을 파고 그 속에 알을 낳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정덕수
남대천은 크게는 세 개의 제법 큰 골들이 합쳐진 강이다. 바다와 만나는 초입에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서문리와 임천리, 서면 북평리로 갈리는 위치에서 어성전 골짜기와 나뉜다. 다시 양양군의 상수원으로 사용되는 방향으로 좀 더 올라가면 송천마을에서 구룡령과 오색방향으로 물길이 나뉜다. 이 세 개의 큰 줄기들도 상류로 올라가며 크고 작은 여러 개의 물줄기로 나뉘는데, 제법 큰 규모의 물줄기들도 여럿 있다.

다른 골짜기는 잠시 밀쳐두고라도 어성전이란 마을의 지명부터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어성전은 한자표기로 魚成田이다. 말 그대로 물고기로 밭을 이룬다는 뜻을 마을의 지명으로 사용하게 된 곳이다. 봄철 황어가 산란을 위해 바다에서 돌아와 모여들 때와, 가을철 연어가 산란을 위해 모여 들 때 이곳은 그들로 넘쳐났다고 한다.

설악산 주봉인 대청봉 바로 아래 마을인 오색에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연어가 산란을 위해 냇가에서 자갈을 파헤치는 모습을 어려서부터 봤다. 어지간한 아이들 다리보다 더 큰 연어가 얕은 여울에서 뒤척이는 모습은 두렵기까지 했다.

1980년대까지는 보를 뛰어넘은 연어가 올라와 산란을 했으나 그 수는 현저히 줄었다. 이후 양양군에서 손양면 송현리 424-1에 양양연어사업소를 개설하여 냉수성어종에 대한 연구와 인공적인 산란을 유도하여 보다 많은 치어들이 바다로 나갈 수 있도록 사업을 진행해왔다.

그 결과로 섬진강과 낙동강 같은 곳에서도 연어가 돌아왔다는 소식이 들려왔는데, 이는 양양연어사업소에서 치어를 섬진강과 낙동강 등 주요 하천으로 보내 방류한 결과다.

연어 먼 바다를 돌아 3~5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와 적응기를 갖는 남대천이 흘러드는 낙산바닷가엔 많은 이들이 연어를 낚으려 기다리고 있다. 곧 이들의 손길을 피해 많은 연어들이 물결을 거슬러 오르는 모습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정덕수
남대천 남대천의 물(오른쪽)이 흘러들어 동해바다와 만나면 바다는 크게 몸을 뒤척여 받아들인다. 이곳에서 연어는 며칠간의 민물에 적응하는 시간을 가진 다음 남대천으로 들어서 산란을 위해 다시 한 번 여정을 시작한다.ⓒ 정덕수
많은 이들이 연어가 남대천으로 돌아올 때를 기다려 나선다. 낙산대교 근처 하구까지 도착해 적응기를 마친 연어들이 민물인 남대천으로 들어오기 시작하면 심심치 않게 이를 낚으려는 이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들에게 "민물을 맛 본 뒤 혼인색을 띤 연어는 회로 먹을 수는 없어요. 제법 먼 바다에서 잡힌 은백색의 연어라면 어떻게 조리를 해도 먹을 수 있지만 말입니다. 모천까지 돌아온 연어를 잡는 일은 보기 좀 덜 좋군요"라 하면 "훈제를 해서 먹으면 되니 걱정마시죠"라며 도리어 뭘 모르면 말을 말라는 표정을 짓는다.

훈제나 구이로야 살이 많은 연어가 오래전부터 이용되어 왔다. 그러나 일본이나 캐나다와 같이 상대적으로 다양한 종의 많은 연어가 회귀하는 국가만큼 조리법이나 기술이 발달되어 있지 않다. 훈제를 해서 이용하는 방법도 실상은 도입이 된 지 그리 오래지 않다.

몇 번 연어알젓을 부탁받아 만들어 준 적이 있다. 어렸을 적 본 경험으로 연어의 알집을 꺼낸 뒤 곧장 알집을 갈라 알만을 그릇에 담아 청주로 두 번 정도 씻은 뒤 천일염을 채워 숙성되게 만들면 연어알젓이 된다. 이렇게 연어알젓을 만드는 연어도 바다에서 잡힌 연어를 구입해 사용했다.

민물을 맛 본 연어, 혼인색을 띤 연어의 알을 사용할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머니의 강을 힘들여 찾은 연어를 잡을 정도로 모질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중학교 2학년인 딸이 초등학교 4학년일 때 지은 시가 있다.

연어

연어는 먼 바다에서
남대천으로 돌아온다.
남대천은 연어의 고향이다.

나는
여행을 갔다가도
오색으로 돌아온다.
오색은 나의 고향이다.

시를 쓸 당시 래은이는 오색초등학교 4학년이라고는 하지만 10살 때다. 2년이 지난 뒤 하제운 선생님이 곡을 붙이고 노래를 부르신 이 시는 당시 남대천과 연어 등 몇 가지 제목을 제시한 백일장에 냈던 모양인데, 입선되지는 않았다. 더 잘 쓴 시와 산문이 그만큼 많아서였겠다.



서운해 하는 딸 래은이한테 말했다.

"래은이가 정말 잘 지었네. 그런데 심사를 하는 선생님들이 래은이와 같이 연어에 대해 이해심이 많지 않았던 것 같네. 아마도 연어에 대해 이해했다면 남대천으로 돌아오는 연어와, 늘 어딘가를 갔다 다시 오색으로 돌아오는 래은이의 마음이 같다는 걸 알고, 정말 연어에 대한 제대로 쓴 시란 걸 알아줬을 텐데. 서운해 하지 말고 래은이가 정말 잘 표현한 거 아빠가 아니까 더 좋은 시와 글을 다음에도 써봐."

남대천 낙산바닷가에서 정족산 방향으로 바라보면 낙산대교와 함께 남대천의 강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다. 설악산과 점봉산, 오대산자락에서 발원한 여러 물줄기가 남대천으로 합쳐 흐르다 이곳에서 동해바다와 한 몸이 된다.ⓒ 정덕수
이와 같은 연어를 주제로 한 축제가 양양군에서는 매년 개최된다.

이 축제장을 몇 번 둘러보았을 때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는 프로그램은 연어맨손잡기였다. 잡은 연어는 탁본을 뜨고, 현장에서 구어 먹거나 가져간다.

좀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이 축제가 연어란 정말 대단한 이야기를 담은 주제에 대해 보다 다양한 시도들이 필요하고, 연어와 문학을 접목시킬 필요성이 있음에도 이에 대해 아직 많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남대천과 연어, 이를 주제로 한 양양만의 문화를 창달할 수 있는 축제로 거듭나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덕수의 블로그 ‘한사의 문화마을’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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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불편하지만 부끄러움은 아니다. 한계령 바람같은 자유를 늘 꿈꾸며 살아가며, 광장에서 오늘을 역사로 기록하고 시로 표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