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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휴식용 나무판 의자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휴식용 나무판 의자
ⓒ 용인시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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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가 목공인 남편을 둔 덕에 집에 있는 소소한 가구들은 대부분 남편의 작품이다. '뭐가 필요하다' 운만 떼면 바로 만들 궁리부터 한다.

직접 디자인하고 나무를 구하고 시간 나는대로 틈틈이 만들다 보니 긴 시간이 걸린다. 이러 탓에 만들어 달라고 말하길 주저하고 마음 한구석에 고이 접어둘 때도 많다.

그러다가 몇 년 전에 정말 마음에 드는 의자를 발견하고 넌지시 의자 만들기를 권하니 품이 많이 들고, 만들고 난 이후 만족감에 대해 장담하지 못해 망설여진다는 이야길 했다.

그러고 보니 식탁은 크기는 크지만 나무 조각 개수가 10개가 살짝 넘어가는 데 반해, 의자는 부품 개수도 많거니와 휘어진 등받이에 각도까지 생각하며 나무를 잘라야 하니 그 노력이 배가 된다.

만든 식탁은 맘에 들지 않아도 계속 사용하겠지만 맘에 들지 않는 의자는 앉지 않으면 그만이겠구나 싶었다. 남편은 필자 부탁을 들어주지 못한 것이 내심 미안했는지 높은 곳에서 쉽게 물건을 내릴 수 있도록 자투리 나무를 모아 계단식 스툴(stool) 하나를 만들어주었다.

 
피라 남편이 마음을 담아 만들고 있는 의자.
 피라 남편이 마음을 담아 만들고 있는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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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걸터앉기 위한 기구라고 말하기엔 의자, 혹은 앉는 것이 주는 의미는 참으로 다양하다. 어떤 이에겐 편안한 쉼터를, 다른 어떤 이에겐 사회적 지휘, 직책이나 위치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될 수도 있다.

발이 닿지 않는 의자에 앉은 어린아이에겐 미래의 소망이 보인다. 넓디넓던 학교 운동장 귀퉁이 나무 아래에 있던 의자는 아련한 추억에 등장하는 필수 요소이다. 의자(아니면 무엇이든 앉을 수 있는)에 앉아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노인의 뒷모습은 과거 삶에 대한 아쉬움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머니 심부름으로 낑낑거리며 나르던 물건은 어느 순간 의자로 변신해 짐과 휴식을 번갈아 제공한다.

풀이 하늘거리는 언덕에 앉아 있는 남녀의 모습은 낭만과 사랑을 보여준다. 남학생 앞에서 다소곳이 무릎 위에 가방을 놓고 앉아 있는 버스 안 여학생에게선 설렘을,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아들의 모습은 안쓰러움을, 햇빛이 드는 창가 소파에 깊숙이 파묻혀 잠을 자는 모습은 평안함을 준다.

산책 중에 발견한 조그만 바위는 그 위에 수건 한 장이 올려지면서 이내 의자로 바뀌어 주변 꽃과 나무를 둘러보는 여유로움을 준다. 잘린 나무의 그루터기도 마찬가지이다.

필자의 집이 들어서기 전 집터에는 큰 벚나무가 있었다. 그 큰 나무 덕에 동네 사람들은 잠시 쉬어가는 쉼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벚나무를 베지 않았다. 그 덕에 마당 한쪽 우리집의 상징처럼 남았고, 그 자리에 자투리 나무로 동네 어르신들 산책길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냥 낮은 담벼락에 나무판 하나 얹은 별거 없는 의자인데, 어르신들은 함박웃음을 지으며 좋아하셨다. 마을회관 앞에 '버스'라고 쓰여있는 간판만 세워놓은 허름한 버스정류장이 있다. 의자는커녕 비 피할 지붕도 없다. 어르신 몇몇이 플라스틱 의자를 갖다 놓으셨다.
 
필자 남편이 마음을 담아 만들고 있는 의자
 필자 남편이 마음을 담아 만들고 있는 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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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또는 산책길에 잠시 쉬어가는 공간으로 이용되는, 그냥 판데기일 뿐인 나무 의자, 보잘것없는 플라스틱 의자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앉을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마음의 쉼터가 되어주고 누군가의 마음과 사연이, 이야기가 내려앉을 수 있는 공간이기에.

필자는 이따금 생각나는 혼자만의 안식을 원해서 남편에게 의자를 부탁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이 마음을 알았는지 몇 달 전 남편은 필자가 원하는 디자인의 의자를 만들어 보겠노라고 했다.

의자 높이를 가늠하고 다리도 없는 좌판만을 깎아와서 앉아보라고 하며 귀찮게 한지 넉 달이 지나서야 다음 주에 의자를 갖고 오겠노라 이야기하니 오랜만에 기대감에 설렌다. 의자는 참으로 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용인시민신문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생태환경교육협동조합 숲과들 활동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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