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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02년 11월 국방부 앞에서 한탄강 댐 건설 반대 시위를 벌이는 주민들.
ⓒ 환경운동연합

아이들에게 한국이 어떤 나라냐고 물으니, 'UN이 정한 물부족국가'란다. 건교부와 환경부가 자료를 내고, 언론들이 나서 전국민 캠페인을 벌인 탓이다.

덕분에 국민들은 물을 아껴야겠다는 생각도 있지만, 댐을 지어서라도 물 공급을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깊다. 따라서 댐 건설을 반대하는 환경단체들의 활동이 철없어 보이고, 주민들의 운동 또한 지역이기주의의 표본으로 여겨지고 있다. 환경운동단체가 댐의 환경적·사회적 영향을 걱정하노라면, 시민들은 금방 물부족국가 얘기를 꺼내며 정색을 한다.

굳건한 '물부족국가의 신화'가 얼마나 근거가 있는 것인지, 답답한 마음에 확인에 나섰다. 우선 건교부 수자원정책과에 물었더니, UN 기구인 인구행동연구소(PAI, Population Action International)에서 국민 1인당 연간 '물이용가능량'을 조사했는데 한국은 1520톤밖에 안돼 리비아·모로코·이집트·오만 등과 함께 물부족국가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1인당 이용가능한 물의 양이란

* 이용가능한 물(renewable water)이란 강수량에서 증발산량을 뺀값을 인구수로 나눈 값으로, 1인당 평균 이용가능한 물의 양이라는 개념이다. 한국의 경우, {수자원 총량(1280억톤)-증발산량(449억톤)}/인구(4800만명)으로 1인당 이용가능한 물의 양은 1520톤 가량이다.
/ 염형철
'물이용가능량'이란 빗물 중 하천으로 흘러들어 오는 양을 인구수로 나눈 것인데, 1700톤 이상이면 물 풍요국, 1700-1000톤이면 물부족국, 1000 미만이면 물기근국이라고 한다.

하지만 PAI의 홈페이지를 직접 살펴보니, PAI는 인구문제 해결에 관심을 둔 미국의 사설연구소일 뿐, 유엔의 기구나 지원을 받는 단체가 아니었다. 더구나 인용했다는 '지속가능한 물 : 인구와 이용가능한 물 공급의 미래(Sustaining Water : Population and the Future of Renewable Water Supplies)'에는 건교부가 주장하는 내용이 실려 있지 않았다.

도리어 PAI는 위 분류방법을 Falkenmark 박사에게서 빌려왔는데, 다른 수리학자들과 전문가들은 인류가 건강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물의양의 기준으로 1000톤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을 함께 밝혔다. 또 Falkenmark 박사의 높은 기준은 여기에 속한 나라들이 인구성장을 걱정하지 않을 경우 물 부족에 처할 수 있다는 '경고등(warning light)'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쓰고 있다.

결국 인구연구소인 PAI는 인구 증가의 위험을 알리기 위해 위의 지표를 사용했을 뿐, 여성의 출산율이 1.36명으로 곤두박질쳐 2010년대부터 인구가 줄어드는 한국을 걱정한 것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환경부 수도정책과에 물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UN PAI 얘기를 꺼냈다. 하지만 PAI는 UN기관이 아니라고 하자, PAI의 기준을 UN의 기구인 UNEP(United Nations Environment Programme)에서 널리 인용하고 있으니 UN의 의견으로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인용자료로 UNEP가 발행한 지구환경보고서(Global Environment Outlook 3)를 들었다.

하지만 실망스럽게도 이 책 또한 환경부의 편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 곳 어디에도 한국을 물부족국가로 염려한 구절은 없었으며, 도리어 댐에 의한 생태계의 단절과 파괴를 우려하고, 강의 관리과정에 다양한 사회집단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내용들을 주로 권고하고 있었다.

따라서 UN이 한국을 물부족국가로 지정했다거나, 한국의 물문제를 걱정해 물공급을 늘릴 것을 자문했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볼 수 없었다. 실제로 최근 물에 대한 세계의 논의(지난해 9월의 지구환경정상회의, 이 달 16일부터 열리는 세계 물포럼 등)는 '안전한 식수'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최소한의 위생처리도 못한 식수를 마시는 제3세계 11억의 인구들, 특히 수인성 질병으로 매년 사망하는 500만명에 달하는 사람들을 줄이기 위해, 세계가 어떻게 협력하고 지원할 것인가였다.

결코 충분한 물을 개발하고 수질시설을 갖춘 선진국들에 물을 추가 개발해야 한다는 것은 논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OECD 국가들의 경우, 1980년 이후 1인당 물사용량이 11%나 줄었고, 9개 나라에서는 인구증가와 산업성장을 감안하고서도 총취수량이 감소했다(OECD 환경보고서 2000).

한국의 경우도 1997년 1인당 하루 물 공급량이 409리터에 달했으나, 2001년엔 374리터에 불과했다. 국민들의 물 절약 의식 발달, 물 이용의 효율화, 재활용의 확산, 송수관 누수 저감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UN이 한국의 물 부족을 걱정하는 것으로 왜곡되고, '1인당 물이용가능량'이란 그저 그런 개념이 한국에서 각광받게 되었을까? 국토 면적이 좁기 때문에 1인당 물이용 가능량은 적지만 밀집된 인구가 물을 집약적으로 사용할 수 있고, (수량은 많지만 이용할 수 없는 나라와 비교하여) 토질이 양호해 이용가능한 물이 많은 한국의 특성이 무시된 단순도식이 유행할 수 있었을까?

나는 아무래도 물부족국가를 앞장서서 주장했던 건교부의 수자원정책과와 환경부의 수도정책과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건교부 수자원정책과는 댐건설을 위해 정책을 개발하는 부서이니 따로 설명이 필요도 없을 것이다. 또 환경부의 수도정책과도 물절약을 담당하는 부서이기는 하지만 또 상수도 사업을 함께 추진하는 부서다. 물이 절약돼도 자신들의 성과이고 최소한 관련 예산을 타내는 데는 유리한 방법이니, 어쨌든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이를 두고, 환경부 수도정책과는 국민에게 적극 홍보하기 위해 다소 과장한 측면이 있지만, 물절약을 위해 불가피했다고 말한다. 물절약을 위해서라니, 환경단체로서 약해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다. 이미 한국은 이용가능한 물의 양 중 45%를 사람이 사용하고 있으니 인간이 아닌 생물들은 그만큼 힘들게 연명하고 있고, 남는 물의 여력이 없으니 사회 자체도 쉽게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물을 절약하겠다는 것은 우리 사회와 생태계의 안정성을 높이는 일이므로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하지만 목적이 옳더라도 곧바로 수단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의 자발적 동의와 실천에 의한 것이 아니라, 유엔의 권위까지 차용해 거짓정보를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오래갈 수 없고 진심어린 참여를 이끌 수 없다. 당장 건교부와 환경부는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선전과 과장된 '협박'을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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