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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다사다난!' 연말연시 즈음이면 아버지가 잘 쓰셨던 말이다. 그때는 심드렁하게 들어 넘기곤 했는데, 나와 우리들의 요즈음을 표현해주는 너무도 적절한 말인 듯하다. 내 개인에게는 봄에 있었던 사고가 가장 큰 사건이었다. 소소하고 익숙하던 일상과 크고 작은 계획들이 한 순간에 부서졌다.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상황을 살아낸 덕에 이렇게 새해를 맞는다.

얼마 전 검사를 받았는데, 골절되었던 뼈는 완전히 붙었다고 확인해주었다. 퇴원 직후에는 집밖을 나서는 것 자체가 심신에 부담이었는데, 이젠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있지만 부담 없이 그리고 지팡이 없이 마을 산책을 나설 만큼 회복되었다.

하지만, 완전히 쭈그러지지 않는 무릎, 허리 통증 등 사고의 흔적들이 여전히 몸에 남아있다. 물리치료, 침 치료 등을 받으면서 '드디어'와 '아직도'를 넘나드는 재활과정을 이어가고 있다. 며칠 전에는 지팡이 짚고 버스 타기를 시도했고 성공했다. 멀지 않아 지팡이 없이 버스에 오를 날이 오리라 기대한다.

내 몸 하나 가누는 게 일이라 요리, 청소, 빨래 등 집안에서의 일상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다. 청소와 빨래를 해주는 가사도우미를 신청하고, 이미 만들어진 반찬을 사먹는 식으로 식사를 해결했다. 집이 좀 더럽더라도, 며칠 후면 가사도우미가 와서 청소해줄 거라는 희망이 있으니 못 본 척 넘어갈 만했다.

마침 일산 사는 친구가 잘 안 쓰는 로봇 청소기를 주겠다며, 무겁게 챙겨들고 비행기를 탔다. 나에게 준다는 말을 들은 친구 남편은 깨끗이 닦고 꼼꼼히 부속품들을 챙겨주었다. 혼자 돌아다니는 신문물을 본 어머니는 "아오게~('어머나' 정도에 해당되는 제주 감탄사라고 하면 될 듯하다)"라며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난생 처음 로봇 청소기를 구경한 어머니가 다리를 들고 청소기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 무릎을 굽히는 게 힘든 나를 위해 앞으로도 청소기는 열심히 돌아다닐 것이다.
▲ 로봇 청소기의 등장 난생 처음 로봇 청소기를 구경한 어머니가 다리를 들고 청소기를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다. 무릎을 굽히는 게 힘든 나를 위해 앞으로도 청소기는 열심히 돌아다닐 것이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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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에는 전셋집 계약 만료에 맞춰 리모델링한 어머니 집으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이 은퇴 후 살아오셨던 집은 30년이 다 돼가는 오래된 조립식 주택이라 바람이 거세면 불안했고, 겨울엔 추위를 참으며 지내야 했다. 더운 여름이 오기 전에 리모델링을 끝낼 계획으로, 4월 초에 리모델링 일을 하는 고향 오빠와 만나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며칠 후 사고가 나는 바람에 계획은 무산되었다.

병원에서 몸을 움직일만한 상태가 되어가니 리모델링과 이사 등 집 문제를 진행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면회를 하면서 다시 계획을 잡아갔다. 꼼꼼하게 자신의 일처럼 맡아서 해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럽고 감사했다. 가장 더운 8~9월에 공사를 하게 돼서 일하는 분들이 고생이 많았다. 덕분에 나와 어머니는 지금 심신이 편안하게 내집살이를 하고 있다.
 
