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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화상으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화상으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 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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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과연 두 사람이 서로 같은 공간에서 같은 주제를 놓고 말을 주고받았는지 의심이 들 정도다.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의심할 수밖에 없을 지경이다. 지난 12일 화상회의로 열린 박진 대한민국 외교부장관과 왕이 중국 외교부장 회담을 설명하는 양쪽 자료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먼저 한국 쪽 보도자료를 보면, 이 회담에서 시진핑 국가주석의 방한 문제와 다양한 수준의 고위급 교류가 핵심 주제가 된 듯한 인상을 준다. 두 장관이 "시진핑 주석의 방한 모멘텀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로 하였다"고 한 뒤, 외교장관 상호방문, 2+2 차관급 안보대화, 외교차관 전략대화, 인문교류촉진위원회, 1.5트랙 대화가 앞으로 줄줄이 이어질 것처럼 썼다.

또 박 장관이 역대 최다 횟수의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려를 표시하고 중국의 협조를 요청한 것과 윤석열 정부의 대북정책 '담대한 구상' 등 대북대화 노력을 지지해 달라고 요청한 것을 비중 있게 보도자료에 담았다.

한국이 강조한 시진핑 방한 문제... 중국 자료엔 언급조차 없어

하지만 중국 쪽 자료에는 한국 쪽이 강조한 시진핑 주석의 방한 문제는커녕 고위급 교류 활성화라는 얘기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북한의 도발 억제나 '담대한 구상'에 대한 지원 요청도 한 마디도 담지 않았다. 다만 마지막에 "한반도 정세와 공동 관심사인 국제 지역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했다"는 것으로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화상으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이 지난 12일 서울 종로구 도렴동 외교부 청사에서 왕이(王毅)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화상으로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 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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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부 보도자료]

□ 박진 외교부 장관은 12.12.(월) 오후 왕이(王毅, WANG Yi)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약 1시간 15분간 화상회담을 갖고, ▲한중관계 ▲한반도 문제 ▲지역·국제 정세 등 상호 관심사에 대해 논의하였다.

◦ 이번 회담은 지난 8월 칭다오 외교장관회담, 11월 G20 계기 한중 정상회담 등에서 양국 간 고위급 교류·소통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에 따라 개최되었다.

□ 양 장관은 지난달 G20 계기 개최된 한중 정상회담이 상호존중·호혜·공동이익에 입각한 새로운 한중협력 시대를 여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다고 평가하고, 양 정상이 합의한 양국관계 발전방향에 따라 후속조치를 원만하게 이행해 나가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 양 장관은 시진핑 주석의 방한 등 정상간 교류 모멘텀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긴밀히 소통해 나가기로 하였다.
◦ 아울러, 양 장관은 외교장관 상호방문을 포함하여 2+2 차관급 외교안보대화, 외교차관 전략대화, 인문교류촉진위원회, 1.5트랙 대화 등 다양한 수준에서 고위급 교류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 나가기로 하는 한편, 양국 외교부간 「한중 미래발전을 위한 공동행동계획*」의 채택을 위한 협의를 가속화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같이하였다.
* '22.8월 칭다오 외교장관회담 계기 추진 합의 / 양 외교부간 양자·지역·글로벌 차원의 분야별 소통·협력 촉진 목적
◦ 또한, 양 장관은 ▲공급망 소통 확대 ▲한중 FTA 서비스투자 공식협상의 조속한 재개 ▲항공편 증편, 인적교류 확대 및 문화콘텐츠 교류 활성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실질협력의 가시적인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적극 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 양 장관은 한반도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였다. 박 장관은 올해 역대 최다 횟수의 탄도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에 우려를 표하고, 북한이 핵실험을 비롯한 추가 도발을 자제하고 비핵화 대화의 길로 나오도록 하는 것은 한중간 공동이익으로서 한중간 긴밀한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하였다.
◦ 또한, 박 장관은 중국측이 우리의 '담대한 구상' 등 북한과의 대화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주길 기대한다고 하였다.
◦ 왕 위원은 앞으로 한반도 문제에 대해 건설적인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하였다.

□ 양 장관은 지역·국제 문제 관련 상호 관심사안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였다.

◦ 양 장관은 경제회복, 기후변화 등 다양한 글로벌 이슈 관련 대응에 광범위한 공동이익이 있다는 점에 공감하고 양국이 관련 분야에서 긴밀히 소통·협력해 나가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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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외교부 회담 설명자료](필자 번역)

2022년 12월 12일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인 왕이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박진 외교부장과 화상회담을 하였다.

왕 부장은 최근 시진핑 주석과 윤석열 대통령이 발리에서 회담을 성사시켜 중한관계의 다음 발전 방향을 분명히 했다고 밝혔다. 현재 국제 지역 정세가 복잡하게 변화하고 있는 만큼 중국 쪽은 한국 쪽과 함께 양국 정상의 중요한 공감을 확실히 실천해 중한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켜 양국과 양국 인민에게 더 나은 행복을 가져다주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하였다.

