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데꼬가, 1인당 5천원" 베트남 철근공의 제안

[아파트 철근공 잠입취재③]
얼굴 없는 '오야지'와 쥐구멍... 불법하도급 천태만상

김성욱
지난 4월 인천 검단 신도시에 지어지던 GS건설 아파트의 어린이 놀이터 부지가 무너졌다. 입주를 불과 7개월 앞둔 이 아파트가 붕괴한 이유는 다름 아닌 '철근 누락'. <오마이뉴스> 기자가 지난 9월 한달간 대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에서 철근공으로 일하며 보고 겪은 현장을 전한다. [편집자말]
베트남 철근공들은 혹시 모를 '불법 체류 외국인 단속'에 대비해 공사장 곳곳에 도망갈 수 있는 '구멍'을 확보해둔다고 했다. ⓒ 김성욱
"삐뽀삐뽀 몰라? 삐뽀삐뽀? 너네 단속 뜨면 어떡하냐고."
"저기, 저기, 구멍."

오후 3시 새참 시간. 철근 다발 위에 주저앉아 새참으로 나온 캔커피를 들이키던 베트남 노동자 르땅OO(20)과 수OO(21)이 동시에 한 곳을 가리켰다. 멀리 공사장 펜스 구석에 난 작은 구멍이었다. 한국인 철근공 김씨(50)가 손짓발짓하며 물은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베트남 철근공들은 한국 노동자들이 '쥐구멍'이라 부르는 곳의 위치를 정확히 꿰고 있었다. 본래 배수로 확보 등의 용도로 만든 좁은 문으로 보였지만, "불법 외국인들은 단속 나올 때를 대비해 현장 요소요소에 쥐구멍을 둔다"는 게 김씨 설명이었다. 단속이란 출입국관리소에서 하는 '불법체류 외국인 단속'을 말했다. 자주 있진 않지만, 한번 단속이 뜨면 외국인들이 필사적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공사장에서 넘어지거나 떨어져 죽는 사고까지 난다고 했다.

쥐구멍과 빨간 모자
대전의 한 아파트 신축 공사현장.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있다. ⓒ 김성욱

보통 한국팀과 베트남팀은 작업하는 동이 달랐지만, 그날은 한국팀이 먼저 일하고 있던 10동 지하층에 베트남팀이 뒤늦게 투입됐다. 한국인 철근공들은 사측에서 공사를 빨리 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주는 거라며 불쾌해했다. 그래서인지 철근을 옮기다 베트남 노동자들이 걸리적 거리기라도 하면 "씨펄 절로 안 가?"라고 쌍욕을 퍼붓기 일쑤였다.

새참 시간에도 한국팀과 베트남팀은 서로 섞이지 않았지만, 넉살 좋은 김씨는 베트남 노동자들과 말을 잘 텄다. 김씨는 가까이 앉은 다섯 명의 어린 베트남 철근공들에게 비자가 뭐냐고 물었다. 세 명은 관광비자, 두 명은 학생비자라고 했다. 끝에 있던 한 베트남 청년이 어눌한 한국말로 "불법, 불법"이라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낄낄 웃었다. 그의 말대로 현행법상 관광비자나 학생비자를 가진 외국인은 건설 현장에 취업할 수 없다. 그들은 다른 베트남 동료들의 비자도 다 비슷하다고 했다. 이들이 혹시 모를 '단속'에 대비해 쥐구멍을 찾아두는 이유였다.

대화가 좀 길어지자 멀리서 빨간 안전모를 쓰고 지켜보던 한 베트남인이 고개를 까딱거리며 눈치를 줬다. 수OO과 르땅OO이 다 마신 캔커피를 구기고는 말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빨간색 안전모는 팀장이나 반장급을 뜻했다. 스치듯 몇 번 본 게 전부였지만 그는 보통 베트남 철근공들과 달리 경험이 많아 보였고, 한국인 관리자들과 작업에 대한 소통도 가능한 것 같았다. 김씨가 내게 말했다.

"저 놈, 저 빨간 모자가 쟤네 팀장이야. 너 저런 베트남팀 팀장들이 돈을 얼마나 쓸어 담는지 모르지? 쟤들 밖에서 벤츠 타고 다녀. 돈이 어디서 나긴? 아까 앉아있던 애들, 쟤네들 한 대가리당 몇 만원씩 떼가잖아."
불법 하도급 천태만상
지하주차장 철근 작업이 한창이다. ⓒ 김성욱

나를 비롯한 내국인팀이 근로계약을 맺은 회사는 원청인 A건설로부터 철근콘크리트 공사 하도급을 받은 B사였다. 한국인들은 매월 첫날 한달에 한번씩 근로계약서를 새로 써야 했는데, 공사 상황에 따라 언제든 쉽게 인력을 줄이고 싶어 하는 회사측 요구였다. 급여 역시 B사가 직접 지급했다. 일당에다 한 달간 실제 일한 날짜, 즉 '공수'를 곱한 금액이 매달 마지막날 통장으로 들어왔다.

