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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파업을 이어오던 화물연대가 파업을 끝내고 지난 9일 업무에 복귀했다. 보수언론과 경제지들은 '법과 원칙에 따른 정부의 대응에 화물연대가 빈손으로 백기 투항했다'는 식으로 비아냥대고 있다. <한국경제>는 "노동계 파업 대치 과정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상승"하면서 "정부 내에선 내년 초 근로기준법 개정까지 착수할 방침이다"라고 보도했다(12월 11일).

이번 화물연대 파업을 비롯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을 보도하는 신문은 노조 파업에 대해 '경제 위기'를 강조하며 '불법'으로 몰아가던 기존의 노동 보도 관행에 머무르지 않고, 정부의 강경 대응을 유도하며 '부역 언론'의 역할을 자임한 모양새다. 광고 수입에 의존하는 '재벌신문'은 자본으로의 독립은커녕 최대 광고주인 대기업 화주들의 이익을 위해 권력과 힘을 합쳤으며, 언론인들은 언론 윤리를 내팽개치고 '부역 언론인'의 길을 선택했다고 본다.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인터넷신문협회는 2021년 1월 19일 '언론윤리헌장'을 발표했다. 언론윤리헌장은 서문에서 "언론은 인권을 옹호하며, 정의롭고 평화로운 공동체를 추구한다"라며 "날로 다원화하는 언론 환경에서 저널리즘의 원칙과 책무에 충실한 윤리적 언론은 시대의 요청이다"라고 밝혔다.

이 헌장은 모든 언론인이 실천해야 할 원칙을 제시하며 윤리적 언론의 역할로 "사회가 갈등과 이질성을 조화롭게 극복할 수 있도록 공론의 장을 제공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특정 집단, 세력, 견해에 치우치지 않고 공평무사한 자세로 보도해야 한다"며 '공정한 보도 원칙'을 제시했다.
 
화물연대와 지하철·철도노조, 학교·병원 비정규직 노조가 일제히 파업을 선언하자 신문들은 '노동조합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리는 것보다 '정치 투쟁'으로 프레임을 왜곡하며 노사간, 노정간 타협을 원천 차단하는 것에 집중했다.

조선일보는 11월 24일 사설을 통해 "민노총의 세 과시와 압박에 굴복하면 우리 사회와 경제는 이들에게 계속 끌려다니게 된다"며 "이번 파업이 정치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계획됐다"고 정부에 '타협하지 말 것'을 주문했다. 이 신문은 12월 1일 사설에서 '민주노총이 배후에서 서울교통공사의 파업을 유도했다'는 기획 파업 의혹도 제기했다. 중앙일보도 12월 1일 "전날 임금·단체협약 5차 본교섭이 마무리되지 못한 게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며 '기획 파업설'에 힘을 보탰다.

서울신문도 사설 <민주노총, 경제 볼모로 윤 정부 흔들겠다는 건가>에서 "기획성 총파업이 예고되면서 이럴 바엔 안전운임제를 폐지하라는 성난 여론마저 불거지고 있다"며 안전운전과 최소한의 생존권을 위한 화물연대의 파업을 마치 거대한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처럼 왜곡했다.

지난 3일 연합뉴스는 '화물운송 노동자가 고소득자'라는 주장에 대해 <[팩트체크] '안전운임제 확대' 요구하는 화물노동자들, 이미 소득이 높다>를 통해 '고소득으로 보기 어렵다'라고 검증해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이 기사에서 "고용부가 조사한 자동차 운반·곡물 운전자의 월 순소득에서 안전운임위원회가 산정한 차량할부금을 차감하면 이들의 소득은 407만 9천 원, 405만 4천 원으로 낮아진다"라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화물연대 조사에선 자동차 운송 운전사가 월평균 363만 원, 곡물 운반 운전사는 월 409만 원을 받는 것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연합뉴스는 두 조사에서 '매출'에 해당한다고 할 월 평균소득액에서는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는데, 순소득에선 차이가 크게 벌어졌다며 각종 세금이나 국민연금, 건강보험료 등 4대 보험료, 차량 할부금 등이 포함됐는지를 확인할 경우 화물연대의 조사가 좀 더 실태를 반영했다고 보도했다. 또한 "고용부 보고서를 보면 자동차 운송 운전자의 월평균 종사일수는 23일, 곡물 운반 운전사는 25일로, 여기에 한국교통연구원이 조사(2021년 화물운송시장 동향 연간보고서)한 일반 화물차주의 일평균 노동시간인 12시간을 적용해 계산하면 자동차 운송 운전자의 시간당 평균 소득은1만 4700원, 곡물 운반 운전자의 시급은 1만3500원"으로 이는 "고용부가 조사한 우리나라 전체 근로자의 평균 시간당 임금 1만9806원(e-나라지표·2021년)보다 크게 낮은 것이다"라고 검증했다. 연합뉴스는 국가기간통신사로 다른 언론의 인용률이 높은 것에 비해 이 팩트 체크 기사를 인용한 보도는 없다.
 
