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러스트 벨트가 그렇듯이, 한국이라면 지방 중소 산업도시들이 그렇듯이, 지역의 공장들이 문을 닫고 떠나면 그 지역은 활기를 잃고 그 지역 사람들은 생기를 잃는다. 공장이 문을 닫게 되는 것은 많은 경우 한때 많은 수요가 몰리던 제조업이 글로벌 무역 관계, 산업구조의 변화, 인구 및 생활양태의 변화와 같은 복잡하게 얽힌 자본의 사정들로 인해 더 이상 공장을 이곳에서 돌릴 이유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활기를 잃어버린 지역에서 사람들은 직장을 잃고 더 이상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다른 지역에 있는 일자리를 찾아 떠난다. 삶의 터전이던 곳은 더 이상 사람의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불모지로 변한다. 또한 그 불모지에서 사람은 더 이상 살아가기 어렵다. 그렇게 산업 도시는 몰락한다. 하지만 사실은 산업과 함께하던 사람들이 무너진다.
 
아마존 물류센터 펀의 '고되고, 저렴한' 노동
 
 하얀색 밴을 타고 떠도는 펀의 모습

하얀색 밴을 타고 떠도는 펀의 모습 ⓒ 영화 <노매드랜드(2021)>

 
2021년 개봉한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는 펀이라는 이름의 한 중년 여성이 옷가지와 접시를 박스에 담아 챙기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어떤 청바지를 보더니 껴안고 울먹이기까지 한다. 그간 보관 창고에 맡겨두었던 자신(과 남편)의 물건들을 되찾아 떠나려는 순간이다. 곧 펀은 하얀색 밴 차량을 타고 어디론가 떠난다. 안개 낀 광활한 평원에 길게 한 줄로 놓인 미국 시골 국도변에는 인적이 없다. 주인공이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 예측할 수도 없이 그저 정처 없는 여정을 앞두고 있는 로드무비인 것일까. 영화 <노매드랜드>는 마치 자신의 삶을 그렇게 자유롭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런데 다음 장면은 갑자기 그런 이야기가 전혀 아니라는 듯이 이어진다. 펀은 밤늦게 도착한 숙박장소에서 자신이 아마존 캠퍼포스(CamperForce)로 등록되어 있다고 말하며 겨우 차량 캠핑 권한을 얻는다. 다음날 펀은 아마존 물류센터로 출근한다. 아마존의 모자와 티셔츠를 입고 팀별 안전교육을 받고난 후 상품들을 포장하는 작업에 투입된다. 점심식사 시간, 식당에 팀별로 모여 각자 자신이 어떻게 여기 오게 되었는지 자신의 팔뚝에 새겨진 문신의 의미가 무엇인지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소개를 겸한다. 그러니까 이곳 아마존 물류센터는 겨울철 크리스마스와 새해가 이어지는 한 해 중 가장 많은 상품들이 입고되어 창고에 쌓이고 또 출고되어 배달되는 시기에 많은 임시 물류 노동자들을 고용한 것이다.

펀과 동료들이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주로 수행하는 노동은 바코드 스캐너를 손에 들고 상품과 그것이 보관되는 위치를 스캔해서 기록하는 일, 노란 플라스틱 박스에 물건을 담고 이동하는 일이다. 그런데 물류센터에서는 그 외에도 여러 고단한 반복노동들이 있다. 크고 작은 상품들을 창고로 들여오는 일, 상품들을 하나하나 분류해서 고유한 위치에 보관하는 일, 주문받은 상품들을 보관된 곳에서 꺼내오는 일, 꺼내온 상품들을 포장하고 발송하는 일이 그것이다.

언뜻 우리는 아마존이 개발한 로봇 키바(Kiva) 같은 것들이 상품을 정확하고 빠르게 이동시켜 주기도 하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이 상품이 보관된 위치와 그곳으로 가장 빨리 가는 경로를 알려주기도 하니 이곳에서의 노동이 쉬울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로봇과 인공지능이 그렇게 발전했다고 하는데도 인간의 노동만큼 빠르고 섬세하고 효율적이지 못하다. 심지어 인간의 노동이 더 저렴하기까지 하니 거대 물류회사들은 악착같이 인간 노동자를 자신들이 필요할 때에만 고용해 비용을 아끼기까지 한다.

