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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기는 기자가 2011년 12월 부탄을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1편 보러가기) - 기자 말
부탄왕의 결혼식 때 발행되었던 호외 '부탄의 왕이 그의 소울메이트를 찾았다'가 헤드라인이다 ⓒ 정효정
잘생긴 왕을 찾아 떠난 여행, 하지만 사실 왕은 내가 부탄에 가기 두 달 전인 2011년 10월에 결혼했다. 부탄의 새 왕비 제선 페마는 22살 평민출신으로 아름다운 외모를 자랑한다. 페마는 연꽃이라는 뜻이다. 내가 실망해서 여행을 포기하려 하자, 부탄에서 봉사활동 중인 친구한테 이메일이 왔다.

"포기는 일러. 4대 왕은 부인이 4명이야"

얼마든지 두 번째 부인이 될 수 있다는 거다. 선대 왕은 실제로 부인이 4명이다. 사실 오늘의 부탄은 일부일처제가 보편적이지만 과거 부탄은 딱히 일부일처제의 개념이 없었다고 한다. 부탄에서 만난 한 경호원은 시골의 자기 할머니는 몇 명의 남편을 뒀다고 한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단다. 따로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하지만 4대왕의 경우에는 조금 특이하다. 왕이 결혼을 할 때 승려가 4명의 부인을 두어야 국가가 번영한다고 예언했다고 한다. 결국 왕은 자신이 사랑한 여성의 자매까지 모두 정식 부인으로 맞아들였다고. 그래서 4대 왕의 부인 4명은 누구는 왕비고 누구는 후궁인 게 아니라 모두 똑같이 왕비로 불린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저 아름다운 22살 여성과 나는 경쟁상대가 안 된다. 부탄에 불교를 전래한 파드마삼바바가 왕의 꿈에 강림해서 '저 한국여인을 두 번째 비로 맞으라'고 계시라도 내리지 않는 이상 불가능하다. 비록 왕비가 되어 "내가 부탄의 국모다"를 외치는 꿈은 버려야했지만, 부탄여행은 실연의 아픔을 잊을 만큼 흥미로웠다.

'왕비의 꿈' 잊을 만큼 흥미로웠던 부탄여행
트롱사종 부탄의 교역로 중심에 위치해 상인들을 대상으로 높은 세금을 거둘 수 있었다 ⓒ 정효정
부탄을 대표하는 건축물은 두 가지다. '곰파'라고 불리는 사원과 '종'이라 불리는 성채다. 각 지역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종'이 있다. '종'은 사원이기도 하고 행정기관(사법부)이기도 하다. 사실 이 성채는 부탄의 옛 요새다. 옛날 각 지방의 토호 세력들이 지역마다 성채를 세우고 통행세를 받았다. 부탄의 1대 왕 우겐 왕추크도 원래 트롱사종의 군주 아들이었다. 따지고 보면 왕의 본가인 셈이다.

부탄 정중앙에 위치한 트롱사종은 팀푸에서 차로 6시간 정도 걸린다. 망데추 계곡 절벽위에 세워진 트롱사 종은 완벽한 요새다. 교역을 하는 상인들은 통행세를 내고 이 곳을 통과할 수밖에 없었다. 안을 들어가보면 색감이 화려하고 섬세한 불화와 목조각이 가득하다. 종의 한쪽에서는 사원의 승려들이 경을 외고 읽고, 다른 한쪽에서는 공무원들이 전통 춤을 연습하고 있었다. 부탄 사람들은 정말 한국사람과 비슷하게 생겼다. 사무실을 넘겨다보니 컴퓨터와 팩시밀리가 보인다. 흥미로운 것은 사원 안에 닭이 돌아다닌다. 비상식량인가 했지만 방생해놓은 닭이라고 한다.