"근데 베트남팀은 우리하고 달라. 단종(하도급사)에서 팀장들한테 톤당이나 평당으로 도급을 한번 더 주는 거야. 그래서 단종이 팀원들 월급을 팀장한테 한꺼번에 줘. 자기들 뗄 거 먼저 떼고. 그럼 팀장은 또 중간에 자기 먹을 거 떼고 팀원들한테 내려주고. 다 불법이지.

심지어 팀장들 중에 팀원들 인건비 뭉테기로 받아다 경마하고 노름에 다 날리고 도망가는 놈들까지 있다니까. 그럼 어떻게 되겠어. 임금 못 받은 외국 애들이 단종에 찾아가서 자기들 일당 내놓으라 할 거 아냐. 그래서 요즘 진화된 게, 단종이 베트남인들한테도 우리한테처럼 직접 임금을 쏴주는 거야. 그런 다음 나중에 팀장이 팀원들한테 두당 몇만원씩 '페이백'을 받지. 어떤 팀장들은 아예 팀원들 통장을 다 걷어서 관리한대.

이런 걸 '똥 뗀다'고 해. 단종에서 베트남 애들 일당으로 주는 게 1인당 24만원이라고 치면, 팀장이 거기서 한 대가리당 4만~5만원씩 똥을 떼. 그럼 단순 계산만 해도 얼마냐. 팀원이 20명이면 하루에 떼는 똥만 80만~100만원이잖아. 한 달에 20일 일 나갔으면 1600만~2000만원 떼는 거지.

근데 이걸 팀장 혼자 다 먹으면 되겠어? 탈 나잖아. 눈 감아주는 단종이나 원청 직원들한테 또 얼마씩 상납해야 되는 거야. 다 한통속이라고. 저번에 한번은 내가 관리자라고 착각했는지, 어떤 베트남 팀장이 나한테 와서 대놓고 그래. '팀장님, 우리 일 잘해, 다음에 우리 데꼬 가, 1인당 5천원.' 다음 현장 생길 때 자기네 팀 넣어주면 베트남 애들 1인당 5천원씩 나한테 준다는 소리야. 1인당 5천원만 해도 20명이면 하루 10만원에, 한달에 20공수 일했으면 200만원 아냐."
베트남 철근공들이 퇴근하고 있다. ⓒ 김성욱

김씨 말대로 하도급사가 외국인 팀장 등에게 한번 더 도급을 내리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 건설산업기본법은 한 단계의 하도급까지만 인정할 뿐, 하도급사가 다시 하도급을 내리는 것은 금지하고 있다. 이같은 불법 하도급 사례는 '순살 아파트' 사태의 시발점이 된 GS건설 검단 아파트 현장에서도 포착된 바 있다. 국토부는 7월 5일 GS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 조사 발표 때 이렇게 밝혔다.

"불법 하도급과 관련해 지금 현재 저희들이 확인한 결과로는, 사고 지점 시공팀 12개 중 4개 팀 팀장이 팀원 임금을 일괄 수령한 후에 하청 팀원 간 근로계약서와 다르게 임의로 배분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부분들은 수사기관의 협조를 받아 불법 하도급 여부에 대해 판단할 수 있도록 계획 중입니다." (김규철 국토교통부 기술안전정책관)

국토부 등에 확인한 결과, 문제가 된 시공팀 팀원의 상당수도 외국인들이었다고 한다. 이들이 합법적인 비자로 취업했는지 등은 밝혀지지 않았다. 사건을 맡은 인천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아직 관련 수사를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얼굴 없는 오야지, 철근이사

외국인 팀장을 통한 불법 하도급 사례는 그나마 눈으로 보이는 경우였다. 나는 다른 노동자들이 귀띔해주기 전까지 이곳 현장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철근이사', 즉 '오야지'가 있다는 걸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놀라워하는 내게 한국인 철근팀 팀장인 이씨(61)가 말했다.

