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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임 법무장관에 내정된 김성호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이 8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사무실에서 축하인사를 받으며 환하게 미소짓고 있다.
ⓒ 연합뉴스
8일 천정배 전 장관의 사의로 공석인 후임 법무부 장관에 김성호(56) 국가청렴위 사무처장이 내정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문재인 전 민정수석 카드를 사실상 포기함에 따라 당청 갈등도 일단 봉합될 전망이다.

강금실, 천정배 전 장관 등 '비검찰 출신'과 달리, 김 사무처장은 검찰 주요 보직을 두루 거친 검찰 내부 인사다. 검찰 조직의 생리를 속속들이 알고 있다는 점에서 김 사무처장의 내정에 법무부와 검찰은 적극 환영하고 나섰다.

열린우리당도 "문재인만 아니면 만사형통"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한나라당을 비롯해 야당들은 "인사청문회를 통해 후보자의 자질, 역량, 도덕성, 특히 정치적 독립성을 철저히 검증하겠다"는 입장이지만 "무난한 인사"라는 데 이견이 없어 보인다.

다만 민주노동당만이 "실망스럽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김성호 내정자가 검찰조직 개혁과 사법부 개혁을 주도할 수 있는 적임자인지 몹시 의문"이라는 것이다.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에서도 "검찰 출신 법무장관이 검찰개혁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겠냐"며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김 사무처장의 내정을 두고 "노 대통령이 맨 처음 생각했던 사법 개혁, 검찰 개혁은 결국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비검찰-검찰-비검찰-검찰... 검찰개혁 실패는 예고됐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취임 초 '전국 검사들과의 대화'를 통해 검찰개혁의 필요성을 천명했다.

당시 노 대통령은 검찰에 대해 "권력기관에 대한 문민통제 때문에 법무부장관을 두는데 그동안 한국에는 통제를 받아야 될 검찰이 법무부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검찰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넘겨달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세계 유일의 첫 번째를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이냐"며 일축했다.

특히 노 대통령은 "나는 검찰조직의 상층부를 믿지 않는다"며 검찰의 자체 개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드러냈고, 자신을 일컬어 "많은 국민들이 개혁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해 대통령으로 선택해준 사람"이라면서 대통령에게 주어진 법적 권한을 행사해 검찰개혁에 나설 뜻을 분명히 했었다.

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를 읽을 수 있는 가장 상징적인 장면은 역시 파격인사로 불리는 강금실 장관의 취임이었다. 검찰 개혁을 추진하려면 사시 기수와 서열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비검찰 출신 인사가 더 적합하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강 장관은 1년 5개월의 임기를 끝으로 청와대로부터 사실상 '경질'됐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강 장관 경질과 관련해 "강 장관이 검찰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고, 개혁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것은 모두 인정한다"며 "그러나 검찰개혁을 이끌어 갈 동력을 확보하기에는 미흡하다는 불만이 있었다"고 말했다.

물론 여권의 이 같은 불만에는 불법 대선자금 수사에서 '노무현 캠프'측이 저지른 잘못보다 검찰에 가혹하게 당했다는 시각도 깔려 있다. 그러나 강 장관 임명 이후 검찰 인사나 감찰권 이양문제 등 현안이 등장할 때마다 마찰음이 나온 것도 사실이다. 송광수 검찰총장이 '대검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문제를 둘러싸고 청와대에 직격탄을 날리는 사태까지 발생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강 장관에게 "관계부처의 책임자로서 검찰을 포함한 법무부 전체의 기강이 바로 서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 '질책'하기도 했다. 결국 노 대통령은 가능한 검찰과의 마찰을 최대한 줄이면서 성과를 얻어내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검찰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리형 인사'인 김승규 장관을 선택했다.

▲ 2003년 노무현 대통령은 의욕적으로 검찰개혁을 추진했다.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는 유행어까지 탄생시킨 '평검사와의 대화' 이후 임기 1년 6개월을 남긴 현 시점까지 노 대통령은 힘있는 검찰개혁을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은 2003년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강금실 법무장관이 '평검사와의 대화'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는 모습이다.
ⓒ 청와대 제공

검찰 출신의 귀환

노 대통령의 검찰개혁 의지가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이 때부터다. 실제 김승규 장관은 대과없이 무난한 업무수행 능력을 보였지만 ▲국가보안법 폐지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 ▲사법개혁 ▲검경 수사권 조정 ▲사형제 폐지 등 참여정부가 추진하는 주요 현안들에 대해 부정적이거나 미온적 태도를 보였다.

당시 참여연대는 "검찰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던 강금실 장관의 갑작스런 경질 후 '안정형' 김승규 장관에 대해 갖고 있던 '개혁 중단'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한변협의 김갑배 법제이사도 "강 장관 하의 검찰 개혁이 ▲직급제 완화 ▲수사에서의 인권보장 ▲검찰수사 독립성 등으로 진행돼왔다"며 "이제 ▲감찰권 강화 ▲조직개편 등 본격 개혁작업으로 옮겨가려는 참이었는데 흐름이 끊어지면 기존 성과들마저 중지되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다시 검찰개혁에 대한 일말의 기대를 갖게 했던 것은 '비검찰 출신'의 귀환 때문이었다. 김승규 장관의 뒤를 이은 천정배 장관은 "그동안 나는 우리 검찰의 변화·개혁을 꾸준히 준비하고 추진해왔다"며 "이런 노력은 앞으로도 꾸준히 계속될 것"이라고 밝혀 개혁 의지를 분명히 했다.

