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만평·만화
우리를 지켜줄 대추리, 그곳으로 가자
[릴레이기고⑮] 대추리에서 깨닫게 되는 것들
06.09.17 19:38 ㅣ최종 업데이트 06.09.20 17:07 한경애 (wildeyed)
▲ 지난 5월 15일, 미군기지 확장예정지인 팽성읍 도두리가 고향인 가수 정태춘씨가 굴삭기가 파 놓은 구덩이에 들어가서 항의하다 경찰에 강제연행당했다.
ⓒ 민중의소리 김철수
작년 가을인가. 교보문고 앞을 지나는데 정태춘, 박은옥씨가 거리 콘서트를 하고 있었다. 살짝 망설이다가 거기 주저앉아 공연을 보기 시작했다.

그건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콘서트였는데, 평택에 그런 일들이 있고 사람들이 싸우고 있었다는 걸 부끄럽지만 난 그날 처음 알았다.

정태춘씨가 대추리에서 목을 다치고, 연행되었다는 이야길 들은 건 그로부터 반년쯤 후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고향은 '집행'당했고.

대체 어떤 국가가 남의 나라 군대를 주둔시키기 위해 제 나라 국민들에게 군대를 동원한단 말인가! 난 너무나 열이 받아 평택문제를 호소하는 글을 쓰고 포털 사이트에 마구 뿌려댔다.

그러나 되돌아온 건 '안보'를 위해 어쩔 수 없지 않느냐거나 '보상금' 받았으니 된 거 아니냐는 어처구니 없는 반응들.

몇 개의 글이 (적어도 댓글로 확인할 때) 참담한 실패로 끝난 후 나는 맘 잡고 앉아 <조선일보>와 <동아일보> 따위의 중앙 일간지들을 검색해서 읽기 시작했다. 미군기지 이전에 관한 논의가 시작할 무렵부터 가능한 한 꼼꼼히.

인터넷의 여론을 보며 '국가'에 대한 맹목과 '미국'을 절대선(혹은 기껏해야 필요악)으로 설정하는 뿌리깊은 '안보불안증'에 넌더리가 났고, 그게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있는 생각인지 그들이 그토록 맹신하는 보수언론의 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 과정은 평소 신문을 거의 보지 않고 살아온 나에게 꽤 공부가 되었다. 보수언론들은 기지 이전 논의가 시작되던 시점인 2004년부터, 미군이 왜 기지이전을 원하는지, 전략적 유연성의 의미가 무엇인지, 심지어 미국의 세계전략이 노골적인 패권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것까지(이는 당연히 미국의 내부 사정이 점점 더 악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똑부러지게 정리해 놓고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기지 이전이 절대적으로 미국의 이익을 위한 것임에 반해 한국정부 쪽은 완전 어리버리하게 대응하고 있다는 것까지 잊지 않고 꼬집는 건 물론이고.

그래 놓고 기지이전의 신호탄인 평택 사태에서는 갑자기 입 싹 닦고, 주민들과 학생들을 폭도로 묘사한 보수언론의 황당한 작태는 일단 넘어가자. 아무튼 그 시점에서 내가 내린 결론은 이런 거였다.

"거대한, 그러나 내부로부터 붕괴되고 있는 군사 제국의 마지막 역습. 불행히도 대추리가 그 첫 번째 전쟁터가 되었다. 대추리는 지구 어딘가의 먼 곳이 아니라 바로 여기 모두에게 닥치고 있는 미래다."


말하자면, 처음에 나는 대추리야말로 미국이라는 군사제국과 가장 먼저 부딪친 최전선이라고 생각했었다.

우리들 지킴이, 평택

▲ 미군기지 확장 대상지역인 경기도 평택 대추리 일대에 대한 국방부의 강제집행을 앞둔 3일 오후 대추분교옆 한 가정집 담에 '황새울 지킴이의 노래' 악보가 그려져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그 후 몇 번이고 대추리, 도두리를 다녀왔는데 그 곳에 다녀올 수 있었던 건 정말이지 굉장한 행운이라 생각한다. 너무 아름다운 곳이라 안 가보면 일단 손해다(자세히 묘사하지 않을 테다. 궁금하면 가보시라!). 골목골목마다 마주치는 모든 담벼락마다 무수한 결의와 이야기들로 가득찬 마을공동체가 거기 있다.

며칠 전의 빈집 철거로 마을이 군데군데 망가졌을 걸 생각하면 가슴이 쓰려 죽겠다. 오래된 사진으로 가득한 대추리 박물관이 헐릴까봐 하루 종일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른다. 그 마을에 가보고서야 비로소 나는 그 곳의 싸움을 지탱시키는 것이 슬픔과 분노를 넘어서는 삶, 그 자체라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그 곳을 지키러 거기 가는 게 아니라, 우리를 지키러 거길 갔던 거였다. 정말이다.

