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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국 55명(팀)이 참가하는 제주비엔날레가 내년 2월 12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 제주현대미술관, 제주국제평화센터, 삼성혈, 미술관옆집, 가파도레지던스(AiR)' 6곳에서 열린다. 예산은 약 18억 정도, 주제는 '움직이는 달, 다가서는 땅'이다. 기후위기가 이슈다. 활발하게 전시기획과 미술비평을 해온 박남희 홍익대 초빙 교수가 예술감독을 맡았다.
 
제주 가파도에는 '국제레지던스(AiR)'가 있다. 여기 참가한 영국 작가 '앤디 휴즈(Andy Hughes, 영국왕립예술학교 석사)' 작품 'SEE-THROUGH'이다. 가파도에 버려진 플라스틱병으로 작업한다. 작가는 쓰레기도 생명력이 있다고 본다
 제주 가파도에는 '국제레지던스(AiR)'가 있다. 여기 참가한 영국 작가 '앤디 휴즈(Andy Hughes, 영국왕립예술학교 석사)' 작품 'SEE-THROUGH'이다. 가파도에 버려진 플라스틱병으로 작업한다. 작가는 쓰레기도 생명력이 있다고 본다
ⓒ 제주비엔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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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어난 경관에 뼈아픈 4·3의 비극적 역사를 겪었고 무속과 신화의 서사가 풍부한 곳 제주에서 열리는 국제비엔날레라 기대된다. 사실 지난 두 번의 제주비엔날레는 코로나 등 악재로 성과를 못 냈다. 이런 중에 책임을 맡은 박 감독은 부담도 컸다. 그러나 양생의 땅 '제주'라는 특화된 장소를 근간으로, 세계급 작가 '콰욜라' 등을 발굴하고 강요배, 김수자 등을 초대해 차별화된 자료수집과 큐레이팅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럼 "왜 비엔날레는 열려야 하나?" 서구에서는 우선 '축전(祝典)'과 '반전(反戰)'에서 시작되었고, 우리도 정치·경제 위주로만 살다 보면, 삶이 삭막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경직성을 해소하고 활기 넘치는 생활예술을 실천하고 왕성한 창의적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다.

비엔날레는 일반 전시와 다른 점이 많다. 우선 전시가 거리에 노출되어 미술관에 가지 않아도 누구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로 제주도 전체가 거대한 캔버스나 전시장이 된다. 89일이란 짧지 않은 기간에 열린다. 아트페어처럼 판매 실적에 대한 부담감도 없다. 하지만 예술의 본질에 충실하고 시대정신이 담긴 수준 높은 전시를 선물해야 한다.

환경위기 속 이번 주제도 역시 인간을 둘러싼 자연과 우주의 생명력 회복하는 데 있다. 이건 전 지구적 이슈가 아닌가. 풍부한 상상력의 소유자인 작가들은 사소한 일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대안 모색을 위한 무한한 가능성에 도전해야 한다. 또한, 비엔날레는 국경이 없기에 세계의 창구가 되어 국내외 작가들과 함께 공존과 상생의 담론도 생산해야 한다.

김주영 작가, 처연한 '한의 정서'
 
김주영(1948년생) I '뱃길 따라-망향(무륭귤원)' 배 한 척과 유리의 집, 데스마스크, 광목, 귤나무, 거울 사다리 등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2
 김주영(1948년생) I '뱃길 따라-망향(무륭귤원)' 배 한 척과 유리의 집, 데스마스크, 광목, 귤나무, 거울 사다리 등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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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16개국 작가가 참가해, 총 165점을 선보였다. 다는 못하고 7점 정도를 소개한다.

김주영 작가의 '뱃길 따라-망향'은 이번 제주비엔날레 주제관이기도 한 제주도립미술관(관장 이나연) 입구에 설치돼 있다. 김 작가는 홍익대 교수를 하다 홀연히 프랑스로 유학, '들뢰즈' 강의를 청강하기도 했다. 분단시대 아픈 가족사 때문인지 화풍이 처연하다. 그 분위기 속엔 한국적 정서를 물씬 풍긴다. 올해는 박수근미술상도 수상했다.

