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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다시 가슴이 뛰기 시작했고 누군가처럼 이 세상에 소풍을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천성산 문제에 있어 그들이 몰수하여 간 것은 진실이었고, 이반된 것은 인심이었으며, 피폐하여진 것은 우리의 산하였기 때문이다."

 

<조선일보>를 상대로 정정(반론) 보도를 요구하며 '10원 소송'을 냈던 '천성산 지킴이' 지율 스님이 1심 판결에서 승소한 뒤 밝힌 소감이다. 지율 스님이 <조선일보>를 상대로 낸 정정보도청구소송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조원철 부장판사)는 2일 오전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지율 스님은 이날 오후 홈페이지(초록의 공명)에 올린 글을 통해 소감을 밝혔다.

 

<조선일보>는 경부고속철도(대구~부산) 천성산 구간(원효터널) 공사에 반대하며 냈던 '고속철도 천성산 구간 공사착공금지 가처분신청'(도롱뇽소송) 등과 관련해 칼럼과 기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도롱뇽 소송=2조 5000억 손실'을 보도했다.

 

이날 재판부는 "2조 5000억 원이 공사 중단으로 인해 공사비 등 직접적인 손실을 의미하는 것처럼 기사 내용이 작성됐으나 이는 터널공사가 중단된 6개월 동안 발생한 손실액이 약 145억이라는 사실과 대치된다"고 설명했다.

 

<조선일보>는 항소하지 않을 경우 정정보도문을 게재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지율 스님한테 매일 10원씩의 위자료를 주어야 한다. 지율 스님은 지난 해 4월 조선일보를 상대로 소송을 내면서 변호사 없이 '나홀로 소송'으로 진행했다.

 

지율 스님 "'돌아보면 숨이 막힐 것 같은 때'가 많았다"

 

지율 스님은 이날 <초록의 공명>에 올린 글에서 그동안 "돌아보면 천성산 일을 하면서 숨이 막힐 것 같은 때가 몇 번인가 있었다"고 밝혔다. 지율 스님이 언급한 '숨이 막힐 것 같은 때'는 다음과 같다.

 

▲ 공약집까지 만들어 전국의 사찰에 배포했던 대통령(노무현)이 취임도 하기 전에 공사 강행을 지시했을 때.

 

▲ 공동조사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던 환경부 장관이 2박3일의 환경영향 평가서를 법원에 기습 제출하고, 환경영향평가를 재실시하겠다고 했던 법원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돌연 재판을 종결한 후 재판기록을 파기했다고 했을 때.

 

▲10여 개로 중복 지정된 법적 보존지역에 대하여 도롱뇽 한 마리 살지 않는 죽은 산이라고 증언하고, 함께 천성산을 오르며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나도 살아야겠다'며 돌아서 갔을 때.

 

▲공동조사의 결과가 그동안 주장과 다른 결과가 나오자 '대부분의 결과가 여기에 맞지 않으니 결과를 여기에 맞추어 주십시오' 하고 강요하는 속기를 보았을 때.

 

이에 대해 지율 스님은 "가진 사람은 가졌기에 원칙과 약속을 저버렸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가지지 못했기에 원칙과 신의를 저버렸다"며 "그 모든 순간에 저는 제가 살고 있는 세계의 그물이 찢겨져가는 모습을 보았고 그 순간의 선택은 제 몫이었고, 또한 제 몫이 아니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제가 3년이나 지난 이 시점에서 다시 천성산 문제를 돌이켜 법정에 선 이유는 같은 수순을 밟으며 진행되고 있는 대형 국책사업의 논리 때문이었다."

 

"분노를 매개로 정복지의 만행을 정당화 하듯, 언론은 다시 '한 비구니 = 도롱뇽 보호를 위한 수조 원의 혈세 낭비'라는 논리를 되살려 냈고, 정부는 '대한민국 발전의 걸림돌, 법치의 이완, 민주주의의 적폐'라는 논리를 되살려냈다. 그들은 천성산이라는 아이콘으로 환경문제와 사회문제, 그리고 종교인의 사회참여를 비하하고 불신의 골을 파는데 아무런 걸림이 없었다."

 

지율 스님은 "저를 염려하며 이제 그만 산으로 돌아가라는 도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1000번 이상 기사화 되어 우리 사회의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은 하나의 사건을 법정에 세웠고 (판결 결과와 관계없이) 소송과정을 통해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율 스님은 "저는 이 소송을 통해 진실은 언제가 밝혀진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고 500배나 부풀려진 공허한 수치가 가리고 있던 지점과 그 안에서 자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리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저는 지난 5달 동안 혼자 낙동강가를 하염없이 떠다녔다. 아무런 저항도 없이 무너져가고 있는 산하를 보며 주저앉아 통곡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자식 앞에 울지 못하는 부모처럼 그러지도 못했다. 이제 저는 그들이 지시하고 있는 그 혼란스러운 지점으로 다시 돌아간다. 천성산이 순결한 아름다움으로 저를 불러 세웠다면 강은 그 장엄함과 비장함으로 저를 불러 세운다. 계절은 문득 스산하다."


태그:#지율 스님, #도롱뇽소송, #천성산,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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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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