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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씨가 기획사에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만든 명함
 한철씨가 기획사에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만든 명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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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신한철(27)씨의 입에선 이 말이 끊이지 않았다.  

둘째 누나 마음(33)씨는 "누나들이 못 하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막내"라며 먼저 떠난 동생을 떠올렸다. 엄마에게 뽀뽀를 하면서도, 아빠에게 용돈을 달라고 할 때도, 집에 놀러 온 이모들에게도 한철씨는 두 팔을 벌리며 "사랑해"라고 말했다.

2022년 10월 29일. 첫째 누나 나라(34)씨는 그날을 "지옥"으로 기억한다. "신을 찾다가도 신을 원망하다가도 다시 신에게 비는 것밖에 할 수 없었던" 그날. "차라리 어디 크게 다쳤으면"이라고 애원했던 그날. 영안실 앞에서까지 "아닐 거야"를 외쳤던 그날. 밤새 이곳저곳 불려 다닌 끝에 겨우 동생을 찾았지만 "사랑해"를 반복했던 한철씨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태원 참사 후 80일째 되는 날인 지난 16일, 한철씨의 첫째 누나 나라씨를 만났다.

마지막 날에도 쓴 블로그
 
한철씨가 다이어리에 기록한 자기소개 글
 한철씨가 다이어리에 기록한 자기소개 글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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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씨가 다이어리에 기록한 자기소개 글
 한철씨가 다이어리에 기록한 자기소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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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보드카 같은 사람 신한철입니다."

2021년 3월 다이어리에 적힌 한철씨의 손글씨. 곳곳에 고친 흔적이 있는 초안 이력서에서 한철씨는 스스로를 "한번 하겠다고 다짐하면 독하게 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마치 "독함을 무기로 사람을 빠르게 취하게 만드는 보드카"처럼.

한철씨 가족과 친구들은 "꿈이 많은 사람"으로 그를 기억했다. 나라씨는 "목표가 생기면 해내야 하고 부족한 게 있으면 배우고 익히는 성격"이라고 동생을 떠올렸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 누나 나라씨가 생전에 SNS에 올린 춤 릴스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 누나 나라씨가 생전에 SNS에 올린 춤 릴스 영상을 보여주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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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씨가 기획사에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서명한 계약서
 한철씨가 기획사에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서명한 계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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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씨의 초등학교 시절의 적성검사지에는 사회형, 예술형 성향이 강점으로 나와 있다.
 한철씨의 초등학교 시절의 적성검사지에는 사회형, 예술형 성향이 강점으로 나와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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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철씨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었다. 춤, 노래, 연기를 좋아했고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연습을 이어왔다. 업계 상황을 경험하기 위해 기획사에 들어가 스태프로 일하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아티스트로서 계약해 활동을 막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뿐만 아니라 성균관대 미디어문화융합대학원(엔터테인먼트경영 전공)에도 진학해 배움의 욕구를 채워가고 있었다.

한철씨의 노력은 블로그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의 블로그엔 "음악과 문화에 관한 주관적인 나의 생각 모음"이란 소개 글이 적혀 있다. 블로그 곳곳에선 한철씨의 관심 분야에 대한 애정, 그리고 세상을 향한 따뜻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무지개색"이라고 평가한 어느 노래처럼 한철씨의 블로그 또한 다채로웠다. 

"어느 사회에나 희생자는 있다. 이번 싱글(앨범)에서 비비가 전하고 싶다고 한 말이다. 이 말을 토대로 나는 뮤직비디오를 감상했다. (중략) 내 기준에서는 그녀가 말하고 싶은 게 많아 보였다. (중략) 나는 이 뮤직비디오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여성 인권으로 해석하고 감상했다." - 2022년 10월 2일, [신곡 리뷰] 돼지들의 단두대 '비비(BIBI) - Animal Farm(가면무도회)'

"이번 앨범의 컨셉을 하나의 키워드로 정의하자면 '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여기에 쐐기를 박는 가사가 마지막으로 나온다. '모두 다른 색깔로 완성한 레인보우.' (중략) 모두 다른 색을 띠고 각자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엔 우리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의미로 쓰이는 (무지개) 색." - 2021년 9월 24일, [앨범 리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노래하다 '레드벨벳(Red Velvet) - Queendom(퀸덤)'

"오른쪽은 '난 이 일을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야'라는 작품이다.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란 말을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벌벌 떨고 있는 듯한 모순된 느낌. (중략) 왠지 마음속으론 응원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래, 너는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야!" - 2022년 4월 15일, [전시회 추천] 데이비드 슈리글리전 : 아이 같은 순수한 느낌의 전시


참사 당일 오후 2시에도 한철씨는 블로그에 글을 남겼다. 표를 구하지 못해 지브리 미술관 앞에서 발길을 돌렸다는 아쉬움이 그의 마지막 글에 담겨 있었다.

