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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녹사평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그곳의 시간은 2022년 10월 29일에 멈춰있다. 국정조사는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책임자들의 무책임도 그대로다. 92번째 10월 29일이 지나갔다.
 28일 녹사평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그곳의 시간은 2022년 10월 29일에 멈춰있다. 국정조사는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되었다. 책임자들의 무책임도 그대로다. 92번째 10월 29일이 지나갔다.
ⓒ 강홍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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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사평역 3번 출구에서 150m. 횡단보도 두 개를 건너니 현수막이 보였다. 빨간색 천막아래 '자유'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섬'이었다.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 흐르는 하회마을처럼. 보수단체들이 걸어놓은 현수막과 천막 그리고 차량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한걸음 더 다가서니 10여 명의 경찰들이 분향소 인근에서 경비를 서고 있었다. 2~3m 간격으로 늘어서 있는 그들은 일종의 경계선이었다. 선을 넘지 말라는 신호이기도 했다.

자유와 애국 그리고 연대라는 심오한 글자들이 휘날렸다. 유가족들이 세워둔 추모부스 옆에는 광고판을 부착한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평화가 가득하기를 기원한다고 시작한 문구는 이제 그만하라.

칼바람 속에서도 시민을 기다리는 사람들

지난 28일 녹사평 시민분향소를 찾았다. 유가족들과 활동가, 자원봉사자들이 추모공간을 지탱하고 있었다. 운영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다. 칼바람에 분향소는 한산했다. 추위를 무릅쓰고 찾아오는 시민들에게 빨간 목도리를 두른 유가족들은 연신 고개를 숙여 감사인사를 전했다. 귀한 손님을 기다리는 것처럼 그들은 서 있었다. 이따금 영정사진 앞에서 물끄러미 딸아이의 얼굴을 바라보고, 정성스럽게 쓰다듬는 한 어머니의 손길에 마음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재단에는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이 모셔져 있었다. 숨이 턱 막혀왔다. 그들과 눈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 고인들의 밝게 웃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하단에는 이름과 생년월일이 들어갔다. 그들이 좋아했던 강아지며, 인형, 소중한 사람들의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영정사진 주변에는 손난로가 하나씩 놓여 있었다. 그곳은 얼마나 추울까. 이승에서 전한 온기였다. 핫팩은 편지지가 됐다.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 전하지 못한, 아련한 마음들이 빼곡하게 들어섰다. 

합동분향소 맞은편 가로수 사이에는 대형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세월호 참사를 언급했고, 전임 대통령의 행적을 논평했다. 시민분향소는 이미 정치의 최전선이 돼 있었다. 칼바람 속에서도 유가족들은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떠난 이들을 추모하는 자리 옆에 들어선 이 말들은 무엇일까. 헌법과 집시법이 보장한다는 표현의 자유와 집회시위의 자유가 덧없이 느껴졌다. 

서울 도심에 또 하나의 섬이 생겼다. 그곳의 시간은 10월 29일에 멈춰 있다. 국정조사는 별다른 성과 없이 마무리됐다. 책임자들의 무책임도 그대로다. 92번째 '10월 29일'이 지나갔다.

덧붙이는 글 | 강홍구 기자는 환경운동연합 중앙사무처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환경운동연합 홈페이지에도 게재됩니다.


태그:#1029참사, #이태원, #92번째날, #시민분향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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