정부와 재벌신문은 '안전운임제' 확대 요구에 대해 '효과가 없고, 해외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례'라고 주장했다. 국토교통부가 국회 민생경제안정특별위원회에 제출한 보고서는 "지난해 '견인형 화물차' 사고 건수는 안전운임제 도입 전인 2019년 대비 8.0%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매일경제는 이 보고서를 근거로 지난 24일 사설 <사고 못 줄인 안전운임제, 화물연대 파업 명분 될 수 없다>에서 "안전 개선 효과는 없고 물류비만 늘어났다는 평가가 나왔다"라면서 "실효성은 없고 산업 경쟁력만 떨어뜨리는 것으로 확인된 만큼 안전운임제는 파업 명분이 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조선일보도 25일 사설에서 "화물연대 요구 '안전운임제', 사고 도리어 더 늘었다."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MBC는 지난 2일 <[알고보니] 화물차 '안전운임제' 효과 있다? 없다? 따져보니>에서 이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국토교통부 자료에는 "견인형 화물차엔 안전운임제가 적용되는 컨테이너, 시멘트 차량 2만7000대뿐만 아니라 건설장비 등 다른 특수 차량들이 7000대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적과 과속 단속 건수가 오히려 늘었다는 통계도 제시됐는데 이 또한 안전운임제 대상이 아닌 차량이 3만 대 넘게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MBC는 이 보도에서 "안전운임제의 효과를 따지기엔 적절치 않은 자료다"라고 설명했다. 또 "(안전운임제 시행으로) 운임이 오른 만큼 업무시간이 줄고 휴게시간이 늘어 안전운행에 도움이 됐다."며 "다만 사고 감소로 이어졌는지는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라고 밝혔다.
 
신문들은 화물연대가 파업에 돌입하기 전에는 정부와 국회의 책임을 지적했지만, 파업에 들어간 이후 한겨레와 경향신문을 제외하고 정부를 비판하는 보도는 사라졌다. 대부분 신문은 "여야 합의로 안전운임제 개선을 추진했지만 아무런 진전 없이 종료되고 말았다"며 "국회가 정쟁으로 시간을 낭비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지만 정부가 조정 능력을 상실해 사태를 키워놓은 셈이다"이라고 정부 책임도 적지 않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들 신문의 정부와 여야 책임 촉구는 빈말뿐이었고 화물연대의 목소리는 찾을 수 없었다. 정부와 여야의 책임은 민주노총으로 바뀌었다. 오히려 정부 주장만을 중계식 보도하는 데 그쳤으며, 정부가 최초로 업무개시명령을 내렸을 때 이를 비판하고 정부에 대화를 촉구하는 기사는 없었다.
 
화물연대 파업이 시작되자 신문들은 사설을 통해 정부의 강경 대응을 주문했다. 동아일보는 11월 25일 "그런데도 지금까지 무얼 하다 사태가 극단에 이르도록 방치한 건가"라며 "이번에도 말로만 엄정 대응을 외치다 밀린다면 민노총이 결사반대하는 노동개혁은 시작도 못 해 보고 좌초될 것"이라고 했다. 매일경제는 "지난 6월 화물연대 파업에서도 엄정 대응을 강조했으나 결국 흐지부지됐다"며 "법치국가로서 법의 엄정함을 보여야 한다"고 민형사상 책임까지 주문했다. 중앙일보도 "정부는 지난 6월처럼 어정쩡하게 사태를 봉합하는 대신 법과 원칙에 따라 화물연대를 비롯한 민주노총의 파업에 엄정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앙일보는 "필요하면 업무개시명령 발동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분위기를 띄웠다. 세계일보는 "정부가 화물연대에 굴복한다면 다른 노조 역시 막무가내식 요구를 계속할 것이 뻔하다"라면서 "업무개시명령을 통해서라도 화물연대 파업 장기화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정부에 주문했다. 국민일보도 "경제 위기에 물류가 마비됐다며 업무개시명령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 신문에서 업무개시명령제도의 위헌성 논란이나 ILO 협약 위반에 따른 노동 후진국 지위, 노정 간의 전면적 대립에 따른 국가 경제 위기 등 정부의 강경 대응이 초래할 위험성에 대한 경고는 찾아볼 수 없다. 이들 신문의 주문대로 윤석열 대통령은 다음날인 11월 28일 국무회의를 통해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했다.
 
한국기자협회는 국가인권위원회와 함께 '인권보도준칙'을 제정하면서 "언론은 모든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인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의 증진을 목표로 삼는다."라고 명시했다. 이를 위해 언론은 '세계인권선언'의 정신을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국기자협회는 '인권보도준칙'을 통해 "노사관계에 대해 편파적인 보도나 헌법 제33조에 보장된 노동3권을 무시하는 표현을 하지 않는다"고 약속하고 모든 회원에게 이를 준수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이 "화물연대 파업은 북핵의 위협과 마찬가지"라며 반헌법적 발언을 했지만, 재벌신문과 대다수 언론인은 침묵했다. 스스로 약속한 언론인 윤리와 인권보도준칙조차 포기한 채 재벌과 대기업의 이익을 위해 정권과 야합한다면 '언론'이라 부를 자격조차 없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탁종열 노동인권저널리즘센터 소장이 쓴 글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에서 발행하는 격월간 <비정규노동> '언론 콕!' 꼭지에도 실렸다.


태그:#화물연대, #언론보도, #재벌신문, #안전운임제, #업무개시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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