철거 때만 봐도 그렇다. 할 수 있는 걸 하자고 결심하고서도 결국은 무기력감에 사로잡혀 혼자서 울기나 했는데, 막상 대추리 도두리에서 하루 온종일 싸운 어른들과 지킴이들은, 14가구나 지켰다고 기쁨에 겨워 얼싸안고 춤추었다고 한다. 그 곳에서 사람들이 지지 않는 법을, 이기는 법을 계속 개발하고 있는 동안, 여기서 우리들은 너무 빨리 비장해지고 쉽게 허탈해했던 거다.

여기 흘러넘치는 분할선들 때문일까. 온통 연예계 소식과 쇼핑정보로 넘치는 포털 사이트의 대문, 대추리에서의 철거작업이 순조롭게 완료되었다는 기사들과 가슴을 후벼파는 댓글. 이 곳에서 우린 서로로부터 너무 쉽게 분리된다.

그러나 대추리를 가면 깨닫게 된다(특히 외롭고 무력하게 느껴질 때).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얼마나 아름다운 풍경을 만드는지를, 적은 얼마나 단순-명확하고 친구는 또 얼마나 많은지를, 우리의 삶이 얼마나 힘이 센지를 말이다.

주춧돌 하나, 낡은 서랍장 하나, 나무 등걸 하나에도 이야기가 스며들어 있는 마을은 아름답고, 거기에 예쁜 이야기 하나 더 보탤 때 나 또한 반짝반짝 빛난다. 그리하여 그 곳에 갈 때마다 나는 정태춘씨의 노래가 전해주던 것, 저 폭력적인 국가와 군대가 아무리 파괴해도 결코 훼손할 수 없는 것, 우리의 삶을 지탱시키는 아름다움들을 정말 흠뻑흠뻑 배우고 돌아온다. 마음이 쑥쑥 자란다.

평택이 가장 처절한 전쟁터라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미 모든 곳이 전쟁터였을지도 모른다. 가난한 아이들은 일상적인 폭력 속에서 자라나고, 강간과 살인의 기사가 흘러넘치는 세계. 그 안에서 우리는 대체 무엇이 우리를 소외시키는지도 모른 채 포털 사이트의 연예기사를 클릭해대며, 국가의 폭력을 내면화한다. 제 손으로 괴물을 키우며 점점 더 고립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우린 어디에서나 대추리 지킴이가 될 방법을 찾아야만 한다. 세계 어디에도 대추리라는 아름다운 공동체는 없다는 듯 그 곳과 우리를 고립시키는 야만적인 미디어를 돌파하고, 우리들 서로를 연결시키고, 더 많은 사람들을 향해 계속해서 말해야 한다. 그러면 된다. 대추리 도두리 할머니 할아버지 지킴이들이 밥 먹고, 촛불집회에 가듯이 그렇게 하면 된다.

삶에 지쳤다면, 대추리에 가자

▲ 지난 5월 경기도 평택 대추리 평화공원에서 30여명의 주민과 범대위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미군기지 확장반대를 위한 촛불집회 모습.
ⓒ 오마이뉴스 권우성

무력하게 느껴지거나 지칠 땐 대추리 도두리에 다녀오자. 이제 황금빛으로 물결치고 있을 들판을 마음껏 바라보고, 간판도 어여쁜 밥 사먹는 집에서 따뜻한 밥 한 끼 사 먹고, 지킴이 집에 놀러가 밭일도 배우자.

대추리 박물관에서 이야기들로 가득한 사진들을 보며 허브차를 마시고, 노을이 내리는 황새울 들녁을 지키는 새든녀에게 인사하고, 평화 동산의 촛불집회에 가득한 불빛의 하나가 되어 노래하자.

그럼 분명히 깨닫게 될 것이다. 이 아름다운 터전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는 것을. 무신경한 일상에 치여 무뎌지지 않도록, 우리들이 흔들림없이 평화를 향해 걸을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이 곳이 바로 우리들의 지킴이라는 걸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아직 '양심의 명령'을 지킬 시간은 소멸되지 않았습니다. 오는 9월 24일에는 '사람을 먹여 살려온 들녘을, 사람 죽이는 전쟁기지로 만들지 않기 위한' 4차 평화대행진이 서울에서 열립니다. 황새울의 평화를 위해 힘과 뜻을 모아주십시오.

여러분을 9.24 평화대행진 ‘10만 준비위원’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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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17 19:38 ⓒ 2007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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