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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안타까움의 수준을 넘어 암담한 상황이 됐다."

 

한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정치권의 한 인사는 '정상문 청와대 공금 횡령사건'을 두고 이렇게 토로했다. 이 인사는 "이명박 정부의 검찰이 노 전 대통령을 죽이려고 한다는 비판도 이제는 설 자리를 잃었다"고 말했다.

 

예상했던 대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의 횡령사건이 주는 충격은 매우 컸다.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 일가 쪽에 건넨 '600만 달러'의 파장보다 더 크고, 깊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횡령했나?... 예산 700억 원 중 200억 원대 달해 

 

정 전 비서관은 여러 차례에 걸쳐 청와대 공금을 횡령한 뒤 자신의 지인 2~3명의 계좌에 보관해왔다. 청와대의 한 해 예산 규모가 700억 원 정도인 가운데, 정 전 비서관이 횡령한 금액은 12억여 원에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 정도에 따라서 횡령 금액이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검의 한 관계자는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금액(12억여 원)이 현재까지 확인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의 예산 중 '어떤 항목'의 돈을 횡령했는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와 관련,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21일 의미 있는 발언을 내놓았다. "정 전 비서관의 횡령은 일반 (예산) 횡령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홍 수사기획관은 "왜 일반 횡령과 다른지 나중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며 "횡령 규모, 조성경위, 사용처 등은 더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 횡령과 다른 항목의 횡령이다. 단순 횡령으로 치부하기에는 수사가 더 필요한 항목의 횡령이다." 

 

이는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의 특수활동비나 업무추진비 등을 횡령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단순 횡령과 다른 항목'이 '특수활동비'를 가리킨다는 관측도 있다. 

 

'특수활동비'란 영수증 처리를 하지 않고 수령자의 서명만으로 사용이 가능한 돈이다. 특히 사용내역은 감사원 결산감사나 국회 자료제출 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그런 점에서 특수활동비를 '묻지마 예산'이라고도 부른다. 현 청와대에 책정된 특수활동비는 221억 원. 매년 청와대에 책정돼온 특수활동비 규모는 100억∼200억 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정 전 비서관이 횡령한 돈의 성격도 검찰의 수사대상이다. 정 전 비서관이 차명계좌에 보관해온 12억여 원 중 극히 일부만 사용했고, 여러 차례 자금세탁을 했다는 점에서 '특정 목적'을 위한 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전날(20일) "(12억여 원 중) 조금 쓰긴 했지만 원형이 그대로 보존된 상태"라며 "다면 무기명 채권을 현금화시켜 차명계좌에 입금했다가 다시 현금화하는 등 차명계좌 형태에 변경을 줬다"고 말했다.

 

검찰은 정 전 비서관이 횡령한 12억여 원이 '개인 비자금'인지 노 전 대통령의 퇴임 이후를 대비한 활동자금인지 등을 캐고 있다. 대검의 한 핵심관계자는 "총무비서관이 1급이긴 하지만 엄청난 권한을 가진 자리"라며 "특히 정 전 비서관은 노 전 대통령과의 통로 역할까지 했다"고 말했다.

 

즉 정 전 비서관이 개인 비자금을 조성하기 위해 청와대 공금을 횡령했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검찰은 12억여 원도 노 전 대통령과 관련이 있는 돈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검찰측은 "현재까지 12억여 원과 노 전 대통령의 관련성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소환시기는 정 전 비서관의 횡령사건 수사로 인해 5월 초로 연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소환시기를 정한 바 없지만 정 전 비서관 수사 때문에 (노 전 대통령 소환이) 조금 연기될 것 같다"고 말했다.

 

"횡령사건은 참여정부의 긍정적 가치나 성과를 무력화할 것"

 

'정상문 청와대 공금 횡령사건'은 '600만 달러'와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참여정부에 큰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횡령의 주체가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고, 권력 핵심부인 청와대의 예산을 횡령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러한 파장을 예상했던지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 공금을 횡령했다는 언론의 보도 내용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그게 사실이라면 부끄러운 일"이라고 토로했을 정도다.

 

국회의원을 지낸 한 인사는 "권양숙 여사의 '3억 원 거짓진술'에 이어 터진 정 전 비서관의 공금 횡령은 600만 달러건을 이해하거나 동정하는 부분까지 무너뜨렸다"며 "이것은 액수나 이유와 상관없이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국민들이 굉장히 실망할 것이다"고 지적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 소장은 '청와대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란 측면에서 박연차 게이트와 '정상문 횡령사건'을 바라봤다.

 

최 소장은 "인사, 자금 등을 총괄하는 청와대 핵심참모가 청와대 공금을 횡령한 것은 헌정 이래 처음일 것"이라며 "노 전 대통령이 재임기간 시스템 정부를 강조해왔는데 이는 대통령을 둘러싼 시스템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만천하에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최 소장은 "청와대라는 조직의 특성상 '통치자금'이 있을 수 있으나 도덕성과 투명성을 내세운 참여정부에서 예산횡령사건이 일어난 것은 국민을 납득시킬 수 없다"며 "이러한 총체적 공직기강 해이는 참여정부가 이룬 여러 가지 긍정적 가치나 성과를 전면적으로 상쇄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태그:#박연차 게이트, #정상문, #청와대 공금 횡령사건, #특수활동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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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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