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01.31 07:13최종 업데이트 23.08.23 14:23
  • 본문듣기

전병목 국민연금 재정추계전문위원회 위원장이 27일 정부서울청사 별관 브리핑룸에서 제5차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산결과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월 27일 보건복지부는 서둘러 '국민연금 재정추계 시험계산 결과'를 발표했다. 보건복지부는 이를 발표하면서 "국회 연금개혁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의 시산결과 요청에 따라 연금개혁 논의 지원을 위해 당초 일정(2023년 3월)보다 2개월 앞당겨 재정추계 시산결과를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연금 개혁을 몹시 서두르고 있다는 느낌이 물씬 풍긴다.

뜨거운 감자?

국민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진영을 막론하고 같은 목소리를 내는 몇 안 되는 사례다. 국민연금 개혁론의 핵심 주장은 다음 네 가지로 구성된다.


① 지금으로부터 약 30년이 지나면 연금으로 쌓은 돈이 바닥난다.
② 기금이 고갈하면 노인에 대해 지급해야 할 연금은 모두 미래 가입자(근로 세대)가 부담해야 한다.
③ 기금이 고갈나서 미래 가입자가 내는 보험료로만 노인에게 연금을 지급하면 미래 젊은 세대의 부담이 너무 커진다.
④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면 지금부터 가입자(미래의 연금 수급자)가 더 많이 납부해야 한다(또는 덜 받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하나씩 살펴보자.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아래 표 '재정수지 전망'에 따르면, 2041년부터 국민연금으로 지급하는 돈이 걷는 돈보다 많아진다. 부족분은 그동안 쌓아온 기금으로 충당할 것이다. 하지만, 이 기금도 2055년이 되면 바닥난다고 한다. 이 표가 보여주는 점이 이것이다.
 

재정수지 전망 ⓒ 보건복지부

  
기금이 고갈되면 어떻게 되나? 이 계산에서는 당시의 '가입자'가 전액 부담해야 한다고 가정한다.

예를 들어 현재의 제도대로라면 1990년생(현재 33세 가입자)은 65세가 되는 2055년부터 국민연금을 받게 되는데, 기금은 한 푼도 남아있지 않게 된다. 따라서 2055년부터 지급하는 국민연금은 모두 당시에 국민연금에 가입한 사람들(젊은 세대)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그럼 2055년부터 젊은 세대는 국민연금에 얼마를 부담해야 할까? 아래 표 '부과방식비용률'이 이를 보여준다. 이에 따르면, 2060년이 되면 그들 월급의 30%(본인이 15%, 고용주가 15%)가 들어간다고 한다. 큰가? 그렇다!
  

부과방식비용률 ⓒ 보건복지부

  
이 부분이 언론이 앞다퉈 보도하는 내용이다. 이것이 왜 문제일까?

다시 앞의 1990년생 사례로 살펴보자. 이 청년은 은퇴할 때까지 매달 빠짐없이 국민연금 보험료(본인이 월급의 4.5%, 고용주가 4.5%, 총 9%)를 성실히 납부할 것이다(가령 총 1억 원 납부).

하지만 국민연금공단은 그/그녀에게 65세 이후 여생 동안 총 2.5억 원 이상(낸 돈 보다 약 2.5배 이상)을 지급하게 된다. 즉, 현재의 국민연금은 본인이 낸 돈보다 훨씬 더 많이 받는 구조이다.

2055년 당시 30대 청년은 국민연금 내느라 등골이 휜다는 소리가 절로 난다(월급의 30%). 이들은 이게 다 노인들에게 국민연금을 너무 많이 지급하기 때문이라 믿는다. 2055년 당시 노인들은 자신들이 젊어서 낸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받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지금 국민연금을 내지도 않고, 늙어서 받지도 않겠다'며, 국민연금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예견할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더 많이 내든지(보험료율 인상), 늙어서 덜 받겠다(소득대체율 인하)고 약속해야 한다는 주장에 다수가 동조하고 있다. 이것이 '염치가 있는' 사람의 올바른 태도라는 것이다.

