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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평등하게 공부할 기회를 받을 수 있는 교육!"

한국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영상 속에서 자신들이 바라는 교육을 하나씩 소개했다. 이어서, 두 아이가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자신의 바람을 말했다. 한 아이는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하고 있었다.

"대학에 가고 싶어요, 너무 너무."
"전 축구와 수학을 잘해요! 많이많이 가르쳐 주세요."


지난 3월부터 울산 지역의 학교에서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아프간 특별기여자들의 자녀들이었다. 지난 7월 4일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재선 취임식에서 상영된 울산 지역 아이들의 '내가 바라는 울산 교육은?' 영상 중 일부다.

8일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고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부고에 많은 이들은 한 장의 사진을 먼저 떠올렸다. 지난 3월 21일 아프간 특별기여자 자녀들이 처음으로 등교하는 날에 노 교육감이 아이들과 손을 잡고 학교로 향하는 모습을 담은 사진이었다. 고인은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아이들과 함께 한 등굣길을 자세히 전하면서 학교와 학급 아이들에게 안도와 고마움을 전했다.
 
지난 3월 21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굣길을 함께한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모습.
 지난 3월 21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굣길을 함께한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모습.
ⓒ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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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21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굣길을 함께한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모습.
 지난 3월 21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굣길을 함께한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모습.
ⓒ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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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마침 아프간 설날이라고 합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 때문에 걱정을 했는데 생각보다 춥지는 않았습니다. 아이들 표정은 모두 밝았습니다. 아이들은 어깨에 멘 가방 외에 자기 이름을 쓴 종이가방을 하나씩 들고 있었습니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그 속에는 자기가 배정될 학급 친구들 숫자만큼 자기 이름을 써서 포장한 과자 선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친구들에게 잘 보이고 싶고, 자기 이름을 꼭 알리고 싶었나 봅니다.

(중략)

학생들을 각 학급에서 소개하거나 방송으로 전교생들에게 소개하고 또래 도우미도 문화도우미 등으로 이름 붙여 뽑았는데 희망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한 교장 선생님께서는 통합 수업 시간이 너무 적다며 더 늘려야 하겠다고도 하셨고 주말에 아이들과 함께하는 프로그램도 준비하고 있다고도 했습니다. 너무 고맙고 든든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자기 학교는 걱정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학생들끼리 찍은 사진을 저에게 보내 온 학생도 있었습니다."


아프간 이민자, 이슬람 문화권. 낯선 이주민과 그 자녀들에 대한 일부 학부모들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현대중공업의 협력업체 취업 주선으로 특별기여자 391명 중 157명이 울산 동구에 정착하게 되면서, 자연히 아이들도 울산 지역 학교로 배정받게 된 상황. 특히 초등학생의 경우 28명의 아이들이 한 학교에 배정돼 일부 학부모들 사이에선 '찬반 논쟁'이 불붙기도 했다.

고인은 논쟁에 참전하기보다 '함께 알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스스로 실천했다. 등교 전인 3월 7일에는 울산교육청 전 직원이 참여하는 '다모임 회의'에서 이슬람 전문 연구자인 이희수 교수를 초청해 함께 강의를 들었다. 노 교육감은 특강 직후 "아프간 자녀 학교 입학과 관련해선 미리 보냈던 질문에 대한 설득력 있고 현실적인 답변 들었다"면서 "아프간 특별기여자와의 만남은 또 다른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십사 기도 한다"고 소회를 남긴 바 있다.

4년 전 고인이 선언한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
 
8일 별세한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의 빈소가 마련된 울산시 북구 울산시티병원 장례식장에 영정이 놓여 있다.
 8일 별세한 노옥희 울산시교육감의 빈소가 마련된 울산시 북구 울산시티병원 장례식장에 영정이 놓여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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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학 통지는 이미 되어 있었지만, 등교가 지연돼 난민 부모님들은 '학교를 못 가게 되는 건가' '우리를 싫어하나' 싶어 굉장히 위축되어 계셨다. 그러다 3월 21일 등교할 수 있게 된 거다. 그런데 일부 학부모님이 반대 시위를 등굣길에 한다는 소문이 있었고, 우려가 심했던 상황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을 접하신 건지, 교육감님이 선생님들과 함께 손잡고 등교하셨다. 굉장히 감동적인 이야기로 남았다."

