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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6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해 싸워온 제주도의 고길천 작가가 미국 보스턴으로 날아가 MIT의 노엄 촘스키 교수를 만났다. 이번 방문은 미국의 대표적인 진보학자인 촘스키 교수에게 강정마을의 구체적인 상황을 알리고 그의 제주 방문 의사를 타진하기 위해 매튜 호이(27, 미사일 방어체계 분석가)의 주선으로 이뤄졌다. 또 같은 날 촘스키 교수를 인터뷰하기로 되어 있던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의 신은정 감독이 현장에서 고길천 화백의 통역을 담당했다. 신 감독은 <베리타스..> 제주 상영회 당시 강정마을을 방문한 후 미국으로 돌아가 남편이자 유명한 진보지식인인 조지 카치아피카스 교수와 함께 노엄 촘스키를 비롯한 미 진보학자들의 서명을 담은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성명서 발표를 조직하기도 했다. 오마이뉴스 시민기자인 신 감독이 이날의 만남을 간단히 기사로 정리해 보내왔다. [편집자말]
촘스키 교수가 고길천 화백과 함께 '해군기지 백지화' 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촘스키 교수가 고길천 화백과 함께 '해군기지 백지화' 카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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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16일 오후 3시 10분(현지시각),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MIT의 스타타 센터(Stata Center)에 위치한 노엄 촘스키 교수의 사무실 밖 복도는 그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오후 2시 45분에 촘스키 교수와 약속이 잡혀 있다는 벤자민이라는 청년은 예술가 노조운동에 관여하고 있는데 촘스키 교수를 만나기 위해 멀리 플로리다에서 날아왔다고 했다. 나의 약속 시간은 오후 3시 15분, 고길천 화백과 매튜 호이는 3시 30분, 굉장히 빠듯한 스케줄이다. 잠시 후, 오후 4시 15분에 약속이 잡혀 있는 다큐멘터리 제작팀이 현장에 도착해 장비 설치를 시작하자 복도는 온갖 장비박스들까지 뒤섞여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되었다. 약속시간이 훌쩍 지났는데도 굳게 닫힌 사무실 문은 도통 열릴 기미가 없다.

오후 4시, 드디어 사무실 문이 열렸다. 촘스키 교수의 스케줄을 담당하는 베브가 벤자민에게 10분 안에 인터뷰를 끝내라고 재촉하는 게 들렸다. 낭패다. 이날 나의 인터뷰는 최근 쓰고 있는 책 <베리타스, 하버드의 감춰진 역사(가제)>에 대한 자문을 구하는 것과 강정마을에 보내는 간단한 영상 메시지를 촬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두 가지 미션을 모두 달성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할 것 같다.

약 15분이 지나고 벤자민이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사무실을 떠났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 역시 10분으로 줄어들었다. 결국 책에 대한 자문은 포기하고, 강정 문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번갯불에 콩 볶듯 후다닥 인터뷰를 해치우고, 이어 고길천 화백과 매튜가 동반한 만남이 이어졌다.

촘스키 교수는 먼저 최근 <뉴욕타임스>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투쟁과 관련한 기사가 실린 것에 관심을 표명했다. 사실 <뉴욕타임스>는 촘스키 교수와 같은 진보학자들의 글이나 인터뷰는 거의 싣지 않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매튜가 노트북에 담아온 다양한 강정마을의 사진들을 보여주며 현장 상황을 설명하자 촘스키 교수는 주의 깊게 사진들을 훑어보았다.

촘스키 "강동균씨 구속 안타깝다, 꼭 답장 쓰겠다"