이곳 승려 율겐의 말을 들어보니 왕이 며칠 전에 방문해 참배를 하고 갔다고 한다. 왕을 만나려면 정말 만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하지만 만난들 무엇하리. 나는 쿨하게 새 커플의 행복을 빌어주기로 했다.
12월인데 맨발로 춤을 추고 있는 공무원들 부탄의 남자 복장인 '고'는 치마 스타일이다. 안에 스타킹을 신어도 되지만 인 신는 것이 남자의 자존심이라고 한다 ⓒ 정효정
부탄의 공무원들 1774년 조지 보글은 부탄인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이들은 내가 본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외모를 지닌 인종이다." ⓒ 정효정
"지진 나던 날?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까 술 마셨지"

트롱사종에서 푸나카종으로 향하는 도로에서 벗어나 산길을 한참 달리면, 폽지카 계곡이 나온다. 폽지카는 검은 목 두루미의 서식지다. 전 세계적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검은 목 두루미는 부탄의 국조이기도 하다.

폽지카 계곡은 검은 목 두루미 관찰과 트레킹 코스로 유명하다. 트레킹 코스는 어렵지 않고 아기자기한 편이다. 작은 물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숲을 굽이굽이 지나기도 한다. 계곡 양쪽으로 야생화들이 가득 피어있었다.

통나무 다리를 건너 숲을 벗어나면 U자형의 수려한 계곡이 펼쳐진다. 창공엔 검은 목 두루미들이 떼를 지어 날고있었다. 10월에 이곳에 온 검은 목 두루미들은 2월말이 되면 기도라도 하듯이 이곳 사원인 강테 곰파를 한 바퀴 돌고 날아간다고 한다. 히말라야 산맥을 넘어 티베트까지 가는 긴 여정은 날개 달린 새에게도 어려운 도전일 거다.
폽지카 계곡의 한가로운 소 이곳에선 부탄의 국조 검은 목 두루미를 볼 수 있다 ⓒ 정효정
돌아오는 길에 얼마 전 지진으로 무너진 탑이 보였다. 내가 가기 불과 세 달 전인 2011년 9월, 인근 시킴에서 6.9 규모의 지진이 발생했다. 동네 청년 샹디에게 지진나던 날 뭐했냐니까 술 마셨단다. 낮에 지진이 오고 새벽에 지진이 한 번 더 올 수 있다는 예보가 있었다는데, 내일 죽을 수도 있으니까 다들 모여서 필름이 끊길 때까지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리고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들은 밤새 사원에 모여 기도를 하며 탑돌이를 했단다.

죽는 게 두렵지 않았냐고 물어보니까 지금까지 열심히 살았고 여한이 없기 때문에 괜찮다고 한다. 자기가 말해놓고도 민망한지 씩 웃는다. 원래 부탄사람들이 술을 즐겨 마시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가 싶다. 부탄의 전통주는 아라라고 불리는 우리나라 소주 같은 증류주다.

이 독한 아라주와 만나면 시너지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다. 바로 도마다. 도마는 빈랑수에서 나온 열매를 가지고 만든 씹는 간식이다. 빈랑자(areca nut)라고 불리는 열매를 다듬어 나뭇잎에 석회(라임)를 발라 싼 후 입에 넣고 씹는다. 이 도마를 씹으면 입이 주황색이 돼서 쉽게 식별이 가능하다.

길거리 곳곳에 뱉어져 있는 주황색 침도 이 도마의 흔적이다. 인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빤과 같은 종류지만, 인도인은 더 많은 향신료를 첨가한다. 부탄 사람들은 몸을 덥게 해주는 천연 난로라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씹고 있다. 이 도마를 많이 씹으면 약간의 환각효과도 있다고 한다.
도마를 권하는 택시기사 도마는 환각성분이 있지만 히말라야산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체온유지를 위해 필수라고 한다. ⓒ 정효정
실제로 신문기사를 살펴보다가 칫솔을 삼킨 한 남자 이야기를 읽었다. 그 남자말로는 도마와 술을 마신 것까지는 기억을 하는데 그 후로는 기억이 없단다. 이렇게 부탄식 소주인 아라와 도마가 만나면 그 시너지 효과가 크다. 이 기사를 보며 친구는 '부탄 국민 행복지수의 상당한 지분은 도마와 아라가 가지고 있다'며 크게 웃었다.