'천정배 법무장관' 카드 자체가 검찰개혁 본격화를 위한 시나리오로까지 평가됐다. 강금실 장관의 사퇴 직후 김승규 장관을 기용한 것도 천 장관을 바로 등용하기에 앞서 보수층을 달래고, 명분과 당위성을 쌓기 위한 노 대통령의 고도의 전략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천정배 장관은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 등 산적한 검찰 개혁 과제를 해결한다는 과제를 안고 법무부로 갔지만 검찰총장과의 수사지휘권 갈등 등으로 인해 큰 진전을 보지 못했다. 천 장관이 "당으로 돌아가겠다"며 중도하차하자, 노 대통령은 사법개혁 마무리의 적임자를 찾았고, 문재인 전 민정수석이 유력하게 거론됐다.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검찰 개혁을 비롯한 사법권 개혁, 검경 수사권조정 문제, 상법 개정 등 경제 서민관련 법 개정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며 "임기 후반기를 맞은 참여정부로서는 벌려놓은 상태로만 있는 이 현안들을 1년반의 임기동안 마무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천 장관도 쉽게 하지 못했던 사법개혁을 자신이 절대 신임하는 인물을 통해 마무리하고 싶었기 때문에 문 전 수석에게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법무장관' 카드는 당청 갈등을 불러왔다. 열린우리당은 문 전 수석이 노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이유만으로 앞장서서 반대했고, 노 대통령은 결국 '문재인 장관' 카드를 버렸다.

이를 두고 차병직 참여연대 집행위원장은 칼럼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법무부 장관의 의미는 무엇이냐"며 "아직도 한참 남은 대선과 그 후보자 선출을 위한 준비 과정에서 목석 같은 태도의 중립을 지킬 위인이 필요한가, 아니면 참여정부 들어 조금씩 진척을 보이고 있는 검찰 개혁의 마무리를 위한 인물이 필요한가"라고 꼬집었다.

그는 열린우리당의 태도에 대해 "난감하다"며 "스스로 부르짖던 검찰 개혁에 손 놓고 야당으로 쏠린 표심에 비위만 맞추면, 남은 대통령의 임기 동안 무엇을 하겠다는 속셈일까, 게다가 유력한 후보자가 검찰 경험이 없다는 걸 부정적 요건으로 내세우는 건 심하다"고 지적했다.

참여정부 또 다른 무능력 드러내나

▲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사앞 검찰 깃발.
ⓒ 오마이뉴스 권우성
참여정부 검찰개혁 방안은 모두 네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문민화와 정무직화를 중심으로 한 인사개혁이었다. 검찰 인사의 최정점으로서의 법무장관, 관료제의 수장으로서의 법무장관을 깨기 위해 노 대통령은 강금실, 천정배 장관을 임명한 것이다. 이런 흐름은 국방부도 마찬가지였다. 인사 개혁은 참여정부 검찰 개혁의 핵심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번 인사를 통해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것이다.

검찰 개혁의 또 다른 카드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핵심인 공판중심주의다. 검사를 수사 중심이 아니라 공소 유지 중심으로 자리매김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한 법안이 국회에서 오랫동안 잠자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실패한 셈이다. 검찰로서는 이러한 법안이 자기 권한 약화이기 때문에 협조하려들지 않을 게 자명하다.

셋째, 검사에 대한 권한 조정 문제다. 검경 수사권 조정을 통해 1차적인 민생 관련 업무는 경찰에 넘기고 검찰은 대형 사건을 수사하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검찰이 자기 견제가 취약하기 때문에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를 통해 자기 통제를 강화시켜야 했다. 그러나 이 역시 해결되지 않고 있다.

마지막으로 내부 혁신 문제가 남았다. 공정한 인사를 위해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인사위원회, 감찰 위원회 등 각종 업무혁신은 어느 정도 성과를 낳았다. 그러나 공안 기능이 축소되면서 정보 기능이 강화돼 검찰이 또 하나의 정보기관화 하고 있다는 문제점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있다.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노 대통령이 맨 처음 생각했던 검찰 개혁이 임기 1년 반을 앞둔 상황에서 몇 점 정도 될까, 30점 수준도 안 된다"며 "대통령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분야인데도 실패한 것은 또 다른 무능을 드러낸 것"이라고 강하게 성토했다.

이 의원은 또 "정확하게 목표를 정해놓고 일관성에 기초한 인사를 통해 이것을 집행시켜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갈지자 인사를 하다보니 아무 것도 실천하지 못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검찰 개혁이 정권 초기 의지대로 강하게 추진됐다면 이를 통해 사회 전반의 개혁을 본격화 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노무현 정권의 검찰 개혁 실패가 주는 후과는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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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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