중요한 가정이 빠졌다
 

여기까지 보면 국민연금제도를 시급히 개혁해야 할 것만 같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되지 않도록 더 걷거나 덜 받거나 혹은 이 둘을 모두 시행해야만 할 것 같다.

이런 판단을 하기 전에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사실이 있다. 이 주장은 겉으로 드러나 있지 않아 잘 보이지 않지만, 매우 중요한 가정에 의존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문제는 '가입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가 그것이다.

더 직접적으로 말하면 국민연금에 세금(국고)를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가령, 위 표에 따라 '부과방식비용률'을 계산할 때, 30%를 부담해야 하는 주체는 오직 가입자뿐이다.

이를 두고 나는 과거 칼럼에서 국민연금제도에도 '각자도생의 원리'가 철저히 관철돼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이유야 다양하지만, 국민 모두가 국민연금에 가입하고 보험료를 납부하는 것은 아니다.

2018년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 따르면, 국민연금 수급자 비율(전체 65세 이상 인구 중 국민연금 수급자수의 비중)은 2020년에 38.3%, 2030년이 되어도 48%에 지나지 않는다.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추정되는 2055년에도 약 33%의 노인은 국민연금을 받지 못한다. 인구 수로 보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노인 수는 2035년까지 꾸준히 증가해 최고 786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한다.

세계 최고의 노인빈곤율을 자랑하는 나라에서, 이는 매우 심각한 제도적 결함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젊어서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았으면 늙어서 받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이 정확히 각자도생의 논리이다.

'안 냈으면 받지 말라'는 주장을 연장하면, (이자를 제외하고) 납입액과 수급액이 같아야 한다. 정확히 민간 보험과 같다. 평균 소득 이상의 소득자는 민간보험이 낫다. 국민연금에서는 소득이 높을수록 수익비가 낮기 때문이다. 다시 질문하자. 민간 보험사와 똑같은 원리(작자도생의 원리)로 운영할 것이라면 왜 굳이 국민연금은 존재해야 할까?

인간 사회에는 정부와 공공의 영역이 담당할 역할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점부터 인정해야 한다. 치안을 생각해보자. '나는 내가 알아서 지킬 테니 경찰 같은 거 필요 없고, 그러니 세금 내라고 하지 말라'거나, 혹은 '아이들은 세금을 내지 않으니(사실이 아니지만), 경찰이 보호할 필요가 없어'라고 말할 수 없다.

치안은 모두의 문제이며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할 의무다. 이것이 '공동체적 대응'이다. 이 책임은 각자의 자발성에 맡기면 잘 지켜지지 않으므로, 정부가 이를 강제하기 위한 권한을 공동체로부터 위임받아 실행한다.

노인의 경제적 안정이란 문제 또한 치안의 문제와 같다. 인간은 누구나 늙고, 늙으면 경제적 활동이 제한된다.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문제란 점에서 치안과 노후 경제적 안정은 같은 성질의 사회적 문제이고, 대응 방식 또한 같아야 한다.

그런데도 현재 두 문제를 다루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국민연금제도는 철저하게 가입자와 비가입자를 구분한다. 또한 국민연금 보험료에는 '꼬리표'를 달아놓고, 걷은 돈 내에서 연금을 지급해야 한다고 못 박아 두었다.

반면 치안의 경우 이를 유지한다는 명목(꼬리표)으로는 세금을 따로 걷지 않는다. 노인 연금과 치안이 공동체 모두의 문제이고, 모두의 책임이란 점에서 질적으로 같은 문제라는 전제에 동의할 수 있다면, 왜 이렇게 구분해야 할까?

꼬리표가 달린 국민연금과 그냥 걷는 세금(전자를 기금, 후자를 정부의 일반예산이라 부른다). 이것이 국민연금에 각자도생의 원리를 관철하는 또 다른 방식이다. 현재의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모두 이 프레임 안에서 이루어진다.