누나가 마주한 세 가지 장면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 유가족 신나라씨.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 유가족 신나라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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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해 살던 나라·마음씨 자매는 참사 후 줄곧 부모님 집에 머물고 있다. 엄마·아빠와 함께 살던 한철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서다. '시간이 약'이란 말이 남은 가족들에겐 공허할 뿐이다. 여전히 한철씨 부모님과 두 누나의 일상은 슬픔과 눈물로 가득 차 있다.

참사 직후부터 이어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은 가족들을 더욱 힘들게 만들었다. 가족들은 참사 당일 오후 11시쯤 이태원에서의 소식을 접하고 곧장 한철씨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막내를 만난 건 다음날 오후 4시가 다 된 시각이었다. 그 사이 누구도 제대로 된 안내를 하지 않았고 가족들은 병원, 체육관, 주민센터 등을 오가며 허탕과 기다림을 이어갔다. 나라씨는 "오죽했으면 기자님들이 여기저기 안내를 해주더라"고 떠올렸다.

참사 후 나라씨는 세 가지 장면과 마주했다. 하나는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이들의 책임 회피. 둘은 개인적인 생각이 들어간 정직하지 않은 정보전달. 셋은 나는 겪지 않을 것이란 안일한 생각. 나라씨는 "지켜주지 못했으면 책임이라도 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정부의) 모습에 화가 난다"며 "(국민은) 우릴 지켜달라고 세금을 내는데 (정부는) 의무를 다하지도 않고 책임을 다하지도 않았다. 그럼 우린 왜 세금을 내는 건가"라고 꼬집었다.

나라씨도 과거 핼러윈 축제 때 이태원을 찾은 경험이 있다. 그때마다 나라씨는 아무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고 이는 한철씨 또한 마찬가지였다.

"위험한 곳이면 저부터 못 가게 했겠죠. 저도 예전에 사람 구경하는 재미로 핼러윈 축제에 갔었어요. 사람이 많이 모였고 작은 사고는 있었지만 큰 인명 피해는 없었어요. 그땐 곳곳에 경찰이 보였고 매번 안전하게 돌아왔죠. 이번엔 왜 예방이 안 됐는지 그게 제일 궁금해요.

(참사 전 경찰이 만든) 문서에 인파가 몰려 사고가 날 수 있다는 내용이 있었잖아요. 사고 직전까지의 112 신고만 봐도 곧장 (통제를 위해 현장으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잖아요. 용산구청, 경찰, 행정안전부는 뭘 했나요. 용산구청이 CCTV만 제대로 보고 대비를 했어도, 경찰 기동대가 차선 하나만 확보했어도, 행정안전부가 사람이 밀집해 있다는 안전문자만 보냈어도, 이 세 곳 중 하나만 돌아갔어도 이렇게까지 일이 커지진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 유가족 신나라씨.
 이태원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 유가족 신나라씨.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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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나라씨는 '사람 많은 곳에 뭐 하러 갔냐', '빠져나오지 않고 뭐했냐'는 2차 가해성 말들이 너무도 답답하다.

"누가 그곳에 죽을 줄 알고 갔겠어요? 이전과는 다르게 그날은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인지하고 빠져나오려다 사람들이 엉켜 벌어진 참사잖아요. 안전을 생각하지 않은 게 아니라 안전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행동하다 사고가 일어난 거잖아요. 나만의 안전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막을 수 없듯 이런 인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 많은 곳에 가서 죽었다'는 말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주세요. 선진국이라 믿는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예방에서 선진국이 아니었다면 대안과 대처에선 선진국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영원히 다섯

"마지막으로 막내에게 하고 싶은 말"을 나라씨에게 부탁했다.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입을 떼지 못하던 누나는 한 글자, 한 글자 말을 이어갔다.

"한철아, 국가가 우리를 지켜줄 것이란 안일한 생각 때문에 누나가 널 지켜주지 못했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바보처럼 순진하게 생각한 누나를 용서하지 마. 무뚝뚝한 누나라 다정하게 말 한 번 못 하고 널 보내서 미안해. '살려 주세요'라고 말했을 너를 생각하면 마음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나 같은 누나 만나지 말고 다정한 누나 만나길 바라. 그래도 고맙다. 누나의 동생이 돼줘서. 누나는 네가, 우리 막둥이가 누나의 동생이어서 행복했어."

그리고 누나는 덧붙였다. 

