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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다투는 공항 수출용 짐을 운송하는 화물기사 김봉갑(경기. 47) 씨는 요즘 들어 유난히 운전이 조심스럽다. 쌓인 눈이 얼어붙어 미끄러운 길 때문만이 아니다. 기온이 떨어지면서 그가 모는 삼성 야무진 1톤 트럭이 잦은 고장으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A/S를 받기는커녕 매달 교체해야 하는 부품마저 구하기 힘든 상황이기 때문이다.

며칠 전에는 짐을 실으러 가는 도중에 트럭에서 연기가 나기 시작하더니 결국 도로 위에서 시동이 꺼졌다고 한다.
"기름 펌프가 막혀서 기름통이 오그라드는데 그것도 모르고 열어봤어요."
김봉갑 씨는 차 밑으로 두 손을 넣고 직접 펌프질을 해서 겨우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후에도 3번이나 더 차가 멈춰섰고, 그 때마다 손으로 펌프질을 해서 간신히 짐을 싣고 돌아왔다.

"손이 다 시퍼렇게 멍들었을 정도였어요. 그래도 그러면 일시적이나마 차가 가니까…. 차가 서도 부를 수 있는 A/S가 없으니까 어쩔 도리가 없었죠"

김봉갑 씨는 "추워지면서 잔 고장은 허다하게 있는 일"이라면서 부품을 구하는 것도 큰일이라고 했다. 이번 고장에도 부품이 없어서 이틀동안 차를 세워 두다가 길이가 다른 현대 부품을 써서 임시로 수리했다고 한다.

"삼성 부품이 어디서 판다는 말만 들으면 무조건 가서 사요. 가격이 문제가 아니죠."
보통 5000km 정도를 주행하는 한 달이면 교체해야 하는 에어크리너, 필터, 오일필터 등도 삼성순정부품이 아니면 고장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 발생하는 고장은 보증기간에도 무상수리가 불가능하다고 보증서에 명시되어 있을 정도다.

간신히 부품을 구한다고 해도 전문 A/S맨이 없는 이상,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카센터에서는 출시된 지 얼마 안 된 삼성 제품의 특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작은 고장을 고치는 일도 간단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속이 하나 잘못되어도 다 뜯어 봐야 아니까 히터만 갈면 되는데 전부 다 간 적도 있습니다."

한편, 김봉갑 씨의 경우 앞으로 영종도 공항에까지 일이 확대되면 지금보다 더 큰 트럭으로 바꿀 예정인데 "이제 삼성차는 팔려고 내놔도 못 판다"면서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그가 작년 5월에 3년 동안 타던 현대 트럭을 450여 만원에 팔고 860여 만원에 구입한 삼성 트럭을 지금 팔려면 300만원도 못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되었으니 누가 사겠어요. 고철덩어리나 다름없죠."

"전화도 정말 많이 했습니다"
작년 11월, 김봉갑 씨는 갑작스러운 삼성상용차 퇴출소식을 들었지만 문의할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그가 알고 있던 A/S직원에게 전화를 하니 이미 실직을 당해 노사분규를 하고 있다고 했다. 트럭을 구입한 대리점 역시 우편으로 일방적인 해직통보만 받은 상태였다.

퇴출 이 후에도 매달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할부금만이 유일한 끈이었다. 차를 구입하면 7년 동안 A/S를 받을 수 있는 법적인 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마당에 할부금만 꼬박꼬박 내기에는 억울했다. 그러나 삼성 캐피탈에서는 할부금을 안내면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힌다는 경고를 할 뿐이었다.
"황당한 거죠."
그는 고민 끝에 소비자고발센터에 신고도 해보았지만 석 달이 지난 지금까지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김봉갑 씨가 차를 살 당시에는 삼성 1톤 트럭을 1년 이상 끌어본 사람이 거의 없어서 몇 년 이후의 성능까지 정확하게 검증이 안된 상태였다. 그런데도 삼성트럭을 구입한 데는 삼성이라는 브랜드 이미지가 50% 이상 작용했다고 한다. 고지서를 받으면 다음 날 모두 납부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일처리가 확실한 김봉갑 씨는 평소 A/S가 확실한 삼성의 열렬한 팬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을 포함한 가전제품은 모두 삼성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황이 이렇게 되자 얼마 전에는 삼성카드를 가위로 잘라버렸다고 한다.
"저렴하게 주유할 수 있는 카드를 없애면 나만 손해지만 보는 것도 싫더라고요."

"차라리 차를 반납하고 돈을 받는 게 제일 나아요. 내가 탄만큼 까고라도 보상을 받아서 현대나 기아차로 바꾸고 싶습니다."

김봉갑 씨는 인터넷 상의 서명운동에 대해서는 "무식해서 인터넷, 컴퓨터은 잘 모른다"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러나 시위가 있다는 것을 알면 만사 제치고 참여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이고 있다.

그는 "삼성퇴출로 인한 피해를 고발하는 현수막을 만들어 달고 다니는 트럭도 봤다"면서 "지금까지는 나온 지 얼마 안 돼서 괜찮았던 트럭들이 모두 고장나기 시작하면 정말 큰 난리가 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덧붙이는 글 | 작년 5월, 삼성 야무진 1.2톤 트럭을 사고 삼성가족이 되었다고 여기던 화물기사 김봉갑 씨. 그가 삼성 상용차 퇴출 이후 겪은 물질적 정신적 피해는 유난히 추웠던 올 겨울 추위보다 더 혹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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