"여기도 오야지가 있지. 박OO이라고. 너는 얼굴도 못 봤을 거야. 현장엔 거의 안 오니까. 오야지를 '철근이사'라고도 해. 재하도급은 불법이니까 오야지가 단종(하도급사)에 속한 직원이라고 위장을 하는 거지. 맨 처음에 원청이 단종한테 하도급을 주잖아. 철근은 톤수로 계약을 하니까, 단종이 톤당 40만원에 하도급을 받았다고 해봐. 여기까진 합법인데, 문제는 단종이 실제로 직접 공사를 하는 게 아니라고. 그 아래 철근이사를 불러서 또 하도급을 주는 거야. '너 톤당 35만원에 들어올래?' 이렇게.

여기서 철근이사가 '오케이' 하면, 그 다음부턴 철근이사가 알아서 공사를 다 하는 거야. 전체 철근 톤수가 5000톤인 현장이라고 하면, 톤당 35만원이니까 곱하기 5000톤 하면 총 17억 5천만원이지? 그럼 철근이사는 무조건 이 공사를 17억 5천만원 안에서 쇼부를 봐야 돼. 자기 아는 팀장들 불러다 인력 대가면서. 그렇게 공사 다 끝냈는데 만약에 오바해서 18억 5천만원 들어갔다? 그럼 철근이사가 1억 손해 보는 거야. 이건 철근이사가 알아서 메꿔야 돼. 단종은 처음에 재하도급 줘버리고 나면 손 딱 떼거든. 근데 공사가 16억 5천만원에 끝나잖아? 그럼 철근이사가 1억 버는 거지.

이러니 철근이사는 무조건 싼 인력만 찾는 거야. 비싼 내국인 안 쓰고, 하다 하다 이제 베트남 불법 체류자(미등록 이주 노동자)들까지. 이렇게 자꾸 하도급 단계가 늘어나고 공사대금이 줄어드니까 부실 공사도 나지. 책임져야 될 윗대가리 놈들이 책임은 안 지고 돈만 쏙 빼먹고 외주 내려버리는 거 아냐. 그 다음에 공사를 어떻게 하든 나 몰라라 하고.

근데도 도급을 하는 이유가 뭐겠어. 가만 생각해 보면 단종은 그냥 앉아서 돈 번 거 아니냐? 애초에 톤당 40만원에 떼다가 35만원에 줬잖아. 5만원 곱하기 5000톤 하면, 아무 것도 안 하고 중간에서 2억 5천만원 벌어간 거잖아. 그 위에 원청도 똑같은 짓을 단종한테 했을 거고. 요즘 현장 어딜 가도 철근은 다 이렇게 굴러가. 불법부턴 계약서도 없을 거야. 다 구두로 하겠지."
부실공사 책임 아래로 넘기는 거대한 '먹이사슬'
한 철근공이 가설 난간 위에 서서 5미터 높이의 벽 위쪽에 들어가는 철근 작업을 하고 있다. ⓒ 김성욱

이씨 말처럼 건설현장에서 회사나 오야지, 팀장들이 불법 하도급을 지속하는 이유는 그게 훨씬 편하고 안정적으로 돈을 버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원청은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 공사를 하는 대신, 챙길 돈을 떼고 하도급사에 도급을 내린다. 이로써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따르는 노동법적 책임을 하도급사에 전가하고, 공사할 때 발생할지 모르는 안전사고나 부실공사에 대한 위험을 분산한다.

하도급사는 공사에 필요한 인력을 그때그때 수급하고 철수시키는 데 드는 수고로움과 비용, 도급비로 받은 공사대금을 초과할 경우 생길지 모르는 손해의 불확실성을 철근이사에게 떠넘긴다. 철근이사 역시 그 아래 도급팀장들에게 이를 똑같이 되풀이한다.

문제는 이 다단계 구조가 현장에서조차 지각되지 않을 정도로 불투명하다는 데 있다. 불투명하다는 것은 관리는 안 되고 책임은 흐릿해진다는 뜻이다. 끊이지 않는 부실공사는 책임을 아래로만 떠넘기는 이 거대한 먹이사슬의 부산물이다.

같은 팀 철근공들 중에도 나처럼 철근이사 '박OO'의 얼굴을 보지 못한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 얼굴 없는 철근이사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던 사람은 나뿐이었다. 나는 한 달간의 취업을 마치고 현장을 떠날 때까지 끝내 '박OO'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베트남 철근공들이 지하주차장 철근 공사를 하고 있다. ⓒ 김성욱
베트남 철근공들이 이동하고 있다. ⓒ 김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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