지역공동체 붕괴 이후, 떠밀려 '유목민' 된 노동자들

물론 이 영화에서 아마존 물류센터에서의 노동은 영화의 초반과 후반에 잠시 지나가는 장면들로 그려질 뿐, 중반 이후에는 다른 곳에서의 임시 계절 노동과 펀의 개인적인 관계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첫 장면에서 우리가 보았던 펀의 노마드 여정이 왜 시작되었는지는 이후의 과정에서 하나하나 드러난다.

펀은 석고 광산이 있던 네바다 주 엠파이어라는 곳에서 살고 있었는데, 남편이 죽고 게다가 경제위기로 광산이 폐쇄되면서 더 이상 마을에서 살 수 없게 되었다. 잠시 임시 교사로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했지만 결국 마을의 우편번호조차 없어지면서 마을을 떠나야 했다. 유목민이 된 것은 자의적인 선택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유일한 거주지인 밴이 있었기에 펀은 유목민으로서의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자신을 지킬 최소한의 공간인 집으로서의 자동차. 그래서 펀은 마트에서 만난 옛 제자에게 자신은 홈리스가 아니라 그냥 집이 없다고(houseless) 말한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다들 힘겹게 일하고 밴에서 겨우 생활을 이어가지만 물류 피크 기간이 끝나면 고용도 사라진다.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다들 힘겹게 일하고 밴에서 겨우 생활을 이어가지만 물류 피크 기간이 끝나면 고용도 사라진다. ⓒ 영화 <노매드랜드 (2021)>

 
다들 힘겹게 일하고 밴에서 겨우 생활을 이어가지만 물류 피크 기간이 끝나면 고용도 사라진다. 다시 어디론가 떠나야 하는 신세. 겨울이 되면 남쪽으로 다시 따뜻해지면 북쪽으로, 네브라스카 사탕무 수확장에서 사우스다코타 고속도로 옆 관광객이 들르는 드럭 스토어로,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고 또 다른 이는 병들고 지쳐 생의 마지막 장소로 향한다.

일하고 싶지만, 자신의 삶을 스스로 책임지고 돌보고 싶지만, 자본의 논리에 따라 산업이 무너지고 일자리가 사라진 공동체는 더 이상 개인들에게 그 기회를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집을 빼앗고 삶의 의지를 끌어 내린다. 남은 선택지는 유목민이 되건 정주민이 되건 임시로 혹은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값싼 일자리들을 찾아다니는 것만 남았다. 거대 자본과 테크 기업들이 글로벌 산업 구조를 바꾸고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치장을 하지만 결국 실직자들에게 자신들의 화려한 기술의 공백을 메우는 저렴한 일자리를 강제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누구도 돌보지 않는 이 삭막해진 사회에서 어디에 기대고 누구와 함께 살아가야 할까.

2021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 3관왕에 빛나는 영예를 안은 이 영화는 단지 운명에 떠밀려 유목민이 된 한 사람의 여정을 애처롭게 보거나 낭만화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큐멘터리적으로 왜 그가 유목민이 되었는지 시시콜콜 자세히 따져 묻지도 않는다. 사람들과 장소를 이어주는 관계들을 가로질러 가며 길 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자유로우면서도 연대하는 삶을 그려낸다. 영화는 말미에 펀이 떠났던 곳, 폐허가 되어버린 공장과 집을 마지막으로 들르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리고는 길 위의 여정이 새롭게 시작된다. <노매드랜드>는 이 불안정한 시대, 불안정한 삶과 노동을 우리가 어떻게 이끌고 나아갈 것인가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상민 님은 문화사회연구소 회원입니다.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월간지 일터 12월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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