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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총선 서울 종로구 주요 여론조사와 개표 결과 비교. 3월에는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가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후보를 크게 앞섰지만, 4월 들어 격차가 조금씩 줄었고 총선을 1주일 정도 앞두고 정 후보가 앞서기 시작했다. ⓒ 고정미
"KBS 여론조사 오세훈 45.8%, 제가 28.5%. 17.3%P 격차입니다. 이 숫자를 기억해 주십시오. 왜곡인지 아닌지 증명해 보이겠습니다."(정세균 더불어민주당 후보 3월 24일)

4.13 총선이 끝난 뒤 '정세균 예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서울 종로구에 출마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각종 여론조사에서 앞서나가던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를 꺾고 당선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3일 KBS-연합뉴스 여론조사 결과 정세균 후보 지지도는 28.5%로, 오세훈 후보(45.8%)에 크게 뒤졌다. 하지만 실제 개표 결과 정 후보는 52.6%를 득표한 반면, 오세훈 후보는 39.7%에 그쳤다. 불과 20일 사이에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가 민의를 왜곡 전달한 것일까? 아니면 그 사이 민심이 뒤바뀐 것일까? <오마이팩트>에서 '정세균 예언'을 둘러싼 총선 여론조사 왜곡 논란을 검증했다.

"KBS 여론조사 왜곡" 정세균 예언은 진실? 

총선이 끝난 뒤 여론조사가 뭇매를 맞고 있다. 여론조사 결과가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심하진 않았다. 야권 후보 분열로 각종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졌던 야당 후보들이 수도권, 영남권 등에서 선전하면서 새누리당 과반은 물론, 제1당 예측조차 어긋났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정치 1번지' 서울 종로구가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여권 대선 주자인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까지 출마한 탓에 어느 때보다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고, 여론조사 때마다 종로를 빼놓지 않았다. 지난달 31일 공식 선거 운동이 시작되기 전만 해도 오세훈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정세균 후보를 여유 있게 앞섰다.

지난달 23일 KBS-연합뉴스 여론조사에서 오 후보 지지도는 45.8%로, 28.5%에 그친 정 후보를 17.3%포인트나 앞섰다. 적극적 투표층에서 48.1% 대 31.4%로 격차(16.7%포인트)가 조금 줄었지만 당선 가능성에선 50.1% 대 25.8%로 두 배 가까이 벌어졌다.

다른 여론조사 결과도 마찬가지였다. 3월 20일 중앙일보 여론조사는 45.1% 대 32.6%, 3월 29일 SBS 여론조사는 48.6% 대 37.3%로 오 후보가 줄곧 10%포인트 이상 앞섰다.

정세균 후보가 여론조사가 왜곡됐다고 반박하고 나선 것도 이 시점이었다. 정 후보는 지난 24일 트위터. 페이스북 등 자신의 SNS에 올린 글에서 지난 2010년 6.2 지방선거를 상기시키며 여론조사에 강한 불신을 드러냈다.

정 후보는 "당시 여론조사만 보면 그해 지방선거는 사실 해보나마나 한 선거였다"면서도 "(유권자들을 만나면서 질 수 없는 선거라고 확신했고) 결과는 민주당의 큰 승리였다"고 지적했다.

정 후보는 "더민주 후보자들은 상대 후보와도 열심히 싸워야 하지만, 아마 여론조사의 횡포와도 함께 싸워야 할 것"이라면서 "여론조사 때문에 흔들리고 낙담하면 선거에 이길 수 없다, 진짜 여론은 여론조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골목에, 시장에, 학교에, 거리에 있다"고 사기가 꺾인 선거운동원과 지지자들을 다독였다.
서울 종로구에서 당선한 정세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새누리당 후보에게 여론조사에서 크게 뒤지던 지난 3월 24일 자신의 트위터, 페이스북 등 SNS에 올린 글.
정세균 캠프 관계자는 15일 "정 후보가 그런 글을 올린 건 다른 조사 결과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라 현장에서 보이는 표심이 KBS 여론조사와는 판이했기 때문"이라면서 "KBS 같이 파급력이 큰 매체에서 17.3%포인트나 차이가 나는 여론 조사 결과를 보도하면 선거 운동이 큰 타격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4월 초 당에서 여론 조사했을 때도 우리가 5~6%포인트 뒤졌지만 여론조사에서 여당 프리미엄을 생각할 때 박빙 접전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실제 선거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두 후보 간 여론조사 격차도 조금씩 줄었고 급기야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간(4월7일~13일) 직전 조사에선 오히려 정세균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기도 했다.

4월 6일 YTN 여론조사에서 정세균 후보 지지율은 44.8%로, 오세훈 후보(42.2%)를 오차범위 내에서 앞섰고, KBS-연합뉴스 4월 7일 조사에서도 41.3% 대 40.4%로 정 후보의 '박빙 우세'였다.

JTBC에서 이른바 '깜깜이 기간(여론조사결과 공표 금지 기간)'인 4월 9~10일 사이에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는 정 후보가 46.8%로 오 후보(39.3%)와 격차를 더 크게 벌렸다. 이같은 추세는 총선 당일까지 이어져 지상파3사 출구조사는 51.0% 대 42.4%로 정세균 후보 당선을 예측했다.

'보수 편향' 집전화 조사와 '1주일 깜깜이'가 불신 키워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가 정확한 민의를 반영하지 못해 욕을 먹는 이유는 낡은 여론조사 방식과 정부 규제 탓이다.

