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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엔 그 수가 많이 줄었지만, 아직도 대학생들은 여름이 되면 농촌을 찾아 일주일이 조금 넘는 시간동안 농민들과 함께 농사를 짓는다. 과거엔 농민학생연대활동이라고 했으나, 요즘엔 농민봉사활동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어쨌거나 이 '농활' 중에는 하루를 정해 저녁시간 마을회관에 다 같이 모여 소위 말하는 농민문제를 함께 알고 익히는 시간을 가진다.

아무래도 학생들이 가장 놀라워하는 점은 농산물 가격이 수 년 전에 비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식당의 공깃밥 가격은 여전히 1000원이다. 십년이 넘도록 가격이 변하지 않았으니 그것이 당연한 듯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임금과 물가가 오르기 마련인데, 공깃밥 가격은 똑같이 1000원인 것이다.

2022년 올해 쌀값이 45년 만에 최대 폭락을 기록했다. 20kg 기준으로 2019년 9월 4만 6834원이었던 쌀값은 22020년 4만 8143원, 2021년 5만 4228원이었다가, 올해는 4만 725원까지 내려갔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세계적 금리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심화 국면에서 쌀값은 오히려 내려간 것이다. 이에 농민들은 농사를 지을수록 손해라며 논을 갈아 엎고, 거리에 나가 정부 정책에 항의하는 집회를 열기도 했다.

하루 4시간 자는데 귀족노조? 화물노동자들이 일 멈춰야만 했던 배경
 
화물연대 소속 화물노동자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윤석열 정부 규탄, 노동자 참여 입법 촉구 결의대회’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ㆍ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자신의 차량 번호판을 목에 걸고 참석하고 있다.
 화물연대 소속 화물노동자들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생명안전 후퇴 윤석열 정부 규탄, 노동자 참여 입법 촉구 결의대회’에 안전운임제 일몰제 폐지와 적용 차종ㆍ품목 확대 등을 요구하며 자신의 차량 번호판을 목에 걸고 참석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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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노동자들이 안전운임제 연장과 품목확대를 요구하던 파업을 스스로 마무리했다(관련 기사: 화물연대, 파업 종료 결정... 정부의 '노조혐오'로 얼룩진 16일 http://omn.kr/21xl7).

이들은 주장하던 요구가 반영되어서 파업을 마무리한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파업은 불법이라며 불법과의 타협을 거부하던 정부의 강경한 태도에 끝내 스스로 파업을 멈춘 것이다. 특히 정부가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에 불법딱지를 붙이니, 보수언론을 비롯해 한국사회 일각은 화물노동자들에 '귀족노조'라며, 모두가 힘든 경제위기 상황에서 자신들의 임금인상에만 골몰하는 이기적 집단이라며 이들을 매도하기 바빴다.

그런데 정말 화물노동자들이 귀족노조이고, 경제위기를 심화시키는 이기적 집단일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화물노동자들은 평균적으로 하루 14~16시간을 일하고, 실제로 수령하는 돈은 300~400만 원이라 이를 시급으로 따져보면 1만 원이 겨우 넘는다. 이마저도 목숨을 건 과적과 과속, 장시간 과로노동을 감수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한다(관련 기사: "16시간 운전 뒤 4시간 자는 화물노동자, 그래도 귀족인가").

그런데 왜 정부는 화물노동자들과 대화하길 거부하고, 안전운임제 연장 등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일까?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이라서? 검사 출신 윤석열 대통령의 소신이 발현된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파업기간 중 발생한 불법행위에 대해선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할 것(윤석열 대통령, 13일 국무회의)"이라는 등, 정부의 강경한 탄압기조에는 경제적 속내가 있다고 본다.

윤석열 정부는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이 심각한 경제위기를 초래한다고 비난했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화물노동자들은 한국경제의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 즉 모든 곳에 관여하고 있다. 물건을 운반하지 않으면 상품이 생산되지 못하고, 판매되지도 못한다. 상품생산과 유통까지, 한국경제가 흐르게 하는 과정 중 하나가 바로 물류산업이다. 그것을 화물노동자들이 하고 있다. 그래서 화물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 경제가 멈춘다. 그만큼 경제적 역할이 중대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윤 대통령, 추경호 경제부총리.
▲ 국무회의 주재하는 윤석열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13일 오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왼쪽 두번째부터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박진 외교부 장관, 한덕수 국무총리, 윤 대통령, 추경호 경제부총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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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들의 파업 자체가 아니라, 화물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선 배경에 있다. 물류산업은 경제가 흐르게 하는 산업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요와 공급이 조화를 이뤄야하고, 수요와 공급이 조화를 이루는 핵심 요소는 바로 가격이다. 즉, 적정한 가격이 형성되어야 수요-공급이 조화를 이루고 경제가 안정화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이 '적정한 가격'을 형성하기 위해 화물노동자 운송비를 터무니없이 적게 책정해왔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화물노동자들은 한국경제의 근간을 책임지는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에도 구조상 하루 14~16시간의 과로노동을 피할 수 없었다. 즉, 한국사회는 화물노동자에게 비용을 전가함으로써 경제적 안정이라는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쌀 역시 마찬가지다. 식자재 가격을 낮춰야 식자재에 대한 국민의 접근성이 높아진다. 이는 빈곤의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다. 가장 기초적인 식자재인 쌀값이 폭등하면, 빈곤층은 당장 먹고 살 걱정부터 해야 한다. 그래서 쌀값이 올라가면 국민의 구매력 보장을 위해 임금이 올라가야 하고, 임금과 연동되어 물가가 상승한다. 그러니 화물노동자들에게 경제안정화의 비용 일부가 전가되고 있는 것처럼, 농민들에게도 그 비용이 전가되고 있다.

