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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 회원들이 차도를 봉쇄하고 시위를 하고있다.
ⓒ 이경석
삼청교육대 피해자 및 피해자가족, 유가족 등으로 구성된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회장 전영순) 회원 10여명이 지난 23일 오후 2시 한국은행 본점 앞에서 도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벌이던 중 회원 양동학(49)씨가 칼로 자신의 복부를 절개하고 내장이 쏟아진 채로 도로 한복판에 쓰러져 충격을 주고 있다.

오후 2시경 대부분 노년의 회원들 10여명은 한국은행 본점 인도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4차선 한쪽 도로를 완전히 차단한 가운데 요구사항을 외치며 10분간 시위를 벌였으며, 중앙에서 시위를 주도하던 양동학씨는 웃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허리춤에 차고있던 칼을 꺼내 자신의 복부를 찌른 후 수평으로 절개했다.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양씨의 절개된 복부에서는 창자가 쏟아지고 피가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그런 상태로 3-4분 가량을 서있던 양씨는 결국 도로에 쓰러졌고, 뒤늦게 시위를 막기 위해 출동한 경찰들이 사건 현장 주변을 봉쇄했으며 양씨는 119에 의해 백병원으로 옮겨졌다.

▲ 시위도중 칼로 복부를 절개한 양동학씨. 절개된 복부에 흘러내린 창자가 보인다.
양씨가 실려간 뒤 현장에서 사건을 목격한 시민들과 기자들은 경악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시위에 참여한 연로한 회원들은 인도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하거나 양씨를 살려달라며 오열했다.

양씨는 지난 1980년 당시 삼청교육대에 끌려갔다 온 피해자로, 삼청교육대에서의 학대와 고문으로 장애인이 돼 장애인단체의 조직국장을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 중 윤옥자(82)씨는 “아들이 이유도 없이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4일만에 죽어 나왔다”며 “맞아죽은 내 아들을 살려내라”고 오열했다.

또한 1980년 9월 삼청교육대에 끌려가 2주간의 지옥 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오종학(60세·무직)씨는 “삼청교육대로 인해 장애에 전과까지 붙어 취직도 할 수 없었다”며 지체장애 6급 증명을 내보였다.

▲ 오열하는 노년의 삼청교육대인권운동연합 회원들.
ⓒ 이경석
이어 오씨는 “국가가 책임있는 자세로 적극적 보상에 나서야 한다”면서 “오늘을 계기로 전국에 있는 수만명의 삼청교육대 피해자들이 단결해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지속적인 시위를 벌여 나갈 것”이라고 말해 금번 사건이 몰고 올 파장을 예고했다.

시위 참가자들은 △ 삼청교육대 소관 업무를 국방부에서 법무부 인권과로 이관할 것 △ 삼청교육대 피해자 명예회복 특별법을 정부입법(안)으로 임시국회에 제출할 것 △ 국가적 차원의 실질적 피해보상 등을 요구했다.

덧붙이는 글 | 사건 당시의 충격과는 달리 당일 언론과 방송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사건당시 현장에는 주요 방송사 및 각 언론기관의 기자들이 수십 여명 현장을 취재/촬영하고 사진을 찍었으나 당일 9시 뉴스를 비롯한 주요 TV뉴스에서는 어느 방송사도 단 한 줄 보도하지 않았다. 연합뉴스에 ‘자해 소동’이라는 정도의 평가로 간략한 기사가 실렸을 뿐이다. 한 사람을 한낮 도심에서의 할복까지 몰고 간 사건에 대해 한국사회에는 아직도 뭔가 말 못할(?) 사연이 있는 듯 하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적어도 누군가가 생명을 담보로 무엇인가와 싸우고자 한다면, 그 처절함의 옳고 그름을 떠나 우선 알려져야할 필요가 있다고. 위독하다는 양씨의 빠른 회복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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