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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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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벗기까지는 적잖은 시간과 용기가 필요했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실현 가능성은 낮아진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움켜진 손아귀를 펴는 거다. 그러면 새로운 걸 잡을 수 있다. 새로 손에 쥔 그 무엇은, 그동안 꽉 쥐고 놓지 않았던 것들이 실은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느끼게 해주었다.

해보기 전에는 절대 알 수 없는 경험이었고, 놓기 전에는 절대 얻을 수 없는 자유였다. 요단강을 건너는 심정으로 사표를 만지작거렸다. 고민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가슴 속에 고이 간직해 놓았던 버킷리스트 중 최상단을 차지하고 있던 계획을 전격 감행하기로 결심했다. 평범하게 살던 어느 직장인의 세계 일주는 그렇게 갑작스러우면서 갑작스럽지 않게 시작됐다. 배낭을 멨고, 지구를 한 바퀴 돌겠다며 길을 나섰다. 좌충우돌 세계일주 여행기를 연재한다. - 기자 말

[이야기 1] 신장위구르 '카스' 도착 그리고 'OTL'

나이 지긋한 트럭 운전기사는 손가락 2개를 펼쳐 보였다. 숙소로 점찍어 두었던 '치와니커빈관'까지 설마 2원이란 이야기는 아니겠지? 그렇다고 200원을 받겠나. 25시간 동안 아무것도 먹은 게 없어 이번엔 그냥 네고를 포기하는 쪽으로 생각을 굳혔다.

숙소를 잡고 어서 뱃속에 뭐든 넣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거짓말을 조금 보태면 샹차이와 각종 향신료로 무장한 중국의 그 어떤 음식도 다 먹어치울 기세였다. 뱃속이 비면 언제나 신경이 곤두섰다. 이런 상태로 운전기사와 실랑이해봤자 서로 감정만 상할 게 뻔했다.

트럭 운전기사는 한 가족을 더 태우고 느린 속도로 차를 몰았다. 그는 잠시 뒤 터미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치와니커빈관 앞에 날 내려주었다. 예상대로 20원을 달라고 했다. 미련 없이 돈을 줬다. 사전정보에 따르면 5원으로 충분한 거리였다.

배낭을 메고 빈관을 향해 걸었다. 지금 상태로는 버거운 무게였다. 빈관은 여행자 숙소치고는 깔끔하고 컸다. 종업원들도 유니폼을 착용하고 있는 게 오랜만에 제대로 된 숙소를 찾아온 것 같았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도미토리 있나요?"
"네?"
"도미토리요?"
"저희는 그런 방은 없습니다."

여행자 숙소에서 도미토리란 단어를 알아듣지 못하다니, 뭔가 분위기가 이상했다.

"도미토리가 없다니요. 그럼 어떤 방이 있죠?"
"싱글룸이 있는데 가격은 하룻밤에 300원입니다."
"여기가 치와니커빈관 아닙니까?"
"그게 어디죠?"
"여기가 치와니커빈관이냐고요?"
"아닌데요."

악성빈혈에 걸린 것처럼 다리가 휘청거렸다. 트럭 운전기사의 얼굴이 떠올랐고 동시에 이루 말할 수 없는 짜증과 황당함이 밀려왔다. 공복의 힘은 컸다. 내 화는 이미 순식간에 한계치를 훌쩍 넘었다.

그렇다고 하룻밤에 300원짜리 방에서 잘 수는 없었다. 이 억울한 사연을 누구에게 하소연한다는 말인가. 움직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디로든 가야 했다. 20원을 길바닥에 버린 참담하고 냉혹한 현실을 뒤로하고 다시 배낭을 멨다.

다행히 근처에 택시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택시를 불렀다. 택시기사는 여자였다. 내 경험으로는 여자 택시기사들은 대부분 여행자에게 호의적이었다. 조금은 안심이 됐다. 휴대폰을 꺼내 다시 치와니커빈관이라고 적힌 한자를 보여주었다. 택시기사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목적지를 알고 있다는 밝은 표정으로 내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었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택시를 탄 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목적지가 있었다. 5원을 내고 내렸다. 이번엔 제대로 찾은 것 같았다. 3인실 도미토리가 60원이라고 했다. 운 좋게 3인실 도미토리를 혼자 쓸 수 있었다. 여기도 규모가 제법 크긴 했지만 시설은 그리 좋지 못했다. 거기다 호텔식 건물로 지어져 여행자들 사이의 접촉이 거의 불가능했고, 와이파이가 안 된다는 결정적 단점이 있었다. 인터넷은 본관 1층 비즈니스 센터에서 유료로 사용할 수 있었다.​

