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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비앙 또농가 에비앙 또농가(Thonon villede), 우리에겐 생수로 유명한 프랑스의 도시다. ⓒ 김민수
나이가 들수록 계획한 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을 경험하는 횟수가 잦아진다. 때론 아프기도 하지만, 내가 의도하지 않았던 삶 조차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경우가 사실은 더 많다.

여행도 그렇다. 느닷없이 어느 곳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되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세계사를 좋아했다. 나름 세계사를 통해서 역사의 패턴을 배웠고, 이런저런 지명과 인명들을 하나 둘 암기했다. 이전에는 그닥 느끼지 못했는데, 이번 프랑스 여행길에서는 뇌리에 남아있는 지명과 인명들로 인해 마치 익숙한 여행지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에비앙 벼룩시장 에비앙을 걷다가 벼룩시장을 만났다. 우리네 오일장 같은 것이다. ⓒ 김민수
세계사 시간이 아니라, 프랑스의 각종 제품들을 통해서도 익숙해진 이름도 있을 것이다. '에비앙'이 그랬다. 한국에서는 제법 비싼 생수가 아닌가? 아침에 '또농'에 간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이 에비앙에 있는 곳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런데 도착해서는 "여기가 생수로 유명한 에비앙입니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에비앙에 속한 또농마을이 정확한 것이리라. 마침 벼룩시장이 열렸다. 서울에서도 시골 오일장이나 재래시장을 찾아다니던 나로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에비앙 벼룩시장 벼룩시장에 나온 도서들, 이곳 벼룩시장의 특징은 집에서 쓰던 물건들이 장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안목만 있으면 싼값에 골동품을 구할 수도 있다고 한다. ⓒ 김민수
에비앙 벼룩시장 프랑스의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치즈, 다양한 치즈들을 생산자가 직접 판매하고 있다. ⓒ 김민수
프랑스의 벼룩시장은 주로 생산자들이 직접 생산한 것을 가지고 나오고, 각 가정에서 사용하지 않는 물품을 가지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물론, 물건을 떼다 파는 이들도 당연히 있다.

가이드는 언젠가 벼룩시장에서 50유로 정도에 거의 골동품에 가까운 중형카메라를 샀다고 했다. 그런데 작동도 잘 되고, 나중에 알고보니 꽤나 비싼 제품이라 횡재를 했다는 무용담을 전해줬다.

아마, 그곳에도 카메라나 가정에서 나온 골동품을 파는 곳이 있었다면 한참을 기웃거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날은 프랑스에 입성한 지 이틀째 되는 날(11월 10일), 프랑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다. 앞으로 매끼마다 질리도록 다양한 치즈를 먹게 될 것이라는 것도 몰랐으므로, 벼룩시장에 나온 치즈를 보며 침을 꼴딱 삼켰다.
에비앙 가로수 조경, 유럽국가들의 조경방식은 우리의 눈에는 특이하게 보인다. 에비앙과 스위스 로잔을 사이로 레만 호가 놓여있다. 레만 호의 중간은 스위스와 프랑스의 경게이기도 하다. ⓒ 김민수
조경이 재미있다. 지난 5월 덴마크에서도 저런 모양으로 조경한 것을 많이 보았는데, 유럽쪽은 이렇게 각지게 조경을 하는 것이 유행인지도 모르겠다.

프랑스 에비앙과 스위스 로잔 사이에는 '레만 호'가 있는데, 그 중간이 각국의 경계다. 그렇게 경계가 있다고 한들 어찌 물이 둘이겠는가? 그러나 분명 경계는 있고, 경계는 있으나 유럽연합국가라 그런지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을 오가는 일은 아무런 경계가 없었다.

외국에 나가려면 반드시 비행기나 배를 타야만 했으니, 그냥 차량으로 검문검색도 없이 두 나라를 오가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통일대한민국이라면, 배나 비행기가 아니라 육로를 통해서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갈 수 있을 터인데 하는 아쉬움이 큰 대목이다.
에비앙벼룩시장 멋들어진 스카프가 5유로다. 7천 원이 안되는 싼 가격인데 디자인과 품질이 좋다.물론 프랑스산 제품이다. ⓒ 김민수
예쁜 스카프가 5유로다. 환전을 해도 7천 원이 안 된다. 더군다나 '메이드 인 프랑스'다.