윤석열 정부와 보수언론이 강조하는 '국민경제' 속에 담긴 아이러니는 여기서 발생된다. 그들 주장대로면,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처한 화물노동자들은 국민이 아니란 말인가? 농민들은 국민이 아닌가? 이들이 저렴한 노동을 제공한 수혜는 상품생산, 상품유통, 상품판매 심지어 구매하는 경제영역에 관여하고 속한 이들에게 돌아간다. 다시 말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수혜가 돌아가는 것이다.

이정도면 화물노동자들이 국민에게 봉사해야 하는 의무라도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화물노동자들은 봉사가 아닌 노동을 하고 있는 노동자이다. 노동자들에게 정당한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정부의 의무이자 책임이다. 이를 저버리고 국민경제를 운운하니, 국민경제 안정화를 위해 국민의 한 사람인 화물노동자들을 희생시키는 현재의 구조와 전혀 다르지 않은 행보이다.

윤 정부의 '국민경제' 속에는 없는 '국민'들
내놔라공공임대농성단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공임대 예산안 전액 통과를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9409억원 삭감한 것으로 보도됐다.
▲ 오체투지 나선 내놔라공공임대농성단 “공공임대주택 예산 전액 통과 촉구” 내놔라공공임대농성단이 지난 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공공임대 예산안 전액 통과를 촉구하며 오체투지를 진행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5조9409억원 삭감한 것으로 보도됐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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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는 화물노동자들의 문제만이 아니다. 앞서 쌀값을 말했듯이, 한국경제는 노동자와 농민의 희생 위에 서 있다. 지난 코로나19 동안에도 한국경제는 다른 국가에 비해 안정적인 경제성장률을 유지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를 두고 정부의 성과라며 스스로 자화자찬했다. 그러나 경제적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지 않았는가.

실제로 올해 3분기 하위 20% 빈곤층의 소득만 줄어들었는데, 이 문제는 청년고독사와 빈곤층 일가족 집단 자살의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보인다. 목숨을 잃어야만 존재가 확인되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물가는 높고, 임금은 낮고, 집값은 요동 치는데 윤석열 정부는 국가경제 안정화를 위해 국가재정지출을 줄이는 판국이다. 최근 윤 정부는 공공임대주택 예산을 작년 대비 약 5조7000억 원 삭감한 것으로 보도됐다. 

누구를 위한 삶이고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코로나19 기간 동안 임금이 30% 삭감된 조선하청노동자들 덕분에 조선산업은 불황을 이겨내고 다시 호황을 맞이했다. 그래서 국가경제가 성장하면 과연 국민의 삶은 나아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유가폭등에도 화물노동자들은 똑같은 임금을 받아가며 물류산업이 차질 없이 경제위기를 버텨내고 있다. 그래서 국민경제가 안정화되면 과연 국민의 삶은 나아졌다고 말할 수 있는가? 누구를 위한 삶이며, 누구를 위한 경제인가?

화물노동자들의 파업은 끝났지만, 오늘도 이 착취와 희생의 경제 시스템은 계속 굴러간다. 그러니 싸움은 끝날 수가 없다.

윤석열 정부는 노동자 파업을 강경하게 탄압한 것을 기반으로 자기 지지율을 확보한 모양이다. 그러니 윤석열 정부가 이기고, 노동자가 패배한 것일까? 아니다. 착취와 희생의 경제 시스템은, 우리의 존엄과 평등을 보장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이미 패배하고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화물노동자들에게 당신들 잘못이 아니라고, 수고하셨다고, 힘을 내시라고 말하고 싶다. 화물노동자 여러분, 그간 고생 많으셨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건수씨는 김용균재단 회원이며, 청년학생노동운동네트워크에서 활동 중입니다.


태그:#화물연대, #김용균재단, #국민경제, #국민의 희생, #화물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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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0월 26일 출범한 사단법인 김용균재단입니다. 비정규직없는 세상, 노동자가 건강하게 일하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고 김용균노동자의 투쟁을 이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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