곧장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가장 무난한 지단차오판(달걀볶음밥)과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허겁지겁 맥주 한 잔을 들이켜고, 밥알을 넘겼다. 정신이 좀 돌아오는 것 같았다. 얼마 먹지 않았지만 쉽게 포만감이 들었다. 그리곤 노곤함이 찾아왔다. 졸음이 몰려왔다. 침대버스의 긴장이 이제야 풀리는 것 같았다.

"마이딴."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하지만 내 앞에 놓인 계산서는 날 다시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계산서에는 서른여섯을 의미하는 '3' 자와 '6' 자가 나란히 적혀 있었다. 지단차오판이 6원이었고, 나머지 30원은 맥주 한 병 가격이란 얘기였다. 말도 안 되는 계산서를 잠시 뚫어져라 바라보며 종업원을 불렀다.

그는 맥주란 한자 옆에 다시 30이란 숫자를 써주었다. '아놔!' 두 번째 뒤통수였다. 카스에 사는 위구르 족들은 대부분 이슬람교 신자들이다. 이들은 거의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카스에서는 한족이 운영하는 가게를 찾아야 술을 살 수 있다. 그런 가게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다. 이런 곳에서 술을 주문한 게 실수였다. 황당한 계산서를 한동안 심드렁하게 바라봤다. 여행은 때론 빠져나갈 수 없는 시련을 선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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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에 왔다면 양꼬치를 꼭 맛봐야 한다. 숯불에 구운 양꼬치는 세계일주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맛이었다. 카스에서 맛봐야 할 음식이 또 있다. 중국어로 라멘이라고 발음하는 '라만'과 '낭'이다. 낭은 위구르 사람들이 밥 대신 먹는 빵을 말한다.

카스의 시장 골목에 가면 낭을 굽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러나 카스텔라 같은 부드러움을 기대하면 오산이다. 처음에는 프랑스의 바게트보다도 더 딱딱한 식감에 당황하게 된다.

라멘은 국수에 양고기·고추·토마토·가지·양파·마늘을 섞은 고명을 얹고 비벼먹는 면 요리다. 기록에 따르면 마르코 폴로가 국수 만드는 법을 유럽에 전했다고 하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위구르 사람들이 주장하듯이 스파게티의 원조는 라멘이 된다. 실제로 라멘을 먹고 나서 충분히 설득력 있는 주장이라고 느낄 수밖에 없었다. 생김새나 맛이 스파게티와 여러모로 닮아 있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이야기 2] 카라코람 하이웨이,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산맥의 향연

모스크(이슬람교 사원) 근처에 새로 생긴 파미르유스호스텔로 숙소를 옮겼다. 여러모로 여행자들이 많은 숙소가 편했다. 당연히 와이파이도 쓸 수 있었다. 하지만 오전 4시만 되면 모스크의 대형스피커를 통해 사방으로 울려 퍼지는 '아잔'은 군대 기상나팔 소리보다 더 곤욕스러웠다. 아잔은 이슬람교에서 예배 시각을 알리는 리듬있는 육성을 말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동이 틀 무렵 무지막지한 아잔이 내 잠을 깨웠다. 연이은 이동으로 몸은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쉬어갈지 떠날지 결정을 내려야 했다. 인생이 그렇듯 여행의 본질도 선택의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우루무치에 이어 다시 카스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 정훈(가명)이는 전날 나에게 이곳에서 유명한 일요시장을 보고 월요일에 카라쿨 호수에 가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되면 3~4일은 더 일정이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정훈이도 파키스탄으로 가는 길이었다. 카스와 타슈쿠르간 중간에 위치한 카라쿨 호수는 사진작가들이 평생 꼭 한 번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살짝 고민이 됐다. 하지만 '도시 불감증' 환자인 나로서는 카스에 며칠을 더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오전 5시 마음을 정리하며 조용히 샤워를 했다. 그리곤 까치발을 하고 살금살금 짐을 쌌다. 정훈이와의 약속은 더 이상 내 머릿속에 없었다. 막상 '야반도주'를 하려고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내 새털 같은 가벼움을 책망했다. 오지에서 만난 친구를 버리고 가는 게 그리 편치는 못했다.

