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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야당 의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비상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야당 의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비상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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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위안부 합의, 강제동원 해법 폐기하라!"
"이름만 공개토론회, 졸속 추진 규탄한다!"


12일 오전 국회의사당 앞 계단. '윤석열 정부 굴욕적 강제동원 해법 반대 비상시국선언'이라고 적힌 대형 현수막이 펼쳐졌다. 그 뒤로 선 사람들이 손에 든 종이 피켓엔 '일본 전범 기업 사죄 배상' '굴욕적 외교참사 윤석열 정부 규탄한다' 등의 구호가 적혔다. 외교부와 정진석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공동 주최하는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토론회'가 국회에서 열리기 직전 상황이다.

이날 비상시국선언엔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등 시민단체와 강제동원 피해자 대리인 및 지원단, 야당 국회의원 38명 등 965개 단체와 3123명의 시민들이 연명으로 참여했다. 외교부 등에서 '피해자들에게 발제문을 공유하지도 않고 토론회에 들러리로 세우려 한다'는 반발이 있은 뒤인 지난 11일 오후 늦게서야 공개한 발제문 상의 배상안 때문이다.

2018년 대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에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1억 원에서 1억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그러나 정부 측은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아래 재단)'이 강제동원 소송 피고인인 일제 전범기업 미쓰비시중공업·일본제철(현 신일철주금)의 채무를 대신 인수하고 한일 양국으로부터 받은 기부금으로 대납하는, 이른바 '병존적 채무인수' 방안을 강제동원 해법으로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대일청구권 자금 수혜기업인 포스코를 비롯한 한국기업으로부터 재단이 자금을 기부 받아서 2018년 대법원 판결에서 승소했던 피해자들에게 우선 배상금을 지급하고, 일제 전범기업 등의 배상과 사과가 필요하다는 여론수렴 결과를 일본에 전해 호응을 촉구하는 방식이다. 즉, 일본 측이 호응하지 않는다면 결과적으론 대법원 판결 취지와 다르게 한국 기업의 돈을 피해자들에게 주는 방식으로 현 상황이 종결될 가능성이 큰 셈이다.

피해자 등은 이를 대법원 판결 취지를 어기는, 특히 피해자들이 진정 원하는 사죄와 배상 대신 '돈'으로 문제를 봉합하려는 것으로 규정했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관계 정상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되레 피해자들에게 굴욕적인 해법안을 강요하고 있다는 취지다.

"'돈만 보고 살았다면 이 일 안 했다'는 피해자 말, 대통령에게 전했나"
  
미쓰비시 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2022년 11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조속한 손해배상금 지급 확정 판결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미쓰비시 중공업 강제동원 피해자인 양금덕 할머니와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 회원들이 2022년 11월 2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법원의 조속한 손해배상금 지급 확정 판결을 촉구하는 의견서를 제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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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범 기업 명예 회복시키는 게 법치이고 국익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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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일제강점기 시기 초등학교 6학년의 나이로 미쓰비시중공업에 끌려갔던 피해자 양금덕 할머니의 자서전 제목 <죽기 전에 듣고 싶은 한 마디>를 거론하면서 박진 외교부장관을 성토하고 나섰다.

"양금덕 할머니가 지난 9일 광주를 찾은 박진 장관에게 두 손을 잡고 부탁한 일이 있다. '내 말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해 달라. 내가 돈만 보고 살았다면 이 일 안 했다. 미쓰비시가 사죄하고 배상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그것을 대신한다면 내가 무슨 꼴이냐. 일본이 나를 얼마나 우습게 알겠나'라고.

그런데 박진 장관이 그 뒤에 한 일이 뭔가. 양금덕 할머니에게 수여될 대한민국 인권상을 보류하고 국민훈장 모란장을 빼앗지 않았나."


그는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 정부가 할머니를 모욕하고 헐뜯고 무시하고 만만하게 보는 것 아니냐. (강제동원) 피해자를 걷어차고 남의 자식, 몹쓸 사람 취급하는데 이 일이 되겠나"며 "윤석열 정부의 '법치(法治)'가 뭐냐. 피해자들의 자존심을 구기고 전범기업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게 법치이고 국익이냐"고 꼬집었다.

일본제철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대리 중인 김영환 민족문제연구소 대외협력실장 역시 "자기 인생을 걸고 평생 싸워온 피해자들이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내팽개친 권리를 역사적 판결로 쟁취한 것인데 정부는 마치 채권자들의 빚만 청산하면 된다는 듯이 피해자를 우롱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대로라면 일본은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왜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하나. 한미일 군사동맹이 그렇게 중요하나"라며 피해자들이 평생 싸운 시간, 눈물과 피, 땀, 고통을 이렇게 간단히 일본에게 면책해주면 되겠나"라고 규탄했다.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은 "기가 막힌 소식에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심정이다.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한국에서 일본 거대기업과 소송을 진행해서 승소 판결을 받았는데 한국 기업의 돈을 뜯어서 문제를 마무리한다니"라며 "뒤늦게 공유된 외교부의 토론회 발제문을 보면 일본 전범기업의 사죄나 배상 없이 포스코에게 기부금을 받아서 피해자들의 배상채권을 소멸시키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일본 정부는 지금 언론 플레이를 통해 한국 정부와 기업의 성의 있는 자세를 요구하고 합의 문서 교환도 않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면서 "이런 식으로 문제를 봉합하려고 한다면 그 후과가 어떤 것일지 똑똑히 기억하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 일본 방문 위해 과거사 적당히 봉합하려 한다는 의심 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야당 의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비상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일역사정의평화행동과 야당 의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비상 시국선언 기자회견을 열어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강제동원 해법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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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비상시국선언에 함께 한 야당 의원들도 입을 모아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안을 비판했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비례대표)은 "강도를 당했는데 강도가 아니라 이웃주민에게 왜 돈을 내주라고 하나"라고 비판했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은 "돈 몇 푼으로 일본의 역사적 과오에 대해 면죄부를 주겠다는 것. 이런 굴욕적 대책이 발전적 한일관계인가"라며 "피해자뿐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모두를 모욕하는 행태"라고 질타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소속 김홍걸 의원(무소속)은 "조속히 한일 과거사 문제를 적당히 해결하고 윤 대통령의 일본 방문을 위한 사전작업을 하고 있다는 의심이 있다"면서 "그렇게 해서 그 사람들이 말하는 한일관계 개선이 이뤄질 수 있을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특히 "2015년 당시 졸속적인 위안부 합의 때처럼 (현 정부의 강제동원 해법은) 한일관계를 더 악화시키는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국민들을 기만하고 국민들의 자존심을 꺾는 외교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비상시국선언문을 통해서도 "우리는 2018년 대법원에서 역사적인 승리를 쟁취한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일본 가해 기업의 사죄와 배상이 빠진 채 한국 기업들의 기부금만으로 판결금을 대신하여 지급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굴욕적인 해법안에 강력히 반대한다"며 "윤석열 정부의 해법안은 사법부 판결을 행정부가 무력화시키는 조치로 삼권분립에 반해 헌법을 부정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목숨을 대가로 한 사법 농단과 (일본군 성노예 관련) '2015 한일 합의'를 강행한 박근혜 정권의 몰락을 역사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끈질긴 투쟁으로 쟁취한 대법원 판결을 무력화시키려는 윤석열 정부를 역사는 절대로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그:#강제동원 해법, #일제 전범기업, #박진, #양금덕 할머니, #윤석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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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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