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울린 '마포구 교제살인 사건'
피해자의 이 사진

[교제살인 두 번째 이야기 - 사람이 죽었다②]
법원 302호 출입문과 마주하는 사람들
법정은 가해자와 피해자가 다투는 공간이다. 피해자가 사망하면 가해자만 그 공간에 선다. 그렇게 나오는 판결문이 사건의 전모를 다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은 목격자가 없는 경우가 대다수인 교제살인 사건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난다. CCTV 증거 화면이 있어도 피해자는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없다. '왜'가 남는다. 고 황예진씨 사건에서 그 질문을 놓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났다. 사건번호 2021고합○○○ 상해치사, 사람이 죽었다. [편집자말]

지난 3월 30일, 서울 서초동 서울고등법원 서관 302호. 법정 입구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후 1시 45분, 아직 법정 출입문은 아직 열리지 않았다. 그 문, 가장 앞에 할머니가 서 있다. 아직 공판이 시작되려면 15분이나 남았는데 아까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판 시작 3분 전, 할머니 자세가 약간 바뀌었다. 왼손을 출입문에 대고 몸을 기대고 있다.

그의 손녀가 죽었다.


서울고등법원 서관 302호 앞 모습. ⓒ 이주연

이날은 고 황예진씨 '교제살인' 사건 2심 2차 공판이 열린 날이었다. 사건은 2021년 7월 25일 서울 마포구 한 오피스텔에서 일어났다. 가해자는 피해자를 수 차례 폭행했고, 응급구조사 자격증이 있었던 가해자는 실신한 피해자를 바닥에 방치했다. 두 차례에 걸쳐 거짓 신고를 했다. 112에는 피해자가 자는 척을 한다고, 119에는 술을 많이 마셔 기절한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는 뇌출혈이었다. 끝내 깨어나지 못한 피해자는 그 해 8월 17일 병원에서 숨졌다.

당시 가해자는 불구속 상태였다. 앞서 경찰은 상해 혐의로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이 이를 기각했다. 피해자 유족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이 사실을 널리 알렸다.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신상 공개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유족은 피해자 이름과 사건 CCTV 영상도 공개했다. 영상에는 피해자의 폭행 사실도 담겨 있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죽음'의 책임이 피해자에게 있다는 주장이 대두됐지만, 가해자는 사건 발생 54일만에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됐다.

1심 공판에서 재판부는 징역 7년형을 선고했다. 선고 직후 피해자 유족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사건이라고 강조하면서 "통탄을 금할 길이 없다"고 했다. 피해자측, 가해자측 모두 판결에 불복했다. 지난 3월 16일 열린 2심 1차 공판에서 가해자측은 폭행치사를 주장했다. 상해죄는 치료가 필요한 상해가 생겨야 성립된다. 폭행죄는 폭행 결과 피해자 상해가 없어도 적용된다.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상해가 폭행으로 인한 게 아니라는 걸 입증하겠다는 것이 현재 가해자 입장이다.

그리고 열린 2차 공판이 법정 안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재판정 밖에 함께 있던 피해자 친구가 법정 우측 출입문 바로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더니 자신의 귀를 출입문에 갖다 댄다. 함께 있던 또 다른 친구도 그로부터 다섯 걸음 거리에 있는 법정 좌측 출입문 앞으로 이동해 역시 같은 자세를 취했다. 조금 전, 그들은 법정에 있다가 자진해서 나왔다. 법정 경위는 코로나19로 방청석 간 거리 두기가 필요하다며 일부 참석자들의 퇴정을 요청했다. 친구는 "그래도 기사 쓰실 분이 안에 있어야 한다"며 기자들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오후 2시 16분. 재판이 시작되고 15분만에 친구들이 문에서 물러섰다. 법정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이날 공판에서는 증인 채택이 이뤄졌다. 피해자와 함께 직장을 다녔던 또 다른 친구도 법정에 증인으로 서려고 했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못했다. 재판정을 나서는 할머니 얼굴에서는 피로가 엿보였다. 그의 집은 경기도 양주, 이곳 서울고등법원까지 차량으로 약 1시간 20분이 걸린다. 86세, 고령인 그에게는 결코 가깝다고 볼 수 없는 거리다.

법정 출입문이 닫혔다.