배낭을 메고 20분 정도를 걸어 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은 아직 굳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요기를 하려고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즉석에서 기름에 튀긴 빵(꽈배기 정도)과 따뜻한 우유를 파는 노점이 있어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설탕을 한 스푼 넣은 따뜻한 우유는 생각보다 별미였다. 빵 한 조각과 우유를 합해 3원을 지불했다. 노점은 매번 지갑뿐 아니라 마음까지 행복으로 채워준다.

터미널 문이 열리자마자 타슈쿠르간행 버스 티켓을 구매했다. 한동안 날 공포에 떨게 했던 미니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기사는 트렁크에 짐을 넣으란 말도 하지 않았다. 운전석 옆에 배낭을 놓았다. 조금 있자 한 아저씨가 고함을 지르기 시작했다. 느낌상 내 배낭이 문제인 것 같았다. 놀란 마음에 조용히 배낭을 집어 들었다. 중국인 아저씨는 자신의 가방이 내 배낭 밑에 깔린 게 마음에 들지 않은 모양이었다.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모든 메시지를 눈빛에 담아 아저씨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때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날 보고 손짓했다. 아주머니는 검지로 본인의 자리와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자리를 바꾸자는 이야기였다.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달린다면 이보다 좋을 수는 없었다. 카스를 빠져나온 버스는 가로수가 양쪽으로 길게 뻗어 있는 길을 여유있게 달리기 시작했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시작이었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한 시간 정도 지나 작은 마을에 버스가 정차했다. 버스 기사는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간다고 했다. 양꼬치와 라멘은 카스지역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 중 하나다. 카스에서 맛본 양꼬치는 감히 최고라는 찬사를 붙여도 아깝지 않은 맛이었다. 라멘은 스파게티의 원조 격인 면 요리다.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 하고 양고기에 피망 등이 함께 들어간 라멘은 스파게티를 그대로 빼닮았다.

역사적으로 따지면 스파게티가 라멘을 닮았다고 말하는 게 맞다. 맛은 좀 더 담백하고 동양적이다. 라멘 한 그릇을 주문했다. 빨간색 소스를 두른 양고기와 각종 야채가 두툼한 면 위에 소담스럽게 담겨 나왔다. 스파게티에 길든 내 혀에 맛의 새 지평을 열어주는 음식이었다.

다시 버스가 뻥 뚫린 길을 달리기 시작했다. 슬슬 카라코람하이웨이의 감춰진 황홀한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저 멀리 만년설산이 내 시야 전체를 채우고 있었다. 대평원이 지평선을 이룰 때쯤 엄청난 규모의 산맥이 불쑥 솟아올랐다.

장관이었다. 180도 와이드버전으로 설산이 굽이쳐 흐르는 모습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앞자리에 앉은 건 행운이었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황량함은 웅장함을 만들어 냈고, 웅장함은 지금까지 접하지 못한 산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게 했다. 산 위에 내려앉은 눈은 마치 초코케이크를 덮고 있는 생크림 같았다. 그 아름다운 모습에 바람과 구름도 잠시 쉬어가는 듯했다.

이곳에 오기 위해 리탕~캉딩 12시간, 캉딩~청두 8시간, 청두~시안 17시간, 시안~우루무치 30시간, 우루무치~카스 25시간 등 버스와 열차에서만 90시간을 보냈다. 집념의 승리였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풍경은 충분히 그간의 고생을 보상해 주고도 남았다.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탄성을 내지르는 사이 버스가 검문소에 도착했다. 모든 승객이 내려 신원을 확인하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그리곤 다시 인간의 힘으로 절대 구현할 수 없는 '자연'으로의 여행을 시작했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기다리던 카라쿨 호수가 다가왔다. 이 호수는 카라코람하이웨이의 거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다. 파키스탄으로 넘어가지 않는 여행자들도 일부러 이 호수를 보기 위해 카스나 타슈쿠르간을 찾는다. 운이 좋으면 버스가 잠시 쉬어가기도 한다.

호숫가 주변에는 사진기를 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호수 안에 담긴 설산 그리고 평화로이 풀을 뜯고 있는 말들... 한 폭의 그림이 따로 없었다.

"내추럴이네 정말. 아~ 내가 찾던 게 이런 건데..."