이 작가의 키워드는 길과 집 그리고 유목주의다. 2천년대 유럽에서 '노마드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다. 길은 낯선 곳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곳이고, 집은 다시 떠돌 걸 알면서 잠시 머무르는 곳이다. 이런 여정은 작가에게 열반의 깨달음을 찾아가는 수행이 된다. 처음 밟아본 제주의 뱃길에서 하얀 광목천으로 원초적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펼친다.

자디에 사 작가, 지구 지킴이 나선 공상가 
 
자디에 사(Zadie Xa, 캐나다, 1983년생) I '달의 시학' 고분자 수지, 아크릴, 조개, 인조사, 천 2022
 자디에 사(Zadie Xa, 캐나다, 1983년생) I '달의 시학' 고분자 수지, 아크릴, 조개, 인조사, 천 202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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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왕립예술대학에서 석사를 마친 '자디에 사' 작가는 작년에 상하이비엔날레에 참여하기도 했다. 환경을 중시하는 캐나다 출신인지 생태붕괴를 막아내는 지킴이 작가가 되려고 하나 보다. 어머니는 한국 출신이라 어려서 한국 민담과 설화를 많이 들었단다. 작품마다 메신저의 상징인 '솟대(진또배기)'가 세워진 건 이런 이유이리라.

위 작품은 빛, 소리, 설치조각 등으로 구성돼 있다. 줄거리도 제주도 '바리공주' 무가에서 가져왔다. 관객은 전시장에서 바리공주가 되고, 동물은 공주를 인도하며 함께 지구를 치유한다는 이야기로 전개된다. 전시 벽의 초현실적 보랏빛이 전시장 전체 분위기를 주도한다.

작가는 누구보다 지구의 환경위기를 직시한다. 그런 위태로운 문명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듯 거룩한 제단을 쌓고 위력이 넘치는 전령사를 세우고 거기에 신령한 의상을 입힌다. 태초의 세상을 연상시키는 음향을 깔고 미지의 유토피아를 탐험하듯 공간도 조각, 회화, 마스크 등을 퍼포먼스 하듯 배치했다. 벽화엔 생태보전을 암시하듯 물고기 등이 그려져 있다.

강이연 작가, 최근 크게 주목받아 
 
강이연(1982년생) I '무한' 키네틱 프로젝션 설치, 4채널 음향, 240×150×239cm 2022
 강이연(1982년생) I '무한' 키네틱 프로젝션 설치, 4채널 음향, 240×150×239cm 202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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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장소를 바꿔 2007년에 개관한 제주현대미술관으로 가보자. 이곳은 경관이 빼어난 '문화예술인 마을' 한가운데 있다. 복합 문화공간으로 지하 1층·지상 2층과 야외 조각공원 등이 있다. 이곳 미술관에서 요즘 예술과 디지털기술을 결합해 주목받는 강이연 작가가 소개된다. 그녀는 2017년 런던 왕립예술학교에서 박사를 취득했고 이곳 객원교수이기도 하다.

미디어란 원래 오감을 다 즐겁게 하는 아트다. 이를 위해 작가는 요즘 소스 위치를 바꿔 데이터를 변환하는 '맵핑'을 애용한다. 그러나 이런 기술·지식이 아무리 '무한(작품명)' 해도 결국 인간은 관계에서 존재한다는 화두를 꺼낸다. 또 모든 게 갈라지는 시대 '통합미'를 추구한다. 영상 후반에 형태의 속도감이 빨리지는 건 급증하는 이산화탄소 농도의 은유다.

