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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인터넷을 뜨겁게 달궜던 '해녀와 스쿠버다이버와의 갈등'과 관련한 기사로 마음이 무겁다. 스쿠버다이버의 입수를 막으며 막말을 하는 해녀의 모습이 뉴스를 통해 그대로 전해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높기 때문이다.

자칫 해녀 할머니들의 억지처럼 보이는 뉴스의 한 장면만을 보고, 바다에 금을 그어놓은 것도 아니고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해녀가 무슨 권리로 스쿠버다이버의 입수를 막는 것이냐고 따진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팩트만을 다룬 그 기사는 흠잡을 곳 없이 공정해보였다. 하지만 '해녀에게는 역사적으로 스쿠버다이버에 대한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다'는 한마디의 설명만 곁들였더라도 해녀에 대한 편파적인 비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해녀들 삶의 터전인 바다에 대한 해녀의 애정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이다. ⓒ 고성미
제주 해녀의 트라우마, 머구리

스쿠버다이버에 대한 해녀의 역사적인 트라우마는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에서는 메이지 1년(1868)부터 잠수기 어업을 시작했다. 잠수기 어업자들은 우주복처럼 생긴 잠수복을 입고 호스를 통해 산소를 공급받으며 바닷속에서 해산물을 채취했으며 10년도 되지 않아 일본의 연안이 초토화될 정도로 그들의 남획은 심했다. 결국 어민들로부터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일본 내에서 잠수기 어업이 금지당하자 그들은 병자수호조약(1876)을 기회 삼아 조선으로 눈을 돌렸다.

일본 잠수기 어업의 제주 출현은 명백한 불법 조업이었고 당연히 제주의 해녀와 어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그러나 그들은 조선 정부로부터 어떠한 보호도 받지 못했으며 오히려 일본의 잠수기 어업자들은 제주에서 폭행과 강도 그리고 부녀자 강간 및 살인행위를 일삼았다. 다음은 <세화리 해녀항일투쟁(1932)의 역사적 배경>(김창후)에 기록된 당시의 기록이다.

① 1889(명치 20) 8월, 가파도에서 조업하던 일본인 어민이 모슬포에 상륙하여 농가의 가축을 훔치고 집주인을 살해함.
② 1892년 2월, 일본인 어민 144명이 성산포에 상륙하여 총포로 위협하고 폭행 및 도둑질을 함
③ 같은 해 4월, 일본인 어민이 두 번에 걸쳐 화북포와 두모포에서 강도, 살인, 부녀자 폭행 등을 일삼음

당시 일본의 잠수기 어업자를 해녀들은 머구리(潜り, 잠수를 뜻하는 일본어)라 불렀으며 머구리의 사전적인 뜻은 현재 스쿠버다이버의 옛말이다. 무명으로 만든 물소중이를 입고 테왁에 의지해 1분에서 2분 정도 숨을 참으며 물질하는 해녀와는 달리 머구리는 깊은 바다에서 1시간 정도 잠수할 수 있었으며 한 번 들어가면 전복을 200관이나 들고 나왔다고 한다.

해녀 사회에는 전복 및 소라와 성게가 알까는 기간에는 절대로 바다에서 물질하지 않는 나름의 불문율이 전해져 내려온다. 그래야 바다의 생태계가 온전히 순환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본인 머구리들은 이와 같은 금채 기간을 무시했으며 결과적으로 그들이 제주의 앞바다에 머무는 동안 전복, 소라, 성게, 미역, 톳 등 해산물이 초토화되고 말았다.

19세기, 제주의 앞바다에는 수백 대의 일본 잠수기로 가득했고 연안에는 급조해서 만든 통조림 공장이 즐비해서 해녀들이 발 디딜 틈조차 없었다. 그래서 제주의 해녀들은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조선의 남해 등 바다가 있는 곳을 찾아 '출가물질'을 떠나야 했으며 이후 타지에서 물질하며 겪어야 했던 해녀의 고생과 수모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따라서 현재 분쟁이 되고 있는 한국의 스쿠버다이버는 과거 일본의 머구리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도 해녀의 역사 의식 속에 '온갖 기계장치로 무장한 머구리는 바다의 생태계를 말살시키는 괴물 같은 존재'이고, '한많고 서러운 출가물질의 원인을 제공한 웬수 같은 존재'가 돼 깊은 트라우마로 남아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오랜 세월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해온 제주 해녀사회의 불문율

참고로 바다 입수에 대한 해녀의 금기는 머구리에 국한되지 않는다. 나 역시 지난해에 우도의 바닷속을 찍기 위해 수중카메라를 들고 바다에 들어갈 때, 몇몇 완고한 해녀 삼촌들에게 강한 제지를 받았고 근 한 달 동안 바닷 속에서 사진만 찍는 내 모습을 지켜본 후에야 비로소 입수를 허락해줬다.
우도의 바다가 깨끗하고 맑은 이유는 해녀들이 그만큼 아끼고 잘 보존하기 때문일 것이다. ⓒ 고성미
해녀에게 있어 바다는 삶의 터전이다. 육지처럼 땅문서가 있어 정당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 해녀 간의 바다 영역을 두고 얼마나 심각하게 서로 분쟁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193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의 신문기사에 잘 나타나 있다.