매일같이 이 구간을 다녀서 더는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무심하게도 버스 기사는 이곳에서 브레이크를 밟지 않았다. 간간이 버스 기사가 담배를 물면 민첩한 행동으로 라이터를 건네주고 내가 할 수 있는 서비스는 다한 뒤라 실망은 더욱 컸다.

우울했던 기분도 잠시였다. 카라쿨 호수에서 타슈쿠르간까지는 흰색 분칠을 한 설산들이 에스코트를 해주었다. 왼쪽 오른쪽으로 눈길을 옮기기 바빴다. 그럴수록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버스는 카스를 떠난 지 7시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중국 여정의 마지막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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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녹고 따뜻한 날이 온 뒤에도 한참 있어야 열리는 길이 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길은 곧 닫혀버린다.

세계 일주를 다녀온 사람들이 최고의 풍경으로 꼽는 '카라코람하이웨이(KKH)' 이야기다. 중국 카스에서 시작해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까지 이어진 절대 비경을 간직한 이곳은, 보통 5월에서 11월 사이 통행이 가능하다.

'카라코람'이란 말은 오고타이한국(汗國)이 수도로 정한 '카라코룸'(검은 바위)으로 통하는 관문이었던 데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길은 예로부터 실크로드의 한 갈래로 동서교역의 통로였으며 혜초 스님의 여행 경로에도 일부가 포함돼 있다.

4700m의 쿤자랍 패스(일명 피의 고개)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경으로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한다. 원래 카라코람하이웨이는 사람이나 말이 간신히 지날 수 있는 좁고 가파른 길이었다. 중국과 파키스탄 정부는 1966년 양국 간의 교역로로 활용하고자 카라코람하이웨이 건설을 시작했고, 총연장 1200km에 왕복 2차선 규모로 1980년 완공했다. 중국 쪽 길은 대부분 포장이 돼 있지만 파키스탄 쪽은 현재 포장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야기 3] 국제버스 타고 국경 넘어 트레킹 천국으로

타슈쿠르간의 양꼬치구이도 일품이었다. 하지만 배를 채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살며시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는 걸 물었다. 이름은 '소멘'이라고 했다. 음식이 나온 뒤 보니 면을 얇게 뽑아 파스타처럼 토막을 낸 거였다. 맛은 파스타 이상이었다. 저녁 식사를 하곤 타슈쿠르간에서 숙소로 잡은 교통빈관으로 돌아와 홀로 조촐하게 중국의 마지막 밤을 맥주 한 병으로 자축했다. 집 떠난 지 33일째 되는 날이었다.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는 출국수속에 맞춰 출입국사무소(하이관)로 향했다. 교통빈관 여사장은 길을 묻는 나에게 왼쪽으로 가라는 말뿐이었다. 몇 번이나 다시 길을 물었지만 왼쪽 이상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무성의'란 단어밖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숙소를 나와 길을 묻고 물어 20분을 걸었다. 목적지는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따라 도시 외곽에 자리 잡고 있었다. 하이관은 쥐죽은 듯 조용했다. 나보다 먼저 출국수속을 기다리고 있던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앗!' 제대로 속은 느낌이었다. 직감적으로 오전 9시 시작된다는 출국수속은 베이징 타임이 아닌 신장 타임이란 생각이 들었다. 이곳의 공식적인 시간은 베이징 타임을 따르지만, 일상생활에서는 2시간이 늦은 신장 타임을 쓰는 게 일반적이었다.

카스 버스터미널에선 베이징 타임으로 시간을 안내받았기 때문에 공무원들도 이 시간에 따라 일을 하는 줄 알았다. 짧은 생각이었다. 업무가 시작되려면 2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는 얘기였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먼저 도착해 있는 사람은 '한잼'이란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시간이 과하게 남아 간단히 아침을 먹을 겸 캔 커피와 비스킷을 사왔다. 혼자 먹기가 뭐해 한잼에게 비스킷을 좀 갖다 주니 수줍어하면서 건네받는 모습이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하늘의 조화란 말인가! 호기심에 하이관 정문 유리창 너머로 안쪽을 들여다보고 돌아서는데 땅바닥에 거금 50원이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그래도 이걸 날로 먹을 순 없었다. 최소한의 매너를 지켜야 했다. 한잼에게 50원짜리 지폐를 보여주며 혹시 잃어버린 돈이 없냐고 물었다. 그는 짧게 자신의 돈이 아니라고 했다. 내가 돈을 줍든 말든 별로 관심이 없는 듯했다. 흐뭇하게 50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전화위복'이란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오전 11시쯤 횡재한 돈 50원을 더해 버스 티켓을 샀다.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국제버스의 가격은 255원쯤 했다. 이날 파키스탄 소스트로 넘어가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총 4명뿐이었다. 나를 제외하면 모두 파키스탄 사람들이었다.