"저 정도는 인사동에 가서도 구할 수 있잖아. 괜히 짐 만들지 말자."

나중에야 알았다. 그게 후회할 말이고 행동이었다는 것을. 하나쯤 사왔어도 아무런 짐이 되지 않았을 기념품이 었을 것이다.
에비앙 벼룩시장 야채나 과일류 등 식료품들이 벼룩시장에는 많이 나왔다. ⓒ 김민수
에비앙 벼룩시장 예쁜 신발들이 10유로, 우리 나라 가격으로 13,000원이 채 되지 않는다. ⓒ 김민수
멋진 신발, 그것도 수공예품이란다. 물론, 메이드 인 프랑스. 그런데 가격이 그야말로 '골라 10유로'다. 그러니까 1만3000원이 안 되는 저렴한 가격이다. 마침 신고온 신발이 엄청나게 낡았는데 이 참에 하나 장만할까 생각도 했다.

그런데 또 소심해졌다. 많이 걸을텐데 신발이 길이 들지 않아 발이 불편하면 여행길이 불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그 싼 신발도 결국 눈으로만 봤다. 이후에 리옹과 파리에 가서 정말 마음에 드는 신발을 만났을 때, 가격때문에 감히 사지 못할 줄을 알았더라면 아마도 분명히 그곳에서 신발을 하나 장만했을 것이다.

사실, 내일 일을 모른다는 것. 아니, 내일이 아니라 바로 앞 일을 알 수 없다는 것. 그것이 삶의 묘미가 아니겠는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 삶의 묘미를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에비앙 벼룩시장 벼룩시장이 열리고 있는 에비앙 거리 ⓒ 김민수
아내는 농담처럼 프랑스에서 돌아올 때에는 '핸드백' 하나 사오라고 했다. 가격이 어찌 되는지 알 수는 없지만, 프랑스에서 핸드백 하나 사오려면 내가 가진 경비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을 것이다.

벼룩시장에 걸린 핸드백도 제법 예뻤다. 30~50유로 사이였으니 비싸야 7만 원이 채 안 되는 가격이다. 그 정도도 인사동이나 남대문 시장에 가면 많지 않을까? 그러나 사실, 이 가격은 공짜나 마찬가지였다. 그 사실은 루이비통 본사에 전시되어 있는 상품을 보고 알았다.

자존심 섞인 말일지는 모르겠으나 프랑스 사람들은 우리가 명품이라고 생각하는 유명 브랜드 제품을 소위 명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냥 '비싼 제품'이거나 혹은 '사치품'이지 명품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정답인데, 오답이 주는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미련한 사람들은 늘 있기 마련이고, 그래서 터무니없어 보이는 가격에도 물건이 없어 팔지 못하는 품귀현상이 일어나는 것이이라.
에비앙 수원지 유명한 에비앙 생수의수원지, 방문객 누구나 마실 수 있게 되어있다. ⓒ 김민수
현지인의 안내를 따라 꼭 가봐야할 곳이라 해서 따라갔다. 그런데 나는 사진을 찍는 일에 빠져서 현지인의 안내를 잘 알아듣질 못하고 일행 주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사진을 찍는 일에 열중했다.

그냥 먼 발치서 '저곳이 무엇이길래 사람들이 구경을 하나?' 정도로 생각했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이곳은 에비앙 수원지였다. 그래서 물이 졸졸 나오는 장면은 담질 못했다. 역시,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인데, 에비앙에 대한 정보가 생수 정도 밖에는 없으니 수박 겉핧기로 에비앙을 둘러볼 수밖에 없었다.

언제 다시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는 그곳, 그곳을 나는 그렇게 다녀왔다. 그래도 벼룩시장을 운 좋게 만났다는 것과 그곳도 여느 사람 사는 곳과 다르지 않다는 것, 역시 그곳도 우리네 오일장이나 재래시장 같은 곳이 인간미가 넘치는 곳이라는 것을 확인했으니 그나마 다행이 아닌가?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사진을 보여주며 에비앙 벼룩시장 이야기를 했다가 아내한테 바가지 굵혔다.

"아, 그래. 루이비똥이나 샤넬은 아니더라도 벼룩시장에서 그것 하나 못 사와?"
○ 편집ㅣ최은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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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