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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노란점퍼를 입은 소희 아빠 박윤수씨(왼쪽)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세월호가 아직 있는 그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까까지른 절벽 위에 섰다. ⓒ 남소연
*[동거차도 르포 ①]에서 이어집니다(바로가기).

마을에서 30여 분을 걸어 올라 진도 동거차도 산 능선의 세월호 인양 감시 천막과 마주했다. 파란색 천막으로 대강 덮어놓은 듯한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앞서다가도, 천막 앞에 앉아 '허허' 웃음을 보이는 아버지들을 보니 '생각보다 괜찮구나' 하는 마음도 들었다.

허리를 숙여 천막 입구 안으로 빼꼼 머리를 집어 넣었다. 세 평 남짓한 공간 가운데의 정수기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입구 옆엔 전자레인지가 놓여 있었다. 즉석밥을 데우는 데 사용되는 이 전자레인지는 천막의 몇 안 되는 전자기기이자 조리기구이다.

전자레인지 너머엔 전기장판 두 개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온기가 맴도는 공간이다. 바람이 불자, 청테이프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천막이 바람보다 더 큰 소리를 내며 들썩거렸다. 

머리 위론 모기장이 있었다. 죽은 벌레들이 모기장 저편에 듬성듬성 놓여 있었다. "처음 왔을 땐(9월) 모기가 얼마나 많던지, 바지를 뚫고 물더라고요. 그래서 옷을 껴 입었더니 그때부턴 얼굴을 물어뜯기 시작했습니다"라며 영석 아빠 오병환(44, 단원고 고 오영석군 아버지)씨가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갑자기 크레인이 움직였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서 가장 높은 산 꼭대기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이 이들을 인터뷰하고 있다. ⓒ 남소연
세월호 가족들은 조를 짜 일주일씩 천막에 머문다. 대개 금요일에 동거차도에 들어왔다가 그 다음주 금요일까지 천막을 지킨다. 간혹 날씨가 좋지 않아 배가 뜨지 않으면 더 머물 수밖에 없다.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8일 동거차도에 들어갔다가 9일 나올 수 있었지만, 아버지들은 원래 나오려고 했던 금요일(11일)에 기상이 악화돼 하루 더 섬에 머물렀다.

천막에선 거의 잠을 자지 못한다. 소희 아빠 박윤수(단원고 생존자 박소희양 아버지)씨는 "새벽 6시에나 잠들었다가 2시간 정도 지나 일어나요"라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남자들끼리 있다보니 하루에 한 끼 먹는 게 보통이고, 대부분 즉석밥이나 라면으로 끼니를 떼운다.

영석 아빠는 "화장실은 참고, 또 참다가, 정 못 참았을 때 간다"며 천막 너머의 다 쓰러진 간이 화장실을 가리켰다. "어머니들이 오시면 어떻게 하나요"라고 묻자 강한 어조의 대답이 돌아왔다.

"화장실 못 가는 것, 어머니들도 광화문에서 다 경험했잖아요. 경찰들이 막아 서서 화장실 못 가게 하니까 그때 엄마들끼리 담요로 빙 둘러서 길바닥에서 볼 일 보고…."  

사실 간이 화장실은 바람 때문에 망가진지 오래다. 이곳에선 일상처럼 변수가 발생하는데, 대부분 바람이 원인이다. 인양 작업을 감시하게 위해 세워 둔 카메라 두 대 중 한 대도 바람에 넘어져 고장났고, 중국어(인양 업체 상하이샐비지는 중국 업체다)와 한국어로 "9명의 미수습자 가족이 기다립니다"라고 적어 벼랑에 걸어 둔 현수막도 바람에 날아갔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 남소연
8일 오후 2시 50분께, 조용하던 상하이샐비지 바지선의 크레인이 왼편으로 몸을 틀었다. 최창덕씨가 "어, 크레인 움직였어요"라고 말하자 소희 아빠가 잽싸게 카메라 녹화 버튼을 눌렀다. 영석 아빠는 "대낮에 이런 적은 거의 없었는데"라며 부산히 움직였다. 최씨는 즉시 일지를 꺼내 특이사항을 적기 시작했다. 일지는 9월부터 기록해 온 인양 관련 내용으로 빼곡히 차 있었다. 곳곳엔 세월호 가족 서로를 응원하는 문구가 담겨 있기도 했다.

"고생하세요. 우리는 엄마, 아빠이기에. 지치지 말고 힘내세요 끝까지…. 우리 새끼들만 생각하면서 가요. 사랑합니다. 경빈맘, 웅기맘, 순범맘♡ 승목 아빠 사랑해요."

특조위, 세월호 선체 조사할 수 있을까

왼편, 오른편을 오가던 크레인은 별다른 특이사항 없이 활동을 멈췄다. 별 것 아닌 움직임에도 아버지들이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는 건, 현재 세월호 인양만큼 중요한 게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월호 가족들의 마음은 더 답답하다. 영석 아빠가 입을 열었다.

