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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여 년 전 독서 모임을 운영한 적이 있다. 그때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으로 읽었다. 원래 자기 계발서 종류만 읽고 문학작품은 등한시했었는데 어휘력이 급격히 고갈되는 것을 느끼고 부랴부랴 고전과 문학작품을 찾아 읽던 때였다.

이왕이면 함께 모여서 읽으면 좋을 것 같아 모임을 검색했는데 당시는 지금보다 독서모임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아서 마땅한 모임을 찾기도 힘들었을 뿐더러 집 근처의 모임은 죄다 마감된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내가 모임을 만들었고 일 년 반 가량 운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했다. 낯가리는 전형적인 'I' 기질인 내가 별 준비도 없이 어쩌자고 그런 돌발 행동을 했는지.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좋은 경험이었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알찬 시간을 보냈기에 만족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이름은 그래서 내겐 지난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도 같다. 얼마 전 블로그 이웃 피드에서 이 책을 보고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던 것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 표지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책 표지
ⓒ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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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으로서의 소설가>는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하는 책이다.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예술가적 이미지가 아닌, 생업으로서의 소설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삼십오 년 동안 지치지 않고 꾸준히 소설을 써올 수 있었던 그만의 방법과 습관들, 그를 향해 쏟아지는 문단의 혹독한 평가에 맞서 해외 시장에 도전한 개척자로서의 모험과 성공, 그리고 소설가로서의 마음가짐과 자세 등이 망라되어 있는 책이다.

우선, 여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1978년 4월의 어느 화창한 날, 야구 경기장에서 하늘로 높이 떠오른 야구공을 보고 무라카미 하루키는 처음으로 자신이 소설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강렬한 직관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길로 원고지를 사서 바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쓰기 시작했고 다음 해 군조 신인 문학상을 타며 소설가로 등단한다.

운 좋게 '입장권'은 얻었지만 그 이후는 가시밭길이었다. 일본 내 문단 세력은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고 그의 작품들에 대해 온갖 비난을 쏟아냈다. 그런 와중에도 그는 <노르웨이의 숲>, <태엽 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1Q84> 등 우리에게 친숙한 작품들을 써 냈다.

삼십오 년간 소설을 써왔으니 이젠 그 분야의 장인이라고 불려도 될 만한 그의 소설 쓰기는 어떠할까. 소설을 쓴다는 건 고독한 작업이라고 그는 말한다. 아무도 도와줄 수 없는, 작가 혼자서 묵묵히 짊어지고 가야 할 짐이라고. 그렇다면 그걸 잘 해낼 수 있는 그만의 방법이 있을까.
 
나는 매일매일 20매의 원고를 씁니다. 아주 담담하게. (중략)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네 시간이나 다섯 시간, 책상을 마주합니다. 하루에 20매의 원고를 쓰면 한 달에 600매를 쓸 수 있습니다. 단순 계산하면 반년에 3,600매를 쓰게 됩니다. - 151p
긴 세월 동안 창작 활동을 이어가려면 장편소설 작가든 단편소설 작가든 지속적인 작업을 가능하게 해줄 만한 지속력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중략) 거기에 대한 내 대답은 단 한 가지, 아주 심플합니다ㅡ기초 체력이 몸에 배도록 할 것. 다부지고 끈질긴, 피지컬한 힘을 획득할 것. 자신의 몸을 한편으로 만들 것. - 181p

요즘 '매일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다 보니 체력적으로 피곤할 때가 많아서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는데 역시 답은 체력관리인가 보다. 장기적인 일을 할 때에는 규칙성이 중요하므로 그는 자신만의 루틴을 정해두고 매일 20매씩 원고를 쓰고 체력을 키우기 위해 30년간 달리는 습관을 유지해왔다.

하루키뿐만 아니라 많은 유명인이나 부호들이 자신만의 '습관'을 만들어 성공에 이르렀다는 것은 익히 잘 알려진 사실이므로 꾸준한 습관 실천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다.
 
나는 내 작품이 간행되고 그것이 설령 혹독한 ㅡ생각도 못할 만큼 혹독한ㅡ 비판을 받는다고 해도 '뭐, 어쩔 수 없지'하고 넘어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나에게는 '할 만큼은 했다'는 실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략) 물론 약간 불쾌해지는 정도의 일은 가끔 있지만, 그리 대단한 건 아닙니다. '시간에 의해 쟁취해낸 것은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 167p

앞서 말했듯 등단 이후로 많은 평론가들에게 박한 평가를 받았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외부의 비판에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소설을 집필하는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 그 이후의 비평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사실 글을 쓰면 쓸수록 다른 사람들의 비판(악플)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는데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는 오죽할까. 그의 단단한 멘탈이 부럽다. 마지막으로, 일본의 사회 시스템에 대해 그가 언급한 부분을 발췌해 본다.
 
내가 경험한 일본의 교육 시스템은, 내가 보기에는 공동체에 도움이 되는 '개적인 인격'을 만드는 것이, 때로는 그것을 뛰어넘어 단체로 졸졸 목적지까지 끌려가는 '양적인 인격'을 육성하는 것이 목적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교육뿐만 아니라 회사나 관료 조직을 중심으로 하는 일본의 사회 시스템 자체에까지 퍼져 있는 것 같습니다. - 216p

솔직히 내가 만나본 일본인들은(몇 안 되긴 하지만) 자국의 부정적인 면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그저 "관심 없다", "잘 모른다"와 같은 태도를 취하며 발 빼기 바빴을 뿐. 그러니 과거사는 말해서 무엇하랴. 그래서 일본인이면서도 객관적인 정세 판단을 하고, 필요할 때는 쓴소리도 하는 그를 좋아한다.

최근에 그의 에세이 두 편을 읽었다. 지난번에 읽었던 <고양이를 버리다>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라 자연인 하루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면, 이 책은 직업인으로서의 그의 면모를 엿볼 수 있게 해준다. 소설가 지망생들에게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줄 뿐 아니라 일반 대중에게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나침반 같은 역할을 해주는 책이라고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필자의 브런치와 블로그에도 함께 실립니다.
https://brunch.co.kr/@springsunshine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현대문학(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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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와 책 리뷰를 적는 브런치 작가입니다. 다정하게 마음을 어루만지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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