한번은 시장에 갔다가 호기심에 시장 상인이 건네주는 도마를 받아 씹어 봤다. 떫은 맛이 가득해 몇 번 씹지도 못하고 뱉어버렸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바로 뱉었는데도 머리가 어지럽고 속이 메슥거려서 걸을 수가 없었다. 친구는 물을 사서 건네주며 '아무래도 너는 행복해지기 힘든 타입인 것 같다'며 나를 놀려댔다. 어차피 술도 안 받는 체질이니 그냥 단념했다. 하지만 부탄에서의 행복은 다른 곳에서 찾게 되었다. 여행을 하며 만난 사람들에게서였다. 

내 밥그릇에만 얹어져 있던 계란 후라이

부탄의 면적은 남한의 5분의 1이다. 그래서 열흘이면 이 작은 나라를 다 둘러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부탄의 평균 해발고도는 2000m, 길이 다 꼬불꼬불한 산길이다. 지도상으로는 30분이면 갈 거리지만, 부탄에서는 멀미와 함께 3시간이 걸린다.

길도 문제지만 더욱 문제는 대중교통이 취약하다는 거다. 산길이기에 대형버스는 없고 15~ 20인용 미니버스가 주로 다닌다. 그조차 자주 없는데다 며칠 전에 예매를 해두어야 한다. 그래서 근거리 이동은 주로 합승택시를 이용한다. 다른 손님 3명이 타길 기다려서 돈을 나누어 내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합승택시마저 없는 구간이 있다. 지도를 펴놓고 난감해 하고 있는데 부탄에서 봉사활동 중이던 친구는 이렇게 제안했다.
경운기 히치하이킹 트럭, 승합차, 투어차량 등을 얻어타가가 마지막엔 경운기를 얻어탔다 ⓒ 정효정
"히치하이킹을 하면 되잖아. 여기서는 다 그렇게 여행해."

친구 설명은 이랬다. 부탄은 국민 대부분이 불교신자인데다, 특히 살생이 금지된 나라다. 도축도 금지되어 있어 인도에서 고기를 수입할 정도다. 따라서 범죄률도 낮고 살인사건도 드물다. 그러니 히치하이킹을 해도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는 것이다.

또 하나는 부탄의 외국인 관광객 정책이다. 부탄은 외국인 입국을 철저히 제한하고 있고 또 외국인은 어딜가나 여권검사를 받게 되어있다. 나쁘게 보면 감시지만, 좋은 쪽으로 보면 여행자의 일거수일투족은 부탄경찰이 모두 알고 있는 셈이니 더욱 안전하다는 거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차에 탈 때마다 자신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날 나는 문방구에서 스케치북과 크레파스를 샀다. 그리고 한쪽에 태극기를 그리고 한쪽에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썼다. 그렇게 시작한 히치하이킹. 결과는 기대이상이었다.
히치하이킹용 스케치북 태극기가 그려져 있어도 이게 태극기인지 모르기에 '일본인이냐?'고 묻는 부탄사람들이 더 많았다. ⓒ 정효정
길에서 스케치북을 들고 있는 나를 보자 부탄사람들은 바로 차를 세워 내가 혹시 길을 잃은 여행객이 아닌지부터 물어봤다. 대부분 투어를 이용한 여행객이기 때문에 혼자 여행하는 여행객을 처음 본 것이다.

내 비자를 확인하고, 지역경찰에게 전화를 해서 묻기까지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는 내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까지 태워주거나, 그쪽으로 가지 않을 경우에는 나를 태워주겠다는 차가 나타날 때까지 함께 기다려 주었다. 그렇게 트럭, 경운기, 승합차 등을 얻어탔다. 자신의 집에 초대를 하는 가족들도 있었다. 길에서 만난 부탄사람들은 처음엔 놀라움으로 그리고 두 번째는 미소로 나를 맞았다.
부탄의 오두막집 폽지카계곡 교차로에 살고 있는 사람들 ⓒ 정효정
언제나 미소로 맞아주는 부탄 사람들 낯선이의 방문에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 정효정
지방의 소도시인 왕디에서 만난 새댁 제루사루이는 헤어질 때 내 부탄 전통복 키라를 여며주며 시집올 때 가져왔다는 진주브로치를 달아줬다. 그녀 남편은 그 전날 길에서 히치하이킹을 하고 있는 나를 태워서 집까지 데려갔었다. 트럭을 히치하이킹 했을 때도 트럭운전사 니둡과 그의 부인은 굳이 내려서 내 숙소를 살펴봐줬다. 그리고 숙소 주인에게 나를 부탁한 다음에야 다시 어두워진 도로로 차를 몰고 떠났다.

