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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나 지하철 타는 법 좀 알려줘. 멀리까지 자유롭게 다니고 싶어."

지난 주말 아들과 산보하던 중 갑작스러운 요청에 좋으면서도 당황했다. 이런 생각을 왜 했을까 궁금하면서도 무언가 해보고 싶어 한다는 점이 좋았다. 일단 알겠다고 하고 어디를 갈지 같이 고민해 보자고 했다.

그 뒤로 아들에게 찾아보라고 했지만, 안 할 것을 알기에 수요일에 퇴근하고 와서 아들과 함께 지하철 노선도를 펼쳤다. 거미줄처럼 복잡한 노선에 이내 아들은 손을 놓았다.

나 보고 결정을 하라는데 고민 끝에 일단 한 번 이상은 환승을 하고 최소 30분 이상은 가는 곳을 찾다가 '건대입구역'이 눈에 띄었다. 이곳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핸드폰에 코를 박고 보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는 날짜는 구정 다음 날인 1월 24일 월요일로 정했다.

날짜와 장소가 정해지니 아들보다 내가 더 설렜다. 20대 초반이었다. 세상의 고민을 혼자 짊어진 듯 근심, 걱정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 실체 없는 어두움에 내가 그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 버스나 타고 종점까지 갔다 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그러고 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진한 사춘기 구간을 지나가고 있는 아들도 혹여나 마음 덜어낼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그 여정에 내가 함께 할 수 있어서 얼마나 영광인가.

사춘기 아들과 무얼 하려면 강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드디어 지하철 여행을 떠나기로 한 당일이 되었다. 그 전날 점심 먹을 곳도 정했다. 크림짬뽕으로 유명한 중국집이었다. 아들은 나에게 오전 10시쯤 깨워달라고 요청했었다. 아침형 인간인 나는 오전 7시쯤 일어나 간단히 아침을 먹고, 남은 시간은 책을 펼쳤다. 이번 연휴는 작정하고 책을 읽으리라 다짐했는데 잘 지키고 있었다. 아내와 딸도 둘이 데이트 한다며 이른 시각 밖으로 나갔다.

시간이 되어 이불과 한 몸이 되어 있는 아들 곁으로 다가갔다. 조용히 귀에 대고 일어나라고 했더니 조금만 더 자겠다고 했다. 나는 다시 책을 보자고 차분히 마음을 다독였다. 30분이 지나서 다시 갔더니 5분만 더 자겠다고 했다. 그래 알겠다고 했다. 재촉하면 오히려 짜증을 내며 밀어낼 것이 분명했기에 일단 후퇴했다.

아내는 나가면서 청소해 놓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소기를 돌리고, 물걸레로 열심히 바닥을 닦으니 벌써 오전 11시가 다 되었다. 모두 마치고 이제는 준비를 해야 한다고 했더니 아들은 그 뒤로 20여 분을 더 뒤척이다 간신히 일어났다.

아들이 씻으러 가는 동안 어제 사놓은 샌드위치를 데우고, 시원한 식혜 한잔을 식탁 위에 예쁘게 배치했다. 머리를 말리고 옷을 입고 내가 차려준 아침도 잘 먹었다. 벌써 시간은 정오가 다 되었네. 맙소사.
 
아들과 지하철 여행 첫 종착지는 건대입구역이었다.
▲ 건대입구역 아들과 지하철 여행 첫 종착지는 건대입구역이었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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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교통카드를 만들지 못했기에 5천 원을 챙겨갔다. 지하철을 타기 전 1회용 교통 카드를 직접 사보라고 했다. 몇 번을 헤매더니 도착지를 입력하고 돈을 넣고 카드를 받았다. 이제 벽 앞에 붙어 있는 노선도를 보며 어디로 갈지 찾아보라고 했더니 용케 위치를 잘 찾았다.

5호선 오목교역에서 2호선 건대입구역까지는 가는 길이 여러 갈래였다. 열차를 타고 의자에 앉은 후 어떻게 가야할지 상의하려고 물었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댔다. 그리곤 카톡으로 대화하자며 핸드폰을 가리켰다. 간단히 말로 하면 될 것을. 전기포트 속에 끓는 물처럼 부글거리는 가슴을 애써 진정시키며 카톡 대화에 참여했다.

