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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도 특이한 부겐빌리아(bougainvillea)라는 꽃을 작년 여름에 샀다. 나는 실내 화초를 키우지 않는데, 이 꽃은 더운 지방에서 자라는 것이어서 밖에서 겨울나기가 안 된다.웬만하면 내가 데려오지 않으려 했겠지만 이 특별한 꽃이 참 예뻤다.

진분홍 립스틱 같은 색상의 헛꽃 안에 다시 하얀 진꽃이 핀 모습은 정말 요염하다. 멕시코 같은 곳에 가면 이 꽃이 흐드러지게 핀다던데 얼마나 예쁠지!
 
부겐빌리아. 분홍색 안에 하얀 꽃이 핀다.
 부겐빌리아. 분홍색 안에 하얀 꽃이 핀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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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아주 착한 가격에 세일을 하고 있어서 결국 화분 두 개를 집어왔다. 마당의 나무 그루터기에 올려두고 매일 쳐다보며 좋아했는데, 어느 날 누구의 소행인지 이게 바닥에 굴러 떨어진 것이다.

길쭉하고 늘씬했던 가지 하나가 부러져있었다. 청설모가 치고 갔을 확률이 높지만, 하지 말라고 야단쳐서 될 일이 아니므로 장소를 옮겨줘야 했다. 그래서 하나만 남겨두고, 나머지 하나는 과감히 앞마당에 심었다.
 
이렇게 담벼락에 기대면 추위에 더 잘?버틸 거라는?계산으로 양지바른 곳에 심었다
 이렇게 담벼락에 기대면 추위에 더 잘?버틸 거라는?계산으로 양지바른 곳에 심었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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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가지는 어찌해야 하지? 아까웠다. 밑져야 본전이니까 심어 보기로 했다. 가장 기본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 사실 화초마다 삽목이 잘 되는 것들이 있고, 잘 안 되는 것들이 있는데, 찾아보니 부겐빌리아는 잘 되는 편이라고 나와있었다.  

이번 삽목은 별로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는데 그리 어렵지 않게 뿌리를 내렸다. 날씨가 늦게까지 따뜻했던 것도 한몫을 한 듯하다. 모종 만드는 아주 작은 화분에 흙 담아 꽂아두고, 그 위에 페트병 자른 것을 뚜껑처럼 씌워놨었는데, 그게 온실 역할을 하면서 수분도 지켜줘서 편안하게 뿌리를 내렸다.

잎이 난 것을 보고 한국에 한 달이나 다녀왔는데, 꿋꿋이 계속 잘 자라서 돌아왔을 때에는 제법 단단히 자리를 잡은 모양새였다. 어찌나 기특하던지! 

그리고는 날씨가 추워져서 급하게 화분을 바꿔 집안으로 들여왔다. 집안으로 들어온 다른 아이들은 번갈아 가면서 꽃을 피웠는데, 이 녀석은 몇 달 동안 참 조용히 있었다. 나는 간혹 물을 주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신경을 써주지 못했는데, 어느 날 보니 작게 붉은 티를 내더니 이렇게 예쁜 모습을 보여주었다.

부러진 가지가 되어도 용기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작은 몸에서 꽃을 피운 모습이 기특하다
 작은 몸에서 꽃을 피운 모습이 기특하다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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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초를 키우면 결국은 죽게 하고야 말던 내가 이렇게 식물 키우기에 빠져들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식물의 세계는 알면 알수록 신비롭고 감사하다. 행동으로 뭔가를 보여주는 동물과 달라서 미처 신경을 써주지 못하고, 그래서 제대로 키우기 어렵다고 투덜댔었는데, 조용히 그 자리에서 인내하고 최선을 다하는 식물의 모습이 참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

아파도 불평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려는 모습은 때로 눈물겹기도 하다. 거의 다 죽어가는 화초의 잎들을 과감히 쳐내고 다시 사랑을 듬뿍 주면, 조용히 다시 싹을 올려주는 모습은  내 가슴을 뛰게 만든다. 

그리고 이렇게 부러진 가지에서도 다시 생명을 만들어내는 모습은 정말 경탄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늘 느끼는 것은, 나는 그저 거들 뿐이고, 이 모든 것은 자연이 알아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때론 사람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상처를 받고 깊은 우울에 빠지기도 하지만, 또 그 상처를 꿋꿋하게 버텨내면, 전혀 새로운 인연을 만들고, 마치 새 살이 돋듯이 다시 기쁨 가득한 날을 맞이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부러진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조용히 꽃을 피운 부겐빌리아
 부러진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조용히 꽃을 피운 부겐빌리아
ⓒ 김정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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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 썼던 일기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당시에는 하루하루가 지옥과도 같았고 간신히 버틴다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이번 생에서는 틀린 것 같다는 한탄의 말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다음 생에서라도 더 나은 삶을 살려고 오늘도 열심히 노력하겠다는 다짐의 글이었다. 

영원히 행복은 오지 않을 것 같은 나락에서 고통받고 있었는데, 부러진 가지처럼 그 시간 동안 용기를 잃지 않고 살아내 오늘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어디선가 힘든 순간을 보내고 있는 많은 분이 잘 버텨내고 더 나은 삶을 살게 되기를 꿈꿔본다.

덧붙이는 글 | 비슷한 내용이 기자의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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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에 거주하며, 많이 사랑하고, 때론 많이 무모한 황혼 청춘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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