다음 표를 보면 그 현실적 의미가 분명해진다. 이 표는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에서 가져왔다(아직 발표하진 않았지만 이번 제5차 계산에서도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 보건복지부

 
여기서 주목할 정보는 끝에서 세 번째 열 'GDP 대비 보험료부과대상 소득 총액(가)/(다)'이다. 2055년이 되면 국민연금을 부과할 수 있는 소득이 GDP(국내총생산)의 28%에 지나지 않는다. GDP란 그해에 새로 생산한 모든 소득의 합이다. 그리고 '소득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원리에 따라 GDP 전체가 과세 대상이 된다. 각종 세금의 이름은 다양하지만, 이 돈이 정부의 일반예산으로 들어간다. 이 중 일부는 치안에 사용한다.

그런데 현재의 국민연금제도는 GDP 중 일부(30%)에서만 보험료를 걷어야 하고, 그렇게 걷은 돈으로 지급 한도를 제한해야 한다고 정해놨다. 꼬리표를 달았기 때문이다. '보험료 내지 않았으면 늙어서 연금도 받을 수 없다'는 원리가 이런 식으로 관철돼 있다. 노후 경제 안정 자금을 보장하는 일이나 치안이나 공동체 전체의 문제이고 의무라는 전제를 수용한다면, 이는 너무나 어색한 제도로 보일 것이다.

만약 국민연금을 일반 세금처럼 모든 소득(GDP)에 부과한다면 어떻게 될까? 위 표의 끝에서 두 번째 열 'GDP 대비 급여지출'에 대한 답을 보여준다. 기금이 고갈될 것으로 예상하는 2055년경 전체 국민연금 지급액은 GDP의 6.5%에 지나지 않는다.

같은 보고서의 다른 표에서는 같은 시기 'GDP 대비 국민연금 총수입'(국민연금 보험료 수입과 투자수익의 합)이 2.8%라 했으니, 국민연금 보험료로 걷은 돈 이외에 추가 부담은 GDP의 3.7%에 지나지 않는다. 2055년이 되면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40%를 넘어설 것이란 전망이 맞다면, 이를 과도한 증세라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꼬리표를 달지 않고 세금으로 걷은 돈을 투입하는 일이다. 이렇게 된다면, 국민연금 재정 고갈 문제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한다는 주장 또한 설 자리가 없다. 이 제도는 미래 세대에게도 오히려 유리하다. 국민연금은 그 어느 민간 보험보다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다. 더구나 소득이 낮을수록 더 유리하다.

국민연금의 사각지대
 

9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현재 국민연금을 받는 약 622만명의 연금액이 물가상승을 반영해 기존보다 5.1% 인상된다고 밝혔다. ⓒ 연합뉴스

  
'국민연금에 세금 투입은 절대 불가'란 신념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첫째, 각자도생의 원리를 이유 없이 추종하는 가치관의 결과일 수 있다. 이들은 치안 서비스를 받지 않는 대신 감세를 선택할 수 있다면, 그렇게 선택할 것이다. 하지만 공동체적 대응이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효율적'이기까지 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는 미래 세대 부담론은 핑계이고, 실제로는 사익을 추구하는 속내일 수 있다. 극단적으로 가정해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커져 해체된다면 누가 이익일까? 민간 보험회사는 이를 적극적으로 반길 것이다. 부자들 또한 원하는 일일 것이다. 현재의 국민연금에는 소득 재분배 기능을 탑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경우 모두 공동체의 이름으로 강제성을 가질 필요성을 말해줄 뿐이다.

노인의 경제적 안정 확보라는 측면에서 보면, 국민연금의 사각지대는 너무나 크다. 이 문제를 해소하는 방식(노인 기초연금 확대 등) 또한 함께 논의해야 한다. 다만 추가 세금을 어디에 부과할 것인가는 격렬한 논쟁을 일으킬 것이다.

미리 예상할 수 있는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일반적으로 말해 조세 체제는 (역진적이 아니라) 누진적이기 때문에 이 모두가 가난할수록 유리하다는 점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전용복 교수는 경성대 국제무역통상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나라가 빚을 져야 국민이 산다> <일자리 보장: 지속 가능 사회를 위한 제안(역서)> 등을 책을 냈다.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독자의견


다시 보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