콰욜라 작가, 세계적으로 각광받다
 
콰욜라(이탈리아, 1982년생) I '산책로(La Promenade)' 4K 비디오, 20분 36초 2018. Credit: 콰욜라(Quayola)
 콰욜라(이탈리아, 1982년생) I '산책로(La Promenade)' 4K 비디오, 20분 36초 2018. Credit: 콰욜라(Quayola)
ⓒ Quayo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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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제주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콰욜라 작품 '산책로'를 보자. 런던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 작가는 2011년 베니스비엔날레 참가했다. 또 2013년 '전자아트(Ars Electronica)'전에서 골든니카상을 받을 정도로 세계급이다. 고전과 현대미술은 상반되나 상응하는 지점을 찾아 몰입형 영상으로 변환시킨다. 여기에는 프로그래밍과 컴퓨터 멀티미디어 기술도 활용된다.

위 '산책로'는 스위스 계곡 사이로 자율 주행하는 드론기술로 계곡의 풍경을 형상화한 전자 아트이다. 또 7개 대형 스크린으로 구성된 '리메인즈(Remains)'도 선보인다. 실제와 인공의 중간 형태를 띤 멀티미디어의 진수를 선물한다. 3D 프린트로 입체감을 높이고 거기에 레이저 스캐너로 구현한 풍경화임에도 사람 눈을 속이듯 그렇게 자연스럽다.

이이남 작가, 고전과 현대를 매치시키다
 
이이남(1969년생) I '기억의 뿌리' 혼합재료 비디오 설치 10분 2022
 이이남(1969년생) I '기억의 뿌리' 혼합재료 비디오 설치 10분 202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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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제주국제평화센터로 가보자. 이이남 작가의 신작이다. 최근 난징 국제아트페스티벌에서 우수작가상을 받았다. 이이남은 미디어를 통해 고전과 현대를 연결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전통 회화를 생동감 있는 디지털 작업으로 변모시켜 고전의 가치를 높이고,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대, 가상과 현실의 상반되는 요소를 결합하여 극적인 결과물을 낳는다.

위 신작은 300년 전 제주의 자연생태에 초점을 맞춰 그린 <탐라순력도(耽羅巡歷圖)>를 미디어아트로 우리 시대의 맥락에 맞게 재해석한 것이다. 또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보던 서구적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을 하나로 보는 동양의 세계관'을 관철한 셈이다. 전시장의 걸린 10여 개 거울로 과거 제주민과 지금 관객이 극적으로 상봉하는 효과도 낸다.

박지혜 작가, 신성한 장소 영상으로 재구성
 
박지혜(1981년생) I '세 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1' 12분 32초 2022
 박지혜(1981년생) I '세 개의 문과 하나의 거울1' 12분 32초 202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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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영국 골드스미스대에서 석사를 한 박지혜 작품을 보자. 제목에 '세 개의 문'이 들어간 것은 삼성혈 이야기 속 주인공, 제주 시조 '고씨·양씨·부씨'에서 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하긴 어떤 작품도 옛 서사나 신화 없이 비전을 제시하는 현대미술을 만들기 힘들다.

여기 와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제주 탐라국 개벽의 장소인 삼성혈은 참 신묘한 곳이다. 이 땅에서 뿜어내는 아우라에 사로잡힌다. 작가도 이런 소름 돋는 기운에 압도됐는지 예로부터 내려오는 구담을 기반으로 '이미지·사운드·모바일'을 결합해 수준 높은 영화적 영상으로 만들었다. 이런 작업은 결국 작가의 몫이고, 관람자는 그런 작가의 수고를 즐기면 된다.

덧붙이는 글 | [학술 프로그램] 제주도립미술관 강당에서 열린다 * 자세한 내용은 제주도립미술관 홈(www.jmoa.jeju.go.kr) 참고. [1강], [2강]에 이어 [3강] 12.14(수) 15:00~17:00 <비엔날레와 장소성> 강사: 이정우(임근준) (미술·디자인이론/역사 연구자) [4강] 12.21(수) 15:00~17:00 <비엔날레와 대중> 강사: 이대형(Hzone 대표)로 이어진다. 나머지 150개 작품은 여기 https://seulsong.tistory.com/manage/posts 클릭하시면 다 볼 수 있다(7개 블로그가 있다)


태그:#제주비엔날레, #박남희, #콰욜라, #자디에 사, #강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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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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