왕 부장은 중국 공산당의 주요 20대 성과와 중대한 의의를 소개하면서 중국이 평화발전의 길을 견지하고 대외개방의 기본 국책과 상호이익과 개방전략을 견지하는 것은 각국에 큰 이익이며 중한관계 발전에도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왕 부장은 "올해가 중한 수교 30주년"이었다면서, 중국 쪽은 한국 쪽과 선린우호의 큰 방향을 견지해 전략적 소통을 강화하고 협력과 상생에 초점을 맞춰 중한관계의 건전하고 안정적인 발전을 해 나갈 것을 희망하였다. 또 생산과 공급체인의 안전과 원활한 발전을 보장하며 국제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해 지역과 글로벌 문제에 대한 조정협력을 강화하기를 희망하였다.

왕 부장은 미국이 이른바 '반도체와 과학법안'과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제정하여 세계무역기구(WTO)가 미국 쪽의 세계무역규칙 위반 결정을 거부한 데 대해 입장을 명확하게 하고, 미국 쪽의 행동이 중한을 포함한 각국의 정당한 권익을 현저히 훼손하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미국이 건설자가 아니라 국제규칙 파괴자임을 재확인하였다. 이런 역세계화의 낡은 사고방식과 일방적 패권을 배격하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수호하고 실천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박 장관은 "중국 공산당 20대 당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축하한다", "중국의 번영과 동북아 지역과 세계 평화와 안정에 더욱 공헌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였다. 또 양국 정상이 최근 발리에서 열린 양자회담을 상호존중과 호혜를 바탕으로 중한협력의 새 시대를 열어가는 이정표가 됐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였다. 양국 정상의 중요한 공감대를 형성해 고위급 교류를 강화해 경제무역 협력을 심화시키고 인문교류와 민간교류를 촉진해 양국 관계를 더욱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키기 바란다고 말하였다.

한반도 정세와 공동 관심사인 국제지역 문제에 대해서도 의견을 교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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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중국 쪽 자료는 미국을 비판하는 대목을 눈에 띄게 강조했다. 왕 부장은 미국 쪽이 세계무역기구(WTO) 규칙을 위반한 '반도체와 과학법안' '인플레이션 감축법안'을 제정한 것을 꼭 집어 비판하며, 미국을 '건설자'가 아니라 '규칙 파괴자'라고 규정했다. 또 '역세계화의 낡은 사고방식과 일방적 패권을 배격하고 진정한 다자주의를 수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미국 비판, 한국 자료엔 나오지 않아
 
지난 12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박진 대한민국 외교부장관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지난 12일 왕이 중국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이 박진 대한민국 외교부장관과 한중 외교장관 회담을 하고 있다.
ⓒ 중국 외교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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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국에 대해서는 생산과 공급체의 안전과 원활한 발전을 보장하며 국제자유무역체제를 유지해 지역과 글로벌 문제에 대한 조정협력을 강화하자고 했다. 미국의 보호주의를 비판하며 자유무역질서의 혜택을 보고 있는 한국을 견인하려는 의도가 눈에 띈다.

물론 이 부분은 한국 외교부 보도자료엔 전혀 나오지 않는 대목이다. 회담에 나서 양쪽이 서로 강조하는 것이 다르니까 각자 발표하는 보도 및 설명자료의 중점이 다를 수는 있다.

그러나 서로 겹치지 않는 부분이 대부분이고, 강조점도 천양지차인 점을 감안하면 이것은 소통을 위한 회담이 아니라 '불통 회담'이라고 평가해도 무리가 아니다. 그만큼 양쪽 사이에 공통점보다는 이견이 많다는 얘기이고, 양국 관계가 싸늘하다는 것을 양쪽 보도자료가 보여준다.

미디어의 무책임, 양쪽 비교하지 않고 한쪽 말만 보도

한국과 중국이 내놓은 보도 및 설명자료 한쪽만 보고는 이 회담이 어떻게 진행됐는지 알 수 없다. 서로 자신에게 유리하거나 알리고 싶은 부분만 발췌하거나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미디어의 역할이다. 대부분의 한국 미디어는 한국 쪽 자료만 보고 이번 회담 결과를 전하고 있다. 이런 오도된 보도 탓에 시민들이 회담 내용을 있는 그대로 균형 있게 바라볼 수 없게 된다. 서로 전혀 다른 내용의 설명을 하고 있는데, 한쪽에만 의존해 보도하는 것은 미디어가 무책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나아가 여론을 오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실질적인 피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외교 관계를 다루는 미디어와 기자들은 공동보도문이나 설명문을 내지 않는 회담일수록 양쪽의 설명을 두루 살펴 보도할 필요와 책임이 있다. 인터넷이 활성화한 시대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태그:#한중외교장관회담, #왕이, #시진핑, #미디어의 책임, #윤석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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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논설위원실장과 오사카총영사를 지낸 '기자 출신 외교관' '외교관 경험의 저널리스트'로 외교 및 국제 문제 평론가, 미디어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한일관계를 비롯한 국제 이슈와 미디어 분야 외에도 정치, 사회, 문화, 스포츠 등 다방면에 관심이 많다. 1인 독립 저널리스트를 자임하며 온라인 공간에 활발하게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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