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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더니, 잠시 후 느닷없이 동네를 안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손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더니, 잠시 후 느닷없이 동네를 안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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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녀의 '염치'

부산에 사는 손녀는 이제 4학년이 된다. 만나면 즐겁고 언제나 보고 싶은 손녀다. 자식들 키울 때 몰랐던 애틋함은 나만 느끼는 게 아닌 것 같다. 친구를 봐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다.

언젠가 부산 딸네 집을 찾았다. 손녀는 나를 반갑게 맞아주더니, 잠시 후 느닷없이 동네를 안내해 주겠다고 제안했다. 갑자기 훅 들어온 제안에 따라나섰는데, 본인이 다니는 학교와 학원을 차근차근 안내해 준다. 길이 어딘지, 얼마나 걸리는지 세세하게 알려주고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꼬마들의 선물을 파는 가게였다. 할아버지 덕에 기다리던 선물을 얻어보려는 손녀, 귀여움과 애틋함에 웃고 말았다. 

손녀가 이것저것을 고르며 고민을 하는 사이, 주인이 빙긋이 웃는다. 할아버지를 데려온 손녀가 귀여웠던 모양이다. 대략 5000원어치를 고르더니 이만하면 됐단다. 부족한 듯하여 몇 개를 더 고르라 하자, 극구 사양을 하며 자기도 '염치'가 있단다. 염치라니, 깜짝 놀라 물어도 대답이 없다. 집으로 와서야 염치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손녀를 만나면 용돈을 넉넉히 줬다. 저축해 놓았다 필요할 때 쓰라며 주는 돈이었다. 만나면 늘 주는 돈이 제법 모인 모양이다. 할아버지가 또 용돈을 줄 텐데 많은 선물을 살 수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염치에 대한 손녀의 설명을 듣고 생각도 많이 자랐구나, 느꼈다. 염치도 모르는 어른들을 생각나게 했다. 연말이 오고 크리스마스가 다가왔다. 다시 손녀에게 선물 이야기를 꺼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손녀, 크리스마스 선물로 책가방을 사 달란다. 지금 있는 것이 오래되었으니 책가방을 사주면 좋겠단다. 연말 선물 겸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방으로 합의한 후, 가방을 사러 가자 하니 엄마와 정해서 알려준단다. 한참이 지난 후 원하는 가방이 무엇인지 전해 들었다. 제법 가격이 나가는 것이었다.

요사이 아이들이 그러려니 하면서 주문을 하고 전화를 했다. '왜 그렇게 비싼 가방을 요구했느냐'는 질문에 '할아버지는 부자라서' 그랬단다. 할아버지가 부자라고? 왜 할아버지가 부자냐는 질문에 '용돈을 많이 주는 것으로 봐서 그렇다'고 답한다. 용돈은 할아버지 용돈을 줄여서 주는 것이라고 말했더니, 그렇지 않단다. 할아버지가 부자니까 늘 많은 용돈을 주는 것이란다. 그러면서 할아버지는 얼마나 부자인지 알고 싶단다. 얼마나 부자냐는 손녀의 질문에, 다음에 설명해 준다는 말로 마무리를 했다.
 
할아버지인 나는 얼마나 부자일까?
 할아버지인 나는 얼마나 부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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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얼마나 부자일까 

나는 얼마나 부자일까? 갑자기 든 생각이다. 젊어서부터 먹고 싶은 것, 쓰고 싶은 것을 아끼며 살아온 나는 얼마나 부자이며, 부자이면 그것을 어떻게 쓰고 있을까?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억 소리 나는 부자는 서민으로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런 이들의 소식은 가끔 사람을 좌절하게 만들기도 한다. 평생을 모아도 불가능한 것을 어떻게도 그리 쉽게 논할 수 있을까?

누군가 아무 거리낌 없이 수백억, 수천억을 꿀꺽했다는 소리엔 등골이 오싹해지며 허둥대던 우리의 지난날이 슬퍼지기도 한다. 손녀가 말한 '염치'라는 단어가 떠오르곤 한다. 먹을 것도 아끼고, 하고 싶은 것도 참으며 검소하게 살아온 할아버지다. 많은 재산은 없어도 마음만은 부자이고 싶다. 작은 몸 뉠 수 있는 시골집이 있고, 조금이지만 남을 도와주려는 마음이 있지 않은가?

30여 년 전부터 흔적 없이 자그마한 성의를 표하며 살아왔다. 조금은 버거워하는 아이들에게 슬그머니 학비도 내주고, 먼 나라 아이들에게도 작은 돈이나마 보내주고 있다. 많은 돈은 아니지만 근 30여 년 가까이하고 있으니 마음은 부자 아닌가? 하지만 얼마 전부터 오르기 시작한 물가는 가슴을 철렁하게 했다. 보일러 기름값이 지난해의 두 배가 넘어갔고, 모든 물가와 세금이 하늘같이 오르고 있다. 

고민 끝에 도와주던 해외 아동 수를 줄이고 말았다. 오르는 물가에 어쩔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만 늘, 가슴에 남아 있었다. 새해 들어 물가가 오른 만큼은 아니어도 받아오던 연금이 조금 인상되었다. 가슴 아파하던 해외 아동이 생각났다. 오른 돈을 덜어 해외 아동을 다시 돕기로 했다. 손녀가 물어왔던, '할아버지는 얼마나 부자냐'는 말이 떠오른다.

할아버지인 나는 얼마나 부자일까? 어린 손녀보다도 내가 더 궁금한 일이다. 나는 많은 돈도 없이 그냥저냥 살아가는 시골 할아버지다. 작은 돈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알뜰살뜰히 모으며 살아왔다. 비싼 커피도 사양하고, 비싼 옷에도 관심 없이 소박하게 살아가는 시골 사람이다.

시골에 집이 있으니 값이 얼마나 할 것이고, 연금을 받으면 얼마나 되겠는가? 어린 손녀가 이런 내용을 알 리 없어 설명해 줄 수는 없다. 시골에 살고 있는 우리 할아버지는 얼마나 부자인지는 몰라도, 마음만은 엄청 부자라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할아버지는 얼마나 부자냐는 손녀에게 말해 주고 싶다. 할아버지는 그냥 마음만 부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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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 교사를 정년 퇴직 후, 현재는 전원에서 취미생활을 즐기며 살아가는 연금생활자임, 취미로 색소폰 연주와 수채화, 브런치에 글쓰기, 산행과 자전거타기를 즐기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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