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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시, '사천과 사물국 역사 규명을 위한 학술대회' 가져

"사천강과 죽천천 사이가 사물국의 중심지였을 것"

"사천은 해안평야지대가 발달한 '비옥한 초승달 지대'"

"사물국은 대가야와 소가야 사이에서 자율성 가진 존재"



 
사천시와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12월 9일 ‘사천과 사물국 역사 규명을 위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사천시와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가 12월 9일 ‘사천과 사물국 역사 규명을 위한 학술대회’를 열었다.
ⓒ 뉴스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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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지리와 월성리 유적지의 집단이 늑도 교육장을 유지했을 가능성이 크다."-이성주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

"사천의 지형은 해안평야지대가 발달해 있다는 점에서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비유할 수 있다." -이창희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

"사천강과 죽천천 사이가 사물국의 중심지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오재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사물국은 사천만과 주변 섬을 중심으로 활발한 교역을 하면서 상당한 자율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김재홍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


[뉴스사천=하병주 기자] 삼국시대 초기, 지금의 사천 땅을 차지했던 사물국(史勿國)은 어떤 나라였을까? 중심지는 어디였고 주변국과의 관계는 어떠했을까?

문헌에는 등장하지만 유적과 유물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물국. 그에 관한 궁금증을 푸는 시간을 사천시가 경남연구원 역사문화센터와 함께 마련했다. 지난 9일 사천문화원 대강당에서 열린 '사천과 사물국 역사 규명을 위한 학술대회'가 그것이다.

이날 학술대회에서는 이성주 경북대 고고인류학과 교수가 사천 사물국과 관계망, 이창희 부산대 고고학과 교수가 삼한 시기 사천의 고고학적 양상, 오재진 경남연구원 연구위원이 삼국시대 사천의 고고학적 양상, 김재홍 국민대 한국역사학과 교수가 문헌으로 본 사물국의 역사를 주제로 발표했다.

이어 경상국립대 조영제 명예교수의 진행으로 홍보식 공주대 사학과 교수, 이양수 국립청주박물관 관장, 이형기 해양수산부 학예연구관, 김수환 경남도청 학예사가 참여해 발표자들과 토론했다.

이날 학술대회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포상팔국(蒲上八國)의 하나인 사물국이 지금의 사천시에 자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초기 철기시대에서 원삼국시대에 이르는 대표적인 무덤 양식인 덧널무덤(=목곽묘)이나 고분군이 없다는 점에서 역사학계가 궁금증을 풀지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학자들은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다양한 이야기를 꺼냈다. 먼저 '사물국의 중심지는 어디인가'라는 물음에는 추정을 전제로 의견이 모였다. 그나마 원형점토대 토기와 삼각형점토대 토기의 흔적이 한곳에서 발견된 방지리와, 목곽묘 1기가 확인된 월성리가 사물국의 중심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리고 지석묘와 삼국시대 유적이 확인되는 사천읍 예수리와 사남면 화전리, 용현면 덕곡리 일원까지로 중심지를 넓게 잡을 수도 있겠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밖에 사물국의 지역적 범위를 하동군 진교면을 포함해 섬진강 유역까지 확장해 보는 시각, 역사적 시기를 기원전 3~4세기 이전까지 올려서 보는 시각도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었다. 사물국의 역사를 제대로 찾기 위한 정밀 학술조사가 뒤따라야 한다는 데는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김재홍 교수는 이날 문헌에 나타난 사물국을 중심으로 이야기하면서 '사물국의 자율성'에 주목했다. 사물국에 관한 기본 이해와 그의 주장을 엿보고자 발표문의 맺음말 일부를 끝으로 소개한다.

"가야의 여러 나라 중에서 사물국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 고대 사료에 구체적인 국명이 등장하는 흔치 않은 사례이다. 사료에는 사물(사물), 사물(사물), 사수(사수) 등 다양한 한자로 기록되어 있으나 모두 물길과 관련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사물국은 사료에 정확한 건국 연대가 나오지 않으나, 늑도와 방지리 유적을 통해 대략 기원전 1세기경 국가체로서의 모습을 띠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사물국은 국황에 해당하는 한기(한기)가 있었으며, 전쟁을 지휘하는 장군 등의 관직이 존재하였다. 포상팔국의 전쟁에서 맹주국의 지휘를 받지 않고 사물국의 장군이 독자적으로 사물국 병사를 거느리고 신라와 대적하고 있다. 

이것은 사물국이 포상팔국을 구성한 소국이지만 자율성을 가진 가야 소국이라는 점을 말하고 있다. 사물국의 자율성은 사천만과 주변 섬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교육을 통해 유지되고 있었다.(중략) 

사물국은 자신의 자율성을 가지고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지역연맹체에 가입하였다. 사물국을 단지 대가야나 소가야에 편입되어 영역국가의 일부가 되었다는 시각은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뉴스사천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뉴스사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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