난민 인권 전문가인 이일 공익법센터 어필 변호사는 8일 오후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당시 접했던 노 교육감의 '등굣길' 앞뒤 족적들을 전했다. 반대를 외치는 부모들을 무조건 '당신들은 잘못됐다'고 몰아세우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교육받는 또 다른 친구로서 이주민 자녀를 이해할 수 있도록 대화와 설득을 거친 과정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 변호사는 "당시 일부 부모님들이 '아이들 안전 보장하라'는 식의 당황스런 시위를 했고, 그 과정에서 (노 교육감이) 중재하기 위해 많이 애썼다고 들었다"면서 "(이후에는) 이슬람 문화를 알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함께 교육을 진행했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언어 교원을 마련하기 위한 준비도 많이 하신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7월 19일 울산교육청에서 교사들을 상대로 세계 시민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노 교육감은 '함께 등교'에서 그치지 않고 교사, 학부모 등과 함께 다문화 이해를 위한 강의를 꾸준히 개설하고 희망자를 불러 모았다. 지난 5월 10일에는 교육청 직원, 동구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동부경찰서 직원 뿐 아니라 희망 학부모들과 함께 '다함께 공존, 학부모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강연을 청취했다. 그는 청강 이후 "잘 몰라 생기는 막연한 불안감을 떨치고 제대로 알아서 공존하는 방법을 찾아가고자 마련한 교육이었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이러한 고인의 생전 노력들은 이주민 정착 이후 뒤로 빠져 있는 중앙 정부의 '공백'을 메운 일들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난민 분들이 정착하게 되면, 주변 시민에게 설명을 구하고 살피는 일은 중앙 정부가 오랜 기간 노력해야 하는 일이다"라면서 "(노 교육감이) 이런 공백을 메우기 위해 하신 일은 누구에게나 귀감이 됐다"고 했다.

한편, 고인을 향한 교육계 동료들과 정치권 인사들의 추모도 이어졌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9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추모 글에서 "고국을 떠나온 아프간 아이들의 첫 등굣길에 손 맞잡고 걸어가던 그의 깊음을 사랑했고 차별받는 성소수자 학생들을 끌어안던 그의 넓음을 사랑했다"고 말했다.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 또한 "수학 선생님이었던 노 교육감님은 공장에서 일하던 제자의 산재 사고를 계기로 거리의 교사가 됐다"면서 "교육감님의 마지막 꿈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교육'을 이어가겠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지난 3월 21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굣길을 함께한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모습.
 지난 3월 21일 아프가니스탄 특별기여자 자녀들의 첫 등굣길을 함께한 노옥희 울산교육감의 모습.
ⓒ 노옥희 교육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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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연 서울교육감은 "살아생전 언제나 학생과 노동자 편에 서 계셨다"면서 "며칠 전 초중등 교육 재정을 지키고자 국회에서 고인과 함께 했던 시간을 기억한다. 그 시간조차 고인과의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하니, 수수께끼 같은 우리네 삶이 아득하게 느껴진다"고 비통해 했다.

"한 명의 아이도 포기하지 않는 울산교육"

울산교육청 곳곳에 표어로 붙어 있는 이 글자는 노 교육감이 2018년 7월 울산시의회 본회의에서 첫 시정보고를 하며 전한 '교육 비전'이었다. 노 교육감은 지난 4월, 박범계 전 법무부장관과 정부합동지원단이 교육청을 방문했을 때, 이런 말을 남겼다.

"어디에서 어떤 경로를 거쳐서왔든 모두가 소중한 아이들이기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태그:#노옥희, #울산시교육감, #다문화, #아프간,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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