우선 여론조사업체들이 낮 시간대 집전화(유선전화) 조사에 주로 의존하다보니,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젊은층, 직장인 여론이 빠져 집권여당이나 보수적인 정당에 유리한 결과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여론조사업체도 세대별로 가중치를 부여하는 한편, 휴대폰 RDD(무작위 번호 선정), 휴대폰 패널, 스마트폰 앱 등을 활용해 젊은 표심을 담으려 애쓰고 있지만 아직 한계가 많다(관련기사: [오마이팩트] 총선 여론조사는 여당 유리, 사실일까)

실제 서울 종로구 여론조사에서도 KBS-연합뉴스를 비롯해 MBC, SBS 등 100% 유선전화를 활용한 조사 결과는 오세훈 후보가 유리했다. 두 후보 간 격차가 크게 줄어든 4월 초 조선일보 유선전화 조사(4월 5~6일)에서도 여전히 오세훈 후보가 42.2% 대 35.4%로 정 후보를 앞서고 있었다. 반면 비슷한 시기 무선전화 패널이나 스마트폰 앱을 부분적으로 활용한 YTN(4월 5~6일)이나 JTBC(4월 9~10일) 조사에선 오히려 정 후보가 근소하게 앞서는 결과가 나왔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른바 '깜깜이 기간'이 여론조사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한다. 자신들의 여론조사 결과를 외부에는 발표하지 않고 있는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은 "정부는 선거 1주일을 앞두고 여론조사 결과 공표를 금지하고 있는데, 유권자들이 누구에게 투표할지 결정하고, 선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변수가 발생하는 것도 이 시기"라면서 "그 1주일 사이에 얼마든지 민심이 바뀔 수 있는데 짧게는 1주, 2주 전 길게는 한 달 전 여론조사 예측치가 틀렸다고 비판한다면 억울하다"고 밝혔다.

실제 선거일을 불과 2~3일 앞두고 비공개로 진행한 JTBC 여론조사 결과는 실제 개표 결과와 큰 차이가 없었다.

"진짜 여론은 거리에 있다"... 언론 여론조사 맹신 '경고'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후보(종로구)가 12일 오후 종로구 혜화역앞에서 마지막 유세를 마친 뒤 시민과 포옹하고 있다. ⓒ 권우성
결국 여론조사는 선거 당일 진행하는 출구조사와 달리 특정 조사 시점의 민심만 담기 때문에 여론 변화 추세를 보여주는 참고 자료일 뿐이다. 이같이 불완전한 여론조사가 마치 민심을 정확히 반영한 것처럼 확대 보도하는 언론 잘못도 크다.

현재 총선 여론조사는 대부분 유력 언론사에서 여론조사 전문업체에 의뢰해 진행한다. 언론사는 비용을 아끼려고 표본수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전화 면접보다 값싼 대신 응답률이나 정확도가 떨어지는 유선전화 ARS(자동응답방식) 방식을 선호한다. 그나마 대선이나 광역자치단체장 선거 같은 광역선거는 무선전화 RDD 방식이라도 사용할 수 있지만 총선은 지역구가 250여 개로 쪼개져 사실상 불가능하다.

각 정당 자체 판세 분석 결과가 일반 여론조사보다 정확했던 것도 통신사에서 제공하는 '안심번호'를 활용해 각 지역구 휴대폰 민심을 일부 반영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여의도연구원은 지난 3~4일 자체 조사 결과 새누리당이 과반은커녕 127석 정도에 그칠 거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대부분 언론에선 '승자의 엄살' 정도로 여겼고, 새누리당이 과반은 물론 많게는 170~180석까지 석권하리라 예상했다. 결국 새누리당은 122석에 그쳐, '엄살'이 아닌 '현실'로 드러났다.

결과적으로 선거 20일 전 진행한 KBS-연합뉴스 여론조사가 실제 총선 결과와 달랐다고 해서 당시 여론을 왜곡했다고 단정할 순 없다. 실제 선거 1주일 전 같은 언론사 조사에선 두 후보 격차가 오차범위 내로 줄었고 3~4일 전 비공개 조사에선 정 후보가 앞섰다는 건 그만큼 민심이 계속 움직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한정된 표본에 의존하는 여론조사 성격상 어느 정도 현실 왜곡은 피할 수 없다. 따라서 <오마이팩트>는 유력 언론사 여론조사 결과라고 맹신하는 걸 경계하고, 여론조사보다 현장 유권자들을 만나 진짜 여론을 찾으라는 '정세균 예언'은 '대체로 진실'이라고 판단했다.

정세균 후보는 2010년 지방선거뿐 아니라 지난 2012년 4월 19대 총선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당시 <한겨레> 집전화 조사에서는 43.0% 대 32.3%로 홍사덕 새누리당 후보가 정 후보를 10%포인트 이상 앞섰지만 '휴대전화 패널' 방식을 도입한 <동아일보> 조사에선 오히려 정 후보가 31.8% 대 24.3%로 홍 후보를 앞섰고 실제 선거 결과도 정 후보의 승리(52.3% 대 45.9%)였다.

정 후보도 이처럼 과거 수차례 선거를 통해 여론조사의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진짜 여론은 여론조사에 있지 않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언론들도 여론조사에서 벗어나 골목에서, 시장에서, 학교에서, 거리에서 진짜 여론을 만날 때다.
태그:#오마이팩트, #여론조사, #정세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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