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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동물공포증을 가진 인간들이여. 기뻐하시라. 우리도 명절을 발 뻗고 보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반려동물 인구 천오백만 시대, 평소에도 동물공포증을 가진 우리들은 점점 거리에서도 편히 다닐 수 없어 고생이지만, 특히 나는 명절이 되면 걱정이 앞선다. 시댁과 큰댁에 반려견이 있기 때문이다.
  
어찌 자유로운 너를 가두겠느냐, 나를 가두고 말지...
▲ 동물공포증 어찌 자유로운 너를 가두겠느냐, 나를 가두고 말지...
ⓒ 조용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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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댁 개는 몸집이 작은 시추다. 귀엽지 않냐고, 이렇게 작은데 뭐가 무섭냐는 말이 가장 속상하다. 내 눈에도 귀엽기는 하지만 보기에만 귀여울 뿐이고 종종걸음으로 달려오는 발소리만 들어도 온몸에 소름이 돋으면서 나도 모르게 으아악, 비명이 나온다.

형님네 집에는 푸들이 있다. 몸집이 아주 크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한다. 유난히 사람을 좋아해서 아무한테나 반갑다고 덤빈다. 당연히 내게도 덤비려고 해서 베란다로 내보내거나 펜스를 치면 쉬지 않고 짖거나 날뛴다. 

그 녀석이 날뛸 때마다 나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날뛰게 되는데, 그건 날뛰는 녀석에게 가만히 있어, 하고 명령하는 것만큼이나 소용없는 짓이다. 내 의지와 상관없니 내 안의 공포증이 날뛰는 거니까.    

명절은 그런 녀석과 한 집에서 최소 한 끼 식사를 나누는 것에서부터 며칠을 함께 먹고 자면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시간이다. 명절이 돌아올 때마다 괴롭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일 테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가족들이 그런 나를 나무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한 것인데도 기껍다. 감사하다.

밥을 먹다가 식탁 밑에서 고개를 쑥 내미는 녀석 때문에 밥 먹는 시간이 난리 굿판이 되는 경우가 있다. 분명히 의자로 펜스를 고정해 놓았고, 녀석이 밖에 있다고 해도 절대 안심하지 않고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도 어느새 나타나 나를 놀라게 한다. 나는 녀석 때문에 놀라지만 다른 식구들은 놀란 나 때문에 놀란다. 놀란 내가 다시 밥을 먹을 수 있도록 재정비하느라 밥도 식고 국도 식고 마음도 식는다. 

나는 나대로 녀석이 미워지고 녀석의 주인이 미워지고 내가 미워지며, 식구들은 식구들대로 녀석을 미워하고 자신들을 미워하고 나를 미워할 것이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그런 마음이 나를 더 의기소침하게 하고 속상하게 한다. 그래도 나는 미안하다고 말하지 않기로 했고 식구들은 그런 나를 나무라지 않기로 했으니 참으로 우리가 기특하다. 
     
그래서 발 뻗을 수 있는 방법이 뭐냐고? 바로 그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설 전날, 여지없이 형님 집 현관을 열자마자 녀석의 날뛰는 소리가 들려왔다. 

"펜스 가져와."

내가 온 것을 보고 누군가가 펜스를 가져와서 녀석을 가두려고 했다. 순간 어떤 생각이 내 머리를 스쳤다.

"그 펜스, 저 주세요."

나는 펜스로 나를 둘러쌌다. 그러니까 녀석을 가두는 게 아니라 나를 가둔 것이다. 식구들은 어이없어서 웃고 내 꼴이 웃겨서 웃고 우리보다 더 어이없어 하는 녀석의 눈빛을 보면서 웃었다. 뭐 저런 별종(이라고 쓰고 또라이라고 읽는다)이 다 있어? 녀석의 눈빛은 딱 그랬다. 

나는 펜스 안에서 전을 부치고 만두를 빚고 밥을 먹었다. 펜스를 끌고 밥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거실을 치웠다. 처음에는 녀석이 나를 향해 짖기도 하고 펜스 주변을 돌며 궁금해했지만, 다른 궁금한 것들이 더 많은 게 명절인지라 금세 나는 녀석의 관심에서 잊혔다. 

덕분에 이번 명절은 우리는 우리대로 편안하고 화기애애하게 밥을 먹을 수 있었고 녀석은 녀석대로 제멋대로 돌아다니면서 간섭을 할 수 있었다. 녀석을 펜스에 가둘 때보다 내가 펜스 안에 있는 것이 더 안심이 되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다. 아마도 공포의 대상을 가두려고 하는 것보다 공포의 주체인 나를 보호하는 것이 더 만족스럽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공포증에 떠는 동지들이여. 그게 뭐야? 터부시 말고, 설마 하는 의심 말고, 일단 한번 해보시라. 누구나 가능할지는 알 수 없지만 시도할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일단 성공한 사례가 있지 않은가. 꼴이 좀 웃기면 어떤가. 안심이 되고 안정이 되면 그만이지.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조용미 시민기자의 브런치(https://brunch.co.kr/@toddle222)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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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늘 무언가를 추구한다. 거실에는 모임이 끊이지 않았고 학교와 마을에서 사람들과 온갖 작당질을 꾸몄다.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기를 좋아해서 지금은 갈무리하지 못한 것들을 골똘히 들여다보고 쓰고 그리는 일을 한다. 에세이, 그림책, 소설을 넘나들며 막무가내로 쓴다. 깨어지고 부서진 것들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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