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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 명단을 공개한 <민들레> 보도 캡처.
 지난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155명 명단을 공개한 <민들레> 보도 캡처.
ⓒ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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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한 언론사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을 두고 법조계에선 "무리한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경찰의 공격적인 강제수사에 정치적 의도가 다분히 엿보이고, 압수수색 영장을 순순히 발부해준 법원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는 지난 26일 인터넷매체 <시민언론 민들레>의 서울 마포구 편집국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앞서 <민들레>는 지난해 11월 14일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처음으로 공개했고, 이종배 국민의힘 서울시의원은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민들레를 고발한 바 있다.

<민들레> 측은 경찰이 압수수색에 대해 입장문을 내고 "(희생자) 명단을 입수한 것 외에 다른 어떤 정보도 가진 것이 없다"며 "얻어갈 게 없는 압수수색이라면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누구를 위한 보여주기인가"라고 반발했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명확성 원칙 위배될 수 있어"
 

<민들레> 사무실에 대한 압수수색 이유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과 공무상기밀누설 혐의인데, 법조계에선 사법기관의 압수수색이 이뤄질 정도로 중대한 사안이라고 볼 수 없다는 의견이 다수다. 경찰이 제시한 두 가지 혐의도 법리적으로 적용하긴 무리가 많다는 지적이다. 

우선 개인정보보호법 2조에 따르면 '개인정보'는 '살아있는 사람의 정보'라고 정의돼 있다. 망인이 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의 명단은 개인정보보호법이 보호하는 개인정보의 범위에 속하진 않는다.

최용문 변호사(법무법인 예율)는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형사 사건의 경우 유추해석 금지, 명확성의 원칙을 요구하고 있고 개인정보는 살아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라고 명시돼 있다"면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이라는 사유는 정당하지 않은 것 같다"고 밝혔다.

명단 공개로 유가족 정보까지 유추해 낼 수 있다는 측면을 보면 '개인정보' 개념에 포함될 수 있지만, 수사기관의 압수수색까지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해자가 유족이라고 하면 이론적으로는 가능할 수 있다"면서도 "압수수색은 형사처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인데, 형사처벌을 하면서까지 보호해야 할 개인정보냐는 것은 별도로 따져봐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공무상기밀누설 혐의도 논란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형법 제127조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는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하는데, '희생자 명단'이 직무상 비밀로 규정하긴 어렵다는 분석이다.

김남근 변호사(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는 "형법에서 공무상 비밀 누설이 성립되려면 행정기관이 희생자 명단을 공무상 비밀로 취급하고 있다는 근거가 명확해야 한다"면서 "현재까지 상황으로 볼 때 단순히 희생자 이름이 적힌 명단만을 두고 공무상 기밀이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봤다.

"경찰 압수수색은 과잉 수사, 수수방관한 법원도 문제"
 
2022년 11월 2일 서울경찰청의 모습.
 2022년 11월 2일 서울경찰청의 모습.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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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률가들은 경찰 압수수색에 대해선 "과잉 수사" "정치적 목적의 수사"라며 한 목소리를 냈다. 압수수색 영장을 순순히 내준 법원도 문제라는 비판도 나왔다.

김성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는 "<민들레>의 명단 공개도 옳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경찰이 <민들레>에 대해 압수수색을 하는 것은 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 "검찰 등에서 끊임없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문제삼지 않으면서, 희생자 명단 공개에 대해 이렇게 수사를 하는 것은 고무줄 수사, 정치적 수사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상희 교수도 "수사기관이 수사를 하지 않으면 직무유기에 해당될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무리하게 수사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면서도 "수사기관의 과도한 수사를 통제하는 책무는 법원에 있는데 법원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압수수색 영장에 도장만 찍어준 것은 직무유기"라고 비판했다.

김남근 변호사는 경찰 수사 상황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경찰이 정말 희생자 명단만을 문제삼는 것이라면 무리한 수사라고 비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민들레>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더라도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아내긴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한상희 교수는 "<민들레>는 언론사이고, 명단 공개가 진실되고 또 정당한 목적이 있다고 하면 위법성 조각으로 봐야 한다"며 "설령 법 위반이고 범죄 구성 요건 자체를 부정하긴 어렵더라도, 국민 알 권리 보장을 위한 정당한 행위였다는 판단이 있다면 유죄 판결까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민들레, #이태원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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