하루는 폽지카 밸리의 한 가정집에 묵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언어장애가 있는 딸과 2살배기 아기가 있는 집이었다. 두꺼운 이불을 방 한가득 깔아줘서 나는 할머니 집에 놀러온 손녀처럼 편안하게 잠을 잤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모두가 모여 아침식사를 하는데 당황스러운 일이 있었다. 내 밥그릇에만 계란 후라이가 얹어져 있던 거였다.

'할아버지도 계시고 아이도 있는데.'

당황해서 고개를 드니 가족 모두가 날 보며 보살 같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어쩐지 울컥해져서 고개도 못들고 밥을 먹었다. 반찬은 절인고추 반찬 하나였지만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맛있었다.

도가의 비서에는 신의 밝음을 일컬어 '황금꽃'이라고 한다. 비록 신의 밝음은 아니지만 그날 나는 여행을 하며 최고의 순간을 찾았다. 바로 '황금빛 계란후라이'의 추억이다. 행복한 사람들은 'give and take(주고 받기)'를 몰랐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대가없이 베푸는 사람들... 그들은 가난하다고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부자라고 뽐내지 않았다. 담담한 삶의 자신감이 느껴졌다.
부탄의 아침식사 쌀밥과 절인고추반찬 그리고 계란후라이로 행복해졌다 ⓒ 정효정
비록 왕비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부탄 국적기인 드룩에어를 타고 부탄을 떠났다. 창문으로 히말라야의 뾰족하고 가파른 설산들이 보인다. 부탄 여행의 매력 중 하나로 손꼽히는 하늘 풍경이다.

부탄을 떠나기 전날, 당시 부탄에서 활동하고 있던 한국인 농구감독인 김기용 감독님과 복싱감독인 김재휴 감독님을 만날 수 있었다. 스포츠 약소국인 부탄에 파견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지도자들이다. 특히 김재휴 감독님이 지도한 복싱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8강에 진출해 세계에 부탄이라는 나라를 알리고 부탄에 복싱붐을 일으켰다. 
두룩에어를 타고 내려다 본 히말라야 설산 부탄여행에서 즐길 수있는 절경중의 하나다 ⓒ 정효정
과거 우리나라에 프로레슬링이 인기였던 시절처럼, 부탄 사람들은 TV앞에 모여앉아 복싱에 열광했다고 한다. 가난한 나라의 복싱영웅 씨기툽은 우승을 하면 소 두 마리를 포상금으로 받고 싶다고 했다. 그가 샌드백을 두드리며 꿈꾼 것은 돈도 여자도 명예도 아닌, 고향에서 농부가 될 자신이었다. 끊임없이 더 큰 성취를 꿈꾸고, 나보다 잘난 사람에 위축되는 서울의 삶을 떠올려봤다. 길게 심호흡을 했다.

'그래, 왕비가 아니어도 잘 살 수 있을 거야.'

비록 왕비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황금빛 계란후라이의 후광을 가슴에 품고 서울로 돌아갔다. 그렇게 부탄에서 행복을 만났다.
트롱사에서 만난 노승 승려들에게 차와 비스킷을 대접받았다. ⓒ 정효정
교복을 입고 웃고 있는 학생들 부탄사람들은 늘 낯선이에게 경계보다 웃음으로 다가왔다 ⓒ 정효정

덧붙이는 글 | 이 여행기는 기자가 2011년 12월 부탄을 여행한 이야기입니다. 부탄 국왕 부부의 득남을 축하하며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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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행복의 무지개가 가득한 세상을 그립니다. 오마이뉴스 박혜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