촘스키 교수가 미사일방어체계분석가인 매튜 호이(왼쪽)와 한국에서 온 고길천 화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촘스키 교수가 미사일방어체계분석가인 매튜 호이(왼쪽)와 한국에서 온 고길천 화백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 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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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제주 해군기지 건설계획의 개요와 강정마을의 상황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이 이어졌고, 촘스키 교수는 해군기지 건설 계획이 언제부터 이뤄졌는지, 또 제주도가 전략적으로 얼마만큼 중요한 지리적 위치에 있는지 등을 구체적으로 물으며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미사일 방어체계 분석가인 매튜 호이가 지도와 사진들을 제시하며 구체적인 해군기지의 규모와 사업부지 선정의 절차적 문제성 등을 설명하자 진지하게 내용을 경청했고, 간간히 생태계 보존문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국가 폭력에 맞서 비폭력 투쟁을 전개해온 강정마을의 주민들과 평화운동가들이 최근 줄줄이 연행, 구속되고 고소고발을 당하고 있는 참담한 소식을 전해 들은 촘스키 교수는 강정문제에 대한 한국 내의 관심을 궁금해 했다. 그는 특히 언론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물은 뒤 "해군기지 건설문제가 결코 제주도만의 문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정마을 투쟁이 전국적 투쟁으로 번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촘스키 교수는 고길천 화백이 멀리 제주도에서 자신을 만나러 온 것에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고 화백은 자신이 손수 그린 예술 작품을 촘스키 교수에게 증정하며 "제주의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준 촘스키 교수의 진보적인 활동에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촘스키 교수는 "이 작품을 내 사무실에 걸어두고 감상하겠노라"고 화답했다.

고 화백이 구속된 강동균 강정마을회장의 옥중서신을 촘스키 교수에게 전달하자 이를 꼼꼼히 읽어내려가며 강동균 회장과 가족들의 근황을 물었다. 촘스키 교수는 "강 회장의 구속 소식이 너무 안타깝다, 꼭 답장을 쓰겠다"고 약속했다.

"제주도 해군기지 반대해야... 환경 파괴도 중요한 문제"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하다가 수감 중인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의 옥중편지를 신은정 감독의 도움을 받아 읽고 있는 촘스키 교수.
 해군기지 반대투쟁을 하다가 수감 중인 강동균 강정마을 회장의 옥중편지를 신은정 감독의 도움을 받아 읽고 있는 촘스키 교수.
ⓒ 신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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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문제와 더불어 제주 4·3항쟁에 대한 이야기도 오갔다. 촘스키 교수는 특히 당시 민간인 학살에 대한 미국의 책임을 거론하면서 미국의 역할에 대한 공식적인 진상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또 "한국의 교과서에서는 4·3항쟁을 어떤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지, 4·3항쟁의 진실이 젊은 세대들에게 구체적으로 얼마만큼이나 전달되고 있는가"라고 물었다.

2003년 하버드 대학에서는 '제주4·3과 동아시아 평화 : 국제법적 과제 21세기 한국의 인권'이라는 주제 아래 국제학회가 열렸다. 제주 4·3연구소와 하버드대의 한국학 연구소 등 여러 기관이 공동주최한 이 자리에서 한·미 석학들은 제주 4·3 전개과정에서 빚어진 민간인 학살에 대한 미국의 법률적·정치적 책임이 분명하며, 이에 대한 국제적인 규명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활동이 제기된 적은 없다.

주어진 시간 20분이 순식간에 끝나고 다음 팀에게 자리를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촘스키 교수는 자신을 만나러 와 준 것과 강정마을 상황에 대한 자세한 소식을 전해준 것에 거듭 고마움을 표시하며 "앞으로 강정마을의 투쟁을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촘스키 교수의 빽빽한 일정으로 미루어볼 때 강정마을 주민들의 바람대로 그가 가까운 시일내에 제주도를 방문하는 것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편, 같은 날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촘스키 교수는 "제주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시도에 반대해야 하는 수많은 이유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엇보다 환경 파괴를 중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긴 세월 동안 미군 기지에 맞서 싸웠던 오키나와를 예로 들면서 "군사기지 건설은 사회 전반에 걸쳐 부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이며, 중국을 견제하고 태평양 지역을 통제하기 위한 미국의 의도가 분명히 엿보이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국제사회의 긴장을 심각하게 증가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촘스키 교수는 "아름다운 자연을 보호하고 평화롭게 살고 싶다는 정당한 권리를 지키기 위한 제주도 주민들의 지속적이고 용기있는 투쟁은 상당히 고무적"이라며 "이들의 고결한 투쟁이 계속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외부로부터 보다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날 인터뷰는 편집과 번역작업을 마친 후 강정마을에 전달할 계획이다.


태그:#강정마을, #노엄 촘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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