빠른 길 찾기로 몇 가지 가는 방법을 공유했다. 아들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2호선으로 환승하는 구간을 택했다. 이때다 싶어 무얼 먹을지도 물었더니 크림 짬뽕을 선택했다. 가는 동안 가끔 카톡으로 대화하고 나는 책을 읽었고, 아들은 핸드폰 게임을 했다. 집에서는 그리 살가운 녀석이 밖에만 나가면 이리 차단기를 내렸다.

지하철 타기 첫 관문, 환승하기
 
아들과 지하철에서 카톡으로 대화를 나눴다.
▲ 지하철 대화 아들과 지하철에서 카톡으로 대화를 나눴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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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환승하는 구간은 꽤 길었다. 갈림길을 만날 때마다 아들이 직접 선택하도록 맡겼다. 지하철을 타다 보면 어디서 환승해야 할지가 중요한 점 중 하나였다. 살짝 헤매기도 했지만, 무사히 2호선 열차 앞에 섰다.

설 연휴 기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은 덜 붐볐고, 자리에 앉아 갈 수 있었다. 드디어 건대입구역에 도착했다. 점심 먹을 식당은 역에서 그리 멀지 않았지만, 초행길이라 길 찾기 앱을 켰다. 5분여 정도 걸었더니 눈앞에 어지럽게 손 흔드는 음식점 광고 풍선이 보였다.

음식점 안은 빈 자리가 없을 만큼 가득했다. 아들은 크림 짬뽕을 나는 오리지널 붉은 짬뽕을 시켰다. 원래는 시키려고 했던 탕수육은 교정 중인 아들이 마음을 바꿨다. 둘 다 허기졌는지 둥근 그릇 안에 쉴 새 없이 젓가락질했다.
 
점심으로 먹었던 크림 짱뽕. 맛이 파스타와 무척 유사했다.
▲ 크림 짬뽕 점심으로 먹었던 크림 짱뽕. 맛이 파스타와 무척 유사했다.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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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로록' 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묘한 화음을 만들었다. 하얀 짬뽕이 궁금해서 한 젓가락 했더니 파스타와 유사하면서도 매콤하니 짬뽕 고유의 맛도 담겨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를 정했다. 약간의 논쟁을 거친 후 건대를 가보기로 했다.

오던 길을 반대로 가면서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었다. 건대역이 원래는 화양역이었는데 나중에 대학교의 요청으로 바뀌었다는 사실, 20년도 전에 단체 미팅을 하러 이 근처를 왔던 일, 건대를 다녔던 친구에게 들었던 호수의 존재와 그 안에 빠졌던 일화까지. 걸으면 좋은 점이 잠시 핸드폰에 벗어나 일상의 말을 나눌 수 있다.

지하철 여행의 종착지는 대학교 탐방
 
건국대학교 탐방 중 만난 인공호수
▲ 건국대학교 호수 건국대학교 탐방 중 만난 인공호수
ⓒ 신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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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 분 정도 걸으니 학교의 모습이 보였다. 큰 규모에 놀랐고, 정말 가운데 커다란 호수가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정확한 명칭은 '일감호'였다. 건국대학교가 서울 캠퍼스를 만들기 시작한 1955년부터 조성한 인공 호수였다. 원래는 물이 많은 습지였다고 한다. 

학교 안에 호수가 있다는 것은 매력적이었다. 답답할 때 호수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아들과 천천히 그 주변을 돌며 풍경을 눈에 담았다. 불쑥 대학에 가면 어떤 과를 가고 싶냐고 물었더니 말이 없었다. 그냥 이 광활한 공간을 보며 스스로 느끼길 바랄 뿐이다.

벌써 돌아갈 시간이 다 되었다. 꽤 마음이 들었는지 다음에도 다른 곳을 가보고 싶다고 했다. 최근에 먹은 생크림 가득한 도넛보다 더욱 달콤한 말이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고정적으로 가보면 어떨까. 다음엔 아들보고 일정을 짜보라고 할까. 어디로 갈까. 벌써 앞서가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 기대는 곧 실망을 낳기에. 부담 없이 시간 될 때 가보는 거야.

오는 길에 따스한 의자에서 계속 꾸벅꾸벅 졸았다. 순간 실눈을 뜨고 옆을 바라보니 아들은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 중이었다. 혹여나 오늘 다녀온 여정을 돌아보는 것은 아닌지 혼자만의 상상하며 깊고 푸른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브런치와 블로그에도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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