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새벽부터 아내는 바쁘다. 설 연휴를 친정에서 보낸 딸이 돌아가는 날이기 때문이다. 새벽부터 아이는 짐을 정리하고, 아내는 짐을 싸느라 부산하다.

무엇이 그리도 복잡하고 많을까? 보따리도 한두 개가 아님은 늘 보는 장면이다. 김치도 싸 주어야 하고, 부침개도 넣어야 한다. 넉넉한 과일도 주고 싶고, 만두도 주어야 마음이 편하다. 참기름은 남았나 물어보며, 쌀은 어찌 되었는지 궁금한 아침이다.

혹시 빼놓는 실수를 자책할까 이것저것 두리번거리는 아내다. 두 사람이 살아가는 단출한 살림살이, 아이들 살림에 보탬이 될까 이것저것 싸주려는 어미의 마음이다. 내 어머니가 하셨던 일을 아내가 하고 있다.

학비 걱정 없이... 아이들 생각은 달랐다
 
설 연휴 첫날인 21일 서울역이 고향으로 떠나는 귀성객과 서울로 올라온 역귀성객 등으로 붐비고 있다.
▲ 설 연휴 첫날 붐비는 서울역 승강장 설 연휴 첫날인 21일 서울역이 고향으로 떠나는 귀성객과 서울로 올라온 역귀성객 등으로 붐비고 있다.
ⓒ 연합뉴스

관련사진보기

    
아이들이 찾아오면 늘 반갑다. 아비 집에서 편히 쉬려는 아이들, 찾아 올 아이들이 있어 행복하다. 북적대는 모습이 살아있음을 알게 한다. 먹고 살기 힘겨워 따스함을 전해 주지 못했던 아이들, 손녀가 귀여운 이유다. 온 가족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고 가끔 곁들이는 술 한 잔이 좋다.

아비의 안주거리를 사 들고 오는 아이들이 있어 늘 따스한 명절이다. 고단한 삶을 뒤로하고 찾은 아이들, 어떻게 버티며 살아갈까 가끔 짠하기도 하다. 세월은 세배를 받는 철부지 어른으로 만들어 놓았다. 찾아갈 부모도 없는 사람, 찾아올 곳이 있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한 이유다.

언제나 즐겁지만 아내는 때를 챙겨야 하고 반찬거리도 걱정이다. 아내의 세월도 만만치 않은 세월이기 때문이다. 밖에 나가 먹자는 말에 얼른 동의했다. 한 끼라도 어려움을 덜어줘야 해서다. 아내의 수고가 덜해지니 좋지만, 밥을 먹는지 마는지 부산한 식당이다.

코로나가 한풀 꺾이면서 하지 못한 외식을 한 번에 하려는 기세다. 부산함 속에 술잔을 나누며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는 저녁이다. 손님들 속에 먹는 둥 마는 둥 했지만 마음만은 홀가분하다. 아이들이 있어 좋기도 하고 대견스럽지만 내부모가 했던 걱정을 내가 하고 있다.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까?

내 세월도 편한 세대는 아니었다. 먹고 살기에 동분서주했지만 늘 부족한 살림살이였다. 내 아버지 삶을 알기에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은 빈곤이었다. 하얀 쌀밥이 그립고 고기 한 덩이가 먹고 싶었던 세월이었다. 아버지의 삶을 알고, 피나는 어머니의 살림살이를 뻔히 알고 있었다. 내 자식만은 그렇지 않게 하려 부단히  노력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허덕이며 세월을 보냈다. 모든 것을 아끼며 내 아이들은 빈곤에서 구해 주고 싶었다. 기성회비가 없어 곤란했던 학창 시절이었다. 내 아이들은 학비 걱정 없게 해 주고 싶었지만 아이들은 생각이 달랐다. 학비와 먹거리가 문제가 아니었고, 더 많은 관심을 필요로 했다. 내 아버지 세월과는 너무 달라 부족한 아비가 되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학비만 걱정 없게 해 주면 좋아했던 시절은 오래전의 이야기다. 돈이 없어 하지 못했다는 공부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이다. 모든 것이 풍족한 듯한 아이들은 또 다른 부족함을 안고 살았단다. 내 아버지의 세월을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들, 무슨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 

어떻게 그런 세월이 있었느냐는 표정에 아내가 옆구리를 찌른다. 얼른 화제를 바꾸어야 했다. 부모의 세월이 되어 갈 곳도 없는 사람, 자식들이라도 편하게 해 주고 싶었는데 어떠했는지 궁금하다. 혹시 내 고집을 세우려 오래 전의 짓거리는 하지 않았는지, 그들이 쑥덕대는 꼰대 노릇은 하지 않았는지 두렵기도 하다. 

차이를 인정하며 살아야

모두가 내 마음에 들리야 있겠는가? 사는 방식이 다르고 보고 배운 것이 다르니 그럴 수 없다. 이젠, 서로가 인정해 주고 존중해 주는 사이가 된 지 오래다. 명절연휴를 기해 해외여행이라도 떠난다 하면 어떻게 할까? 가끔 생각해 온 것이지만 어쩔 수 없는 세월임은 벌써 예상하고 있다.

여행지에서 차례상을 맞이하고, 화상으로 세배를 한다한들 말릴 수 없는 세월이다. 세월이 변하고 있음을 늘 감지하며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새벽같이 일어나는 떠들썩한 분위기는 오래전의 이야기다. 잠 깨울까 조심스레 문을 열고 닫는 아비가 되었다. 삶의 현장에서 어렵게 살아온 자식들에게 편안 쉼을 주기 위해서다.

연휴 동안 같이 살던 아이들이 빠져나간 집은 조용하다. 아들은 벌써 처가를 핑계로 가버렸고 딸식구들만 쉬다 돌아갔다. 어찌 된 일인지 처가로 가는 것이 편한 모양이다. 내 딸도 그러하니 모르는 척할 수밖에 없다. 서로의 마음이 편하게 사는 방법이다. 다행인 것은 냉장고를 열어 놓고 줘도 흔쾌히 받아가서 좋다.

고속도로에 버려진 음식이 많다는 말에 깜짝 놀랐지만 마음껏 줄 수 있음이 고마운 건 웬일인가? 갑자기 정적 속에 있는 집안이다. 먼 길을 잘 갔는지 궁금하던 차, 잘 도착했다는 전화다. 

내 어머니에게 잘 왔다고 전화하던 기억이 되살아 난다. 바리바리 싸들고 떠나왔던 고향집, 뒤꿈치 들고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계시던 어머님이었다. 쓸쓸하게 집을 지키시던 어머니가 생각나고, 휑하니 텅 빈 고향집이 떠오르는 설날의 끄트머리다. 

태그:#설날 , #부모, #세월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고희무렵의 늙어가는 청춘, 준비없는 은퇴 후에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책을 읽으면서, 가끔 색소폰연주와 수채화를 그리며 다양한 운동으로 몸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세월따라 몸은 늙어가지만 마음은 아직 청춘이고 싶어 '늙어가는 청춘'의 글을 쓰고 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