"우리 가족은 영원히 다섯이야. 사랑해."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가 생전에 가족과 함께 손으로 별 모양을 만들어 찍은 사진.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가 생전에 가족과 함께 손으로 별 모양을 만들어 찍은 사진.
ⓒ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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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의 편지] 

한철씨는 가족뿐만 아니라 친구들에게도 애틋한 존재였다. 아래 친구 7명이 보내온 편지를 요약해 전한다.
 

민섭

한철아, 아직도 네 이름을 부르거나 추억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려고 한다. 너와 함께한 추억이 너무 많아 한 가지만 말하기 힘들지만 난 가장 최근에 갔던 속초 여행이 떠올라. 술 한 잔 없이도 서로 깔깔대며 행복하게 웃었던 게 너무도 생생해. 우리 중 가장 착하고 배려 넘치던 네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하늘이 원망스럽기도 하다. 항상 우릴 재밌게 해주려던 너니까 나도 우는 모습보단 웃고 씩씩한 모습 보여줄게! 많은 사람이 널 잊지 않고 같이 생각하도록 내가 엄청 노력할게. 거기서도 늘 건강하고 행복해야 해. 한철아, 너의 친구여서 진심으로 행복했어.

성현

내 친구 한철이에게. 널 보내고 난 후 버스에서 예전 사진들을 쭉 봤어. 학생 때부터 뭐가 그렇게 신난다고 하루가 멀다 하고 놀러 다녔는지. 넌 웃는 것만으로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었지. 그런 네가 지금 여기 없다는 게 아직도 믿기지 않아. 밥을 먹을 때도, 그냥 길을 걸을 때도 네 생각을 하게 돼. 항상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게 많던 너였는데, 그걸 얘기하는 네가 너무도 들떠 보였는데. 뭐가 그렇게 급하다고 빨리 갔어? 우리 꼭 다시 만나자. 조만간 또 보러 갈게. 영원한 내 친구 철아. 사랑한다.

정현

친구, 그리고 춤과 음악을 좋아했던 한철이. 네가 즐거워했던 걸 자주 함께하지 못해 지금도 참 아쉽다. 애들이랑 '다음 생엔 너로 태어나고 싶다'고 웃으며 이야기했었는데... 동생같이 챙겨주고도 싶고, 오빠처럼 의지하고도 싶고, 내가 받은 따스함을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 고민하게 했던 친구. 즐거운 일을 할 때면 반짝이던 신한철. 이젠 네가 날 부러워할 만큼 열심히, 알차게 살아내 볼게. 그 순간들 잘 지켜봐 줘.

기현

꿈이 많던 친구. '이 노래 뭐지?' 하면 바로 알려줬던 친구. 끼가 많아 춤도 잘 추던 친구. 토론하며 여러 의견을 듣고 견해를 넓히는 걸 좋아했던 친구. 철아, 난 조금 놀랐어! 이렇게 많은 친구가 너를 그리워하고 슬퍼하는 걸 보면서 네가 얼마나 많은 친구에게 잘해줬는지 다시 한 번 느꼈다. 네가 있던 자리는 항상 웃음이 가득했고 함께 놀던 시간은 항상 빠르게 지나갔던 것 같아. 여기에 있으면서 아팠던 것들, 걱정했던 것들, 고민거리들 모두 다 털어버리고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것, 듣고 싶은 것 모두 원하는 대로 하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

수경·지연

오빠, 나랑 사고 전날 틱톡커 모임 파티에서 새로운 사람들 만나며 엄청 낯가렸었잖아. 자기 내향형이라고. 웃겨! 내가 오빠 낯가리고 부끄러워하는 거 영상도 많이 찍었는데. 거기선 괜히 얌전한 척하지 말고, 낯가리지 말고, 우리랑 친해졌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과 많이 친해지고 즐겁게 있어. 오빠 언젠가 차타고 가면서 서울 한강뷰가 너무너무 좋다고 했잖아. 그 말이 자꾸 생각나서 서울에서 예쁜 야경을 보면 오빠 생각이 많이 나. 항상 오빠랑 같이 있다고 생각할게!

주영

춤과 친구들을 좋아했던 한철아. 너와 정말 많은 추억이 있는데 친구들과 1년에 한 번 꼭 여행을 같이 갔었잖아. 마지막 속초 여행에서 너와 너무 즐겁고 행복하게 놀다 온 기억이 여전하다. 하고 싶은 것도, 배우고 싶은 것도 많던 한철아. 너랑 친구여서 행복했고 우리 꼭 다음에 만나서도 친구 하자. 여행도 많이 다니고 많이 웃자!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
 이태원 참사 희생자 고 신한철씨.
ⓒ 유족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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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연재 이태원 압사 참사 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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