직면

지난 6월 8일 서울고등법원 앞 전경. 이날 법원 앞에는 '작은 장미' 꽃이 피어 있었다. ⓒ 이정환

그 문 밖 풍경이 확연히 달라졌다. 지난 4월 27일 오후 2시 30분, 날씨가 화창했다. 법원 앞에는 잠시 다리 쉼을 할 수 있는 조그만 숲이 있다. 햇볕을 받는 나뭇잎들 초록빛이 참 선명했다. 단풍나무 가운데 가장 잎이 좁게 갈라져 있다는 청단풍 잎들이 적당한 바람에 햇볕을 나눠 받으며 흔들리고 있었다. 그 아래로 붓꽃, 원추리, 참나리가 보였다. 각각 꽃을 피울 때가 다가오고 있었다. 1년 전 황예진씨의 삶 또한 그런 모습이었다. 오랫동안 공들였던 취업에 성공했다. 수습 생활을 거쳐 정규직 직원으로 막 생활을 시작했던 때였다. 그는 이제 세상에 없다.

2심 3차 공판이 시작됐다. 피해자의 사인, 지주막하출혈(뇌출혈)의 발생 원인을 두고 본격적인 공방이 벌어졌다. 1심 재판부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모두 4차례에 걸쳐 폭행했고, 4차 폭행 과정에서 일어난 과신전·과굴절(목이 과도하게 꺾임)로 머리와 목 사이의 동맥(척추동맥)이 파열되면서 뇌출혈이 일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반면 폭행치사를 주장하는 가해자측은 피해자를 죽음에 이르게 한 상해(뇌출혈)가 1차, 2차, 3차, 4차 폭행 과정에서 일어난 게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날 황씨를 부검했던 의사가 증인대에 서게 된 것도 그래서였다.

변호인 "CCTV 영상 검토한 것으로 압니다. (4차 폭행 후) 피고인이 피해자를 구호 조치하는 과정에서, 엘리베이터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피해자 머리가 바닥에 충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봤나요."

증인 "예."

변호인 "충격이 상당히 컸던 것으로 보입니다. 척추동맥(머리와 목 사이의 동맥) 파열이 가능하지 않나요?"

증인 "그렇게 보긴 어렵습니다."

그 이유를 두고 문답이 꽤 오랫동안 오갔다. 부검감정서, 의학 자료 인체 사진, 또 "해부학적 소견" 등이 차례차례 제시됐다. 피해자 유족이나 친구에게는 사실상의 '2차 부검' 현장, 그들에게는 잔혹하고 고통스러웠을 시간이 1시간 18분만에 끝이 났다. 다음 공판 증인은 학계 권위자로 꼽히는 이정빈 가천대학교 석좌교수, 또 한 번의 '부검'이 예고됐다. 4차 공판 날짜가 5월 11일로 정해졌다.


외면

황예진씨 교제살인 사건 현장 CCTV 화면. ⓒ 고 황예진씨 유족

"심문을 위해 동영상을 보고 시작하겠습니다."

5월 11일, 법원 서관 302호에서 피해자 유족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 다시 시작됐다. 가해자 머리 위에 설치된 스크린 위로 그 장면이 나왔다. 방청석에서 탄식이 흘렀다. CCTV에 포착된 1차 폭행, 2차 폭행, 3차 폭행, 그리고 의식을 잃은 피해자가 이리저리 끌려 다니는 그 모습... 앞자리에 앉아있던 피해자 외할머니는 스크린을 외면했다. 고개를 숙였다가 뒤를 돌아보기도 했고, 왼쪽과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기도 했다. 증인으로 이정빈 교수가 출석했다. 검찰 측이 먼저 심문을 진행했다.

검사 "부검의는 직접적 사인을 척추동맥 파열로 인한 외상성 지주막하출혈(뇌출혈)로 감정했고, 증인도 과신전·과굴절로 척추동맥이 파열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습니다. 그 이유는?"

증인 "(척추동맥이 파열되면) 숨도 못 쉬고 맥박도 뛰지 않으니 그 자리에서 퍽 쓰러집니다. 피해자가 3차 폭행까지 움직였기 때문에 그때까지는 당했다고 볼 수 없는 겁니다. 4차 폭행 중 '푸-' 하면서 쓰러졌다고 했습니다. 그 직전 (척추동맥 파열이) 일어났을 거라고 봅니다."

피해자 어머니가 다시 뭔가를 적었다. 그는 재판이 시작되면서 조그만 수첩을 꺼내들고 메모를 계속 하고 있었다. 판사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유리벽에 세게 밀치고 폭행하는 과정에서 척추동맥 손상이 발생했을 가능성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자 증인은 뽀로로 인형을 꺼내들었다. 두 손으로 인형의 몸통을 붙잡았다. 손목 스냅을 이용해 툭 흔들자 반동을 받은 인형의 목이 크게 뒤로 꺾였다.