한창 더울 때 공사가 진행되었다. 거의 새로 짓다시피 해야 해서 노동도 돈도 많이 들어갔다. 나 죽을 때까지 살게 해달라고 주문을 했다. 꼼꼼하게 신경써준 덕에 나의 주문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더위에 아낌없이 땀흘려준 분들에게 감사하며 살고 있다.
▲ 리모델링 중인 집 한창 더울 때 공사가 진행되었다. 거의 새로 짓다시피 해야 해서 노동도 돈도 많이 들어갔다. 나 죽을 때까지 살게 해달라고 주문을 했다. 꼼꼼하게 신경써준 덕에 나의 주문이 이루어지리라 생각한다. 더위에 아낌없이 땀흘려준 분들에게 감사하며 살고 있다.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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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한 어머니 집 화장실 창너머에선 노란 하귤이 익어간다. 이런 화장실 뷰는 어느 집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 아닐까?
▲ 화장실 창문 풍경 이사한 어머니 집 화장실 창너머에선 노란 하귤이 익어간다. 이런 화장실 뷰는 어느 집에서도 보기 힘든 풍경이 아닐까?
ⓒ 이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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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새롭기도 하고 익숙하기도 한 일상을 꾸려가는 와중에 마치 마음이 골절상을 입은 듯 움직이기 힘든 시간들이 찾아왔다. 나에게 주어지는 이 축복 같은 하루가 버거웠다. 외부에서 주어지는 의무 없이 온전히 내 스스로 하루하루를 꾸려가야 한다는 자유로움이 숨이 막히기도 했다. 새해맞이 책상정리 등 작은 것들부터 시작해서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가꾸어 가보려 한다. 조금은 뿌듯하고 기분 좋은 작은 시간들이 모여 꽤 괜찮은 한 해의 삶이 되기를 빌어본다.

한 해를 살아내고 되돌아보니 우리의 계획이라는 것이 대부분은 '별일없음'을 전제로 해서 세워진다는 생각이 든다. '별일'이라는 게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기에 당연한 것이기도 할 거다. 그렇게 무방비로 '별일'들을 겪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삶의 한 부분이겠다는 생각도 한다. '다사다난'이라는 말은 이런 삶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인 것 같다.

나에게는 이번 해가 '제주 정착의 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제주에 내려와서 지난 2년 동안 예기치 않은 사고를 겪었지만 꾸준히 회복 중이고, 전세살이에서 내집살이로 삶의 터전도 옮겼다. 식물도 자리를 옮기면 몸살을 앓듯이 그동안 이런저런 몸살을 겪으며 제주살이를 준비해온 시간이려니 싶다. 여전히 삶은 다사다난하겠지만, 그 속에서 조금 더 깊이, 튼튼하게 뿌리내리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가끔씩 신나게 웃을 수 있는 한해였으면 좋겠다. 예전 교사시절에 아이들과 EBS 지식채널을 간간이 봤었다. 그중 웃음에 대한 영상이 있었는데, 6살 아이는 하루 300번, 성인은 17번 정도 웃는다고 한다. 세월이 우리에게서 자꾸만 웃음을 빼앗아 가나보다. 웃음이 많다는 얘기를 듣는 편인 나의 경우에도 하루에 17번이나 웃을 일이 있을까 싶기도 하다.

웃음은 개인의 심신 건강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사회적으로는 관계의 접착제 역할을 한다는데, 그만큼 중요해서인지 1일 권장량도 있다. 아주 크게, 한번에 10초 이상, 하루 10회 이상 웃을 것을 권하고 있다.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루 300번 웃을 수 있는 아이들의 능력에 비해 애써 노력해야 몇 십 번 웃을까 말까 한 어른들의 능력이 참 보잘것없어 보인다. 그래서 진심으로 웃을 수 있는 시간이 소중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한 해가 이러저러하기를 바래다보면, 이 한 해를 맞으며 나이 한 살 같이 먹지 못한 수많은 젊은 삶들이 떠오르곤 한다. 죽어야할 이유가 없는 상황에서 죽어가야 했던 그들, 하루하루 버텨내기 힘든 삶을 이어가는 유가족들, 여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를 안고 사는 생존자들, 그리고 타인의 죽음 앞에서 인간의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말을 뱉어내는 사람들.

기사나 방송을 통해서 그분들의 이야기를 접하며, 누구나 그렇듯 자신의 삶을 아끼며 살아가던 그분들의 생전을 상상해본다. 권력은 휘두르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라고 국민들이 권력자에게 부여한 것이다. 그 책임을 다했는지 제대로 밝혀지기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도한다.

태그:#새해, #다사다난,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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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르른 겨울밭, 붉은 동백의 아우성, 눈쌓인 백록담,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소리와 포말을 경이롭게 바라보며 제주의 겨울을 살고있다. 그리고 조금씩 사랑이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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