출국수속이 시작될 때쯤 중국과 파키스탄을 연결하는 국제버스가 도착했다. 그런데 국제버스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내가 타고 가야 할 버스는 낡아빠진 미니 봉고였다. 시트는 해질 대로 해져 있었고, 손으로 시트를 털면 빈대들이 마구 튀어 오를 것만 같았다. 좋건 싫건 파키스탄으로 넘어가는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출국수속이 시작됐다. 하이관 직원은 내 여권의 속지 한 장 한 장을 자외선 검사기에 비춰보는 꼼꼼함으로 날 긴장시켰다. 그 덕에 출국도장을 받는 시간이 무척 길어졌지만, 심사는 순조로웠다.

버스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내게 젊은 군인 한 명이 다가왔다. 그는 날 보자마자 앉은 자리에서 비키라고 했다. 카라코람하이웨이의 마지막 중국검문소까지 동행할 군인이었다. 시키는 대로 앞자리로 자리를 옮겨 파키스탄 아저씨 2명 사이에 끼는 신세가 됐다. 사진을 찍기에는 최악의 자리였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잠시 뒤 버스는 하이관을 빠져나왔다. 다시 카라코람하이웨이가 시작됐다.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푸른 평원 위에 위구르 족의 생활이 그대로 펼쳐졌다. 양 떼와 야크 무리가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고, 낙타를 타고 어슬렁거리던 목동은 버스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마을 아낙네들도 지나가던 차를 보면 인사를 해주었다. 당장 버스에서 내리고 싶은 충동이 솟구쳤다. 우리나라에선 지나가던 차에 손을 흔드는 일이 택시에만 해당하는 일이지 않나. 참 정겨운 모습이었다.

국제버스가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슬슬 중국 쪽 카라코람하이웨이가 막바지에 다다른 분위기였다. 멀리 빨간색 지붕의 마지막 검문소가 눈에 들어왔다. 버스가 바리케이드에 막혀 멈춰 섰다. 군인 한 명이 잠시 머뭇거리더니 나에게 말했다.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패스포트!"

그는 출국도장과 파키스탄 비자를 확인하곤 아무 말 없이 마지막 검문소를 통과시켜 주었다. 버스가 시커먼 매연을 내뿜으며 해발 4700m의 '쿤자랍 패스'를 넘고 있었다. 감개무량한 순간이었다. 눈을 감았다. 감상 따위는 없었다.

'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네. 이러다 집에 못 가는 건 아닐까? 어쨌건 굿바이~ 차이나~'
신장위구르 여행. ⓒ 김동우
여행이 편할 줄만 알았다. 보고 먹고 자면 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여행은 온전치 않았고 만족스럽지 못했다. 여행도 넥타이를 매고 회사에 다니는 것처럼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여행 안에서 자유로웠지만 여행은 또 다른 숙제를 안겨주었다. 직장을 잡고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기 위해 몸부림칠 때 여행은 점점 의식 속에서 사라져 갔다. 어쭙잖은 지식과 경험을 믿고 허세를 부리며 자만에 빠져 살던 시절이 있었다. 세계 일주의 시작 중국은 교만한 나를 일깨워주었다. 국경을 넘으며 난 여행을 다시 보고 있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여행이 여행이 아니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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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쿨 호수는 해발 3600m에 있으며 파미르 고원에서 가장 높은 호수다. 이 호수는 1년 내내 만년설로 덮여 있는 마즈타가타 산(7545m), 콩구르타그 산(7649m), 콩구르튜베 산(7530m)이 둘러싸고 있다.

카라쿨 호수는 카스에서 카라코람하이웨이를 따라 타슈쿠르간 방향으로 약 200km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이곳에 방문하기 위해서는 카스나 타슈쿠르간에서 투어를 알아보는 방법이 가장 손쉽다. 한편 타슈쿠르간은 중국과 파키스탄의 국경인 쿤자랍 패스를 지나기 전 마지막 도시로 이곳에서 출국수속을 밟고, 파키스탄과 중국을 연결하는 국제버스를 타야 국경을 넘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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