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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슬란드 남성들의 성평등 인식은?
평등한 사회가 나에게 더 좋다
그들의 유토피아 "여성이 목소리 내는 걸 응원하는 사회"
아이슬란드 수도인 레이캬비크에는 도심 어디에서나 보이는 랜드마크인 할그림스키르캬 교회가 우뚝 서있다. 반드시 방문해야 하는 관광지 중 하나로 꼽히는 이 교회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슈퍼마켓에서 스태프틴(Steftin)을 봤다. 그곳에서 일하는 점원이다. 키가 최소 190cm는 넘는 것으로 보이는 그는 건장한 근육질 체격의 남성이었다. 흔히 묘사되는 '마초적인 바이킹의 후손', 딱 그 모습이었다.
아이슬란드는 이코노미스트가 2016년 여성이 살기 가장 좋은 나라로, 일부 해외 언론사들은 아이슬란드를 '페미니스트 유토피아'라고까지 부르고 있다. 남성들에게는 어떨까.
앞서 우리는 두 명의 아이슬란드 남성과 이야기를 나눴다. 50대인 토르스테인 비그룬드손(Þorsteinn Viglundsson)은 전 아이슬란드 사회평등부 장관이었다. 그는 "여성의 정치 참여가 사회 변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40대인 트릭그비 할그림손(Tryggvi Hallgrimsson)은 국무총리실 성평등국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동일임금으로 남성도 질 높은 삶을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들은 분명 '유토피아'의 방향성에 대해 확신이 있는 듯 했다. 공직과는 거리가 먼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어머니"를 위해...
젊은 남성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스태프틴에게 말을 걸었다. 그는 선선히 인터뷰에 응해줬고, 우리는 슈퍼마켓 구석에 있는 창고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세계 스트롱맨 대회 우승자 중 아이슬란드 남성이 많더라고 하자, 그는 웃으면서 "생선과 육류를 많이 먹는 식습관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아이슬란드는 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이 증진된 나라인 것 같다'고 했다. 돌아온 답이 인상적이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존중의 태도로 서로를 대합니다. 그래서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걸 응원하는 사회죠. 여성주의가 강하다고 나한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자기 자신이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죠. 남성도 충분히 살기 좋은 것 같아요."
스태프틴을 만난 슈퍼마켓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 '스냅스'로 갔다. 젊은 남성이 혼자 테이블에 앉아 휴대폰으로 축구를 보고 있었다. 인터뷰 요청에 애커슨(Ackerson) 역시 선선히 앞자리를 내줬다. 그는 29살, 식당에서 주방장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여성 인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어머니"였다. 그는 "나를 키워주신 어머니는 싱글맘으로 정말 강한 여성이었다"면서 "여성이 행복한 모습을 볼 때 내가 더 행복한 것 같다, 이건 아주 기본적인 것 아니냐"고 했다. 그러면서 애커슨은 역으로 "여성에게 동일한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렇다'고 답하자 그는 말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질문은 이제 이거죠. 내가 사랑하는 여성은 누구인가. 어떻게 해야 그녀가 더 좋은 삶을 살 수 있는가. 내가 어머니를 언급한 것도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인 거죠. 어떤 사람들은 여성주의가 남성의 권리를 뺏는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오해 때문에 생기는 일인 것 같아요. 물론 극단적인 사람들이야 항상 양쪽에 다 있지만요(웃음). 사실 여성주의는 평등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평등한 사회 안에서는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남성들도 더 강해지는 거죠."
"더 나은 나를 위해"
레이캬비크에는 국립대학교인 아이슬란드 대학교(University of Iceland)가 있다. 1911년 설립됐고 오랜 역사만큼이나 규모도 가장 크다. 약 1만 4천명의 학생들이 재학중이다. 학교 광장에 있는 카페테리아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수업을 기다리거나 커피를 마시는 학생들 사이에서 혼자 점심을 먹고 있는 남성이 눈에 띄었다.
그의 이름은 이사(Isah), 현재 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있다고 했다. 앞서 레스토랑에서 만난 젊은 남성처럼 그의 입에서도 가족 이야기가 나왔다.
"당신에게 딸이 있다고 가정하죠. 다른 남자보다 기회가 덜 주어지는 것을 보고 싶을까요? 만약 딸이 CEO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하면 실패하길 바랄까요? 여동생이나 엄마가 어떤 고정관념에 갇힌 상태로 살아가길 원치 않을 겁니다."
이어 그는 "남성다움도 마찬가지다, 꼭 거기 갇혀 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전형적인 남성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그냥 자기 자신으로 살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사는 "그런 개인의 본질이 여성주의로 인해 바뀌는 것도 아니다"면서 "사회가 진보하면 새로운 기준과 새로운 현실이 만들어지는 것이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에서 기본값은 여성주의다, 그로 인해 더 좋은 사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역시 카페테리아에서 만난 아론(Aron) 이야기의 방점 또한 '더 나은 사람'에 있었다. 영화이론학을 공부하고 있다는 그는 "'남성'으로서의 정의보다는 자신만의 정의를 내리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지 고민하는 것"이라면서 "그건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아론도 가족을 얘기했다.
"나에게는 엄마와 아빠 그리고 두 명의 여동생이 있습니다. 우리 가정에서 여성주의는 언제나 당연한 것이었어요. 여성의 권리가 강해진다고 마찰이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서로를 동등하게 대하면 되는 거니까요."
유토피아
대학교 광장 옆에 있는 스포츠홀(Iþrottahus)로 이동했다. 건물 로비로 들어서니 양발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휴대폰을 보고 있는 젊은 남성이 보였다. 법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잉구아르(Inguar)는 이렇게 말했다.
"남녀는 경쟁관계가 아닙니다. 팀으로 본다면 여성주의로 양 팀이 더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성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도 다양한 사람의 생각을 듣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쪽으로만 치우친다면 그만큼 한쪽만의 스펙트럼에 갇힐 수 있으니까요."
다섯 명 이야기가 모두 그랬다. 평등한 사회일수록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 반면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편견이나 왜곡된 시선으로 사람을 대할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것이 차별이다. 차별하는 사람을 좋은 사람이라 보기는 어렵다. 그들의 말은 그래서 결국, 스스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도 평등한 사회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들 모두 적어도 이상적인 사회의 방향성에 대해서만큼은 확신이 있는 듯 했다. "여성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걸 응원하는 사회"(슈퍼마켓 직원 스태프틴)라는 방향성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