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비건으로서 선택권을 넓히고자 런던을 거쳐 베를린에 이사 와 살고 있습니다. 10년간 채식을 하며 일상에서 겪는 고충들과 동시에 더욱 풍부해진 비거니즘 문화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많은 사람들이 마켓을 찾아 와인에 각종 향신료를 넣어 끓여 만든 글뤼바인을 사 마신다
▲ 독일 베를린의 크리스마스 마켓 풍경 많은 사람들이 마켓을 찾아 와인에 각종 향신료를 넣어 끓여 만든 글뤼바인을 사 마신다
ⓒ 최미연

관련사진보기

 
크리스마스는 전세계 최대 명절이지만 특히 독일은 11월부터 지역 곳곳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성황해 12월까지 축제의 나날들이 계속된다. 모두가 1년 중 이맘때만을 기다리며 사는 듯 트리를 꾸민다. '아드벤트캘린더'를 선물하며 유럽의 쌍화차라고 불리는 '글뤼바인(따뜻한 와인으로 향나는 정종과 비슷)'을 원없이 마신다. 아이들을 위한 알콜이 들어가지 않은 뜨거운 사과주스도 판매되니 그야말로 이 명절에 모두가 진심이다.

참고로 아드벤트캘린더는 1800년대 초 독일에서 시작된 것으로 12월 1일부터 크리스마스 전날인 24일까지 하루에 한 개씩 상자 혹은 주머니를 열어 선물을 받는 달력을 말한다. 그 안엔 초콜렛이나 사탕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요즘은 티백, 양말 등의 선물이 담긴 기성품으로 출시된다.

고구마당면 사들고 5시간 기차여행... 독일에서 비건 잡채 만들기

독일인 친구의 본가에 크리스마스 식사 초대를 받았다. 비건이 아닌 그는 그들의 전통대로 식탁에 바비큐 요리가 올라오게 될 것이라고 미리 귀띔해줬다. 비건인 음식도 준비를 하겠다고 했지만 나는 비건이자 한국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자처하며 머리를 굴렸다. 기왕 초대 받아 가는 거 나도 그들도 함께 즐길 수 있을 만한 한식을 준비해보자고. 주변 한인들의 의견을 물으니 감자전, 호박전, 잡채, 김밥, 호떡, 두부김치 등이 추천됐다.

독일은 '감자나라'로 불릴만큼 감자수프에 감자샐러드를 먹는다고 해도 놀랍지 않은 곳. 그래서인지 감자전은 특별하지 않을 거 같았고, 김밥은 제대로 말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잡채다. 호떡도 정말 만들고 싶었지만 시중에 비건으로 된 제품이 나와있는 게 마땅치 않았다. 독일인 초대손님들도 잡채가 처음일테니 그들의 입맛을 너무 실험에 놓이긴 할 순 없었다. 찾아보니 한식 중에 비건 친화적 음식이 꽤 있어 선택권이 좁진 않았다.

아시아마트에 가 무려 40인분에 달하는 분량의 고구마당면 한 팩과 한국 시금치와 비슷한 종류의 채소를 샀다. 5시간 기차 여행 끝에 서쪽 독일 작은 시골 마을에 도착하자마자 당면을 서둘러 불렸다. 고작 5인분 요리였지만 재료가 점점 불어나니 친구는 '온동네 사람들을 다 초대해도 좋겠다'고 농담을 했다. 잡채는 고기를 안 넣어도 많은 채소들로 풍미를 내기 충분하지만, 단백질을 더하기 위해 독일서 파는 훈제 두부를 잘게 썰어 넣었다.
 
훈제두부를 넣어 만든 비건 잡채
▲ 잡채 훈제두부를 넣어 만든 비건 잡채
ⓒ 최미연

관련사진보기

 
모두가 어우리지는 밥상

크리스마스 식사 손님 모두가 남김 없이 잡채를 먹었고 평소 요리에 관심이 많은 친구 아버지는 심지어 레시피까지 물었다. 다음날 아침 독일어 번역기를 돌려 열심히 레시피를 적어 드렸다. 어느 누구도 내게 '왜 고기를 안 먹니' '왜 비건이 됐니' 묻지 않았다. 우리는 이틀간 제법 어우러지는 분위기 속에서 몇 끼 식사를 함께 마쳤다.

나는 논비건 음식을 일종의 폭력으로 감지하기 때문에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양해를 구하곤 한다. 냄새나 외양 그리고 그 상황을 마주해야만 한다는, 선택권이 달리 없는 현실에 압도되기 때문이다. 

예수와 만물의 탄생을 축하하는 명절에 다른, 희생된 생명이 밥상 위에 올라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충분히 쌓이지 않은 대상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양해를 구하기 이전에 고기 없는 식사도 가능하다는 것을 제시하는 것. 비건 제품이 새로 출시되면 지인들에게 보험 권유하듯 먹어보라고 쥐어주는 사명감이 바로 그것이다. 일단 잡숴보시라. 먹어 볼 비건 음식은 널렸다!

태그:#잡채, #명절, #크리스마스, #독일, #비건
댓글1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2021년 여름 한국을 떠나 런던을 거쳐 현재 베를린에 거주 중이다. 비건(비거니즘), 젠더 평등, 기후 위기 이 모든 것은 ‘불균형’에서 온다고 믿기에 그것에 조금씩 균열을 내 기울어진 운동장을 일으키고 싶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