"자식이 죽었는데 왜 죽었는지 부모가 당연히 알아야 하지 않습니까. 그러려면 세월호가 온전히 인양되고 그걸 특조위가 제대로 조사할 수 있어야 할 텐데요…."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 남소연
지난 8월 상하이샐비지가 인양업체로 선정돼 이곳에 왔을 때, 업체는 인양 예상 시점을 내년 7월로 잡았다. 물론 더 늦춰질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아래 특조위)의 활동 시기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해수부는 세월호 특별법이 시행된 지난 1월 1일을 기준으로 내년 6월을 특조위 활동 종료 시점으로 보고 있다(특별법에 따르면, 특조위는 구성된 날부터 1년간 활동하고, 6개월을 연장할 수 있다). 그래서 특조위가 올린 예산도 대폭 깎았다(198억 7000만 원→61억 7000만 원).

만약 해수부의 생각대로라면, 특조위는 진상규명의 가장 중요한 증거인 세월호 선체를 조사해보지도 못한 채 활동을 끝내야 한다. 특조위는 활동 시작 시점을 특별법 시행일(1월 1일)로 보는 해수부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이 임명장을 받은 3월, 시행령이 발효된 5월, 예산이 반영되기 시작한 8월 등 특조위의 활동 시작 시점을 보는 관점은 다양하다.

이에 지난 6월 새정치민주연합의 여러 의원들은 "활동 기간을 특조위 및 사무처 등의 구성을 마친 날로 본다", "활동 기간을 세월호 선체 인양 후 6개월로 한다" 등의 의안을 내놨고, 9월 여야는 "특조위 활동기간을 보장하는 특별법 개정안을 11월 5일 본회의에서 처리한다"고 합의했다. 하지만 개정안은 여당의 반대로 지금까지 통과되지 못했다.

"맨날 즉석밥만 먹었는데, 오늘은..."

산 능선의 밤은 빨리 찾아왔다. 오후 5시께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자 <오마이뉴스> 취재팀은 아버지들을 위해 저녁상을 준비했다. 미리 사 간 삼겹살을 조그마한 프라이팬에 굽고, 팟캐스트 <장윤선의 팟짱> 청취자들이 선물한 과메기를 잘라 접시에 담았다. 영석 아빠는 "평소에는 즉석밥이랑 마른 반찬, 아니면 그냥 라면으로 때우고 마는데, 오늘 정말 호강하네요"라며 밝게 웃었다. 소희 아빠와 최창덕씨도 연신 젓가락질을 이어갔다.
진도 팽목항에서 배를 타고 2시간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섬 동거차도. 세월호 참사로 새끼를 잃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 섬에 있다. 동거차도 앞바다에 떠있는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의 세월호 인양 준비과정을 감시하기 위해서다. 노란점퍼를 입은 소희 아빠 박윤수씨는 세월호가 아직 있는 그 곳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까까지른 절벽 위에 섰다. ⓒ 남소연
식사를 마친 뒤, 거의 말이 없던 소희 아빠가 입을 열었다. 소희양은 세월호 참사 생존자 172명 중 한 명이다. 아빠는 뜻밖의 말을 꺼냈다. 그는 먼저 떠난 친구들 곁으로 가려고 했던 딸을 떠올렸다.

"소희도 많이 힘들어했죠. 지난해 12월 20일에…. 교복으로 갈아입고, 화장을 깨끗이 하고, 친구들 명찰을 몸에 다 달고…. 하아, 그때 앰뷸런스에 싣고, 입원시키는데 내가 죽고 싶더라고요. 지금은 주변 분들이 걱정해주시고, 격려해주셔서 잘 적응하고 있어요."

소희양은 이번에 수능시험을 치렀다.

"세월호 특례입학이 너무 싫다며 처음엔 대학을 안 가려고 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이번에 수능시험을 봤고, 특례입학으론 절대 대학을 안 가겠다며 맞는 과를 고르고 있어요. 선생님이 되고 싶어 하더라고요."
세월호 인양업체로 선정된 중국 상하이샐비지 컨소시엄이 8일 저녁 진도 동거차도 앞바다에 불을 밝히고 있다. ⓒ 남소연
소희 아빠는 말을 이어갔다.

"소희처럼 이제 아이들이 성인이 됐잖아요. 아버지, 어머니들이 이렇게 최선을 다해보고, 혹시 안 되면 우리 아이들이 있으니까요. 계속 밝혀 가야죠. 금방 되겠어요?"

"금방 되겠어요?"라고 말하는 소희 아빠의 표정이 애달프면서도, 굳건했다. 기록은 기억의 단초가 되고, 그 기억이 이어지면 역사가 된다. 금방 됐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세월호 가족들은 애달프지만 굳건하게 서 있다.

그들은 오늘도 진도 동거차도 꼭대기에서 바람을 맞아가며, 진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현장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기억이 이어지길 바라고 있다. 이것이 그들의 일상이다. 특별한 일이 아닌, 일상.

천막 아래 나무 곳곳에 "우리 아이들이 눈 크게 뜨고 보고 있다"고 적힌 노란리본이 걸려 있었다. 14일부터 3일 동안 특조위의 첫 공개 청문회가 시작된다.

[<장윤선의 팟짱> 생중계]

[현장①] "아그들을 못 보듬고 내려와서..."
[현장②] "전기장판 2개, 이렇게 가까운데..."
[현장③] 상하이 샐비지 "우리 지금 일해요"
○ 편집ㅣ장지혜 기자
태그:#세월호, #참사, #동거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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