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유령> 포스터

영화 <유령> 포스터 ⓒ CJ ENM

 
일제 강점기에는 수많은 독립 운동가들이 암암리에 활동했다. 하지만 정치적인 상황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일반인들의 입장에선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독립투사를 제외하면 그 외의 운동가들을 알기 어려웠다. 어쩌면 그렇게 독립 운동가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활동해야 좀 더 많은 정보를 얻어내고 일본에게 타격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 상해 같은 도시 중심부에서 활동하던 독립 운동가들이 어떤 처지에 있었고, 의심받는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그저 추정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영화 <유령>은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가들이 겪었음직한 일을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보여준다. 처음부터 정체를 알려주는 인물은 박차경(이하늬 분)이다. 그는 상해의 한 극장에서 티켓이나 포스터를 통해 암호화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활동하는 흑색단의 스파이다. 영화에서 벌어지는 첫 암살 시도 장면은 박차경과 친분이 있는 난영(이솜 분)이 주도하는 작전이다. 이 작전은 실패로 끝나고 그 이후 박차경은 주변의 몇몇 한국인과 함께 외딴 호텔에 갇히게 된다. 일본인 카이토(박해수 분)가 이끄는 일본군은 그 호텔에 모인 천계장(서현우 분), 무라야마(설경구 분), 유리코(박소담 분), 백호(김동희 분) 등의 한국인들을 모아 놓고 숨어있는 스파이 '유령'을 색출하기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 스파이 유령의 존재를 다루는 영화

영화는 시작부터 한 명의 유령을 공개했다. 바로 박차경이다. 영화에서 초점을 맞추는 건, 박차경의 정체가 밝혀지는 것과 또 다른 유령이 존재하는 지다. 악랄해 보이는 카이토와 함께 등장하는 일본군 소속의 무라야마는 한국계라는 이유로 의심받지만 그 역시 일본 조직 내에 스며든 유령을 찾으려 노력한다. 박해수가 연기하는 카이토는 무시무시하게 느껴지지만 목적이 뻔히 보이는 일차원적인 인물이다. 그래서 좀 더 복합적인 과거와 목적을 가지고 있는 무라야마가 더 영화 속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무라야마의 등장은 유령을 찾는 과정을 조금은 더 흥미롭게 만든다.

한정된 공간인 호텔 안에서 서로를 의심하며 유령을 찾는 과정은 아주 치밀하게 짜여 있지는 않다. 배경은 호텔과 각 방에 구성된 미장센은 아름답고 깨끗하지만 각 인물들의 행동은 다소 설득력이 떨어진다. 특히 일본군들이 건물 내·외부에 배치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박차경을 비롯한 대부분의 인물은 호텔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인다.
 
 영화 <유령> 장면

영화 <유령> 장면 ⓒ CJ ENM

 
누가 유령인지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영화는 한 인물을 통해 관객들을 헷갈리게 하는 함정을 던지지만 그 역시 충분히 파악할 수 있을 만하다. 또한 천계장은 관객을 혼란스럽게 하지도 않고 고양이에 대한 이야기만 늘어놓는 이상한 인물이다. 이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영화적 긴장감은 오히려 감소하는 점이 아쉽다. 중반에 박차경 외의 또 다른 유령이 공개된 이후 영화는 액션 장르로 완전히 전환된다. 

추리 장르에서 액션 장르로 바뀐 영화는 조금 더 힘 있는 액션을 통해 통쾌함을 전달하려 한다. 그러나 이야기는 개연성이 떨어지는 전개로 힘을 잃어간다. 예를 들면 두 인물이 탈출 계획을 급박하게 이야기한 뒤, 갑자기 한 인물이 아주 쉽게 일본군에 잡혀버린다. 그 이후 남은 인물인 박차경은 도망가지 않고 다시 동료를 구하기 위해 호텔에 잠입한다. 굳이 붙잡히지 않고 두 인물이 같이 탈출할 충분한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 인물들은 스스로를 위험한 상황에 밀어 넣는다. 그래서 영화 속 액션이 주는 통쾌함이 많이 사라져 버린다.

이쁜 미장센만 기억에 남는 실망스러운 영화

영화 후반부에 한 강당에서 펼쳐지는 액션 장면은 이 영화에서 가장 과장된 신으로 보인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낸 흑색단 단원들과 그 대장을 구하려는 박차경의 액션 신은 그야말로 멋진 장면이다. 하지만 이러한 액션은 전반부의 오밀조밀한 추리의 재미를 완전히 날려버리고,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가들이 겪었음직한 일이라는 이야기의 강점도 사라져 버린다. 영화 속 독립운동가들의 노력에는 어떤 현실감도 느낄 수 없다. 그런 점들이 관객들로 하여금 영화 속 인물들에 공감하기 어렵게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아름다운 미장센이다. 특히 호텔에서 보이는 배경과 배치가 무척 세련된 느낌이다. 이 영화를 연출한 이해영 감독은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에서 비슷한 시대 배경을 다룬 적이 있다. <경성학교>는 학교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였는데, <유령>도 호텔에서 벌어진다는 측면에서 비슷한 느낌을 준다. 또한 직전 연출작인 <독전>처럼 누가 스파이이고 범인인지를 추리하게 만드는 느낌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만의 독창성을 찾아보기는 다소 어렵다.
 
 영화 <유령> 장면

영화 <유령> 장면 ⓒ CJ ENM

 
영화의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인물은 단연 무라야마 역의 설경구와 카이토 역의 박해수다. 두 인물의 연기는 극의 흐름을 바꾸고 긴장감을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 박차경 캐릭터는 액션에 강점을 드러내고 있지만 영화 전반을 끌어나가는 힘은 약하게 느껴진다. 유리코는 영화 전반부와 후반부의 연기 톤이 완전히 바뀌는 데 이 영화에서 가장 좋은 모습이라고 느껴진다.

영화 <유령>은 중국 영화 <바람의 소리>를 원작으로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비슷한 시대 배경을 한국 식으로 변주했지만 성공적인 리메이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각적으로 무척 훌륭해 보이지만 이야기 전개나 캐릭터들의 특성 그리고 다소 과장된 액션 장면이 아쉽다. 오히려 전반부 호텔에서 벌어지는 추리극에 집중하여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유령'이라고 불렸던 이름 없는 항일 독립 운동가들을 떠올리게 하려는 시도는 좋았지만 영화는 아쉬운 액션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동근 시민기자의 브런치, 개인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게재를 허용합니다
유령 일제강점기 액션 추리 이하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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