증인 "이 사람이 술을 먹었다, 그러면 이게 나가는 겁니다, 덜컹. 상대방이 나를 칠 거라고 예상하면 목에 힘이 들어가서 이렇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또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는) 벽에 밀어 가지고 이런 손상이 안 와요. 벽에 부딪혀 머리가 다칠 수 있겠지만, 여기(머리와 목 사이의 척추동맥)는 손상이 안 됩니다. 이렇게, 이렇게."

뽀로로 인형 목이 또 한 번, 그리고 또 한 번.... 그 반복이 피해자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어떻게 보였을까. 가해자측 변호사의 증인 심문이 시작됐다.

변호사 "피고인은 피해자가 의식 잃기 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실랑이를 했습니다."

피해자 어머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실랑이?"

서로 옳으니 그르니 옥신각신하는 행위가 실랑이다. 물리적 폭력이 발생한 상황을 두고 실랑이라 하지는 않는다. 어느덧 공판이 시작된 지 1시간 23분이 지나고 있었다. 가해자 측 변호사의 35번째 질문이 이어지고 있었다. 가해자가 피해자를 옮기다가 떨어뜨리면서 머리에 생긴 손상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확인했냐는 질문, 다시, 참혹한 상황이 담긴 CCTV 화면이 재생됐다. 그리고 제시된 증거기록 191쪽 사진, 완전히 머리를 밀은 피해자의 머리 상처 사진들이 스크린에 띄워졌다.

어머니는 끝내 무너져 내렸다.

어머니가 울기 시작했다.


고통... 그래도 다시 마주하는 문

지난 5월 7일 친구들이 고 황예진씨 어머니에게 카네이션과 함께 보낸 카카오톡 메시지. 친구들은 "어버이날 맞아서 카네이션을 준비해봤다, 깜짝으로 드리려고 준비한 거라 미리 연락 못 드리고 현관문 앞에 두고 가겠다"면서 "어머님, 할머님, 아버님, 늘 건강하세요"라고 남겼다. 어머니는 "얼굴 보면 눈물 날 것 같고 보고 싶었는데 어쩌니"라고 답했다. ⓒ 이정환

공판 사흘 전, 어버이날을 하루 앞둔 5월 7일 우리를 만난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었다.

"재작년이었어요. 어버이날이라고 예진이가 제가 일하는 회사로 찾아왔거든요. 꽃다발 안에 고급 신발을 넣어서... 작년 어버이날에는 회사로 꽃을 보내고 명함 지갑을 사줬어요. 그 때 그 때 늘 저한테 선물을 사줬던 아이예요. 해외 여행 다녀올 때도 돈 모아서 면세점에서 시계를 사다 주고 그랬어요. 돌아보면 예진이가 사줬던 것들만 남아 있네요. 이렇게 선물처럼 아이가 왔다 갔구나...(눈물)."

그런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 어머니에게 지금의 법정은 참으로 잔혹한 장소다. 더구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는 피해자 측 주장은 법정에서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왜, 고통이 가득 차 있는 법정이란 걸 뻔히 알면서도 그 문과 매번 마주하는 걸까.

황예진씨 친구는 말했다.

"만약 예진이가 지금 제 입장이었다면, 예진이도 무조건 와줬을 거니까요. 좋은 일 있으면 항상 와서 축하해주고, 안 좋은 일 있어도 와주던 애였으니까요. 제 아버지가 2015년에 돌아가셨어요. 그때도 3일 동안 씻지 않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같이 있어줬던, 그런 친구였어요. (법정에 가면) 마음이 힘들기는 한데, 정말 왜 제 친구가 그렇게 됐는지 궁금해요. 진짜 왜 그렇게 된 걸까요. 안 보이는 곳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요."

황예진씨 어머니는 말했다.

"'왜'라는 게 자꾸 생각나거든요. 왜 우리 아이가 저렇게 됐는지, 왜 우리 아이가 저렇게까지 했는지, 뭔가 이유가 있을 거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피고인 말로만 우리 아이가 저렇게 한 걸로 됐어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아직까지 그 '왜'라는 게 안 풀렸어요. 그리고, 어디서 구호조치라는 말을 써요, 어디서... ('구호조치'는 가해자 측 변호사가 2심 공판에서 쓴 표현이다 - 기자 주)사람을 구하려고 할 때 구호조치지... 정신 잃은 애를 끌고 다니고 그러다 머리를 떨어뜨리고... 그건 사람을 구하려고 한 게 아니잖아요. 그거에 대해서는 제대로 심리도 되지 않았잖아요. 왜, 왜, 애를 그렇게..."

그리고, 6월 8일 열린 2심 5차 공판. 마지막 발언 기회를 얻은 황씨 어머니는 다음과 같이 말문을 열었다.

"오늘은 딸아이가 제 곁을 떠난 지 정확히 295일째 되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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