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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통해 책 너머의 세상을 봅니다.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편집자말]
시간이 여러 단위로 나누어진다는 것은 정말이지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그저 쭉쭉 흘러간다면 나 같은 귀차니스트는 마음을 다잡을 생각도, 새로운 계획을 세울 생각도 못 할 것이다. 다행히 시간은 하루, 한 주, 한 달 그리고 일 년이라는 단위로 구분된다. 그중 일 년이란 단위는 바뀔 때마다 나이가 많아져 그런지 자꾸 연초마다 열심히 살고 싶어 신년 계획을 세운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라 새해를 맞아 책을 좀 읽어야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대형 서점에 갔다. 넓은 매대와 베스트셀러 책장에 전시된 책을 훑어봤다. 소설은 올해도 SF나 판타지가 잘 팔리는지 큰 매대 여러 개에 그 분야 책들이 전시되어 있다. 책 표지도 알록달록 눈길을 끈다. 다 재미있어 보여 어떤 책을 사야 할지 모르겠다.

시의적절하게 책을 좋아하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지인은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이란 책을 봤냐고 물었다.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그 책을 본 기억이 났다. 일본 추리소설인가, 하고 그냥 지나쳤는데 지인은 이 책의 소개만 읽고 '이태원 참사'가 생각난다고 했다. 그 말만 들었는데도 눈가가 뜨거워졌다.

"아, 그래? 그럼 사서 읽어봐야겠다."

유가족들이 기억하는 피해자
 
무라세 다케시(지은이) 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겉표지.
 무라세 다케시(지은이) 소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겉표지.
ⓒ 모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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틱톡에 소개되어 입소문을 불러일으켰다는 화제작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처음 세 쪽에서 이 이야기의 전체 내용을 알려준다. 마치 '이런 내용인데 네가 안 읽을 수 있겠어?'라고 하는 것처럼. 

급행열차 한 대가 선로를 벗어나 산간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승객 127명 중 68명이 사망한 대형 사고였다. 그 사고가 일어난 지 두 달쯤 후, 심야에 유령 열차가 그 선로에 다닌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사고 현장에서 가장 가까운 역인 니시유이가하마 역의 승강장에 유령이 나타나는데, 그 유령에게 부탁하면 사고가 난 열차에 승차할 수 있다는.

단, 승차 후 지켜야 할 규칙은 4가지. 피해자가 승차했던 역에서만 열차를 탈 수 있고, 피해자에게 죽는다는 사실을 알리면 안 되고, 열차가 니시유이가하마 역을 통과하기 전에 내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죽은 사람을 만나더라도 현실은 하나도 바뀌지 않는다는 것. 아무리 애를 써도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오지 않는다. 이 규칙을 알고도 많은 사람들은 그 기차를 타러 간다.

여기까지 읽고 책을 덮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을 갑자기 잃는다면,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을까. 본격적인 이야기는 그 뒤에 시작된다. 네 개의 꼭지마다 각기 다른 사랑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령 열차는 탈선 사고로 인해 마음에 맺힌 게 있는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 약혼자가, 아버지가, 짝사랑 상대가, 남편이 죽어 삶이 멈춰버린 사람들이 유령 기차를 탄다. 그들은 사고로 떠나보낸 그리운 사람을 기차에서 만난다. 그러고는 하고 싶었던 말을 전하다. 고맙다고, 미안하다고, 사랑한다고. 일상에서는 다른 말들에 우선순위를 양보했던, 가장 중요했던 말을 그제야 꺼내 말한다.

허나 소설 속에서 주인공들이 유령 기차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장면은 그렇게 길게 묘사되지 않았다. 목차 '제1화 연인에게, 제2화 아버지에게, 제3화 당신에게, 제4화 남편에게'를 보면 알 수 있듯 대부분은 떠난 사람과 남은 사람에게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약혼자와 어떻게 만나게 됐고 어떤 어려운 일을 함께 겪었으며 그러다 헤어졌지만 돌고 돌아 어떻게 다시 사랑하게 됐는지. 자신이 어릴 적 아빠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왕따를 당하던 자신에게 짝사랑 상대가 어떤 선의를 베풀었는지. 남편과 신혼여행을 가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또 어떤 슬픔을 함께 나누었는지에 대한.

죽음에 관한 한 우리는 선택권이 없다. 병에 걸려 죽을지, 사고로 죽을지, 갑자기 죽을지, 오래 병상에 있다 죽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을 때 기쁘고 즐거운 추억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는 먼저 세상을 떠날 것이고 남은 사람은 그 추억을 계속 불러와 곱씹게 될 테니 말이다.

유령 기차에서 그리운 사람을 만나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 사람들은 다시 자기 삶을 살게 된다. 멈췄던 시계가 돌아간다. 떠난 사람이 자신은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는 걸 깨닫는다.

잘 떠나보내야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다

책을 다 읽은 후 마음 한 켠이 불편해졌다. 소설 속에서도 대형 참사가 일어난 후 사고조사위원회가 꾸려진다.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사람들, 자세한 설명을 피하는 사람들, 주장을 번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어쨌든 50일 뒤 정확한 사고 경위가 밝혀지는데 그 상황과 이태원 참사가 저절로 대비되어 마음이 답답했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기간이 지난 17일에 종료되었다. 국정조사가 이뤄졌음에도 여전히 유가족들은 희생된 가족의 마지막을 알 수 없고 현장의 비효율적 대응에 대한 궁금증도 해소되지 않았다. 유가족들의 인터뷰 기사를 볼 때마다 놀란다. 사망한 가족을 찾기까지 이렇게 어려웠다니. 그들을 모아 브리핑하는 자리가 없었다니.

사랑하는 사람을 잘 떠나보낸 사람만이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새해가 시작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또 작심삼일이라며 너털웃음을 짓는 일상. 사랑하는 사람을 잘 떠나보내지 못한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떠난 시간에 머물러 있다. 왜 죽었을까. 어떤 이유였을까. 무슨 일이 있었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서. 

그렇게 이태원 참사 유가족의 시간은 아직도 2022년 10월 29일에 멈춰있다. 어떻게 하면 그들의 시간이 소설 속 주인공들처럼, 일상을 사는 우리처럼 다시 흘러가게 될까. 국정조사 활동 기간은 지난 17일에 종료되었지만,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조사를 이어갈 구체적인 방안들이 나와 온전한 진상규명이 되는 것이라고 본다. 

소설 속 유가족들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유가족이 다른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또 피해자가 유가족에게 건네는 위로와 사랑 그리고 사고의 정확한 진상규명 때문이었을 테니까. 

유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울분을 터트리거나 억울해 하는 것이 아니라 좋았던 추억을 회상하며 더 잘 살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으면 좋겠다. 소설과 같은 결말이 그들의 인생에도 찾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브런치에도 올라갈 예정입니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무라세 다케시 (지은이), 김지연 (옮긴이), 모모(2022)


서평 쓰는 사람들의 모임,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북클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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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책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살아 갈 세상이 지금보다 조금 나아지기를 바라며 내 생각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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