우도 역시 현재 12개의 자연마을에 따라 해녀의 바다 영역이 정해져 있으며 그것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기에 안정적인 물질이 가능하다. 이처럼 해녀 사회에는 절대적인 불문율이 존재하는데 우도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철따라 이뤄지는 '갯닦기(바닷속 풀캐기 청소)'를 하지 않으면 토박이 해녀라도 물질을 하지 못하였다. 예를 들어, 우도의 하우목동 해녀가 우도의 삼양동으로 시집갔을 경우, 시집가는 날부터 삼양동에서 '헛물에질'은 할 수 있어도 삼양동에서 '갯닦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미역 캐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고, 친정에서도 시집간 날부터는 출가외인이므로 하우목동에서의 물질이 허락되지 않았다."(<바다에서 삶을 캐는 해녀>(강영수) 등 관련 자료에서 정리)

이 불문율은 친척이라 해서 봐 주는 일도 없고, 딸과 며느리의 구별도 분명하며, 한 번 정해지기까지는 이견이 분분하지만 일단 결정되고 나면 뒷말없이 철저하게 지켜진다. 수십 년에 걸친 분쟁과 화해 속에서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하고 다듬어온 불문율의 기준이 이렇게 엄격한데 하물며 '스쿠버다이버가 해녀와 사전 조율도 없이 바다에 입수한다?' 이것은 제주 해녀 사회에서는 '꿈에서도 있을 수 없는 금기사항'이라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이해해야 할 것이다.

아주 나중에서야 그 당시 나의 입수를 반대했던 나이 지긋한 해녀 삼촌이 서운해하지 말라며, 해녀들의 불문율과 머구리에 대해 설명했다. 그때 '그들이 바다에 들어가면 바다가 죽어버린다'는 강한 선입견이 잠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래서 나는 '요즘은 스쿠버다이버들이 바다 청소도 하고 해산물 채취는 함부로 하지 않는다'고 짧게 설명해드렸지만 말없이 손사래만 치는 해녀 삼촌의 모습을 보고 '머구리에 대한 트라우마'가 얼마나 깊은지 느낄 수 있었다.

10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일본인 머구리는 사라졌지만 해녀의 기억 속에는 '온갖 기계장치를 하고 들어가 바다를 망치는 그놈이 그놈이지 뭐가 다르냐?'는 인식이 강하게 남아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19세기 제주의 앞바다에는 1개에 800문(약 3kg) 이상의 자연산 전복이 넘쳐날 정도였지만 이 모두가 옛말이 되고 말았다. 일본인 머구리들의 남획으로 초토화된 제주의 바다가 아직 되살아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녀들은 누구라도 '옛날이 좋았지, 바다에 들어가면 전복이 넘쳐났거든'이라면서 그 옛날을 그리워 한다.

이번 '제주 해녀와 스쿠버다이버의 분쟁'은 '제주의 바다를 사랑해서 제주에 둥지를 튼 스쿠버다이버의 입장'에서 본다면 억울함으로 가득할 수 있다는 점에 대해 깊이 공감한다. 따라서 나는 이 글이 해녀의 역사적인 환경과 그들의 사회적인 순환고리에 대해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참고자료 : 잠수의 역사와 출가물질의 요인 / 제주해녀의 역사적 고찰 / 조선후기 제주지역 포작의 존재양태 / 제주해녀사료집 / <바람 타는 섬>(현기영) / <바다에서 삶을 캐는 해녀>(강영수)
해녀사회에는 대단히 강한 공동체의식이 존재하며 그것이 철저하게 지켜지고 있다. ⓒ 고성미
바닷가의 해초는 나이 지긋한 해녀 삼촌의 소일거리 이제는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물질할 수 없는 해녀 삼춘들은 날이 저물고 물이 빠지면 구덕(소쿠리) 하나 들고 바닷가로 향한다. 바위틈의 성게와 톳 등의 해초는 삼춘의 저녁 반찬이 되기도 하고 음식점에 팔아 쏠쏠한 용돈이 되기도 한다. 갯가체험이나 재미삼아 함부로 해초를 캐지 말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고성미

덧붙이는 글 | 얼마 전, 뉴스에 보도된 제주 해녀와 스쿠버다이버와의 분쟁이 양자간 고소·고발로 치닫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태그:#제주 해녀, #스쿠버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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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우도에서 살고 있는 사진쟁이 글쟁이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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